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이슨맘 (가명)
Editor's note
육아는 모든 걸 바꾸는 경험입니다.
아이의 탄생은 익숙했던 삶의 리듬을 완전히 바꿔 놓고, 때로는 ‘나’를 잠시 뒤로 미뤄두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나’를 잃지 않는 법을 찾아가는 모든 여정은 고유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요.
아모레퍼시픽은 일과 육아의 경계에서 ‘나다운 아름다움’을 지켜가는 한 워킹맘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INTRO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던 1년은 제게 참 낯선 시간이었어요. 처음 겪는 육아는 매일이 시행착오의 연속이었고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은 숨돌릴 틈도 없이 바쁘고 지쳐갔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수유, 잠투정, 그 사이 쌓이는 집안일. 그래서인지 그때는 흔히들 하는 ‘워킹맘이 존경스럽다’는 말이 잘 와닿지 않았어요. 육아보다 회사에서 일할 때가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으니까요. 점심 시간이 있고, 화장실에 마음 편히 갈 수 있고, 누군가와 대화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왜 그땐 워킹맘이 ‘회사에 출근해서 잠시 아이와 떨어져 있는 엄마’라고 생각했지 ‘회사에서 일도 하는데 집에서 아이도 봐야 하는 엄마’라는 것을 왜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까요? ‘워킹맘이 존경스럽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그들의 하루를 이해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심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1 워킹맘의 시작

임신 기간 동안 출근할 때 뱃속에 내 편을 데리고 다니는 것처럼 든든했어요. 언제든지 내 말을 들어주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내 편이 되어주는 생명체가 제 안에서 자라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도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태담을 많이 했어요. “엄마가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어서 좀 힘들었어”라고 이야기하면 마치 아기가 내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동시에 임신 중 일하느라 힘들었던 모습들도 떠올라요. 그래서 회사에서 마주치는 임산부 분들을 보면 ‘얼마나 힘들까’하는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평온한 모습 이면에 임신 중 겪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 속에 고군분투하며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임신 중에는 정말 예상치 못한 순간에 몸이 말을 안 듣기도 해요. 저는 수시로 어지럼증이 찾아와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돌아오기도 하고 신제품 교육을 하다 숨이 차서 염소 목소리로 마무리한 뒤 너무 부끄러웠던 기억도 있어요. 다행히 저는 입덧이 심하지 않았지만 화장실에서 매일같이 고생하는 동료를 마주치기도 했고 하루는 변기를 붙잡고 울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임산부들이 정말 치열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회사에서 임산부 분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짠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을 하곤 해요.
결은 좀 다르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결국 ‘워킹맘의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의 일상과 아기의 존재가 그때부터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으니까요.
2 저도 ‘저스트 메이크업’ 보고 싶어요.

회사에서 동료들과 이런 얘기를 자주 해요.
“저스트 메이크업 봤어요?”
“어제 나솔 봤어요?”
가끔 보기도 하는데 대체로 못 봐요. 생각해 보면 제 하루에는 빈틈이 없어요.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씻고 아이들을 깨워 등원 준비를 하고 출근을 해요. 회사에 도착하면 업무도 하고, 회의도 하고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가요. 퇴근 시간이 되면 드디어 내 시간이 생길 것 같지만? 집에 도착해서는 저녁 차리고 치우고 아이 씻기고 나도 씻고 하면 벌써 잘 시간이 돼버려요. ‘오늘은 꼭 아이들 재우고 나서 저스트 메이크업 한 편 보고 자야지’라고 다짐해도 현실은 내가 아이들보다 먼저 잠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물론 부지런히 쪼개면 내 시간을 만들 수 있겠지만, 체력도 시간도 부족한 날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요즘 제 인생 최대 미스터리는 이거예요. “다들 언제 이걸 다 챙겨 보는 거지?”
어느 날 첫째와 길을 걷다 하루살이를 본 적이 있어요. 첫째에게 “얘네 이름은 하루살이야. 딱 하루만 살아서 ‘하루살이’라고 불러. 하루만 사니까 열심히 살아야겠지?”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첫째가 “그럼 하루만 사니까 즐겁게 살아야겠네” 하더라고요. 아이 이야기를 듣고 당황스러우면서도 웃음이 났어요. 워킹맘이 되고 나서는 늘 치열하게, 더 부지런히 살아내는 제 모습만 떠올랐거든요. 하루를 꽉 채워 뛰다 보면 ‘내 시간’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요. 그런데 또 막상 아이들과 보내는 순간들을 돌아보면 그 치열함 사이사이에 생각보다 재미있는 장면들이 숨어있어요. 갑자기 별말 없이 웃게 만드는 표정, 황당한 질문 하나로 분위기를 뒤집는 순간들처럼요.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저스트 메이크업’은 못 보고 있지만 매일 밤 내 인생 전용 육아 예능을 보고 살고 있구나. 내가 고른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예상 못 한 장면들이 많고 피곤해도 웃음이 나는 대사도 많고요. 바쁘게 사느라 늘 ‘열심히’만 떠올렸는데 돌아보면 그 하루 속에 꽤 ‘재미있는 인생’이 함께 굴러가고 있었답니다.
3 좋은 유치원을 고르는 기준

첫째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드디어 유치원에 가게 되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알아보니 저희 동네에는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부속 유치원도 있고 8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치원, 자연과 가깝게 지내는 숲 유치원 등 보내고 싶은 유치원이 정말 많더라고요. 커리큘럼도 비교해 보고 교육 환경도 따져보면서 아이에게 가장 좋은 곳을 선택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가 마음속에 오랫동안 그려왔던 ‘좋은 유치원의 기준’은 현실 앞에서 생각보다 쉽게 바뀌더라고요. 커리큘럼을 비교하고 교육 철학을 찾아보고 환경을 꼼꼼히 따져보던 제 기준들은 결국 워킹맘이라는 현실 속 ‘하원 시간’ 앞에 무너졌답니다. 언제까지 돌봄이 가능한지, 우리 아이 말고도 5~6시에 함께 나오는 친구들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어요. 제가 보내고 싶었던 유치원에 합격해서 기뻐하던 전업맘 친구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지만 이 시기를 겪어본 분들은 아실거예요. 아이는 선생님과도 빨리 친해졌고, 새로운 친구들도 생겼고, 매일 무언가를 배웠다며 신나게 이야기를 해줘요. 결국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한다는 걸요.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간격에서 타협해야 하는 순간들은 계속 찾아올 것 같아요. 아마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는 과정이겠지만 지나고 보면 또 그렇게 큰 고민이 아니었다는 것도 함께 깨닫게 될 거고요. 그리고 아마 내 아이가 대학에 갈 때 즈음이면 ‘아 선택권이 나에게 있던 그 시절이 좋았던 시절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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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맘 (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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