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김수연, 임상완 행잉스터프 대표
'자기다움'이 새로운 아름다움이 된 시대. 아모레스토리의 콘텐츠 '뉴뷰티 탐구'는 다양한 세대의 인물을 만나, 각자의 삶에서 발견한 '나다운 아름다움'에 대해 들어봅니다. 6화에서는 과거 영광을 누렸던 디자인을 재해석해 소개하는 행잉스터프의 이야기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고유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바쁜 일상에 떠밀리듯 살다 보면 한 질문이 발목을 낚아채듯 찾아온다.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정년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 많은 이가 부단히 일과 삶을 구분하려 하지만, 어쩌면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는 영역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다움’이란 나의 일과 연결돼 있지 않을까. 뉴뷰티탐구 여섯 번째 주인공 김수연, 임상완 부부는 내 것을 만드는 삶의 충만함을 말한다. 최선을 다 해서 나의 일을 하되, 그 결과는 흐름에 맡길 것.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밭을 일구는 마음으로 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반짝이는 눈과 힘 있는 목소리. 그들의 이야기에는 분출하고 수렴하는 에너지가 있다.
나를 닮은 사물
행잉스터프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상완 행잉스터프는 걸어보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찾아 소개하는 브랜드에요. 주로 우리가 좋아하는 물건 중 없어진 것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이죠. 지금까지 스테인레스 부엌장인 ‘아두닉 인디언 랙’과 라운드 형태의 ‘론드 프렌치 행어’를 제작했어요. 좋아해서 모은 것들, 좋아해서 시작한 것들이 사람들의 반응을 얻었고요. 유럽에서 단종된 디자인이니까 한국에서 관련 장인을 찾아서 제작해야 했죠.
수연 저희가 가장 먼저 시작한 프로젝트는 신촌문화관이었어요. 신촌에 오래된 건물 두 개를 리모델링 하여 복합 공간을 만드는 사업을 2019년 12월에 시작했는데, 바로 다음해 코로나가 등장했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그동안 못해왔던 거 하자’며 서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신촌문화관 8개 유닛에 철제 장을 넣고 싶었는데요. 빈티지 장이어서 구할 수 없었어요. 어렵게 인도의 공장을 재가동시켜서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인도 공장에서 수입했다가 이후에 국내 생산으로 품질을 높이는 결정을 했어요.
지면과 수직을 이루는 물건들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수연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가 생활하는 집과 작업실에 많은 사물이 걸려 있더라고요. 가구, 조명, 거울 이런 것들이 바닥에 있는 게 아니라 벽에 있는 거예요. 동선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인 것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상완 브랜드를 만들어가려면 방향성이 명확해야 하잖아요. ‘벽에 거는 것’이라는 콘셉트가 좀 더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그래서 이름도 ‘행잉스터프’라 지었고, 자연스럽게 인식되길 바랐죠.
두 분은 자신의 일을 어떤 문장으로 소개하시나요?
수연 저희는 스스로를 만드는 사람 ‘크리에이터’라 불러요.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좋아하는 것 외의 것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거든요. 저희가 함께 행잉스터프를 만들고, 저는 바느질 작업을, 상완은 막걸리를 만들어요. 둘이 좋아하는 것들을 상의해서 만드는, 그냥 ‘만드는 사람’이죠.
상완 우리가 만드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니까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이런 요소는 마케팅과 같은 작업이고, 기본적으로 우리는 무언가 만들어서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수연 커리어를 기자로 시작했어요. 이후에 마케터를 거쳐 제 브랜드를 하면서 브랜딩 디자인 회사를 운영했어요. 에이전시 형태였죠. 그래서 그런지 항상 마음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내 것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상완 저는 회사원이었어요. 저도 수연과 비슷하게 내 것을 하고 싶었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다’까지는 아니어도 ‘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가 때가 됐다 싶을 때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두 분의 공통된 화두였던 거네요.
수연 에이전시를 운영한 지 7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을까요. 회사가 가장 성장했던 때인데, 브랜드나 개인이 자신의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언가 갖춰져 있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람들한테 소개하고 나눌 수 있는 시대가 된 거죠.
상완 맞아요. 앞으로는 남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닌, 우리가 만드는 사람으로서 브랜드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우리 일을 시작하자. 그럴 때가 됐다. 그런 이야기를 나눴죠.
두 분이 만드시는 것들이 사람들의 일상에 어떻게 녹아들길 바라시나요?
상완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고 오래 소장할 수 있길 바라요. 우리가 추구하는 제품은 세월이 지났다고 유행이 지나는 게 아니라, 몇십 년 전부터 쓰이던 모델을 재해석한 형태라 ‘스테디셀러’에 가깝거든요. 우리가 천 개 만 개 파는 게 아니더라도 꾸준히 지켜봐 온 사람들이 선택했을 때 그들의 공간에 좀 더 오래 있을 거라 믿어요.
수연 제품이 많이 팔리는 것보다, 이 제품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닿기를 기대해요. 행잉스터프 제품은 거의 자사몰에서만 판매하고 있거든요. 그 의미는 사람들이 이 제품을 알고 찾아온다는 거예요.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서 돌아보다 우연히 발견하는 게 아닌, 자기 공간에 필요한 타이밍에 우리 제품을 떠올린다는 뜻이죠. 그렇기 때문에 더 가치가 생겨요. 저희 고객은 이 제품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고, 알고 있고 내 공간에 들어올 틈이 생겼을 때 가져다 놓는다는 거니까요.
함께여서 완성되는
특별함두 분의 역할은 어떻게 나뉘어 있나요?
수연 신촌문화관 공간 운영과 행잉스터프는 같이 하고 있고요. 제 바느질 레이블 림 오리지널은 제가 주도적으로 하되 의견이 필요할 때는 상완과 논의해 결정합니다. 마찬가지로 상완의 막걸리 브랜드 레이지댄싱서클은 상완이 주도적으로 진행하고요. 각 브랜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서로 알고 있고, 공유하면서 나아가죠.
함께 일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수연 되게 좋아요. 부부가 같이 일하는 건 다른 차원이니까 사람들이 싸우진 않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요. 처음에는 많이 싸웠어요. 둘 다 잘 되고 싶은 방법을 찾는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로 힘들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상완의 면면은 주로 제가 갖지 않은 것이어서 그런 면을 발산할 때 그렇게 미워 보이지 않아요. ‘저게 내가 좋아했던 거지.’ 그렇게 인정하게 되죠.
상완 이제는 어렵지 않아요. 합집합은 집합 A나 B보다 크잖아요. 집합이 서로 뭉쳐지면서 교집합이 생기고요. A는 A만의 개성이 있고, B는 B만의 개성이 있죠. 같이 하는 브랜드는 교집합에 해당하고, 각각의 레이블은 A나 B 집합에 해당해요. 넓게 보면 하나의 큰 집합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돼요. 나와 같은 걸 갖고 있지 않아서 좋은 상대인 거죠.
두 분이 협의하는 방법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들려 주신다면.
수연 살림을 합쳤을 때, ‘BBGW’라는 룰을 정했어요. 블루, 블랙, 그레이, 화이트에 해당하는 컬러만 집에 들일 수 있다는 룰이었죠. 우리 둘 다 오색찬란한 사람들이었어서 의견 차이를 줄이고자 시작한 규칙이었죠. 이 규칙을 지키다 보니, 점점 블랙 화이트 말고는 선택하지 않게 되었어요. 좋은 점은 옷을 사러 가서 일단 흰색과 검은색이 있는 섹션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어딘가 디톡스되는 느낌도 있고, 나에게 필요한 건 이 안에 있다는 생각에 시원한 쾌감이 있어요.
상완 시간을 아껴 일에 집중하기 위해 늘 같은 옷을 입는 스티브 잡스와는 결이 다른 것 같아요. 같은 화이트 색이라도 똑같은 옷은 하나도 없어서 매일 아침 어떤 옷을 입을까 시간을 들여 고민하게 되거든요. 우리가 좋아하는 거나, 사용할 것들의 레인지를 만들어 놓으니 조금씩 맞춰지더라고요.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하나의 목표가 있나요?
수연 우리가 바느질과 막걸리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좋아하는 것 이상의 전략이 있었어요. 장인정신이 살아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거든요. 많은 영역에서의 일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감을 잃고 생산력이 낮아지면 은퇴로 이어지게 되는데, 바느질이나 막걸리를 만드는 일은 나이가 들어가고 시간이 쌓이면서 오히려 장인정신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지금부터 쌓아간다면 훗날 우리에게 영광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야 70세, 80세까지 계속할 수 있을 테고요.
상완 저의 큰 바람 중 하나는 죽기 직전까지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은퇴한 뒤에 쉬는 게 아니라 계속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객관적으로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고 기쁨이 되는 결과물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우리가 만드는 브랜드와 당연히 연결되는 거고요. 우리를 나타내는 게 브랜드니까요.
나를 나답게 만드는
‘우리’의 일좋아하는 일로 우뚝 서는 일이 때론 불안하지 않았나요?
수연 오히려 에이전시를 운영할 때 불안이 컸어요. ‘클라이언트가 우리를 선택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년 계약이 안 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때때로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느낌을 받았죠. 당시에는 매번 누군가의 선택을 받는 게 힘들어서 내가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결정을 했어요. 누구의 선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일단 만드는 거죠. 요즘 ‘농부 같은 삶을 산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그냥 농부처럼 계속 씨앗을 뿌리고 비가 오면 또 흘려보내요. 계속 우리 할 일을 하다 보면 흐름대로 우리를 알아봐 줄 거라고 생각해요. 왜 두렵지 않겠어요. 일단 움직이고, 행동하는 거죠.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요.
상완 그 마음을 회사 안에서 더 느꼈어요. 회사에서 하는 일은 한정적이잖아요. 해를 거듭할수록 ‘내가 이 회사를 나가게 되면 바보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생각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되든 안 되는 그냥 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왔어요. 중요한 것은 내가 직장인이고, 개인 사업자고 이게 아닌 거 같아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이걸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죠. 그러다 보면 발견되는 거예요. 나를 발견한 사람이 좋은 경험을 했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발견으로 이어질 테고요. 길은 하나예요.
‘평생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고민했듯, 지금 시점에 하는 고민은 또 다를 것 같아요.
수연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어요. 여전히 새로 하고 싶은 일들도 있고요. 현재는 4개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사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도 당장은 여유가 없거든요. 만약 새로운 일을 하게 된다면 현재의 어떤 것은 내려 놓아야 하겠지요. 밸런스를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무엇에 집중하고 또 성장할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상완 몇 년째 우리 브랜드를 하고 있지만 계속 배워요. 무언가 안 되고 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것에 대해 마음 열지 않고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아직 있기 때문이더라고요. 사람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내가 이걸 몰랐기 때문에 그때 그걸 못 들었구나, 이런 것들이 아직 있어요.
실행에 대한 부담은 없으신 건가요?
수연 실패해도 괜찮아요. 우리는 무언갈 시작할 때 꼭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행잉스터프도 코로나 때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럼 제작이라도 해보자고 시작한 거고, 술도 우리 생각보다 잘 됐죠.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 와중에 잘 안 된 브랜드도 있어요. 해외 브랜드 원두를 수입했는데 이 역시 코로나 직격탄을 맞게 되면서 계획대로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끝내 사업을 접어야 했어요. 일상에서도 열심히 살지만, 애쓰지 말자고 해요. 최선을 다하되 안 돼도 괜찮다. 할 만큼만 하자는 마음이에요.
두 분의 삶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장 높은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요?
수연 우리 삶의 우선순위는 늘 둘이에요. 누군가는 자식이 우선이고, 특정한 타인이 우선이고, 회사의 직원들이 좀 더 좋은 복지를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중요하죠. 중요한 결정을 해야 될 때면 우리가 하기로 했던 방향이 맞는지 고민해요.
두 분이 생각하시는 ‘나다운 아름다움’을 한 단어로 소개해 주신다면.
수연 우리의 나다운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이에요. 실제로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할 때마다 ‘이게 자연스러운가’를 우선 고려하죠. 같은 맥락이 제품에도 반영되는데요. 제가 바느질 할 때 자주 쓰는 것 중 하나는 자연색 ‘소색’이에요. 표백하지 않고 실에서 뽑아낸 색 그대로를 뜻해요. 자연스러움에서 발산되는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상완 행잉스터프도 몇십 년 전에 인도에서 만들어져 유럽으로 수출됐던 그 모습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있어요. 요즘은 오히려 그때 그 방식대로 만드는 게 더 어렵죠. 발전한 기계가 명료한 단면을 만들어 내니까 기성품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아직도 일부터 사람 공정을 추가해요. 아주 매끈한 느낌이 없더라도 그 느낌이 좀 살았으면 좋겠어서요.
'뉴뷰티 탐구는' 다양한 세대별 라이프 스타일 속에서
'나다운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에디터 현예진
포토 강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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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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