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장원(粧源) 서성환 선대회장
Q. 회장님께서 화장품의 길로 들어선 데에는 모친 윤독정 여사의 영향이 컸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엌에서 손수 동백기름을 만들어 개성 시전에서 장사를 시작하셨고, 이것이 인기리에 팔리면서 1937년에는 아모레퍼시픽의 모태가 된 창성상점을 세워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드셨죠. 회장님이 보시기에 어머님의 동백기름은 무엇이 달랐나요?
Q. 어머님과 함께 일한 경험을 통해 어떤 가르침을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서성환 선대회장의 모친, 윤독정 여사
재료를 압착해 기름을 짜는 기름틀 *온양박물관 소장
Q. 창성상점의 일을 한창 배워 가시던 중 일제에 의해 태평양 전쟁에 강제 징집돼 고초를 겪으신 걸로 압니다. 1945년 마침내 광복을 맞은 후 개성으로 돌아와 창성상점의 이름을 ‘태평양상회’로 바꾸셨는데요. 당시 이름을 바꾸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Q. 1984년 출시한 ‘메로디 크림’에 붉은 장미가 화사하게 핀 감각적인 상표를 적용하고, 1951년 6.25 전쟁 와중에도 당시 국내 최초로 순 식물성 포마드 ‘ABC 포마드’를 개발하는 등 태평양의 초반 행보를 살펴보면 품질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도전이 단연 돋보입니다. 그러한 자세가 지금의 아모레퍼시픽까지 이어지는 것 같고요.
국내 최초 순식물성 포마드, ABC 포마드
국내 화장품 업계 최초의 태평양화학공업사 연구실
Q. 회장님께서는 특히 화장품의 본고장인 프랑스에 대한 열망이 남다르셨던 걸로 압니다. 1990년대 초반에 이미 프랑스 사르트르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신 후 제품 생산을 시작하셨고, 1997년에는 롤리타 렘피카 향수를 발매해 성공을 거두셨죠. 이는 어떤 경험의 영향일까요?
Q. 유럽 시찰에서 보고 깨달으신 것 중 이후의 사업에 적용하신 것이 있나요?
유럽 시찰 중인 장원 서성환 선대회장
Q. 인삼 화장품과 같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물성으로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에도 꾸준히 기여하셨지요. 현재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내에 자리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모태인 태평양박물관도 회장님의 뜻이셨다고요.
Q. 아모레퍼시픽의 출판을 통한 문화 활동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올해로 창간 65주년을 맞이한 <향장>은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뷰티 매거진이기도 합니다.
Q. 아모레퍼시픽은 1956년 장업계 최초로 광고에 모델을 출연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1957년 장업계 최초 잡지광고 게재, 1970년 우리나라 최초 신문 전면 컬러 광고 게재 등 대한민국 장업계 광고 또한 선도해 왔습니다. 광고에 대한 회장님만의 철학이 있으신가요?
Q. 1964년에 시작하신 방문판매 브랜드 ‘아모레’는 아모레퍼시픽 역사의 혁신적인 전환점이었는데요. 특히 1960~70년대에 방문판매가 태평양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장품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방문판매를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Q. 방문판매는 6.25 전쟁 후의 여성들에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주었지요. 아모레 화장품을 사용하는 고객과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의 중심에는 늘 여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모레 방문판매원
Q. 얼마 전 다녀온 제주 여행에서 아모레퍼시픽에서 운영하는 오설록 티 뮤지엄을 방문했는데요. 그곳에서 예전에는 극소수만 즐기는 고급 기호 식품이었던 녹차가 현재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대중적인 음료가 된 것이 회장님께서 녹차의 산업화와 대중화에 힘쓰신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녹차밭에서 묘묙을 살피는 장원 서성환 선대회장
Q. 아모레퍼시픽의 소명이 '사람을 아름답게, 세상을 아름답게' 인데요. 회장님에게 ‘아름다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Q. 사업가로서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셨을 텐데, 결정의 순간 어떤 마음으로 임하셨나요?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장원 서성환 선대회장
Q.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 아름다움을 전하고, ‘뉴뷰티’를 실천하고 만들어가는 구성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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