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ESG 이모저모 #3
글
손명관 지속가능경영센터
Editor's note
고백합니다. 저희, ESG 덕후입니다. 회의실에서 탄소발자국 얘기에 눈이 반짝이고,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읽다가 무릎을 탁 치는 사람들입니다. 주변에서 "그래서 그게 뭔데?"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은 나머지, 아예 글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화장품의 생로병사부터 순록의 생존기까지, 예상을 살짝 빗나가는 ESG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여러분도 덕후가 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요즘 ESG 이모저모」, 격월로 찾아갑니다. 입덕을 환영합니다!
#INTRO. 드디어 시작된다! ESG도 법정공시 시대

<올해 발간한 아모레퍼시픽홀딩스 지속가능성 보고서>
"어... 드디어 나왔다!" 지난 7월,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한 해 농사를 잘 마쳤다고 안도할 새도 없이, 옆자리에 있던 팀원의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금융위원회에서 국내 지속가능성 의무 공시 기준을 확정하고, 적용 로드맵을 발표했다는 뉴스였습니다. 쉽게 말해, 기업의 ESG 정보도 이제 재무제표와 같은 무게로 다뤄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출처: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중 일부>
담당자 입장에서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와 "이제 큰일 났다"가 교차하는 순간이었죠. 오늘은 이 변화가 왜, 무엇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질의응답 형태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Q. 지속가능성 의무공시가 필요한 이유는? 왜 지금일까요?
A1. 기후 리스크가 기업의 실질적 가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의 기업 활동은 이해관계자, 사회경제, 자연환경과 깊게 연계되어 있고 상호 의존적입니다. 특히 폭염, 폭우, 가뭄, 한파, 물 부족 등 기후변화가 매년 심해지면서 "이러다 우리 회사 매출과 비용에도 진짜 영향이 있는 거 아니야?"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논의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기업들은 그동안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통해 '자랑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을 때' ESG 정보를 공개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보다 부풀리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이나 불리한 건 조용히 넘어가는 '그린 허싱(Green Hushing)'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여기에 국민연금, 미국의 자산운용사 블랙록 같은 큰손 투자자들이 기후 리스크를 투자 판단의 핵심 지표로 삼으면서, ESG 정보는 이제 ‘기업이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검증된 정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실질적인 영향 및 피해, 출처: IPCC 기후변화 종합보고서 2023>
A2.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EU는 이미 2024년부터 ESG 공시 의무화를 시작했으며, 호주, 싱가포르, 일본 등 금융 선진국들도 그 흐름에 합세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인 만큼, 글로벌 수준에서 요구하는 요건을 갖춰야 하는 상황인 거죠.

<출처: 국회예산정책처>
Q. 지속가능성 의무공시로 어떤 게 달라질까?
A1. 기업이 제공해야 하는 정보가 늘어납니다. 기후 공시는 기업이 ESG 관련 위험과 기회를 근거 있는 숫자로 소통하는 작업입니다. 이제 기업이 환경과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떤 전략과 방향을 갖고 있는지 투자자와 이해관계자가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기후 부분에 있어서는 지난 칼럼에서 소개했던 '기후 적응'이라는 개념을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온 셈입니다.
A2. 표현 방식의 변화: 팩트와 데이터로만 이야기해야 합니다. ESG 정보가 법정공시로 전환이 되면, 보고서 내 숫자에 대한 책임이 강화됩니다. 자율공시 시절엔 숫자에 오류가 있더라도 조용히 고쳐서 다시 올리거나 제한적으로만 검증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대로 된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또한 화려한 수사로 덮거나, 부정적 이슈가 있을 때 어물쩍 넘어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친환경 실천을 위한 노력은 계속됩니다"와 같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문장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A3. 대상 기업 확대: 이제는 '모두'가 공개해야 합니다. 2025년 기준, KOSPI 상장사 중에 ESG 정보를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통해 공개하는 기업은 27.5%에 불과합니다. 이번 ESG 법정공시는 2028년 자산 10조 원 이상부터 시작해 2033년엔 코스피 전 기업으로 확대됩니다. ESG 정보에 둔감했던 B2B 기업이나 중견기업, 업력이 오래된 기업은 슬슬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죠.

<출처: 국회예산정책처>
Q. 기업 현장에는 어떤 파장이 올까요?
A1. ESG 담당부서 혼자서는 못합니다.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은 ESG팀만의 업무였습니다. 하지만 회계기준에 맞게 사업보고서에 포함을 해야 하는 시점부터는 재무·회계부서와의 연계가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획·전략부서와 함께 ESG 위기와 기회를 기업 전략에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합니다. ESG 데이터를 어떻게 취합, 모니터링, 통제, 검증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죠.
A2. 당분간 의무공시와 자율공시는 공존할 겁니다. 법정공시가 생겼다고 기존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가 바로 사라지지는 않을 전망입니다. 공시 영역 밖인 ESG 정보(인권, 공급망, 생물다양성, 정보보안, 안전보건 등)는 여전히 투자·평가 기관, 원청사, 소비자 등에서 다양하게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자율 공시와 의무 공시를 어떻게 통합 및 분리할지는 각 기업의 상황과 전략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Q. 이해관계자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A1. 투자·평가 기관: 기업에 대한 장기 분석이 가능해집니다. 공시 규격과 항목이 표준화되면서 데이터 비교와 분석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지금까지는 온실가스 배출량 하나만 봐도 단위나 범위가 회사마다 각각이라 '정확한 비교'라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의무공시를 통해 기준이 통일되면, 경쟁사와 동종업계를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AI의 발달로 ‘딸깍’ 한 번으로 수십 개의 보고서를 벤치마킹하여 순위를 매기거나 이슈를 도출할 수 있게 됩니다.
A2. 언론사: ESG 심층 기사 발간이 가능해집니다. 표준화된 데이터는 기자들에게도 좋은 취재원이 됩니다. 지금까지는 기업마다 순서나 단위가 제각각인 자료를 일일이 따져봐야 했지만, 이제는 동일한 형식의 공시 자료를 기반으로 순위, 비교, 이상 징후를 훨씬 쉽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그린워싱 의혹 보도나 업종별 비교 기사가 앞으로 더 자주, 더 정교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A3. 시민·환경단체: 반갑지만, 이걸로 부족합니다. 이번 의무공시는 글로벌 회계기준에 기반하여 수립된 만큼, 주주 및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시민·환경 단체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울 수 있습니다. 특히, 공시 관점에 ‘우리가 기후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가’만 들어 있고 ‘우리가 환경을 얼마나 훼손했는가’는 빠져 있기 때문이죠. 또, 인권, 노동 공급망, 거버넌스 등 ESG 주요 영역이 이번 의무공시 범위에서 제외된 것도 비판 사항 중에 하나입니다.
A4. 경쟁사: 이제는 서로 다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경쟁사의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공급망 리스크 관리 수준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기준과 산정 범위가 회사마다 제각각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공시 기준이 통일되면 경쟁사가 우리 회사의 배출량, 목표, 이행 성과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우리도 경쟁사의 전략을 참고할 수 있게 됩니다. ESG도 이제 하나의 비교 가능한 경쟁 지표가 되는 셈입니다.
A5. 원청사 및 소비자: 선언보다 숫자를 믿는 시대가 옵니다. 글로벌 대기업이 협력사 선정 과정에서 공시 데이터를 활용해 평가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EU 공급망 실사 지침(CSDDD) 등의 규제를 적용받는 글로벌 기업은 협력사에도 자사의 ESG 행동규범 준수를 요구하는 만큼, 관련 기준을 충족해야 거래나 계약 체결이 가능한 경우가 더욱 많아질 전망입니다. 일반 소비자 역시 검증된 공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과 브랜드의 ESG 메시지를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선언적인 홍보 문구보다 객관적 데이터와 검증 결과가 소비자의 신뢰를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A6. 검증사(회계법인, 법무법인): 검증 시장의 경쟁도 치열해집니다. 지속가능성 정보도 재무제표처럼 회계법인 등에서 제3자의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ESG 보고서의 검증을 대부분 비회계법인에서 맡아 왔지만, 법정공시화로 신뢰성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회계법인은 물론 법무법인까지 검증 시장에 뛰어들며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걸로 예상됩니다.

<출처: AI로 제작한 이미지>
Q. 앞으로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A1. 너무 겁먹지 말기. 공시 거버넌스 체계 구축, 전사 연결경계 확정 및 데이터 정리, 탄소중립 로드맵 설정,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 기후 적응 및 전환 계획 수립 등등. 담당자 입장에서는 말만 들어도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하지만 아직 준비할 시간이 있고, 초기 3년 간의 오류에 대해서는 면책 조항도 있어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보다 먼저 의무공시를 시작한 EU의 글로벌 기업들도 아직 규정에 100% 부합하게 공시하는 곳이 없습니다. "잘못하면 큰일 난다"라는 부담은 내려놓고, 오히려 백 페이지 이상의 장황한 기존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슬림하고 임팩트 있게 정리할 기회로 삼으면 됩니다.
A2. 돈이 되는 ESG 하기. 제목을 좀 자극적으로 달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윤 추구'가 제1의 목적인 기업이 ESG 공시가 생겼다고 손해를 감수하며 자선 사업을 할 수는 없습니다. 관건은 ESG를 경영 전략에 잘 버무려 '비용'이 아니라 '기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일례로, 최근 전력 비용은 높아지는데 태양광 설치 비용은 낮아지면서, 사업장에 태양광 설비를 갖출 경우 10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하고, 더 나아가 수익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예를 찾자면, 기후 변화를 미리 예측해 핵심 원료의 조달 전략을 다변화해 원가 상승 리스크를 줄이거나, 제품의 탄소발자국을 개선하여 ESG 무역장벽(포장재 규제, 플라스틱세, 탄소국경조정제 등)을 넘어서는 것도 가능하겠습니다. 환경·사회적 영향을 제품 설계, 설비 투자, 생산 유통 전반에서 고민하고, 경영 의사결정의 한 축으로 삼아야 할 시점입니다.

<출처: AI로 제작한 이미지>
#OUTRO
이번 의무공시 발표로 ESG의 무게중심은 홍보(PR)에서 투자(IR)로 완전히 옮겨가고 있습니다. 당장 많은 기업들은 크고 작은 혼란을 겪겠지만, 하나씩 기준을 세우고 데이터를 정리해가다 보면 변화에 익숙해질 거라 믿습니다.
처음 이 소식을 듣고 옆자리 동료가 내뱉었던 탄성처럼, 앞으로 몇 년간 지속가능경영센터의 일상에는 크고 작은 탄성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다만 그 탄성이 당혹스러움보다는, 하나씩 준비해 나가는 데서 오는 안도와 자신감이었으면 합니다.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이번 의무공시가 잘 정착되어 많은 기업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Create New Beauty로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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