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가 다다익선이 아니라면? – 과다 정보와 부족한 선택지 사이에서 균형 잡기 - 아모레퍼시픽 스토리(AMOREPACIFIC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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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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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지가 다다익선이 아니라면? – 과다 정보와 부족한 선택지 사이에서 균형 잡기

하나의 상품이 팔리기까지 | #4 <프로모션과 UX 사이에서 선택의 조건을 설계하기>

 

글

박현진 오설록 e커머스영업팀

 

Editor's Note


숫자로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 하지만 실제로는 매일 결정하고 있는 것들. 이 시리즈는 그 순간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매일 하는 선택들—어떤 상품을 먼저 보여줄지, 어떤 문장으로 말을 걸지, 어떤 흐름으로 고객을 안내할지—에 대해 기획자의 관점으로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같은 사람도, 상황이 달라지면 다르게 움직인다

 

 

 

며칠 전 온라인에서 8천 원짜리 생활용품 하나를 사려다가 결제를 멈췄다. 상품 가격 자체는 부담스럽지 않았는데 배송비 3천 원이 붙는 순간 왠지 아까웠다. 무료배송까지 얼마가 남았는지 확인했고, 결국 딱히 살 생각이 없었던 물건 하나를 장바구니에 더 담았다. 배송비 3천 원을 아끼기 위해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쓴 셈이다. 그런데 몇 달 전 가구를 살 때는 달랐다. 상품 가격도 훨씬 비쌌고 배송비도 몇만 원이었지만 별 고민 없이 결제했다. 몇만 원은 괜찮았는데 3천 원은 아까웠다. 숫자만 놓고 보면 꽤 이상한 행동이다. 이런 이상함을 설명하는 개념이 있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가 이야기한 ‘심적 회계(Mental Accounting)’다. 사람은 모든 돈을 똑같은 돈으로 계산하기보다 마음속에서 용도와 상황에 따라 마치 서로 다른 계좌를 쓰듯 나누어 판단한다. 같은 금액이라도, 무엇을 위한 지출로 보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나 역시 3천 원을 단순한 3천 원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8천 원짜리 상품 옆에 붙은 배송비는 ‘상품도 아닌 곳에 사라지는 돈’처럼 느꼈지만, 큰 가구를 집까지 가져다주는 몇만 원은 ‘배송이라는 서비스를 사는 비용’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절대적인 숫자가 달라서가 아니었다. 그 돈에 내가 붙인 이름이 달랐기 때문이다.

 

온라인몰을 운영하다 보면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자주 만난다. 처음에는 고객의 행동에도 예측 가능한 공식이 있다고 생각했다. 무료배송 기준을 만들면 객단가가 올라간다든지,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구매 결정이 어려워질 것이며, 결제까지 가는 단계는 짧을수록 좋고, 혜택은 눈에 잘 띄게 보여줘야 한다는 등. 이러한 예상들이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일을 할수록 그 공식 앞에 질문이 하나씩 붙기 시작했다.

 

 

더 많이 보여주는 것이 친절할까

 

 

 

처음 프로모션 페이지를 만들 때는 무엇을 더 넣을지를 고민했다. 신상품을 알려야 했고, 베스트셀러는 고객이 많이 찾으니 잘 보여야 했다. 할인 쿠폰도 놓치기 아쉬웠고, 선착순 혜택이나 추가 적립처럼 기간에 따라 달라지는 정보도 있었다. 하나씩 따져보면, 모두 보여줘야 할 이유가 있었다. 상품 하나를 더 넣고, 혜택 하나를 더 설명했으며, 배너 하나를 추가했다. 정보를 빠짐없이 담을수록 점점 친절한 페이지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문득 반대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고객에게 유익한 정보를 더 주고 있는 걸까, 아니면 고객이 읽고 판단해야 할 정보만 늘려 오히려 부담을 주고 있는 걸까? 화면에 정보를 하나 추가하면 텍스트 한 줄이 더 늘어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 들어온 정보는 이미 있던 정보와 함께 사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한다. 중요도가 비슷한 배너와 상품이 계속 나열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강조되다 보니 정작 필요한 정보가 눈에 들어오기 어려워진다.

 

1930년대 초 런던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당시 런던의 지하철망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고, 초기 노선도는 실제 지형과 거리를 충실하게 표현한 지도에 가까웠다. 하지만 실제 비율대로 그리자 역이 몰린 중심부는 지나치게 빽빽해졌고, 외곽은 넓은 공간을 차지했다.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줄수록 승객이 정작 알고 싶은 경로는 찾기 어려워졌다. 이때 전기 설계도 작업을 했던 해리 벡(Harry Beck)이 새로운 방식의 노선도를 제안했다. 그는 실제 지리와 거리의 표현을 상당 부분 포기했다. 노선을 수평과 수직, 일정한 각도의 선으로 정리하고 실제 거리가 다른 역도 비슷한 간격으로 배치했다. 지리적으로는 이전보다 덜 정확한 지도였다. 하지만 승객은 오히려 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에게 역과 역 사이의 실제 거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노선을 타고, 어디에서 갈아타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벡이 없앤 것은 목적에 필요하지 않은 정보였다.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프로모션 페이지가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보여주는 것이 반드시 고객에게 가장 정확하고 친절한 경험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객이 필요로 할지도 모르는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것보다는, 고객이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에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보이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럼 선택지를 줄이면 되는 걸까

 

 

 

그 뒤로 페이지를 볼 때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 ‘이 정보도 중요하니까 넣자’보다 ‘고객은 여기에서 무엇을 결정해야 하지?’를 먼저 생각했다. 예를 들어 선물을 고르는 고객에게 오설록의 선물세트를 가능한 한 많이 보여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상품이 열 개에서 스무 개가 되면 선택지가 두 배가 되는 동시에, 비교해야 할 대상도 두 배가 된다. 이와 관련해 행동과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실험이 있다. 연구진은 식료품점에서 한 조건에서는 24종의 잼을, 다른 조건에서는 6종의 잼을 진열했다. 많은 종류를 보여줬을 때 더 많은 사람이 멈춰 서서 구경했지만, 실제 구매로 이어진 비율은 제한된 선택지를 보여줬을 때 더 높았다. 이 연구를 처음 접하면 결론은 쉬워 보인다. 상품을 적게 보여주면 되는구나.

 

나도 한동안 비슷하게 생각했다. 상품 수를 줄이고 ‘3만 원대 선물’, ‘부모님께 드리기 좋은 선물’, ‘차를 처음 접하는 분께 추천하는 구성’처럼 몇 가지 기준을 만들어주는 편이 더 나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오설록 같은 브랜드몰에서는 꽤 유효한 방식이다. 이미 ‘오설록’이라는 범위 안으로 들어온 고객이 자신에게 맞는 차나 선물을 찾을 수 있도록 선택의 기준을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쇼핑 플랫폼을 보다가 다시 의문이 생겼다. 선택지가 적을수록 좋은 경험이라면, 수많은 상품을 가진 플랫폼은 가장 불편한 서비스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소비자로서 온라인 플랫폼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오히려 상품이 많기 때문이다. 검색하면 웬만한 것은 모두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브랜드몰과 플랫폼은 애초에 고객에게 주는 가치가 다르다. 브랜드몰에서는 브랜드 안에서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쉽게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플랫폼에서는 여러 브랜드와 상품을 한곳에서 비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치가 된다. 그래서 플랫폼은 상품 개수를 줄이지는 않는다. 대신 검색과 필터를 만들고, 리뷰와 랭킹을 보여주고, 추천을 붙인다. 선택지는 그대로 두고 그것을 모두 검토해야 하는 수고를 줄인 것이다. 같은 오설록몰 안에서도 고객에게 필요한 기준은 다르다. 평소 즐겨 마시던 차를 다시 사는 고객은 원하는 상품을 빠르게 찾고 싶다. 반면 선물을 고르는 고객은 예산과 크기, 받는 사람의 취향을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차를 처음 접하는 고객에게는 상품명보다 맛과 향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먼저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선물 영역을 볼 때도 상품의 개수를 세기보다, 고객이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할지를 먼저 생각한다. 가격대가 필요한지, 선물의 크기가 필요한지, 차의 종류나 취향을 나눠 보여줘야 하는지를 살핀다. 중요한 것은 선택지가 적고 많음이 아니라, 원하는 상품에 도달하기 위해 불필요한 비교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였다.

 

 

불편한 것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선택지만큼 자주 듣는 UX의 원칙이 있다. 고객이 구매 과정에서 겪는 ‘마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쿠폰을 받기 위해 메뉴를 몇 번씩 찾아 들어가게 할 필요는 없다. 예약 구매 상품을 다른 상품과 함께 주문했을 때 함께 주문한 상품까지 늦게 배송된다는 사실을 결제한 뒤에야 알게 만드는 것도 좋은 경험은 아니다. 이런 수고는 줄이는 것이 맞다.

 

그런데 모든 마찰이 나쁜 것은 아니다. 은행 앱에서 100만 원을 송금할 때 마지막 확인 화면이 한 번 더 나온다고 해서 꼭 불편한 UX라고 느끼지는 않는다. 클릭은 하나 늘어나지만 받는 사람과 금액을 다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안심할 수 있다. 선물도 비슷하다. 내가 마실 차 하나를 주문한다면 최대한 빠르게 결제하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람에게 보내는 선물이라면 배송지와 받는 사람, 출고일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과정이 귀찮기만 하지는 않다. 같은 클릭도 어떤 순간에는 장애물이 되고, 또 어떤 때는 실수를 막아주는 장치가 된다. 여기서는 마찰의 여부보다는 마찰이 필요한 이유가 중요하다. 오설록몰에서도 ‘이 쿠폰은 어디에서 받지?’라는 고민은 없애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구수한 차가 좋을까, 향긋한 차가 좋을까?’라는 고민까지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고민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선물을 고르는 과정의 일부일 수 있다. 대신 둘의 차이를 쉽게 이해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에 가깝다.

 

그래서 요즘은 ‘고객의 고민을 줄여야 한다’는 말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좋은 UX는 고객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가치가 없는 것에 에너지를 쓰지 않게 만드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좋은 사례를 볼 때 질문이 달라졌다

 

 

 

처음 직영몰 업무를 시작했을 때는 다른 서비스를 보며 좋은 기능을 발견하면 곧바로 기록했다. 상품은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 좋구나. 무료배송 기준은 이 정도가 좋구나. 선착순 혜택은 이런 시간에 여는구나.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도 해보면 어떨까’로 이어졌다. 지금도 다른 쇼핑몰과 플랫폼을 많이 본다. 하지만 이젠 좋은 기능을 발견했을 때 곧바로 가져오기보다 먼저 질문하게 됐다. 왜 이곳에서는 이렇게 했을까?

 

어떤 서비스에서는 상품 수를 줄이는 것이 좋은 선택일 수 있고, 다른 서비스에서는 많은 선택지를 유지하면서 필터를 제공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어떤 과정에서는 클릭 하나를 줄여야 하지만, 되돌리기 어려운 선택 앞에서는 확인 단계를 일부러 남겨둘 수도 있다.

 

겉으로 보면 서로 반대되는 UX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모두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무엇을 하러 왔는지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서비스를 벤치마킹할 때 가장 위험한 순간은 결과만 가져오고 그 결과가 만들어진 이유는 놓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좋은 사례를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 사례가 어떤 고객과 상황에서 좋은 경험이 되었는지까지 이해해야 비로소 우리에게 맞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정답 앞에 조건을 붙이는 일

 

일을 시작했을 때는 좋은 기획자가 되려면 정답을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혜택이 구매를 만드는지, 상품은 몇 개를 보여주는 것이 좋은지, 결제 단계는 몇 번이 적절한지와 같은 답을 하나씩 쌓아가면 언젠가는 기획이 쉬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일을 할수록 정답을 더 많이 알게 됐다기보다는, 알고 있던 정답 앞에 조건을 하나씩 붙이게 됐다. ‘혜택은 클수록 좋다’에서 ‘지금 이 고객에게 의미 있는 혜택이어야 한다’로. ‘선택지는 적을수록 좋다’에서 ‘선택하기 쉬워야 한다’로. ‘클릭은 적을수록 좋다’에서 ‘필요 없는 클릭은 적을수록 좋다’로. 같은 사람도 오늘 마실 차 한 통을 살 때와 누군가에게 건넬 선물을 고를 때 중요하게 보는 것이 달라진다. 목적이 달라지면 좋은 경험의 모양도 달라진다.

 

3화에서는 숫자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긴다는 이야기를 했다. 일을 하며 UX에서도 비슷한 것을 배우고 있다. 숫자에는 질문이 필요했고, UX에는 맥락이 필요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정답을 더 많이 알아가기보다, 정답이 성립하는 조건을 질문해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기획이라는 일은 하나의 완벽한 정답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지금 가장 나은 답을 고르고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화인 다음 편에서는 그렇게 가설을 세우고, 선택하고, 틀리고, 다시 바꾸며 하나의 상품을 팔아온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하나의 상품이 팔리기까지 우리가 반복해 온 수많은 선택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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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오설록 e커머스영업팀
 
오설록 직영몰 기획자 메일
  • 같은 상품도 다르게 팔린다고 믿고,
  • 고객의 ‘선택 이유’를 데이터로 찾아 그걸 구조와 기획으로 다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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