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을 때 유난히 떨렸다. 마치 어릴 적 놀이동산을 처음 가기 전날 느꼈던 호기심과 설렘이 뒤섞인 기분이랄까? 스웨덴은 북유럽의 낙원, 문화와 예술이 가득한 낭만의 나라이다. 스웨덴이란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지난 해 11월, 스웨덴 대사관 인턴 세 분을 초청해 와드 멤버들과 함께 스웨덴에 대해 알아보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인류에 헌신한 위인에게 주는 노벨상,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누비던 바이킹, 팝 그룹 아바(ABBA), 우리에게 친숙한 기업인 볼보와 H&M등. 물론 내가 궁금한 점은 그들의 문화였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모습, 소박하고도 친환경적인 일상이 적당히 버무려진 그들의 문화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스웨덴 게이트
먼저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었던 스웨덴 게이트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스웨덴 게이트란?>
5월 25일경, 미국의 커뮤니티인 레딧을 통해 “스웨덴에는 집에 온 손님에게 식사를 내주지 않는 비접대 문화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스웨덴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엄마가 식사 시간이 되었다고 부르자 친구가 자기 밥 먹고 올 때까지 방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라”는 얘기가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세계 네티즌들 사이에 일파만파 퍼진 것이다.
- 미리 계획되지 않은 당일치기 방문에서 식사 시간이 되면 손님을 빼놓고 가족들만 따로 식사하는가?
사실이다.
- 미리 계획된 방문을 한 손님에게는 식사를 대접하는가?
사실이다.
- 하룻밤 이상 묵어가는 손님에게도 식사를 대접하지 않는가?
대체로 거짓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에 다소 과장이 섞여 있긴 했지만, 식사 시간에 손님에게 음식을 접대하지 않고 가족끼리만 식사를 한다는 얘기 하나만으로도 흥미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러한 내용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자, 주한 스웨덴 대사관이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스웨덴의 소박하고도 따뜻한 문화를 소개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건 스웨덴 사람들과의 #피카 경험이 없어 나온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양한 디저트와 함께하는 피카는 꼭 한번 경험해야 하는 스웨덴 문화입니다.”
▲출처 : https://www.instagram.com/p/CeQPsO8JoBi/
스웨덴 게이트 이야기를 통해 다양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문화를 왜곡 없이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쩌면 글로벌 와드의 목적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우리, 피카할까요?
스웨덴은 UN 세계 행복 지수 랭킹에서 매년 상위권에 오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높은 행복 지수의 배경은 무엇일까? 훌륭한 복지 제도가 큰 몫을 하겠지만, 이를 잘 설명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바로 ‘커피’이다. 스웨덴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아예 ‘커피와 함께하는 휴식’을 의미하는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스웨덴어로 ‘커피 다과회’를 뜻하는 피카(Fika)는 티타임과 비슷한 스웨덴 휴식 문화인데, 스웨덴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피카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이니스프리 이커머스 영업 1팀 정아름 님이 운영하는 북유럽 와드의 이름에도 ‘피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 공원 귀퉁이에서 선선한 호수바람을 맞으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출처 : 게티이미지
스웨덴에서는 실제로 “스카 비 피카(Ska vi fika)?”라는 말을 많이 주고받는다고 한다. 차 한 잔 하자는 의미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또 날이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대로 수시로 피카를 즐긴다. 그런데 피카는 단순히 ‘휴식’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토론과 소통의 의미도 갖고 있다. 그래서 혼자보다는 여러 사람이 모여 대화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는 것을 피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주목할 만한 히스토리가 있다.
“19세기 말 스웨덴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고통스러워했어요.
그런 노동자들에게 작은 낙이 있다면 쉬는 시간에 잠시 모여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는데,
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노동 환경에 대한 토론도 했죠.
그러다보니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이 모여서 커피 마시는 것을 매우 싫어했어요.
그러니 노동자들은 공장주의 눈과 귀를 피해 몰래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커피를 뜻하는 스웨덴어 ‘카페(Kaffe)를 ’카피(Kaffi)‘라고 부르기도 했는데요.
공장주 몰래 커피를 마시자고 할 때 ’Kaffi‘를 거꾸로 뒤집어 ’Fika‘라고 했죠.“
흔히 ‘Fika’라고 하면 여유로운 일상이 떠올랐는데 이렇게 어두운 유래를 알고 나니 마음이 묵직해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히
발음도 귀여운 스웨덴 단어 ‘라곰(lagom)’은 ‘적당한’, ‘딱 알맞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라곰이라는 단어에는 소박하고 균형 잡힌 생활과 조화를 중시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가치관이 담겨 있다. 뿔로 만든 잔에 벌꿀주를 채워 나눠 먹으며 “라게트 옴(Laget om : 구성원 모두를 위해!)”이라고 외치던 게 그 시작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성공이나 어떤 목표를 향해 미친듯이 노력하는 삶을 살지 않아요.
그러지 않아도 행복을 느끼며 살기 때문이겠죠.”
▲출처 : 게티이미지
덴마크의 ‘휘게(hygge)’, 일본의 ‘소확행’ 등과 비슷해 보이지만 ‘라곰’에는 균형감을 중시하는 북유럽 사람들 특유의 철학이 담겨 있다. 위에 언급했던 피카, 즉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행동 역시 라곰이다.
라곰은 삶의 패턴을 최소화하는 움직임으로, 스웨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삶에 초점을 두고 환경보호를 몸소 실천한다. 스웨덴에서는 플라스틱 재활용을 위해 PANT 시스템(알루미늄 캔이나 페트병 등을 대상으로 한 보증금 환불제도)을 도입하여 2019년에는 90%에 육박하는 페트병 수거율을 기록했고, 재활용률도 84.1%에 달했다고 한다.
1
이제 하루 정도는 더 게을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곰 라이프는 어렵지 않다. 스킨케어 제품의 유리병, 다 쓴 플라스틱을 업사이클링하여 벤치, 예술 작품, 매장 인테리어 소품으로 만드는 ‘그린사이클’ 캠페인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낡은 것을 새롭게 리폼하는 것까진 어렵더라도 플라스틱이 아닌 재활용병을 사용하고, 꼭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라곰’ 라이프 스타일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