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췄을 때 보이는 일의 의미 - 아모레퍼시픽 스토리(AMOREPACIFIC STORIES)
#Amorepacific:log
2025.12.04
143 LIKE
583 VIEW
  • 메일 공유
  • https://stories.amorepacific.com/%ec%95%84%eb%aa%a8%eb%a0%88%ed%8d%bc%ec%8b%9c%ed%94%bd-%eb%a9%88%ec%b7%84%ec%9d%84-%eb%95%8c-%eb%b3%b4%ec%9d%b4%eb%8a%94-%ec%9d%bc%ec%9d%98-%ec%9d%98%eb%af%b8

멈췄을 때 보이는 일의 의미

 

글 아무래 (가명)

 

1 휴가 중 생각한 일의 의미

 

얼마 전 저는 건강 상의 이유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해지니 제대로 씻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창백한 얼굴에 부르튼 입술, 병원복을 입고 있는 거울 속 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스스로가 가련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보호자도 방문할 수 없는 병동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평소 바쁘게 살 때는 미처 바라보지 못하던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갈라진 입술이 거슬려 무심코 옅은 컬러의 립밤을 발랐는데, 핏기없이 환자처럼 보이던 얼굴에 순간적으로 생기가 스며들며 표정마저 달라보였습니다. 평소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했던 그 순간의 작은 터치 하나가 제 지치고 우울한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듯 낯설고 특별했습니다. 그때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 화장품이 이런 존재일 수 있겠구나.'

메이크업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건조한 피부에 향기로운 크림을 바를 때 다시 촉촉하고 유연해지는 감각은 거의 치유에 가까웠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는 병동에서, 링거대를 끌고 거울 앞으로 가 스킨케어를 천천히 덧바르던 그 시간은 단순한 화장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돌아가는 과정 같았어요. 그 순간, 내가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이 물건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자기 치장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만은 아닙니다. Self-care, 스스로를 돌보고 있다는 감각은 내 삶을 다시 통제하고 있다는 작은 확신을 주고 회복력을 만들어줍니다. 화장품은 옷이나 헤어스타일처럼 큰 변화를 요구하지도 않고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 가장 빠르게 나를 되찾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기분전환을 위해 쇼핑하러 나갔다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더 우울해졌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죠. 화장품은 그런 실패 확률이 훨씬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병동에서 혼자 조용히 나를 돌보며 깨달았습니다. 내가 회사에서 수많은 고민 끝에 만들어내는 그 결과물들이, 어쩌면 누군가에게 이런 작은 기쁨과 회복의 순간이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을요.

 

 

 

 

 

2 왜 일하는가, 왜 이 일인가

 

병동에서의 작은 회복을 경험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몸이 멈추니 마음도 멈춰서, 일의 의미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왜 일하는가』의 저자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이 단순한 생계유지 수단을 넘어선다고 말합니다. 그 말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론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돈을 많이 벌어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금의 이 생활이 최선은 아닐 수도 있겠죠. 서점과 유튜브엔 단 며칠 만에 몇 억을 번다는 성공 신화가 넘쳐나고, AI의 급격한 발전은 노동의 가치를 빠르게 흔들고 있으니까요.

AI 덕분에 많은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어가는 시대에, 역설적이게도 전문가들은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강조합니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중간 정도 수준의 데이터 전문가보다 줄넘기를 기똥차게 잘하는 틱톡 스타가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평균적인 능력은 누구나 쉽게 갖추게 되는 시대이니, 결국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이 중요하고, 가장 잘하려면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는 맥락입니다.

그래서 일을 생각하는 제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일을 꽤 좋아하는 편이에요. 사랑까진 모르겠습니다. 출근은 여전히 힘들어서요. 하지만 저는 고객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도 모르는 단서를 찾는 일이 꽤 즐겁습니다. 사소한 불편,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어떤 욕구, “그냥 저는 이런 게 불편해요”로 시작하는 무심한 문장들. 그런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속성을 세우고, 그 속성이 개발 과정 내내 흐려지지 않도록 고객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고객에게 “이게 내가 찾던 제품이 맞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의 쾌감이 있더라고요.

물성을 가진 결과물을 만든다는 것은 무겁고도 즐거운 일이에요.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형태로’ 남는다는 것. 그래서 책임도, 보람도 함께 따라옵니다. 실수로 오탈자 하나라도 나면 쉽게 고칠 수도 없고, 이미 출고된 제품을 다시 회수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제품 하나를 만들 때마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하게 됩니다. 용기가 손에 잡았을 때 미끄럽지 않을지, 모서리가 날카롭지 않을지, 사용하다가 갑자기 많은 양이 쏟아져 옷을 더럽히진 않을지. 그리고 그 속성이 제형과 용기의 다양한 조합을 지나 실제로 ‘손에 잡히는’ 형태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순간들.

긴 고민과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탄생한, 물성을 가진 어떤 결과물이 세상 어딘가의 낯선 사람 손에 들어가 그들의 하루에 아주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 그걸 떠올리면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할 힘이 납니다.

 

 

 

 

 

3 직업적 자존감

 

결국 이 이야기는 ‘직업적 자존감’으로 이어집니다.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이 직업적 자존감—즉, 내가 하는 일에서 내가 스스로 느끼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비대한 자아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걸어온 길과 쌓아온 시간을 “하찮은 결과물”이라며 스스로 깎아내릴 이유도 없습니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일에 몰두해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 한 번쯤 ‘넘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에요. 몸이 버티지 못해 멈춰 서야 할 때가 있고, 주변의 속도와 비교하며 마음이 흔들리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엔 내가 쌓아온 것들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일 수록 스스로에게 다정해야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일의 의미를 곱씹고, 하루에 2/3의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의 의미를 되짚어야 합니다. 스스로 우군이 필요해서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의미를 스스로 알아야 일을 또 지속하고 결국은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복귀 후의 일상은 똑같습니다. 저는 다시 일정에 쫓기고 있고, 또 누군가에게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읍소하며 문제 해결방법을 찾는 나날이에요. 쉬는 동안 들었던 깊은 고민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저 일상을 반복합니다. 그래도 그 반복 속에서도 저는 하나를 잃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왜 여전히 이 일을 붙잡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내가 만든 작은 결과물 하나가 누군가에게 아주 조용한 회복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내 일의 의미를 다시 세워준다는 사실을요.

 

 

프로필 사진
프로필 사진

아무래 (가명)

아모레퍼시픽
“‘아무나’와 ‘그래도 나’ 사이 어딘가에서,
매일의 아름다움을 실험합니다.”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되고 싶진 않은 N년차 제품 개발자.
  • 메이크업 제품을 만듭니다.
  • 푸석한 얼굴로 쫓기듯 일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 노력이 모여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TOP

Follow us:

FB TW 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