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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영희 (가명)
Editor’s note
혼자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가끔 혼영도 좋지만, 사실 다른 사람과 함께 볼 때 그 영화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주고받는 소회가 영화보다 더 마음에 콕 박힐 때가 있거든요. 팝콘도 함께 나눠 먹을 수 있고요. 오늘은 그런 제 마음과 닮은 영화를 한 편 소개하고자 합니다.

퍼펙트 데이즈 포스터 / 출처: (주) 티캐스트
#INTRO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2023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퍼펙트 데이즈’입니다. 이 작품은 2020년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 개최를 기념해 시부야구에서 진행된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Tokyo Toilet Project)”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일본-독일 합작 영화입니다. 독일의 영화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은 당초 다큐 제작을 의뢰받았지만, 도쿄의 공중화장실에 방문 후 놀라울 정도로 청결도를 유지하는 청소 노동자를 보고 감명받아 장편 영화로 선회했다고 합니다. 계획 변경으로 시나리오 작성은 단 3주, 촬영은 17일 만에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영화가 탄생했습니다.
1 반복 속에서 미세하게 달라지는 하루들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 출처: (주) 티캐스트
이 영화는 주인공 하라야마의 반복적이면서도 변주가 있는 매일 루틴을 연속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그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침구를 정리하고, 세수를 한 뒤 수염을 깎습니다. 아침 햇살이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는 작은 화분에 물을 주고, 파란색 작업복을 챙겨 입습니다.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들고 낡은 미니밴에 올라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합니다. 60-70년대 올드팝이 흐르는 가운데 그는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로 향합니다. 
일터에서 그의 루틴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공중화장실에 도착하면 그는 먼저 문 손잡이부터 시작하여 변기, 세면대, 비데 노즐, 소변기 뒤를 구석구석 점검합니다. 손 거울을 사용해 변기 밑의 부분도 보고, 직접 만든 청소도구로 구석구석 세심하게 닦습니다. 화장실이 급한 사람이 있으면, 밖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사용자가 나간 뒤 다시 청소를 계속합니다. 
점심에는 인근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나뭇잎 사이에 비치는 햇살(코모레비-木漏れ日)을 필름 카메라로 찍습니다. 저녁에는 목욕탕에 들러 몸을 씻고, 단골 술집에서 소박한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전구 하나를 켜고 어두운 방에서 독서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의 하루는 매우 규칙적이지만 날씨, 주변 사람의 태도, 직장 동료의 실수, 지나가던 아이와의 짧은 교류 같은 변화들이 그의 하루를 조금씩 다르게 만듭니다.
2 단조로운 하루에 깊이를 더하는 요소들 – 주변 사람과의 상호작용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 출처: (주) 티캐스트
영화를 보다 보면 하라야마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건 주변 사람과의 교류입니다. 하라야마는 처음엔 거의 말이 없고, 자신만의 루틴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하라야마가 어떤 과거사를 지닌 인물인지, 혹은 어떤 미래를 지향하는 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은 채, 일주일 정도의 현재 일상을 그저 보여주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라야마가 주변 사람들 때문에 웃음을 터뜨리고, 때로는 갈등하고, 심지어는 감정적인 모습을 보일 때 오히려 그의 세계가 확장되고, 좀 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조수 타카시가 “이런 일을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시냐?”고 질문할 때, 하라야마는 즉시 대답을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묵묵히 손잡이를 닦고, 휴지통을 비우며 태도로 답합니다. 그가 단순히 반복에 안주하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와 자존감을 찾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빈둥거리는 조수와 대비되는 장면 덕분에, 관객 입장에서는 일하는 장면만으로 그의 성실한 가치관까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 출처: (주) 티캐스트
또 한 예로 조카 니코가 가출하여 불시에 하라야마를 찾아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니코가 잠시 하라야마의 집에 머무는 동안 그의 루틴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루는 니코가 하라야마가 매일 출퇴근길에 듣는 낡은 카세트 테이프를 보고 묻습니다. 
니코: 이게 카세트 테이프란 건가? (가수) 이름이 뭐지? 밴 모리슨? 스포티파이에 있으려나?
하라야마: 글쎄, 어디 있는 건데? 그 가게. 
이 대화는 단순히 세대 차이를 드러내는 장면이 아니라, 그가 타인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하라야마는 니코의 반응을 흘려듣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니코가 제안하는 음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출근길에 카세트테이프 대신 라디오를 틀어보는 미묘한 변화도 보입니다. 그는 닫힌 반복을 통해 세상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감각을 통해 조금씩 열린 존재로 변합니다. 그의 삶은 단순한 루틴이 아니라 관계의 교차점들로 이루어진 다층적인 풍경인 듯합니다.
3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

Tokyo Toilet / 출처: Tokyo Toilet 홈페이지
영화의 배경이 된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는 단순한 공공사업이 아니라, 디자인 강국 일본의 저력을 보여주는 예술적 실험이었습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 4명을 포함해 총 16명의 세계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참여해, 시부야구의 17개 공중화장실을 새롭게 디자인했습니다. 이 화장실들은 시각적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사용자의 접근성과 일상의 경험까지 고려하여 디자인되었습니다. 이중엔 애플워치 디자이너가 만든 공중 화장실도 있답니다. 
프로젝트 개요만 들으면 화장실의 존재감이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에서는 오히려 일상의 자연스러운 배경으로 사용된 점이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입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하라야마가 별다른 대사 없이, 문을 닫으면 투명한 유리벽이 불투명해지는 기능을 시연하는 장면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디자인을 인위적으로 보여주기보다, 일상의 일부로 녹여낸 연출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성별, 국적, 장애 유무, 성적 지향 등 다양한 이용자의 접근성을 고려해 차별 없는 공공 공간을 실현하고자 했던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의 철학과도 잘 맞닿아 있었습니다.
#OUTRO
함께할 때 완성되는 ‘완벽한 하루’
영화가 끝나고 영화 제목이기도 한 ‘완벽한 하루’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하라야마의 하루는 늘 같아 보이지만, 그의 삶을 완성시키는 건 주변 세계와의 관계성입니다. 그는 누군가 화장실에 숨겨놓은 빙고 퍼즐에 답신을 쓰고,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흠뻑 느끼고, 길을 잃은 아이를 도와줍니다. 그의 일상에서 아름다움은 깨끗한 화장실처럼 정제된 상태에서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과 맞닿는 순간에 완성됩니다. 그는 반복 속에서도 매일 다르게 세상을 느끼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조금씩 다시 조율합니다.
결국 영화가 말하는 ‘완벽한 하루’란, 무결함이 아니라 ‘연결된 하루’인 것 같습니다. 루틴은 삶의 틀일 뿐이고, 그 안을 채우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입니다. 저는 어쩌면 하라야마가 매일 세상을 닦으며, 자신도 닦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저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되새기며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 출처: (주) 티캐스트
✍ 퍼펙트 데이즈 한줄평: 연결될 때 드러나는 일상의 미묘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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