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과 도파민의 서사시: 출시 즈음에 - 아모레퍼시픽 스토리(AMOREPACIFIC STORIES)
#Amorepacific:log
2025.10.23
146 LIKE
635 VIEW
  • 메일 공유
  • https://stories.amorepacific.com/%ec%95%84%eb%aa%a8%eb%a0%88%ed%8d%bc%ec%8b%9c%ed%94%bd-%ea%b8%b4%ec%9e%a5%ea%b3%bc-%eb%8f%84%ed%8c%8c%eb%af%bc%ec%9d%98-%ec%84%9c%ec%82%ac%ec%8b%9c-%ec%b6%9c%ec%8b%9c-%ec%a6%88%ec%9d%8c%ec%97%90

긴장과 도파민의 서사시: 출시 즈음에

 

글 아무래 (가명)

 

#INTRO


칼럼을 연재하며 준비하던 제품이 얼마 전 출시했습니다. 출시 직전이면 저의 긴장과 도파민은 max.가 되는데요. 오늘은 그 즈음의 이런저런 단면들을 담았습니다.

 

 

1 건강검진 같은 고객 조사

 

올해 건강검진 받으셨나요?
저는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긴장되더라고요.
“위염 정도야 누구나 하나쯤 있다지만, 혹시 모르는 무언가가 숨어 있진 않을까?”
한편으론 “이번엔 운동을 좀 열심히 했는데, 혈당이 낮아지지는 않았을까”라는 기대도 하고요. 결과를 열어보기 전까지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전 고객 조사를 기다리는 마음이 꼭 그렇습니다.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밀려오거든요. “커버력 점수는 조금 낮게 나올지 몰라도, 수분 만족도는 높게 나오지 않을까.”

“혹 낮은 점수가 나오더라도 시간 안에 고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할텐데.” 하고 말이죠.

이번 제품은 크고 작은 고객 조사를 다섯 번 가까이 거쳤습니다.
고객의 목소리는 늘 직설적이고, 때론 가차 없습니다.
무엇보다 슬픈 건 “나쁘다”가 아니라 “무난하다”입니다. 오랜 고민의 결과가 “그냥 쓸 만하네요”라니..
요즘 말로 ‘팩폭’으로 순살치킨이 되는 기분이랄까요.

그래도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출시 후 뒤늦게 듣는 것보다는 미리 듣고 고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가끔은 초기에 세운 개발 방향과 조사로 확인된 실제 장점이 엇갈리기도 합니다.
고객은 A를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A는 획기적 개선이 어려운 속성이라 차선이었던 B 속성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버리기도 하고요.
또 제품을 손으로 바를지, 퍼프로 두드리게 할지, 전용 브러쉬를 함께 제작해 제공할지와 같은 세세한 포인트도 고객 조사를 통해 힌트를 얻습니다.
고객 조사 당시엔 정말 스트레스가 크지만, 출시 후 돌아보면 고객의 이야기가 모두 맞더라고요.
당장은 뼈아픈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방어막이 되어주는, 고객 조사는 건강검진과 같은 과정입니다.

 

 

출처: (직접 촬영) 고객들에게 보낼 블라인드 테스트 품평품

 

 

2 출시에 다가서는 시간

 

출시 한 달 전, 이제 제품은 생산 단계의 막바지에 들어갑니다.

긴 시간 동안 기획과 테스트, 수많은 수정 과정을 거쳐온 끝에 드디어 실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그간 샘플로만 오가던 제품이 실제 생산되어 제 손에 쥐어지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샘플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이제 정말 이게 세상에 공개되고, 고객 손에 들어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 무게감이 전혀 달라집니다.

물론 이 시기가 마냥 설레기만 한 건 아닙니다. 생산라인에서는 늘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생깁니다. 갑자기 품질 검사에서 의외의 항목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한쪽에선 런칭 프로모션을 준비하고 있는데, 다른 쪽에선 “가용화가 언제 될까요?”라고 애타게 묻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 즈음의 BM 담당은 오전엔 공장과 QC팀을 붙들고 문제를 해결하고, 오후엔 디자이너와 상세페이지 카피를 고치고, 저녁엔 마케팅팀과 라이브 콘셉트를 논의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긴장과 안도의 파도가 교차합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한 가지 생각이 맴돕니다. “이제 정말로 이 제품이 세상에 나간다.”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됩니다.
마치 낯선 도시에 착륙하기 직전, 비행기에서 밖을 내다보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아직 발을 내딛지 않았지만 창밖 풍경은 빠르게 가까워지고, 설렘과 긴장이 같은 속도로 밀려옵니다.

 

 

출처: (직접 촬영) 하나의 시즐컷을 만들기 위한 수많은 버전들

 

 

3 고객과의 첫 만남 ― 커뮤니케이션과 인플루언서

 

BM 담당이 데이터를 토대로 “이런 제품이 어떤 고객에게 잘 팔릴 것이다”라고 가정한다면, MC 담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고객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를 조금 더 심도있게 고민합니다.
기나긴 제품 개발 기간을 거쳐오며, 제품 기획 초기와 시장 상황이 달라져있기도 합니다. 원래는 A 고객군을 타깃으로 했지만 실제로는 B 고객군에게 더 어필이 된다는 판단이 나오기도 합니다.

제품마다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달라집니다.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직관적인 ‘예쁨’으로 어필해야 하는 컬러 메이크업 제품이 있는가 하면, 타사와의 차별점을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하는 제품도 있습니다.
고객 리뷰도 양이 우선인 제품이 있고, 질이 우선인 제품도 있습니다. 이렇게 BM과 MC 담당들은 머리를 맞대로 만들어진 제품을 세상에 내보낼 준비를 마칩니다.

요즘 제품을 가장 먼저 선보이는 건 대체로 인플루언서들입니다. 그들을 만나는 순간은 또 다른 긴장과 설렘을 데려옵니다.
그들은 단순 마케팅 채널이 아니라 가장 고관여한 고객이기도 하니까요. 경력이 많은 인플루언서는 제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어떤 경쟁사를 타깃했는지 단번에 알아차립니다. 때로는 제가 미처 보지 못한 허점이나, 대고객 커뮤니케이션 전에 보완해야 할 인사이트를 던져 주기도 하죠.

광고 아닌 단순 협찬(무가시딩)으로 제품을 보내고 리뷰를 기다릴 때면, 펜팔 답장을 기다리는 마음이 됩니다.
오랫동안 품 안에서 키운 아이가 세상에 나가 새 친구를 사귀어 오는 기분이랄까요. 장점을 알아봐 주면 하늘을 날 듯 기쁘고, 단점을 짚어내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모르던 인플루언서가 극찬하면 그 순간 팬이 되고, 혹평이면 혼자 속상해하다 마음을 접기도 합니다. 일종의 외사랑 같죠.

요즘은 AI가 대중화되면서 인플루언서 리뷰 수준도 훨씬 높아졌습니다.
기존에는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제형 설계 원리나 성분의 과학적 작동 방식까지 분석합니다. “다크닝은 왜 생기나요? 산화가 잘 되는 성분이 들어간 건가요?” “ㅇㅇ 지수가 낮아졌네요. 왜 낮추셨죠?” 이런 질문은 때로 공격같지만, 동시에 제품을 단단하게 하는 우군이 되기도 합니다.

상향 평준화된 지식 수준이 흥미로은 장면을 만들기도 합니다.
날카로운 지적 댓글 아래로, 또 다른 고객이 브랜드의 의도를 정확히 설명해주기도 하거든요.
이럴 때면 우리가 누군가의 고객이듯, 우리의 고객도 어딘가에선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출처: (직접 촬영) 인플루언서를 맞이할 준비 중

 

 

4 도파민의 절정 ― 라이브와 첫 리뷰

 

최근엔 출시와 동시에 런칭 라이브가 하나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라이브 방송을 준비하는 순간은 예전 게릴라 콘서트와 닮아 있습니다. (너무 옛날 사람 같나요?)
가수들이 하루 종일 홍보를 하다가, 공연 당일 안대를 벗고 얼마나 많은 관객이 와 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뒤돌아보던 장면처럼요.
저희도 티징 기간 내내 여기저기서 소리쳤는데, 과연 관객이 와줄까? 방송 시작 10분 전이면 괜히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하지만 막상 방송이 시작되면 긴장은 사라지고, 댓글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라이브는 고객과 가장 역동적으로 연결되는 시간입니다. 상세페이지나 광고로는 채워지지 않던 궁금증이 해소되고, 이번 제품을 계기로 처음 브랜드를 만나는 고객과도 인사를 나눕니다.
최근 런칭했던 제품의 라이브에는 기대 이상으로 많은 고객이 들어와 댓글이 폭주하기도 했습니다. 정작 저는 방송 화면은 보지 못하고, 댓글 답변만 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이었지만, 게릴라 콘서트에서 눈물 흘리던 가수들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주시다니 하고 감사하더라고요.

우리가 슬롯머신이나 숏폼에 빠져드는 건 ‘변동 보상(variable reward)’의 원리라고 합니다.
레버나 스크롤을 당길 때마다 예측 불가능하게 다른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도파민 돋는' 것인데요.
저에겐 리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배송이 하루면 가서 바로 리뷰가 달리더군요. '초반 댓글의 중요성'은 이후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기에 거의 외울 듯이 유심히 살펴봅니다. 좋은 리뷰는 더 보고 싶어서, 나쁜 리뷰는 걱정되어서 또 새로고침하게 만듭니다.

'기대 이상'이라는 리뷰를 보면 제 마음은 하늘로 날아가고, '기대 이하'라는 말엔 심장이 뚝 떨어집니다.
"그래 그 부분은 약하게 느껴질 수 있었겠다"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이 고객은 평가를 너무 심하게 한 거 아니야?" 하고 혼자 화를 내기도 합니다.

 

 

#OUTRO


작은 고백
칼럼을 연재하며 준비하던 제품이 론칭된 이후,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조금 행복한 요즘입니다. 그간 열심히 준비한 노력과 능력자 동료들이 함께 만들어낸 멋진 캠페인 및 전략들이 더해져 멋지게 선을 보이게 되었거든요. 출시 전까지 수없이 고치고 검토했던 상세페이지, 고객과 더 실시간으로 만나볼 수 있는 라이브 방송을 준비하며 느낀 두근거림, 쌓여가는 고객 리뷰를 새로고침해가며 맛본 롤러코스터와 같은 감정들. 그 모든 과정의 한 가운데서 고객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설레며 찾아보고 있는 이 순간이 이후 제게 좋은 동력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프로필 사진
프로필 사진

아무래 (가명)

아모레퍼시픽
“‘아무나’와 ‘그래도 나’ 사이 어딘가에서,
매일의 아름다움을 실험합니다.”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되고 싶진 않은 N년차 제품 개발자.
  • 메이크업 제품을 만듭니다.
  • 푸석한 얼굴로 쫓기듯 일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 노력이 모여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TOP

Follow us:

FB TW 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