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과 함께 만든 ‘공감’ 전시 이야기
글
정수민 넥스트스페이스팀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이 질문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시나요? ☺ 우리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감정’이라는 것과 함께 살아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감정이 어떤지 잘 알아채지 못하기도 하고, 알면서 회피하기도 하고, 감정이 어떤지는 알아도 그 감정이 드는 이유는 생각할 겨를이 없기도 한 것 같아요.
몸의 건강이 중요하듯 마음의 건강도 중요한데요. 아모레퍼시픽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건강함', 그 안에 포함되는 한 부분인 ‘마음의 건강’에 대해 소통하는 전시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소망으로 기획된 “공감우편소” 전시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해요.
대학생들과 함께 만든 전시
우선 이 전시는 아모레퍼시픽공감재단에서 주관하는 “모두가 하드캐리”라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재능 기부처럼 내 직무 경험을 나눠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멘토로 지원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다섯 명의 대학생이 한 조가 되어 멘티라는 이름으로 저에게 왔는데요. 활동 기간 동안 어떤 경험과 결과물을 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story A에서 전시로 이야기를 전하는 “팀 스토리텔러”라는 팀 이름을 만들었는데요. 시킨 것도 아닌데 정말 적절한 이름을 만들어 줘서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의외로 전시의 주제를 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처음에는 특정 브랜드의 전시를 얘기하기도 했고, AP의 자산에 관한 전시를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발상과 회의를 거듭하다 보니 좁혀진 결론은, 전시를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실제로 구현한다고 가정하고 현실적으로 기획하자는 것,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는 활동이 공감재단에서 주관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인 만큼 공감재단과 관련된 주제의 전시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공감’은 저도 대학생들도 서로의 나이와 환경 등의 차이를 뛰어넘어 소통하고 얘기해 볼 수 있는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공감우편소
‘공감’이란 무엇일까요?
보통은 단편적으로 “그래 네 말이 맞아”라고 동의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조건 동의해 준다고 현실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감정을 누군가가 있는 그대로 들어 주고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친구들과 대화할 때 어떤 일의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고 해도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조금은 감정이 해소된 경험이 있으시다면 이와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공감과 마음을 주제로 한 전시를 해보자고 정했을 때 가장 우려되었던 것은, 우리가 전문적인 심리 상담사는 아니기에 전문적인 진단이나 케어가 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전시를 풀어야 할까 하는 점이었어요. 그렇기에 전시가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를 기획하기에 앞서 이 전시를 통해 관객이 어떤 경험을 했으면 하는가, 전시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봤는데요. 관객이 ‘공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직접 느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 전시장 안에서 조금이나마 공감과 위안을 받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 같이 온 친구, 연인, 가족과 마음을 주고받는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 잠깐이나마 나의 감정과 가치관 등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전시를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거창해 보이지만, 다행히 오픈이 11월이라서 “연말에만 열리는 특별한 우편소”라는 말랑말랑한 컨셉을 잡을 수 있었어요.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는 연말에 빈티지한 우체국 무드의 공간 안에서 잔잔한 캐롤을 들으며 편지를 읽고 쓰고, 나만의 소포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조금은 가벼운 방식으로 전시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체험형 전시인 만큼 관객분들이 남기신 흔적들이 흥미로웠습니다. 어느 날은 ‘행복’과 ‘사랑’ 키워드에 감정 우표를 많이 붙이셔서 “오, 부산분들이 긍정적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평일에는 부정적인 단어에 우표가 많이 붙는 걸 보면서 요일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초등학생 관객이 있었는데요. 곧 있을 축구 대회 때문에 걱정이라며 ‘불안’에 우표를 붙이고, 엄마에게 드리겠다며 ‘사랑’ 키워드의 편지를 챙기고, 마지막에 ‘감사’라는 단어의 태그를 고르는 걸 보면서 어린아이들도 다양한 감정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콘텐츠를 한 부분만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요. 전시에 오신 관객분들끼리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감편지부”라는 조닝이에요. 서로의 경험, 상황,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감의 편지도 써 보고, 위로가 되는 자신만의 힐링 팁도 공유해 보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처음에 저희는 관객분들이 무언가를 쓰는 것을 귀찮아하지는 않을까 우려했었어요. 다행히 관객분들은 진지하게 또는 재미있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편지를 열심히 적어서 판넬에 붙여 주시고, 다른 사람이 쓴 편지 중 좋았던 것을 가져가기도 하며 공감과 위안을 진심으로 주고받고 있습니다. 저도 매일 관객분들이 써주신 편지를 보면서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있구나 하며 그 자체로 위안을 받고 있고요.
많은 분들이 연인과, 친구들과, 또는 가족들과 함께 와서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저도, 그리고 “팀 스토리텔러” 학생들도 뿌듯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관객분들은 일행과 함께 오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다며 일부러 혼자오시기도 하더라고요.
전시를 만들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많은 분들의 힘이 모여서 좋은 것을 만들어 내는 콜라보 과정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는 대학생분들과 함께해서 좋은 기획을 실행까지 옮길 수 있었고, 저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아직 어린 대학생분들이라 기획부터 실행, 세팅, 운영까지 해내기가 힘들었을 텐데 잘 따라와 줘서 매우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저희 팀장님이 함께 멘토링을 해주시기도 해서 매우 든든했답니다! 기획에서 그칠 수도 있었는데 아모레퍼시픽공감재단에서 실제 전시로 구현하도록 제안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전시에 무게감을 더하기 위해 “온기우편함”(사단법인 온기)에 감정 키워드 편지들을 써주십사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들어 주셔서 매우 감사한 마음입니다.
전시가 1월 5일까지로 한 달 연장되어 더욱 많은 분들이 즐기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우님들께서도 그 기간 안에 부산에 가실 일이 있다면 공감우편소에 들러 익명의 누군가와 공감을 주고받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 보셨으면 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연말, 내 자신의 마음에도 또한 타인의 마음에도 공감해줄 수 있는 따뜻한 연말 보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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