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은 몰라도 남다움은 싫으니까 - 아모레퍼시픽 스토리(AMOREPACIFIC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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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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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은 몰라도 남다움은 싫으니까

 

글 아무래 (가명)

 

#INTRO


어느덧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칼럼니스트로 신청한 주제는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실현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콘텐츠”였는데요. 어려운 주제여서 여태 미뤄 왔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연말연초인 만큼 가볍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1 익명으로 쓰는 이유, 어쩌면 나답기 위해서

 

지난 칼럼부터 제 정체(?)를 알아챈 주변 동료 몇 분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끄럽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어요. 업무와 관련된 글이지만 굳이 익명으로 쓰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솔직하고 싶어서’입니다. 어느새 삶에서 많은 기간을 차지하게 된 회사 생활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두고 싶어 시작한 글인데, 정체가 드러나면 제 안의 지질하고도 내밀한 감정들을 꺼내놓기가 어려울 것 같았어요. 둘째는 ‘도망칠 구석’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매번 충분한 시간을 가져보겠다는 포부와 달리 일에 쫓기다 마감일이 되어서야 긴 퇴고 없이 후다닥 글을 내 와서요. (이 기회를 빌려 제 퇴고 친구 GPT와 커뮤니케이션전략팀 담당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서투른 글을 눈 딱 감고 제출하고 도망칠 구석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익명이라는 안전장치를 달고서도 100% 솔직한 글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매일 마주하는 일의 민낯은 그렇게 단정하지 않고, 그 안의 저는 때때로 구차하거든요. 그저께 오전만 해도 생산회의에서 죄인처럼 “선처를 부탁드린다”며 읍소를 하고선 오후에는 모니터 앞에 앉아 ‘일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글을 쓰고 있자니 괴리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럴듯한 장면만 골라 즙을 짜내듯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답지 못했던 것 같아요.

 

 

 

 

2 나답기 어려운 사회

 

하지만 도대체 ‘나다움’이란 뭘까요? 대부분의 브랜드가 ‘나다울 것’을 종용하는 세상. 브랜드에 종사하는 1인으로서 이젠 그 단어에 피로감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쉽게 생각해보자면 나다움의 반대편에는 ‘남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다움’은 남과 구분되는 나만의 고유함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특히 한국 사회라는 촘촘한 그물망 속에서 자라온 이들일수록 이 고유함을 발견하는 데 지독하게 서툴다는 점입니다.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지 않기 위해 분투하며 대학, 취업, 혹은 결혼이라는 표준화된 과업을 달성하느라 바빴습니다. 자연스레 ‘나’라는 내면의 영토를 탐색하는 시간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가 MBTI나 사주, 점성술에 열광하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복잡하고 모호한 ‘나’라는 존재를 타인으로부터, 혹은 통계 수치로부터 손쉽게 확인하고 싶은 욕망의 발현인 셈입니다. 스스로를 정의 내릴 힘이 부족하기에 외부의 틀에 나를 꿰맞춰 안도감을 얻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나다움을 유지하는 일은 일종의 투쟁에 가깝습니다. 나만의 취향과 가치관을 고수하는 것이 항상 박수를 받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이 단면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장 나답게 행동하는 출연자는 종종 시청자들에게 즐거운 ‘씹을 거리’로 소비됩니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고유함을 잃을 정도로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기묘한 기준. 그 모호한 경계 어딘가에 머물러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나다움은 개인의 고유한 언어가 아니라 또 하나의 ‘사회적 스펙’처럼 변질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남들과 달라지기 위해 애쓰면서도, 동시에 남들과 너무 달라질까봐 두려워하는 모순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3 회사에서 나답게 살아가기

 

그렇지 않아도 나답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서 사회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또 하나의 장벽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회사 생활이 스스로를 마모시킨다고 말합니다. 분명 조직의 일원으로 공동의 목표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개성이 점점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타인과 함께 해야만하는 회사에서 나다운 방식이 선명해지기도 합니다. 대학생 때의 전공은 지식이 아니라 그저 삶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남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현재 BM팀에 있지만 더 오랜 시간 MC팀에 있었고, 그전에는 이커머스 팀에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각 직무에서 익힌 기술보다도 각 조직이 중요하게 여긴 가치들이 몸에 배어 남습니다. 저는 실적을 내는 영업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해서인지 근사한 기획에 앞서 “그래서 이게 팔릴까?”에 대한 고민이 먼저 듭니다. 또 MC팀에서의 경험은 “최종적으로 이 제품이 고객에게 어떤 모습으로 선보여질까?”를 처음부터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게 만들어요. 이렇게 몸에 배인 관점들이 모여 매일의 의사결정에서 그 사람만의 고유한 우선순위를 만들고, 나다운 방식이 선명해져갑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일의 어떤 부분을 끈질기게 파고드는가? 나는 미적 감각에 먼저 반응하는가, 아니면 숫자와 논리에 안도감을 느끼는가? 엇비슷해 보이는 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방식이 다릅니다. 같은 상품 기획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원료를 배합하고 향을 고르는 과정을 가장 사랑하지만, 저는 고객에게 전할 마지막 단어들을 다듬고 상세페이지의 논리를 세우는 과정이 가장 마음이 가더라고요. 하루의 3분의 2를 보내는 회사라는 공간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견디지 못하는지 끊임없이 테스트하고 쌓아가는 실험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4 나다움은 몰라도 남다움은 싫으니까

 

심리학자 칼 융은 말했습니다.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들의 결과물이 아니라, 내가 되기로 선택한 존재다(I am not what happened to me, I am what I choose to become).”

이 문장을 곱씹으며 저는 생각합니다. ‘나다움’이란 어딘가에 묻혀 있는 보물처럼 찾아내야 할 고정된 실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요. 오히려 그것은 매일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지는 ‘방향성’에 가깝습니다. 제가 여전히 나다움에 대해 명쾌한 정답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제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대에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처럼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음악만 찾아 들었습니다.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은 이찬혁의 ‘파노라마’처럼 차분하게 삶을 되새기는 노래에 더 마음이 갑니다. 취향은 변하고, 오늘의 정답이 내일의 오답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다울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은, 곧 계속해서 변화하는 자신을 끈질기게 들여다보고 그 찰나를 기록해 남겨두는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내일이면 낯설어질 오늘의 생각들, 곧 싫증 날지도 모를 현재의 취향까지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박제해두는 것이죠.

그런 맥락에서 칼럼의 마지막 회를 맞아 여러분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루의 3분의 2를 보내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여러분의 그 시간을 올해에는 꼭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겨두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업무 성과나 보고서가 아니라 나에 대한 기록이요. 남들은 몰라도 나만은 아는 내 작업물에 대한 은밀한 뿌듯함, 내가 그때 유독 힘들었던 진짜 이유, 때로는 구차하고 치열하기까지 했던 논리,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수많은 물음표들까지 가감 없이 적어보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고민의 흔적들을 외면하지 말고 어딘가에 꼭 남겨두시길 바랍니다. 그 기록이 나의 방향을 알려주는 소중한 이정표가 될 거예요.

 

 

#OUTRO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한 해 동안 연재한 칼럼 시리즈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일하는 중간 중간 써놓은 내용이라 다시 한번 읽어보니 내가 이랬었나 싶기도 하고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정보’가 아닌 ‘생각’을 써보자는 게 목표였는데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서투른 글이나마 남겨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 한 해 꾸준히 글을 쓰며 일터에서의 나와 ‘나다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또 응원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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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 (가명)

아모레퍼시픽
“‘아무나’와 ‘그래도 나’ 사이 어딘가에서,
매일의 아름다움을 실험합니다.”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되고 싶진 않은 N년차 제품 개발자.
  • 메이크업 제품을 만듭니다.
  • 푸석한 얼굴로 쫓기듯 일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 노력이 모여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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