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환 100년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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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을 지탱한 곧은 뿌리

“화장품 사업을 내 천직으로 알고 있어요."

 

 

 

 

1924년에 태어나 2003년까지, 가업으로 시작해 국내에서 제일가는 국산 화장품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우뚝 세운 사람. 일평생 화장품에 몰입한 장원 서성환에게 화장품은 곧 희로애락이자 삶이었다. 화장품 사업에서 한시도 눈을 돌린 적이 없던 한결같은 장원에게 1986년 3월, 어느 기자가 묻는다. 태평양 그룹도 화장품이 아닌 새로운 분야로 진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에 장원은 강직한 눈빛으로, 온화한 듯 확고한 기세로 두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화장품 사업을 내 천직으로 알고 있어요.” 태평양은 금융과 전자, 금속 분야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항상 기저에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미와 건강’. 장원이 무구한 마음으로 쌓아온 것은 아름다움과 맥을 같이 하는 것들이었고, 그가 만들어온 세상은 모름지기 찬찬하고 꾸준했다. 고속 성장으로 벼락부자가 된 것도, 반짝거리는 이상에 한달음에 닿은 것도 아니었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한 발짝, 한 발짝 속도 내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온 그였다. 무리한 투자로 만에 하나 위험이 닥친다면 긴 시간 품어온 화장품을 향한 진심도, 태평양을 위해 바지런히 움직이는 생때같은 노동자들도 지킬 수 없게 될 터였다. 열의와 도전 정신으로 태평양을 키워 나가던 장원. 다양한 분야에 예민한 감각을 놓지 않으면서도 그는 마음속에 뿌리내린 하나의 가치를 세심히 살폈다. 그것은 언제나 화장품이었다.

 

그러나 태평양이라고 언제나 천천한 성장과 말간 소망만 있었겠는가. 찬찬히 성장해 나가는 태평양이었지만, 차마 눈길이 닿지 않던 구석에 자그마한 먼지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당장 눈에 띄어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늘 속엔 먼지가 차곡차곡 쌓였고, 미미한 바람에 풀썩이면서 1991년 마침내 태평양의 양지바른 대지로 퍼져가게 된다. 수원 공장에서 파업 중이던 노조 조합원들이 본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한 것이었다.

 

 

“깊은 적막과 어둠이 그의 폐부를 찌르는 듯했다.
시커먼 덩어리 하나가 숨을 쉴 때마다 턱턱 가로막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이 정도로 큰 위기가 있었던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 경영 상황이 나날이 악화해 갔다. 비가 내려 우산을 꺼내면 태풍이 불어 우산을 망가뜨렸고, 우비를 쓰고 맞서다 보면 폭우가 내려 한치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장원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생산과 물류까지 전면 중단되고 고객들마저도 신뢰를 잃고 등 돌리던 이 캄캄한 시절, 장원에게 떠오른 것은 40여 년이 넘도록 화장품 사업에 몸담으면서 겪어낸 기억의 편린이었다. 어머니의 부엌에서 피어오르던 동백 향기, 자전거를 타고 원료를 구하러 다닌 나날, 프랑스 코티사에서 반드시 세계 수준의 화장품을 만들겠다 다짐한 열망…. 차오르는 눈물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그는 마음에서 하나의 열의를 길어 올린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 사업을 하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니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위기의 끝에서 장원 서성환과 당시 기획조정실 상무이던 아들 서경배는 가업의 존폐를 위해, 숨통을 옥죄는 고통을 사그라뜨리기 위해 녹차를 가운데 두고 태평양의 내일에 관해 논하기 시작했다. 서경배 상무가 아버지의 눈을 보며 묻는다.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무엇을 할까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떨리는 아들의 음성에, 장원 서성환은 잠잠한 목소리로 답한다.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만들겠다. 화장품 외길이야말로 나의 꿈이고 삶 자체이기에, 화장품 없는 내 인생은 아무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태평양 존립을 위기에서 건져 올릴 힘은 우리의 출발이자 뿌리인 화장품으로 돌아오는 것, 오직 그것에서 피어날 것임을 직감한 부자. 장원은 당시 모기업보다 덩치가 큰 자회사 태평양증권을 매각하는 큰 결정을 내리며 다시금 초심을 향해 뚜벅뚜벅 걷는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 오직 그 뿌리만이 위기에서 벗어날 근본임을 알아본 눈 밝은 장원의, 우직한 결심이었다.

 

 

 

 

Editor’s Epilogue
선택과 결정의 중심을 잡아줄 한 가지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을 만난다. 아홉 살 인생이라고, 네 살배기 아이라고 결정에 어려움이 없진 않을 테다. 장원 서성환은 태평양그룹 절체절명의 순간, 용기를 내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헤아렸다. 태평양증권을 매각해선 안 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린 매각 결정은 일생일대의 도전이었다. 장원이 이토록 큰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 것은 과거의 행보를 돌아볼 용기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초심, 화장품이 아니었을까. “내가 좋아하니까.” 하고 단언할 수 있는 그것. 당신은 득과 실이 분명한 선택과 결정 앞에 어떤 것을 지키고 남길 것인가?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잡아줄 무엇을 떠올려 보자. 그 하나만 품고 있어도 크고 작은 선택이 한결 쉬워지지 않을까.

 

 

 

 

글·사진 이주연(산책방)

진행 어라운드

평전 개정판 수류산방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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