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서 길을 잃다 (Lost in Translation에 대하여) - AMORE STORIES
#임직원칼럼
202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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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서 길을 잃다 (Lost in Translation에 대하여)

Columnist | 아모레퍼시픽그룹 임직원들이 직접 작성한 칼럼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번역의 역사 제2화. 번역에서 길을 잃다
(Lost in Translation에 대하여)




칼럼니스트 | 아모레퍼시픽 인재개발팀 이환희 님



#INTRO_Lost in Translation – 영상매체 번역의 어려움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Lost in Translation)’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번역 과정에서 말의 의미가 일부 누락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역과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언어의 본질적인 차이와 번역 조건에서의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해 원문만큼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

이런 제약은 특히 영상 번역에서 빈번히 일어납니다. 번역 내용이 대부분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보니 훨씬 구어체적이고 고유의 문화가 반영된 표현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화면에 자막으로 표현되는 특성상 글자 수 제한에도 신경을 써야 하므로 유실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번에는 글 번역보다 영상과 무대 번역에 치중하여 알아볼까 합니다.



#도무지 살릴 수 없는 ‘말의 맛’
2019년 개봉한 영화 <조커>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좋은 평가에 상도 많이 받은 이 영화는 전 세계 많은 관객으로부터도 사랑받았습니다. 파격적인 설정과 내용, 훌륭한 연기만큼이나 이 영화를 돋보이게 했던 것은 영화 속 수많은 ‘말’과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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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주인공 ‘아서’가 상담사에게 노트에 적힌 한 문장을 보여줍니다.


“I hope my death makes more cents than my life.”


직역하자면 “나의 죽음이 삶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줬으면 좋겠다.” 정도입니다. 아서의 직업은 광대이자 무명 코미디언(지망생에 가까운)입니다. 그리고 저 문장은 코미디에서 써먹을 농담으로 생각해낸 문장 중 하나였습니다. “I hope my death makes more sense than my life.(나의 죽음이 삶보다 더 가치(의미)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의 언어유희입니다. 문장 자체의 의미로 보나, 코미디라는 요소가 주인공에게 가진 의미로 보나 극에서 매우 중요한 문장으로 영화의 주제의식을 관통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우리나라 극장판에는 아래와 같이 번역되었습니다.


“나의 죽음이 나의 삶보다 ‘가취’ 있기를”


서두에서 언급한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전형적인 경우입니다. 외국어 언어유희라는 것이 애초에 번역하기 어려운 데다 그 안에 무거운 철학적 무게까지 짊어진 문장이니까요. 영화 개봉 후 위의 문장이 많이 회자되고 번역에 대한 논란도 많았습니다. 잘못된 번역이라고 비판하는 측에서는 “주인공의 언어유희를 철자 실수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큰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원문의 ‘cents’가 엄연히 존재하는 단어인 데다가, 앞서 설명했듯 문장이 나온 맥락을 고려했을 때 타당한 비판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저와 같은 한국어 번역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정확히 관통한 완벽한 번역일 수도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가취’라는 단어가 다섯 개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 중 ‘더할 가+가질 취’가 합쳐진 ‘가취(加取)’는 “물건을 살 때 덤으로 받는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번역가가 그 뜻을 알고 한 번역인지는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모르겠으나, 저 번역 문장에 쓰인 ‘가취’가 ‘加取’라는 뜻이라면 굉장히 타당할 뿐 아니라 의미도 살리고 발음의 유사성도 살린 번역이 됩니다. 원문에서 ‘money’가 아닌 더 가벼운 의미의 ‘cent’가 쓰인 것에도 부합하고요.

그렇다면 저 번역이 과연 번역사에 길이 남을 명번역이냐는 질문에도 쉽게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원문에서는 ‘sense(가치)’를 ‘cents(돈, 값어치 등등)’로 비틀었죠. 발음의 유사성도 있지만, 둘 다 쉬운 단어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극장판 번역에 쓰인 ‘가취’가 의미의 유사성을 완벽히 잡았는지는 몰라도(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코미디를 구상하면서 농담에 넣을 만한 쉬운 단어는 아닙니다. 인터넷상에서 누군가가 저 문장을 “나의 죽음이 나의 삶보다 값이 있기를’”라고 번역한 것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는데, 한국어에서는 ‘값어치’라는 말이 ‘가치’를 의미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가취’보다 적절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래저래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을 피할 수 없는 문장, 번역가가 힘든 직업임을 새삼 일깨워주는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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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속 ‘문장’을 살펴봤으니 ‘말’도 하나 다뤄보려고 합니다. 극 중반 아서의 대사입니다.


“I used to think that my life was a tragedy ... but now I realize, it's a f**king comedy .”


“난 지금까지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X 같은 코미디였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틀릴 것이 없습니다. 다만 주인공은 코미디언이죠. 영화 보는 내내 모든 대사에서 유머나 코미디를 섞으려는 강박이 보이는 인물입니다. 이 대사 또한 코미디에서 많이 쓰이는 ‘라임’이 있는 대사입니다. ‘tragedy’와 ‘comedy’, 모두 ‘dy(디)’로 끝나는 단어의 라임으로, 찰리 채플린의 명언에서부터 유래된 유명한 라임입니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극장판 번역은 옳은 번역이겠지만, ‘tragedy’와 ‘comedy’의 라임이 주는 말의 맛, 그리고 주인공의 정체성을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사전적으로 볼 때 ‘comedy’라는 영어 단어는 ‘코미디 같은 상황’과 ‘희극(사람을 웃기는 연극)’을 의미합니다.
코미디언을 희극인이라고도 하고요. 영어 발음 그대로의 ‘코미디’는 주로 ‘유머러스하고 웃기는 상황’을 의미할 때 쓰는, 사회적으로 널리 정착된 단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가 ‘코미디’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희극’이라는 뜻까지 생각나기는 쉽지만, ‘희극’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것이 흔히 쓰는 ‘코미디’라는 뜻에 미치기는 어렵습니다. 라임을 살리겠다는 이유로 저 문장의 ‘comedy’를 ‘희극’이라고 번역하지 못한 이유겠죠. 어떻게 번역해도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번역가는 라임을 포기하는 것이 원문에 더 충실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난이도의 끝판왕, ‘노래의 맛’
글의 서두에서 영상 번역에서의 ‘글자 수 제한’을 언급했습니다. 영화관 자막 번역의 경우 한 줄에 15자 내외, 최대 두 줄이라는 제한이 있습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나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처럼 대사의 양이 많고 대사 위주로 서사를 풀어나가는 경우에는 특히 힘든 조건입니다. 주인공은 말을 많이 하는데 대사의 양이 적다고 느껴지거나, 어쩌다 아는 단어가 하나 들렸는데 자막에서는 그 단어가 번역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으시다면, 그것이 바로 이 제약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 사례입니다.

그런 제약이 가장 많은 분야가 뮤지컬일 겁니다. 시 번역은 가장 까다로운 일인데 대사의 대부분이 시로 이루어져 있죠. 영화 버전의 자막이나 오리지널 내한에 쓰일 자막 번역이야 덜하겠지만 한국 배우들이 연기하도록 뮤지컬을 번역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괴로운 일입니다. 영화로도 나온 적이 있어 번역을 비교하기 좋은 <레 미제라블>과 ‘지금 이 순간’이라는 넘버로 유명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통해 그 예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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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레 미제라블> 중 주인공 장 발장의 최후를 담은 ‘Valjean’s Death’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딸인 코제트와 딸의 연인 마리우스 앞에서 작별을 고하며 죽음을 맞는 장면인데, 영화 자막과 뮤지컬 공연을 위한 번역이 큰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원곡 가사와 함께 영화(톰 후퍼 감독, 휴 잭맨 주연 버전) 자막 번역을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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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출처: 넷플릭스



의미가 누락된 부분이 없는 무난한 번역입니다. 라임도 아쉬운 대로 살리고, 시적인 표현도 살린 번역이지요. 그렇다면 한국어 뮤지컬 초연을 위한 번역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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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출처: Peter Lee, <Lost in Musical Translation: The Case of ‘Valjean’s Death’ in Les Miserables>, 2011



음절을 맞추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완전 다른 문장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요. 코제트의 부분이 특히 다르죠. 하지만 이 경우 원작의 노래에 맞춰 배우가 노래를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음절 수’를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절을 맞추기 위해서는 결국 어느 측면에서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을 감내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레 미제라블>의 한국어 초연 번역가의 경우,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극중 상황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대사의 감수성과 시적인 표현을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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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대 사례로 세계적인 뮤지컬이긴 하나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지킬 앤 하이드>의 최고 히트곡,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을 살펴봅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컬 넘버죠. 인기에 힘입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내용의 가사로 인해 결혼식 축가로도 많이 쓰입니다. 다만 원곡의 작곡가는 한국에서 이 노래가 결혼식 축가로 쓰인다는 말을 듣고는 굉장히 놀라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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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번역 Ver. 출처: 지킬 앤 하이드 OST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입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아예 다른 곡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이 곡은 극 중에서 주인공 지킬이 ‘선과 악의 완전한 분리, 그리고 악의 소멸’을 위한 실험을 준비하다가 마땅한 실험 대상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기로 결심하는 노래입니다. 다만 한국어 공연을 위한 번역에서는 ‘악, 비명, 절규’ 같은 강한 표현과 실험을 앞뒀음을 보여주는 표현이 모두 없어지고, 지킬의 마음과 각오만을 극대화했습니다. 그 결과 결혼식 축가로 어울리는 곡이 되었죠. 뮤지컬이나 원작 소설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내용과 결말을 안다면 이상한 상황이긴 합니다. 어쨌거나 이 곡은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고, 작품 측면에서도 원작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반면 한국에서는 최고의 뮤지컬이 되었다는 점이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합니다.



#마치며 – 번역의 한계

“원작과 번역은 다른 것이다.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악몽이 된다.”

1화에서도 언급했던 정영목 번역가의 말을 다시 인용합니다. 이번에 소개한 내용은 그 악몽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는 사례로 보입니다. 우리는 ‘sense’ – ‘cents’와 완벽한 대구를 이룰 수 있는 한국어 표현을 찾을 수 없고, ‘tragedy’와 ‘comedy’의 의미와 라임을 동시에 살리는 번역을 할 수 없습니다. 한국어로 노래하는 코제트는 아버지와 작별하는 슬픔을 시적으로 표현하기 어렵고, 미국의 지킬과는 달리 K-지킬은 앞으로도 결혼식 축가로 어울리는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번역된 내용만으로 원작의 의도를 100%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국어로 된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요즘에는 역지사지를 해보면 조금의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한국 영화 <기생충>에서 ‘짜파구리’를 ‘Ram-Dong(라면+우동)’으로 번역한 것이 이른바 ‘초월 번역’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사례를 돌아봅니다. 극장에서 자막을 읽을 외국 관객에게 맞춘 깔끔하고 재치 있는 번역이지만, 외국 관객들은 그것이 얼마나 싼 재료로 만든 대중적인 음식인지, 그리고 거기에 채끝살을 얹는다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인지까지 공감하기는 힘들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은 많은 이들의 찬사 속에 그 해 최고의 영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우리가 <조커> <레 미제라블> <지킬 앤 하이드>를 사랑하는 것처럼요.

콘텐츠를 깊게 이해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논란의 소재가 되는 번역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작품에 대해 더 깊은 감상을 하고자 원작의 원문을 찾아보는 것은 좋은 현상이고 콘텐츠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번역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창구로 기능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토론은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것이고 명백한 오역은 비판받고 고쳐져야 하지만, 모든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을 없앨 수 있는 번역가는 우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 임직원 칼럼니스트 이환희 님은 영어통번역학을 전공하였고, 여러 도서의 초벌번역 작업에 참여하였습니다. 외국 도서 <애드랜드(누구나 혼을 빼앗기고 마는 지구촌 광고 이야기)>와 <뷰티, 브랜드가 되다(글로벌 뷰티 산업의 역사와 현장)>의 공역자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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