DEI 인사이트 #2
글
강예린 CSR팀
Editor's note
DEI는 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포용성)의 약자로 공동체 내에서 인종, 성별, 나이, 성적 지향, 장애, 종교, 문화적 배경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구성원이 공평하게 존중받고, 차별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의를 보자마자 ‘지루한 내용이겠군’ 하고 페이지를 닫으실지도 모르겠어요. 어려운 분야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고, 경제, 정치, 사회뿐 아니라 기업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입니다. DEI 담당자로서 접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칼럼에 풀어낼 예정이니 편하게 쓱 읽어주세요.
출처 : 네오누리콤 홈페이지 ‘네오스토리’ 게시물
#INTRO
“'선택장애’, ‘결정장애’ 라는 말 좀 불편해요. 저는 이 단어에 좀 부정적인데, 제 주변에서도 ‘장애’라는 것은 고칠 수 없는 것을 말하는데 선택이나 결정까지 붙어야 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23년에 아모레퍼시픽 구성원 대상으로 배포되었던 DEI 가이드를 제작하며 만난 시각장애인 한혜경님께서 위와 같이 말씀해 주셨는데요. 현장에서 이 얘기를 들으며, 마음이 복잡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언가 결정하기 어려울 때 저도 습관적으로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죠. 이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불편감을 줄 수 있겠구나’, ‘내가 사용하는 어떤 말 혹은 어떤 행동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들게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기업이 고객에게 건네는 말과 행동은 어떨까요? 오늘 칼럼은 이와 관련된 ‘포용적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포용적 마케팅의 영향력
포용적 마케팅(Inclusive Marketing)이란 인종, 성별, 나이, 장애, 성적 지향, 종교, 문화 등 다양한 정체성을 고려하여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방식으로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하는 접근법인데요.
오늘날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가진 가치관과 태도를 함께 선택합니다. 그만큼 기업이 내놓는 메시지, 이미지, 표현 하나하나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특히 다양성과 포용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높아진 지금, 브랜드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는 더 이상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실제로 다양성과 포용성이 고객의 구매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18개국 648개 브랜드를 대상으로 2만 300명 이상의 소비자를 조사한 칸타 브랜드 ‘포용성 지수 2024’에 따르면, 전 세계 소비자의 약 80%는 브랜드의 다양성과 포용성 노력을 구매 결정 시 고려하며, 특히 젊은 세대와 소외 계층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출처 : InsiderIntelligence.com
미국에서는 다양한 인종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위 표와 같이 Radius Global 조사에 따르면, 흑인, 아시아계 등 유색인종의 미국 내 구매력이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인종의 구매력이 높아진 만큼, 글로벌 뷰티 리테일러인 세포라(Sephora)는 2019년 업계 전반에서 흑인, 원주민, 유색 인종 고객의 쇼핑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소매업계 인종 편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요. 그 결과, 유색인종 고객 5명 중 3명은 많은 뷰티 리테일 환경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껴 매장을 떠났다고 합니다. 답변자 중 60% 이상의 고객은 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낀 매장에는 다시 방문하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해요.
이에 세포라는 직원들이 포용력을 갖출 수 있도록 무의식적 편견과 감수성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유색인종의 매장 매니저와 직원 채용을 대폭 늘렸습니다. 이외에도 모든 피부 톤에 맞는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새로운 다양성 기준을 포함한 외부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포용성’을 강화하는 이니셔티브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세포라의 매출은 두배로 증가했습니다.
반면에 마케팅에 ‘포용’을 고려하지 않은 기업은 큰 리스크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2019년, 독일의 대표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인 폭스바겐(Volkswagen)의 광고는 영국 광고심의기구(ASA)에 의해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왜 금지되었을까요?
출처 : 폭스바겐 광고 장면 일부 발췌
당시에 영국 광고심의기구(ASA)는 성 역할 정형화 금지를 도입했습니다. ‘성 고정관념이 있는 광고를 본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선택이나 기회를 제한해 불평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기반하여 규제를 하게 된 것이었죠.
해당 폭스바겐 광고에서 남성은 우주를 떠다니거나 의족을 달고 멀리뛰기를 하는 등 매우 활동적이고 모험심이 있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여성은 유모차 옆에서 책을 읽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는데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대비시키는 내용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되며 금지되었습니다. 어쩌면 과거에는 이 광고가 금지되지도 않고,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점차 고객들의 성 감수성과 차별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규제가 생겨난 것이죠.
출처 : 미국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베이니(Dylan Mulvaney)’ 협찬 장면
반대로, 오히려 ‘포용’을 반영하려다 섬세하지 못한 마케팅으로 리스크가 발생한 사례도 있는데요. 바로 20년 이상 미국 맥주 시장 1위를 굳건히 지키던 ‘버드라이트(Bud Light)’입니다. 버드라이트는 2023년도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틱톡 인플루언서에게 협찬을 진행했다가 주요 고객층이었던 남성 소비자들의 큰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6월 성소수자의 달을 맞아 마케팅을 전개한 것이었지만 주력 소비자층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한 것이죠.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버드라이트 제조사 AB인베브의 영상이 공개됐던 그 주 매출은 26% 급감하였고, 주가도 20% 하락하여 시장 가치가 무려 260억 달러 감소했다고 해요. 결국 1년여만에 맥주시장에서도 3위로 추락했습니다.
그만큼 광고 모델, 엠버서더, 인플루언서 등을 섭외할 때에도 DEI 관점과 주요 고객층을 고려하여 신중히 선정하고 세심히 표현해야 합니다.
2 ‘모든’ 고객에게 전달되는 ‘모든’ 순간을 고려한다면
포용적 마케팅은 어쩌면 고객에게 전달하는 과정에 있어 ‘모두에게 괜찮을까? 누군가에게 불편감을 주진 않을까?’하는 고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모레퍼시픽과 같이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의 경우에는 이런 과정 속에 유니버설 디자인과 포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고려합니다.
1)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제품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은 장애 유무, 나이, 성별, 언어, 문화적 배경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제품, 환경, 프로그램, 서비스 등을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이 중,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제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나이’에 상관없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출처 : 일본 마르나(MARNA) 홈페이지
골다공증으로 손 힘이 약해진 어머니를 본 일본 마르나(MARNA)사의 개발자는 병뚜껑을 쉽게 열 수 있는 ‘편리한 오프너’를 개발했습니다. 이 오프너는 어깨를 축으로 팔 전체에 체중을 걸 수 있도록 디자인됐는데요. 이 제품으로 노인들도 손끝에 큰 힘을 주지 않고 페트병 마개나 음료수 캔 등을 손쉽게 열 수 있습니다. 이 사례를 보니 저희 엄마도 손목 힘이 약해져 점점 더 뚜껑을 열지 못하시는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어느 순간에 갑자기, ‘불편함’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도 유니버설 디자인을 제품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2024 아모레퍼시픽홀딩스 지속가능성 보고서
(왼) 마몽드 맨리차징 토너 (오) 에스쁘아 꾸뛰르 립 틴트
마몽드는 ‘경계 없는 아름다움’을 지향하며, 신제품 단상자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기 방식을 고도화하였습니다. 기존 카테고리명 뿐만 아니라 제품의 주요 효능까지 점자로 표기하였으며, 점자 가독성을 높인 인쇄 방식을 적용하여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할 때 더욱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에스쁘아는 시각 장애인이 메이크업 제품을 사용할 때의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제품과 단상자에 점자 표기를 적용하였습니다. 특히, 컬러 제품 용기에는 호수 명칭 대신 컬러 계열을 점자로 표기하여, 색상 자체로 제품을 구분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더했습니다.
출처: 2024 아모레퍼시픽홀딩스 지속가능성 보고서 ‘유니버설 자문단’ 현장 사진
이러한 제품이 나오는 과정을 더욱 정확하고 세심하게 설계하게 위해 아모레퍼시픽은 23년도부터 ‘유니버설 자문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자문단은 아모레퍼시픽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위드림 소속의 다양한 신체적 특성을 지닌 임직원들로 구성되어, 아모레퍼시픽 유니버설 디자인 제품에 대한 프로젝트 기획부터 샘플 검수까지 개발 과정 전반에 참여합니다. 자문단 피드백을 바탕으로 제품 및 서비스에 고객 중심의 유니버설 디자인을 반영하고 있으며, 제품 패키지의 점자 표기 개선과 용기 사용 편의성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2) 뷰티 업계의 포용적 커뮤니케이션
제품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합니다. 언어 감수성이 낮은 표현이나 이미지를 사용한 웹사이트, 광고, 캠페인 등은 누군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은 언제나 고객의 입장에서 특정 표현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하죠.
2017년도에 글로벌 생활용품기업 도브(Dove)는 페이스북에 한 광고를 올렸다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출처: 동아일보 (도브 페이스북 홍보물 사진)
도브가 올린 영상에서는 한 흑인 여성이 도브 비누를 사용한 뒤 입고 있던 갈색 티셔츠를 벗으니 아이보리 티셔츠를 입은 백인 여성으로 변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백인 여성이 다시 티셔츠를 벗자 옅은 갈색 셔츠를 입은 아시아계 여성이 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에서는 흑인 여성이 백인으로 변신하는 부분만 편집돼 빠르게 확산되었고 비판이 터져 나왔죠. 이에 도브는 트위터에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광고 이미지는 유색인 여성들을 묘사하는 데 신중하지 못했다. 우리 광고로 고객이 모욕을 느끼게 돼 유감스럽다”고 밝히고 광고를 삭제했습니다.
이처럼 논란이 되기도 하는가 반면에 진정성이 더해진 포용적 커뮤니케이션은 기업에 대한 호감을 높이기도 합니다.
“Show, don’t tell” 말로 하지 않고, 보여줘라
출처: 펜티뷰티 인스타그램
펜티뷰티 (Fenty Beauty)는 글로벌 주류 뷰티 브랜드로서 최초로 여성과 인종을 고려한 급진적인 포용성 마케팅을 선보였는데요. 50가지 색상의 펜티뷰티 파운데이션을 출시하며 반향을 일으켜 미국에선 ‘펜티 이펙트’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브랜드 취지에 진정성을 더하고자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한번도 ‘포용성’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런칭 이래 “말로 하지 말고, 보여줘라 (Show, don’t tell)” 원칙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아모레퍼시픽에서는 포용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구성원들의 인지도 제고를 위해 가이드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출처: 아모레퍼시픽 DEI 공용 가이드 中
23년도에 광고, SNS, 캠페인 등을 전개할 때 DEI 관점이 고려될 수 있도록 인종/외모/장애/젠더/라이프스타일 등의 주제에서 10가지 인사이트를 도출해 담아낸 공용 가이드를 아모레퍼시픽 구성원 대상으로 공유하였습니다. 이 외에 헤라, 에스쁘아, 비레디 등의 브랜드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DEI 관점에서 점검하고 신규 캠페인을 제안하는 맞춤형 가이드를 제작하였습니다.
출처: 일리윤 DEI 커뮤니케이션 가이드 中
25년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점차 고도화되는 DEI 감수성 리스크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라네즈, 이니스프리, 일리윤, 롱테이크 4개 브랜드를 대상으로 미국, 유럽, 인도네시아 등 진출 국가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DEI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를 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가별 인종, 종교 등 주요 이슈가 되는 주제를 다루어 리스크를 사전에 방지하고 브랜드별 대응 전략을 마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유니버설 자문단부터 DEI 커뮤니케이션 가이드 제작까지, 이 과정 속에서 실제 고객(장애인, 현지인 등)과 인터뷰를 하다 보면 제 생각의 범주를 벗어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관점의 이야기를 듣게 되곤 했습니다. 따라서 포용적인 제품과 커뮤니케이션을 기획할 때 고객의 이야기를 직접 듣느냐, 안 듣느냐의 차이는 천지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포용적 마케팅을 고려하고 계신다면 고객들의 이야기부터 직접 들어보면 어떨까요? 그 시도가 ‘포용’의 시작일 겁니다.
#OUTRO
‘OO이 만드는 브랜드의 미래’, 이번 키워드는 ‘포용’이었는데요. 마케팅에 있어 포용을 고려하는 것은 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브랜드가 더 많은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되는 길은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평등’을 설계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를 실천하는 브랜드는 오늘만이 아닌 내일도 사랑받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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