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y Road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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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아우르는 감각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한국의 경제, 문화 지형과 가장 자연스럽게 대구를 이루는 수사는 급속한 경제발전, 쾌속 성장 같은 것들이다. 헤리티지처럼 뿌리가 있는 단어는 왠지 한국과 잘 맞지 않는 옷 같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특히 대를 이어 무언가를 오랫동안 사랑하는 마음을 볼 때 그 오래 된 고정관념을 과감히 털어내고 싶다.

 

 

예측 불가능한 수장고

 

프리즈가 한국에 출사표를 던진 작년부터 10월은 자연스럽게 아트의 달이 되었다. 세계적 바운더리를 가진 브랜드와 컬렉터, 갤러리스트와 아트 딜러가 속속 입국해 한국의 갤러리와 문화 공간을 아트 기지로 바꾸어 놓는다. 서울 곳곳에 아트 베이스캠프가 세워지고 업계 인사들은 따로 또 같이 <키아프 & 프리즈 주간>이란 공을 드높이 띄워 올린다. 유럽과 중동의 왕실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물이 BTS 멤버들의 사인(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원한다고)이고 럭셔리 브랜드 담당자들도 한국 출장을 가고 싶어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자신감이 없는지 벽안의 외국인들이 서울에 오면 어디를 추천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건축적으로는 물론 그 안을 채우는 소프트웨어까지 훌륭한 곳을 만나면 잠시나마 가슴이 웅장해지기도 한다.

 

 

올해 키아프, 프리즈 주간에 방문한 곳 중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 곳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었다. 미술 축제 기간 중 하루,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전시장 한 켠을 아예 다이닝 공간으로 바꾸었다. 색색의 글자 자체가 아트가 되는 로렌스 워너의 작품이 모던한 평면 부조처럼 벽면을 가득 채운 곳에 식사 공간이 마련됐다. 테이블은 물론 꽃까지 흰색으로 통일한 ‘화이트 다이닝’이었다. 드레스 코드도 화이트였다. 백미는 가운데 공간에 진열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도자 컬렉션이었다. 선대 회장이 수집한 16~19세기의 청화백자와 순백자 7점. 철화로 그려 갈색이 나는 백자철화운룡문호, 몸체의 균형미가 아름답고 섬세하고 풍성한 그림이 돋보이는 백자청화기명문병과 백자 청화모란문합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을 설계한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 과정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진 18세기의 달항아리도 있었다. 루브르 같은 미술관에서는 후원회원들을 초대해 수장고를 개방하고, 전시장 한 가운데 ‘레스토랑’을 마련해 식사를 하면서 작품을 감상하도록 돕는다. 관련한 기사를 쓰면서 정말 멋진 이벤트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의 식사가 그랬다.

 

정성갑

 

귀히 여기는 마음

 

헤리티지를 갖기가 어려운 것은 일단 그 유산이 한 시대의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산 개인의 애정과 수집욕이 기업과 사회의 유산으로까지 인정받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대를 이어 전해졌을 때 비로소 완결이 되는 느낌. 헤리티지란 단어는 훈장 같은 어감을 갖고 있는데 그만큼 이뤄 내기 어려운 일이란 사회적 이해와 판단도 내포하고 있다.

평소에도 아모레퍼시픽에서 전시를 한다고 하면 꼭 챙겨 보는 편이다. 편성의 묘미도 한 몫 한다. 모든 콘텐츠는 예측 가능한 흐름을 갖는 순간 생명력을 잃는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선사 시대 유물부터 현대미술까지 그 진자의 운동 폭이 유독 넓다. 저 멀리 과거로 갔다가 100년 후에도 세련된 모습일 것 같은 조각과 사진까지 수많은 영역의 예술을 다층적 감각으로 포용한다.

 

2020년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주이자 선대 회장인 서성환 선생이 주로 고미술을 수집했다면 서경배 회장은 현대미술을 수집한다. 지난 2020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선보인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은 역대급 전시로 기억에 남아 있다. 도자, 회화, 금속, 목공예를 아우르는 고미술 소장품 1500여 점이 나왔는데 거기에는 수월관음도를 포함한 보물 4점도 포함됐다.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그 많은 작품을 전시품의 제작 연도, 크기와 모양 등에 맞춰 분류하고 별도의 대형 좌대를 제작한 다음 그 위에 설치미술처럼 올려 놓은 전시 디자인이었다. 노리개와 비녀, 금귀걸이와 은장도 같은 장신구는 별도의 유리 박스를 제작해 올려놓았다. 전시장마다 분위기가 확확 바뀌고 하나하나의 공간이 압도적 스케일과 치밀한 구성으로 계속해서 놀라움을 안기는 흐름이라니. 고미술품은 관리가 어려워 산뜻한 얼굴로 무대에 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한 점 한 점 오랫동안 귀한 대접을 받은 티가 났다. 그렇게 고미술의 향연을 주제로 한 전시는 전략적으로 방향을 틀어 현대미술로 직진한다. 현대미술 전시에서는 올해 열린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FOUR>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2000년 이후 제작된 작품을 중심으로 기획된 전시였으니 이번에는 서경배 회장의 선구안과 취향을 가늠하는 재미가 있었다. 총 7개 전시실에서 소개한 37점의 작품. 린넨에 유채와 왁스, 밀가루로 작업하는 로버트 야니츠의 개성 넘치는 회화,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초대형 사진을 둘러보다 보면 이렇게 큰 작품을 또 이렇게 시원하고 개방감 있게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서울에 몇이나 있을까 싶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천고는 5.7m, 전시 면적은 1000여 평에 달한다.

 

 

순수한 마음이 만든 결실

 

헤리티지의 핵심은 무언가를 진짜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주 이야기를 다룬 책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를 보면 그가 삼성의 이병철 회장, 한독약품 김신권 회장과의 교류를 계기 삼아 더 큰 아름다움을 향해 움직였음을 알 수 있다. 아름다움의 지평은 여성의 얼굴에서 자연친화적 미의식과 풍류, 문화유산으로까지 확장된다. 아모레퍼시픽 컬렉션이 특별한 것은 그 시작이 ‘생활 예술’에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과 하루하루의 삶을 예술로 만들어 주었던 장식과 복식에서 시작한 뷰티의 세계는 화병과 소반으로, 차도구와 도자기로, 병풍과 그림으로 계속해서 넓어진다. 수집의 세계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전략도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저 순수한 열망.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락은 이것이다. “장원(서성환 선생의 호)은 유물을 수집하고 박물관을 가꾸어 나가고 그 결실들을 세상에 선보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것을 느꼈다. 사업을 하면서 느꼈던 기쁨과는 결이 다른 즐거움과 보람이 가슴을 채웠다. 그것은 커다란 호수가 서서히 차오르는 것 같은 충일이었다.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도 느껴졌다. 정신의 키가 커지는 듯했고 영혼의 깊이가 깊어지는 듯 했다. 새로 만난 세계가 이제는 더 이상 새 세계가 아니라 즐겨 입는 옷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이 되었다. 유럽과 충격적으로 대면한 지 어언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장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화와 예술의 세계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모든 사업의 카테고리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지속가능한 경영’이다. 여러 실천이 있겠지만 아름다운 것을 열심히 지키고 애정하는 것 역시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 여정은 우선 나를 구원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기업과 사회, 더 크게는 사회적 미의식의 구축, 나라의 문화 지형에까지 기여한다. 최선을 다해 아름다움을 즐기고, 그 아름다움을 또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 헤리티지는 그렇게 점점 더 크고 구체적이며 아득한 무언가가 된다.

 

 

운 좋게 아모레퍼시픽의 전시를 자주 볼 수 있었고 더 운이 좋게 미술관에서 진행한 아트 다이닝과 5층의 정원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날의 행사에는 아트&헤리티지란 이름이 붙었는데 헤리티지란 깊고 묵직한 어감의 수사가 하나도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그 지점이 두고두고 좋다. 또 하나 가장 곱씹어 보게 되는 대목은 유산의 내용이다. 아름다움을 평가할 수 있는 안목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태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그 정신적 토대 위에 세운 성실한 결과물 같다.

 

‘Beauty Road’는 뷰티 문화를 창조해 온 아모레퍼시픽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매 월 하나의 주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칼럼을 통해 아모레퍼시픽의 가치를 색다른 관점으로 만나봅니다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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