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시대별 풍경 - 아모레퍼시픽 스토리(AMOREPACIFIC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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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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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시대별 풍경

사람이 없으면 AI 시대가 무슨 소용인가요 #2

 

오승은 아모레퍼시픽재단

 

Editor's note


아모레퍼시픽재단에서는 '학술연구', 특히 인문학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오래전 연구도 지금의 삶과 연결되어 생각해 볼 지점이 많더라고요. 우리 자신과 주변을 살펴보는 인문학, 제가 쉽게 전해드릴게요.

 

 

#INTRO

 

콘텐츠 제작자로서 저는 수시로 SNS에 들어가 유행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분명 트렌드 파악을 위해 켰지만, 어느새 목적은 잊은 채 몇 시간이고 스크롤을 내리고 있게 되죠. 릴스가 지루하면 쇼츠로, 쇼츠가 지루하면 릴스로. 반복되는 쳇바퀴 속에서 문득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는 건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특히 댓글 창을 보거나 SNS 속 기이한 장면들을 보면 피로감이 몰려오는데요.

 

사람들은 늘 사소한 일로 싸움을 벌이고 있고, 충분히 날씬한데 더 날씬해지기 위해 시술을 하고, 믿을 수 있는 광고는 점점 더 사라져 가는데 누군가는 광고 수익으로 수천만 원을 버는 세상.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라”라고 하지만 SNS 속 혹자는 또 "이제껏 그것밖에 안 하고 뭘 했냐"라며 호통을 치기도 합니다.

 

대체 사람들의 진짜 생각은 뭘까요? 빠르게 휘몰아치는 밈으로 파악하는 겉모습 말고, 그 속에 있는 진짜 대중 심리를 파악하는 방법. 그중 하나는 바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점에 가서 요즘 어떤 책들이 출간되고 팔리는지 매대를 한번 쓱 훑어보세요. 반복되는 주제나 비슷한 분위기의 책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출간 흐름에서 시대상이 엿보이는 것은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예외가 아닙니다.

 

 

1920년대 여성 표제어 책들

 

출처: 유석환 (2022), 여성과 책: 여성 표제어 책들을 통해 본 식민지 책시장의 젠더 역학, 민족문화연구

 

 

예를 들어 1907년에서 1945년 사이 출간된 책 중 제목에 ‘여성’ 관련 키워드가 들어간 권수를 살펴보면, 다른 시기에 비해 1920년대에 유독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뀔 만한 사건이 있었다는 유추가 가능하겠는데요. 실제로 1920년대 중반, 여성 중등교육 제도가 개선되기 시작한 바 있습니다. 1924년까지 7개에 불과하던 여자고등보통학교는 15개로 증가했고, 여성 유학생 수도 1910년대에는 34명에 불과했지만 1926년에 들어서 200명대로 증가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성 잡지 <신여성>,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각종 출판 기구에서는 이 같은 새로운 독서 인구의 출현을 간과하지 않았고, 대표적으로 개벽사는 여성 잡지 <부인>을 <신여성>으로 개편했습니다. 사용되는 표현들을 보면, 이전까지 여성을 ‘가정 내 존재’로만 여겨졌던 것에서 변화하여 집 밖의 여성, 미혼의 젊은 여성을 지시하는 말이 우세해졌습니다. 물론 여성교육의 불평등은 여전했지만 당시의 시대적 변화를 책 시장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는 것입니다.

 

 

1930년대 여성 표제어 책들

 

하지만 이러한 변화도 잠시, 1930년대 말에 들어서면 책 속의 여성은 다시 가정의 책임자로, 어머니와 아내라는 표상으로 등장합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곳곳에서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에 나간 남성을 대신해 가정을 지키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여성을 일컫는 이른바 ‘총후 부인(銃後婦人)’의 역할이 강조되었지요. 일제강점기가 지속되면서 식민지 책시장을 점점 더 강하게 잠식해가는 제국 본토의 영향이 컸으며 따라서 조선어 책 시장의 규모가 위축된 점도 1930년대를 잘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2000년대의 베스트셀러는?

 

그렇다면 1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아무래도 출판 시장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베스트셀러일 겁니다. “베스트셀러는 시대의 거울이다”라는 말처럼 베스트셀러 목록만 봐도 그 시대가 어땠는지 파악할 수 있는데요. 고개를 좌로 돌려도 우로 돌려도 흥미로운 책들이 가득했던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이러한 베스트셀러 흐름을 시대별로 정리해 한눈에 보여준 부스가 있었습니다. 바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를 모토로 하는 교보문고의 부스였습니다.

 

 

'성공과 처세, 그리고 감성의 시대'였던 1990년대, 출처: 직접 촬영

 

'팬데믹 위안과 노벨문학상의 시대'였던 2020년대. 출처: 직접 촬영

 

 

모두가 알다시피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침체되었었는데요. 때문에 힐링 에세이가 성황을 이뤘을 것 같지만, 오히려 몇 년간 강세를 보였던 감성 에세이는 주춤하고 <돈의 속성>, <하버드 키즈 상위 1퍼센트의 비밀> 등의 경제경영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여유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에 잠식되기보다 현실적인 부의 증식과 역량 증진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좌) 2024년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년이 온다>, (우) 2025년 베스트셀러에 오른 <혼모노>

 

 

다음으로 2024년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큰 사랑을 받은 <소년이 온다>, 2025년의 베스트셀러 도서로는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로 유명해진 <혼모노>가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텍스트힙 열풍으로 소설 장르가 호황이던 작년 한 해를 한 권으로 압축해 놓은 듯 했습니다. 숨은 책을 골라 읽기보다 유명한 책을 구매해 남들에게 보여주려는 심리가 포함된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유가 어떻든 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니까요.

 

 

2026 서울국제도서전을 보고 나서

 

 

제가 생각하는 요즘 한국 사회의 키워드는 ‘너답게 살아라’인 것 같습니다. “남들 기준에 맞추지 말고 나다움을 찾아라” “각자의 속도가 있다” “SNS에서 보는 다른 사람들의 삶은 행복한 부분만 오려낸 버전이다” 이런 말들을 수도 없이 듣습니다. 차라리 그냥 흘러가듯 살면 편할 텐데 ”너답게 살아라”라는 말을 들어버린 이상 사람들은 자기답게 살기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게 됩니다. 최근 2~3년 사이 <초역 부처의 말>, <위버멘쉬>, <싯타르타> 같은 책들이 유행하는 현상 역시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출처: 직접 촬영 (2026 서울국제도서전)

 

 

그래서 청년들은 MBTI 테스트도 하고 ChatGPT로 사주도 보고 명상도 하고 불교 말씀에 빠져도 보나 봅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찾기엔 너무 어려운 숙제죠. 심지어 나답다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에서도 변합니다.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우리는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하기 때문이죠. ‘5년 전에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무기력해졌지’ 싶은 시기가 오기도 하고요. 이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나를 한 단어로 정의하라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출처: 직접 촬영 (2026 서울국제도서전)

 

 

결국 나답다는 건 내가 끌리는 것들, 좋아했던 것들의 집합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생각하는 정의입니다.) 마들렌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들렌을 주제로, 대충 그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충 그린 일러스트로 책을 냅니다. 잠시 기타에 빠졌으면 자신의 기타 배움기를 이야기로 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평생 마들렌만 먹고 기타만 치며 살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기타를 치다가 수영을 배울 수도 있고, 어느 순간에는 한 달에 한 번만 마들렌을 먹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들을 좋아했다는 사실, 그때 느꼈던 감정들, 연관되어 떠오르는 기억들은 그 사람 고유의 특징이 되고, 이런 것들이 하나씩 쌓여 나다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좋아합니다. 손에서 느껴지는 그립감도 좋고, 한 장씩 책장을 넘기는 물질적 행위가 주는 '내가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도 좋습니다. 그리고 종이책을 들고 있을 때만큼은 전자기기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점도 좋고요. 그래서 서점에서 종이들이 쌓여 있는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그렇다고 제가 종이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인 것은 아니에요. 저는 손에 만져지지 않는 온라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다른 부분들이 저를 콘텐츠 제작자로 만든 것이겠죠. 이렇듯 나다움은 아주 다채로운 스펙트럼에 가까운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한 단어로 정리되는 나다움만 찾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출처: 직접 촬영 (2026 서울국제도서전 주제전)

 

 

사람들의 심리를 가장 잘 표현하는 세 단어라고 생각해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과거에 비해 “의지”만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아주 작은 것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세상은 외치고, AI가 인간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단 3일만 지나도 유행이 바뀌고 내년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잘 그려지지 않는 아주 “변덕”스러운 시대입니다. ‘질문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2026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 ‘인간선언-호모 두두리’처럼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 자체를 인간다움으로 받아들이고 질문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 봅니다.

 

 

 

*아모레퍼시픽재단 인스타그램에서 본 내용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 칼럼 중 일부는 아모레퍼시픽재단의 연구 지원으로 출간된 유석환 (2022), 「여성과 책: 여성 표제어 책들을 통해 본 식민지 책시장의 젠더 역학」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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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은

 

아모레퍼시픽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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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은 도구일 뿐 언제나 본질은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나를 알고 서로를 더 존중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 사람에게 닿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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