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손맛에는 세대차이가 없다
바다와 육지에서 나는 제철 재료로 정성 가득한 한식을 만드는 ‘섬집’. 그간의 사랑에 힘입어 세 개 지점을 통합해 확장이전했다. 주변 기업은 물론,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용산의 명물 ‘섬집’의 이미정, 조현수 사장님을 아모레스토리가 만났다.
최근 확장이전한 ‘섬집’ 앞에서 이미정(엄마), 조현수 사장님(아들)
육지와 바다, 하늘이 맞닿은 곳, ‘섬집’
먼저, 2012년 개업한 ‘섬집’의 창업 과정이 궁금해요.
이미정(엄마) 당시 우환을 겪으면서 가세가 한번 기울었어요. 사람은 힘들 때 고향을 찾잖아요. 제가 어릴 때 용산 서계동에 살았거든요. 친정어머니, 할머니와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고향으로 돌아와 식당을 해보기로 했어요. 생계를 위해, 또 시름을 잊기 위해 음식을 만들었죠. 새벽부터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면서 힘든 걸 이겨낼 수 있었어요.
조현수(아들) 2012년도, 그러니까 제가 25살 즈음이었어요. 당시 저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어요.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는데 주소를 하나 보내주시더라고요. 주소가 적힌 곳으로 갔더니 작은 식당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거기에 앉아 계셨어요. 그러곤 여기서 ‘다시 시작해 보겠다’고 포부를 말씀하셨어요. 빛나는 눈빛으로요(웃음). 그곳이 섬집 1호점이에요.
2012년 개업 당시 ‘섬집’
그때 놀라진 않으셨어요?
조현수(아들) 원래 어머니가 상의를 잘 안 하세요(웃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고부터는 어머니가 늘 저희에게 미안해하셨어요. ‘예전처럼 부족함 없이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더 자신을 몰아붙이신 게 아닌가 해요.
이미정(엄마) 저는 일하는 걸 좋아하니까 고생을 해도 상관없었어요. 그런데 애들이 너무 안 됐잖아요. ‘처음부터 다시 키워나갈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벽에 ‘성공하려면 나를 버려라’라고 써놓고 그걸 매일같이 보며 일했죠. 그 글이 아직도 집에 있어요.
‘섬집’을 열며 적어놓은 마음가짐
왜 신용산에 가게를 여셨나요?
이미정(엄마) 어릴 적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당시 여기 임대료가 저렴했거든요. 아모레퍼시픽이 잠시 이전한 시기였는데 주변에 큰 회사도, 식당도 많이 없었죠. 자금 상황에 맞는 곳을 찾다 보니 지금의 새마을금고 자리에 작은 가게를 계약할 수 있었어요.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어떤 고객을 타깃으로 하셨어요?
이미정(엄마) 배고픈 사람이라면 누구든 밥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우리는 전쟁 직후 세대잖아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그땐 모두가 배고픈 시절이었어요. 배부르게 먹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한 사람이 와도 배불리 먹여줘야겠다’라는 생각뿐이었죠. 지금도 직원들에게 혼자 오는 손님들에게 잘해드리라고 늘 강조해요.
조현수(아들) 어머니가 타깃을 정하지 않고 시작해서인지 저희 가게 손님들 연령대가 20대 초반부터 70대 이상까지 폭이 넓어요. 제가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해요. 요즘 세대 갈등이 심하잖아요. 섬집이 여러 세대가 융화되는 공간인 것 같아서 뿌듯해요.
당시 신용산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조현수(아들) 그때만 해도 동네에 닭이 뛰어다니고, 40년 된 이발소 앞에서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시는, 전원적인 분위기였어요. 가게가 있던 골목은 굉장히 어둡고 낙후했었죠. 장사가 끝날 즈음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면 오늘 장사는 어땠는지 여쭤보기보다는 “조심히 다니세요”라고 당부할 정도였어요. 길이 너무 어두우니까 일부러 가게 간판을 켜두셨는데 그때 습관 때문인지 지금도 늘 간판을 켜두세요. 그러다가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 들어오고, 하이브, LG유플러스 등 큰 기업들이 들어오면서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죠.
가게 이름은 왜 ‘섬집’으로 지으셨어요?
이미정(엄마) 섬에는 육지도 있고 바다도 있고 하늘도 있잖아요. 땅에서 나는 음식, 바다에서 나는 음식 다 있으니 ‘섬집’이라고 지었어요. 이름 너무 예쁘지 않나요?
바다와 육지의 제철 재료들을 사용해서 음식을 만드신다고 알고 있어요.
초기 메뉴는 어떤 음식들이었나요?
조현수(아들) 장어탕, 간장게장, 장어구이, 매운탕 등 지금도 판매하고 있는 메뉴들이었어요. 초기 손님들이 의견을 많이 주셔서 그걸 많이 반영하셨다고 해요. 어머니가 흡수력도 좋으시고 응용도 잘하시거든요. 초기 손님들이 지금의 섬집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미정(엄마) 그땐 규모도 작았고 손님도 많지 않았으니 손님들이 ‘고기를 볶아달라’고 하면 볶아드려 보고, ‘이런 반찬을 해달라’고 하면 한 번 해보는 식이었어요. 반응이 좋으면 메뉴에 넣고요. 그러면서 메뉴를 늘려 나갔죠.
가게 매출은 어땠나요? 지금처럼 인기가 많았는지요?
조현수(아들) 가게가 워낙 작아서 매출이 그리 크진 않았어요. 그래도 용산세무서를 비롯해서 꾸준히 찾아주시는 단골손님들이 있었죠. 그런데 2년 정도 지나고 은행이 들어온다고 가게를 비워달라고 하더라고요. 급하게 옮기다 보니 인테리어도 하지 못한 채 가게를 옮겼어요. 다행히 알음알음 찾아오시며 매출이 조금씩 오를 때쯤, 2019년에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손님이 급격하게 늘었어요. 그러면서 직원도 늘리고 3호점까지 확장했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소개된 ‘섬집’
엄마의 손맛에는 세대차이가 없다
아들 사장님은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요?
조현수(아들) 저는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시간 여유가 생기며 가게 일을 조금씩 돕기 시작했는데, 방송에 나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되었죠. 이전부터 가게 후기들을 꾸준히 모니터 했는데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게가 갑자기 바빠지면 친절함도 떨어지고, 음식도 늦게 나오게 되잖아요. 불만 글들이 하나둘 보이더라고요.
어머니에게 추진력이 있다면 저는 예민함을 가지고 있어요. 어머니가 열심히 엑셀을 밟고 계시니, 제가 옆에서 안전벨트를 매드리고 제동도 걸어드리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메뉴 정리부터 주방 동선 짜기, 원재료 관리처럼 체계를 잡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이미정(엄마) 아들이 처음에 와서 계산서를 수기로 한 걸 보더니 “어머니, 어떻게 이렇게 일을 하셨어요?” 하더라고요. 저는 포스기를 안 썼어요. 내 가게니까 훤히 보이잖아요. 아들은 포스기를 놓자고 하고, 저는 싫다고 하고. 그걸 갖고 한 달을 싸웠어요. 근데 막상 들여놓으니 편하더라고요(웃음).
회사를 다니다가 식당으로 전업하셨는데, 아쉬움은 없으신지?
조현수(아들) 저는 식당 일이 너무 좋아요. 예전에는 마케팅 업무를 했거든요. 주로 제가 고객을 직접 찾아야 나서야 하는 아웃바운드 형식이었죠. 그런데 식당은 손님들이 인바운드로 찾아주시잖아요. 운이 좋게도 많은 손님들이 찾아주시고, 맛있다고 칭찬도 해주시고요.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없잖아요. 똑같이 힘들게 일하는데 누가 와서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 일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
최근 세 개 점포를 통합해서 지금의 건물로 옮기셨는데요, 어떤 이유인가요?
조현수(아들) 1호점은 재개발로 인해 가게를 비워줘야 했고, 2호점과 3호점은 임대료가 너무 많이 올랐어요. 가게를 신용산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할지 고민했죠. 그런데 어머니가 오랫동안 같이 일한 직원들과 단골손님들이 있으니 계속 신용산에 있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참에 1,2,3호점으로 흩어져 있던 가게들을 한 건물로 모으기로 했죠. 가게가 만석이면 다른 지점으로 손님들을 보내는 게 늘 죄송했거든요. 물론 세가 비싸서 부담은 있었죠. 그런데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백종원 대표님이 한 말이 떠올랐어요. 한 달에 100만 원을 벌면 50만 원은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게에 투자하라고요. 여태까지 섬집에서 번 돈을 거의 다 투자했어요. 한 건물로 이사하고 나서 손님들도 굉장히 좋아하시고 그래서 저희도 기뻐요.
최근 확장이전한 ‘섬집’
이전하면서 바뀐 점이 있나요?
조현수(아들) 처음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인테리어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어머니가 다 고르셨어요(웃음). 저도 이왕 인테리어를 하는 김에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죠. 그런데 섬집은 다양한 연령대가 오는 곳이잖아요. 너무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이 되면 누군가는 ‘여기 왠지 내가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결국 어머니의 의견이 맞았죠. 나무를 많이 써서 따뜻한 느낌을 내고 ‘누가 있어도 어울리는’ 편안한 분위기로 인테리어 했어요. 요즘 세대 간 갈등이 심하잖아요. 적어도 우리 가게에서는 누구도 소외받는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젊은 세대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 어우러져서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면 뭉클할 때가 많아요.
모든 세대가 어우러질 수 있게 인테리어한 ‘섬집’ 내부
예약도 전화로만 받으신다고요.
조현수(아들) 예약 앱을 쓰는 순간 형평성이 깨질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어르신들은 아무래도 앱 사용이 낯설잖아요. 자리가 없어 기다리셔야 할 때도, 구식이지만 종이에 연락처 남기시면 자리가 날 때 전화드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요. 날이 너무 덥거나 추울 땐 근처 카페에라도 가서 계실 수 있게요. 이탈률은 늘어나지만 그게 손님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가게 앞에 손님 줄 세우는 걸 마케팅이라고도 하잖아요. 손님이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최대한 불편을 없애드리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해요.
5층에 요리 연구소가 있던데, 어떤 공간인가요?
조현수(아들) 꾸준히 섬집을 찾아주시는 손님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만든 공간이에요. 음식을 연구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는 공간이죠. 여기서 시도해 본 음식들을 단골손님들에게 내어드려보기도 하고요.
또, 요리 연구소에서 콘텐츠도 만들려고 하는데요. 어머니가 음식 만드시는 걸 영상으로 담아서 자연스럽게 레시피도 배우고, 대화하는 모습을 기록해놓고 싶어요. 여러모로 색다른 걸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확장이전한 섬집의 5층 요리 연구소
계승자가 아닌 동업자로, 섬집의 ‘다이나믹 듀오’
섬집의 대표 메뉴를 하나 추천해주신다면?
이미정(엄마) 배고픈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탕류를 추천해요. 그중에서도 꼽으라면, 섬집의 시그니처인 ‘참게꽃게매운탕’이요. 직접 담근 고추장과 민물 게(참게), 바닷게(꽃게)를 넣어 고소함과 시원함이 일품이죠. 아마 이 조합은 섬집이 유일할 거예요.
조현수(아들) 저는 간장게장을 추천해요. 좋은 원물을 써서 간장게장인데도 짜지 않고 담백해요. 원재료가 좋으면 이것저것 넣을 필요가 없거든요. 개발 초기부터 원재료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제가 맡아서 그런지 더 애착이 있어요.
섬집의 자랑, 참게꽃게매운탕과 간장게장
아들 사장님이 합류하시면서 어머니가 ‘이건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하신 게 있나요?
이미정(엄마) ‘반찬’이죠. 반찬 만드는 건 절대로 대충 하지 말자고 강조했어요. 우리 어릴 땐 밥 한 숟가락에 반찬을 골고루 먹으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어요. 그게 밥상문화였죠. 그래서 밥이랑 반찬만 먹어도 맛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만들어요.
조현수(아들) 매일 직접 반찬을 만든다는 게 굉장히 지루하고 힘든 일이에요. 특히 지금처럼 물가가 높을 땐 더더욱 그렇죠. 그런데도 어머니는 늘 반찬을 연구하시고 새로운 시도를 하세요. 예컨대 비슷한 색의 고사리와 톳을 섞어서 ‘톤온톤 나물’을 만드신다든가 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시죠. 기본 찬에서도 손님들이 늘 새로움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엄마와 아들이 함께 일하는 것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조현수(아들) 가장 큰 장점은 어머니가 뭔가를 추진하는 모습을 곁에서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못하는 걸 잘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요. 가끔은 ‘왜 나에겐 저런 유전자를 안 주셨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또, 손님을 모시는 보람 있는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아요. 같이 일하지 않으면 공유하지 못할 감정이잖아요. 단점은 가끔 제 민낯을 드러낸다는 거예요. 너무 바쁠 때나 지칠 때 저도 모르게 힘든 티를 낼 때가 있어요. 남들에게는 안 그럴 텐데 가족에게는 그럴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많이 후회하죠.
이미정(엄마) 저는 단점이 없어요. 하나 있다면 내가 요즘 세대를 몰라서 실수를 한다는 거. 가게 이사하기 전이었는데, 예약 전화가 와서 외국 가수 누가 오는데 예약을 할 수 있냐고 하더라고요. 예약이 다 차있어서 안 된다고 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브루노마스라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얘가 알고 막 가슴을 치는데.. 너무 미안했죠(웃음).
서로 부딪히는 일은 없나요?
조현수(아들) 어머니가 창업주이시니, 다져놓으신 틀이 있고 그것에 대한 고집도 있으세요. 저도 그걸 존중하고요. 가끔 제가 그 틀에서 살짝 벗어나는 의견을 내면 처음에는 경계를 하세요. 그러다가 다음날이 되면 제 의견을 받아들이시죠. 그래서 여태까지 크게 다투거나 부딪힌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이미정(엄마)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지잖아요. 그런데 저는 ‘꼰대 마인드’가 싫더라고요. 세대가 바뀌었으니 보통은 젊은 사람들 얘기가 맞기도 하고요.
마음이 불안할 때는 계란말이를 만든다
장사하시면서 가장 힘드셨을 때는 언제였나요?
이미정(엄마) 코로나 때 힘들었죠. 매출이 많이 줄어서 저축해둔 돈을 쓰며 메워야 했어요. 그래도 직원들 한 명도 그만두게 하지 않았어요. 직원들에게도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잖아요. 우리는 하루 이틀 함께 할 사이가 아니니까, 잠깐 흔들린다고 정리할 수 없었죠.
그때 불안하진 않으셨어요?
조현수(아들) 어머니가 가끔 불안해하실 때가 있어요. 그럼 제가 그렇게 말해요. 우리 용산 들어올 때 한 푼도 없이 왔는데 망해도 괜찮다고, 이 정도면 재밌지 않았냐고요. 상황이 어렵다고 불안해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오늘 반찬 열심히 만들고, 지금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죠. 그래서 불안할 때는 계란말이를 만들어요. 기도하는 마음으로요. 누구 탓을 해봤자 바뀌는 건 없으니 눈앞의 일을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손님들이 알아주시더라고요.
그럼, 장사하시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이미정(엄마) 매장을 걷고 뛰면서 손님들과 인사하고 일하는 순간이죠. 그렇게 분주하게 지내는 게 행복해요.
조현수(아들) 아모레퍼시픽에서 찾아주시고, 어머니와 함께 인터뷰도 하는 오늘이 아닐까요?(웃음) 결국은 다 손님들 덕인 것 같아요. 저의 하루는 아침에 손님 예약 전화받는 걸로 시작해요. 저녁에는 손님들 배웅하면서 마무리되고요. 손님 덕에 울고 웃으며 하루가 다 가죠. 저의 희로애락은 모두 손님입니다.
1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게를 운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미정(엄마) 저는 자식을 등에 업었잖아요. 예전에는 아이들을 위해서 일했고, 이제는 같이 일하니까요. 자식이 원동력인 셈이죠.
조현수(아들) 제 원동력은 어머니가 거침 없이 엑셀을 밟는 모습이에요. 제가 적절히 브레이크를 걸어드리지만, 어머니가 뭔가를 추진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아요. 그리고 손님들도 큰 원동력이죠. 손님들에게 칭찬도 많이 받고 가끔은 혼나기도 하는데, 그 모든 것이 저의 힘이 돼요.
단골이 많다고 알고 있는데
꾸준히 찾아주시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미정(엄마) 저는 손님들을 가족같이 생각해요. 이 주변에 식당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찾아주셨으니 가족처럼 귀한 존재인 거죠. 직원들에게도 항상 인사 잘하고 혼자 오셔도 반갑게 맞으라고 강조해요.
조현수(아들) 저희가 사랑받는 건 반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반찬을 부실하게 만들었다면 이렇게 사랑받지 못했을 거예요. 반찬은 그날그날 달라지는데, 모두 직접 만들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색다른 시도도 많이 하려고 하고요, 반찬은 손님과 저희가 만나는 첫 순간이니, 반찬만으로도 완성도 있게 내려고 해요.
외국인 손님도 많이 찾아온다고요, 인기 비결은?
조현수(아들) 아모레퍼시픽에 견학 오는 분들이나 하이브 엔터테인먼트를 방문한 외국 팬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방문하신 분들이 SNS에 올린 사진 보고도 많이 찾아오시고요. 왜 외국인 손님이 많을까 생각해 봤는데, 한국에 오시면 늘 비빔밥이나 불고기 같은 한식을 드시잖아요. 정형화된 한식보다는 조금 색다른 한식을 먹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가장 인기가 많은 메뉴는 간장게장이에요. 외국인이라고 해서 따로 레시피를 바꾸지 않는데도 의외로 많이 좋아하세요.
장사가 어려울 때도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조현수(아들) 음식의 양을 줄이지 않는 거예요. 물가가 올랐다고 해서 은근슬쩍 양을 줄이거나, 원재료를 바꾸면 식당이 무너진다고 생각해요. 손님들 입은 예민해서 다 알거든요. 합리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식재료를 알아보거나 가끔은 손해 보면서 장사할 때도 있어요. 양을 줄이는 순간 필패예요. 양 줄이고 원재료의 질을 낮추는 일만큼은 하지 말자는 게 원칙이에요.
이미정(엄마) 저는 이제 욕심도 많지 않고, 나이가 드니 돈 쓸 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아요. 그래서 재료에 돈을 아끼고 집착하고 싶지 않아요.
요즘 자영업이 많이 어렵잖아요. 자영업자들한테 줄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이미정(엄마) 저는 재밌게 일하라고 하고 싶어요. 하루 종일 일하는데, 즐겁게 일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아프면 일 나오지 말라고 해요. 몸이 안 좋으면 감정이 나오게 되어 있고 음식 맛이나 서비스에도 영향을 주거든요. 이왕 할 거 재밌고 즐겁게 일하자는 게 모토예요.
조현수(아들) 저는 손님의 입을 믿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손님의 입은 절대 배신하지 않으니, 적당한 금액대에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면서 때를 기다리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행복은 ‘나눠먹는 것’
아모레퍼시픽 직원들이 많이 방문하시나요?
조현수(아들) 요즘은 회식이 많이 줄어서, 한창 많이 찾아주시던 시기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많이 오세요. 기억에 남는 손님이 한 분 있는데 제가 섬집에 막 합류하고 나서 어떻게 하면 가게를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였어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이것저것 둘러보는데, 아모레퍼시픽 사원증을 올린 분이 있더라고요. 고민하다가 그분 사진에 조심스럽게 댓글을 달았어요. 근처에 있는 ‘섬집’이라는 식당인데 맛있는 음식 드시러 한 번 방문해달라고요. 그런데 그분이 정말 오셨어요. 그 후엔 그 팀에서 회식을 오셨고요, 점차 아모레 손님들이 늘었어요. 나중엔 서경배 님도 방문해 주셨고요. 그때 엄청난 보람을 느꼈죠. 작은 행동이 이렇게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도 얻었고요. 모르는 사람이 댓글을 다는 게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친히 방문해 주신 손님에게도 너무 감사했고요.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은인 같은 손님이에요.
주변에 큰 기업들이 많이 있는데요, 회사마다 특징이 있다면?
조현수(아들) 일단 공통점은 모두 친절하세요. ‘왜 이렇게 잘해주시지?’ 싶을 만큼 신사적이고 친절하시죠.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먼저 아모레퍼시픽 손님들은 굉장히 세련되고 밝으세요. 섬집이 이전하기 전 협소한 공간에서도 유쾌하게 식사 자리를 즐기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하이브 손님들은 트렌디하고 개성이 있으세요. LG유플러스 손님들은 따뜻하시고요, 용산세무서 손님들은 굉장히 바르고 젠틀하세요.
사장님에게 아모레퍼시픽은 어떤 의미인가요?
조현수(아들) 섬집이 이렇게 잘될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집념과 운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니도 열심히 일구셨지만, 아모레퍼시픽이 신용산에 상권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잘되지 못했을 거예요. 기회를 제공해 주신 거죠. 제가 처음으로 가게에 합류해서 갈피를 못잡고 있을 때 무작정 단 댓글로 작은 성공을 경험하게 해준 것도 아모레퍼시픽이고요. 그래서 저에겐 더 각별한 의미가 있죠.
사장님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이미정(엄마) 행복은 ‘나눠먹는 것’. 손님들과 음식을 나누고, 직원들은 월급을 받아서 식구들과 생활하고요. 그렇게 나누는 것이 행복이죠.
조현수(아들) 행복은 ‘계란말이’다. 만들 땐 힘든데 만들고 나면 예쁘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이미정(엄마) 10년 후에도 아마 이 골목을 뛰어다니고 있을 것 같아요. 나이 들면 심심하잖아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어요. 은퇴 생각은 없어요. 할 줄 아는 게 이것 밖에 없고 이 일이 너무 재밌으니까요. 역시 사람에겐 희망과 일이 있어야 해요.
조현수(아들) 아마 10년 후에도 섬집을 운영하고 있을 것 같아요. 가장 큰 바람은 어머니가 그때도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엑셀을 밟으면 제가 말리기도 하면서, 무언가를 계속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또, 10년 뒤에도 손님들의 자랑이고 싶어요. 섬집을 사랑하고 아껴주신 분들이 우리가 발전하는 걸 보고 함께 뿌듯해하실 수 있게요.
‘섬집’에서 인터뷰 중인 이미정, 조현수 사장님
epilogue
‘섬집’이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어우러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는 이미정, 조현수 사장님. 다음 세대에게도 그다음 세대에게도, 모든 세대의 자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강대로 100은 아모레퍼시픽 주변 사장님들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업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바탕으로,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위기를 타개한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에디터 신혜원(책식주의)
사진 디자인몽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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