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으로 보는 아모레퍼시픽 연구 이야기 #4
글
박종희 연구인프라운영 Lab
Editor's Note
연구원 신입사원 시절, 제 멘토님께서는 시간 날 때마다 원료를 발라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량 들어가는 원료도 제품 안에서는 그 사용감이 다 느껴진다면서 원료를 많이 발라보고 그 사용감을 기억하는 것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들어간 재료들의 맛이 강하거나 미세하게 모두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짬이 날 때마다 원료를 발라보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원료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INTRO
아모레퍼시픽 그룹에 태평양제약이 있던 시절, 저는 의약품 연구소에서 의약품 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연구원이었습니다. 당시 받았던 미션 중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화장품 같은 의약품, 의약품 같은 화장품을 만들어 보자.”
‘더마 코스메틱’이라는 말이 낯설던 시절
지금처럼 ‘더마 코스메틱’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효능·효과는 확실하지만 끈적이거나 번들거리는 사용감의 외용 의약품이 대부분이었고, 심각한 피부 고민까지 해결하는 것은 화장품의 영역이 아니라고 여겨졌습니다. 화장품은 사용감과 아름다움을, 의약품은 치료와 효능을 담당한다는 경계가 비교적 분명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질문에서 출발해 저는 화장품처럼 부드럽게 발리고 흡수가 빠른 겔 타입의 여드름 치료제를 개발해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 여드름 치료제는 본 칼럼 2화 레티놀 편에서 잠시 이야기했던 3세대 레티노이드 약물을 주성분으로 한 전문 의약품입니다. 동시에 저희 의약품 연구소에서는 처음으로 심각한 피부 고민을 가진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화장품을 개발하는 일도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과제 중 하나가 아토피 피부를 위한 보습 제품 라인이었습니다. 저는 병의원 전용 화장품을 개발하기 위해 새롭게 꾸려진 피부의약팀으로 발령받았고, 팀의 첫 번째 과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일반 화장품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심각한 건조와 가려움으로 고통받아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보습 제품을 만들자.” 팀원 모두가 모여 아직 제품명도 브랜드명도 정해지지 않은 새로운 제품 라인을 하나씩 구체화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시 이 새로운 브랜드의 로션과 입욕제 제품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제품은 2008년 ‘아토베리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아토베리어는 크림, 로션, 클렌저, 바스(입욕제)로 구성된 토털 솔루션으로 개발됐습니다. 피부를 씻고, 진정시키고, 보습하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의 제품군으로 선보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품에는 피부 지질의 구조를 모사한 세라마이드 캡슐 ‘더마온(DermaON®)’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제품 개발 경험은 제가 피부 장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세라마이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2008년 출시된 아토베리어 제품 라인. 크림·로션·클렌저·바스(입욕제)로 구성된 토털 솔루션이었다>
피부는 어떻게 우리 몸을 보호할까?
피부는 우리 몸의 가장 바깥에 있으면서 동시에 우리 몸을 지키는 첫 번째 방어선입니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한편, 피부 속 수분이 지나치게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피부 장벽입니다.
피부 장벽을 흔히 ‘벽돌과 시멘트’에 비유합니다. 각질세포가 벽돌이라면 세포 사이를 채우고 있는 지질은 벽돌 사이를 메우는 시멘트와 같습니다. 피부 장벽을 이루는 지질에는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지방산 등이 있으며, 이들은 층층이 배열된 구조를 형성합니다. 그중에서도 세라마이드는 피부 장벽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중요한 성분입니다. 건조하거나 피부 장벽 기능이 약해진 피부에서는 세라마이드가 감소할 수 있고, 세라마이드가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면 피부가 수분을 유지하고 외부 환경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라마이드는 오랫동안 피부 보습과 장벽 연구에서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건강한 피부와 민감한 피부의 장벽 비교. 장벽 속 지질 구조가 무너지면 피부 속 수분이 빠져나가기 쉬워진다>
세라마이드, 많이 넣으면 좋을까?
그런데 제품을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여기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세라마이드를 무조건 많이 넣으면 되는 것일까?” 세라마이드는 크림이나 로션 제형에 많이 넣었을 때 그 구조를 안정화하지 못하면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끔 펌프형 용기에 들어 있는 화장품을 사용하다가 입구에 남은 제품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중 일부는 세라마이드가 굳어 겔링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세라마이드는 많이 넣고 싶어도 무작정 많이 넣을 수 있는 성분이 아닌 것이지요.
또한 성분을 넣는 것과 피부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어떤 성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세라마이드가 피부 장벽에 중요하다면, 그것을 화장품에 어떻게 안정적으로 담을 것인지, 피부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그리고 피부 장벽에서 세라마이드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과 얼마나 유사하게 구현할 수 있을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합니다.
성분을 넘어 구조를 담다, 세라마이드 캡슐 더마온(DermaON®)
아모레퍼시픽의 세라마이드 연구도 이러한 질문에서 한 단계씩 발전해 왔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대부터 세라마이드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유사 세라마이드 PC-104를 개발했고, 이후로도 세라마이드 연구를 꾸준히 이어 왔습니다. 그리고 피부의 층판소체 구조를 모사하는 기술로 연구 범위를 확장하면서 세라마이드 캡슐 더마온(DermaON®)을 개발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세라마이드 연구 히스토리>
세라마이드 캡슐 더마온의 중요한 특징은 ‘세라마이드’라는 성분 하나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피부 각질층의 세포 사이에는 세라마이드 외에도 콜레스테롤, 지방산 등의 지질이 여러 겹의 층을 이루며 배열되어 있습니다. 세라마이드 캡슐 더마온은 이러한 피부 지질의 구조를 모사한 피부 지질 유사 구조체 기술입니다. 아토베리어 제품에는 이 구조가 소프트 캡슐 형태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세라마이드 캡슐 더마온(DermaON®)의 구조.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지방산이 피부 지질처럼 층판 구조를 이룬다>
즉, 단순히 “세라마이드를 넣었다”에서 한 걸음 나아가 피부가 본래 가지고 있는 지질의 구성과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화장품 기술로 구현하려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저희 팀이 하던 일은 피부가 매우 민감하고 극도로 건조한 고객들이 실제로 사용할 제품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피부에 바르는 제품뿐 아니라 몸에 닿는 옷감, 먹는 음식까지도 조심해야 하는 사람들이 매일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충분한 보습을 주고, 씻고 난 뒤에도 피부를 편안하게 지켜 주는 제품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저희가 풀어야 할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제품의 바탕에는 꽤 근본적인 질문이 있었습니다. “피부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피부 장벽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저희는 건강한 피부 장벽을 가진 사람과 장벽이 손상되어 민감해진 사람의 피부 지질 구성 비율을 비교했습니다. 그리고 민감한 피부가 건강해지는 데 부족한 지질과 그 비율을 찾아내, 이를 피부와 가장 유사한 구조로 화장품에 담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그렇게 피부의 구조를 모사한 세라마이드 캡슐 더마온(DermaON®)이 만들어졌습니다.

<세라마이드 캡슐 더마온의 실제 이미지. 실제 피부 지질과 유사한 층판 형태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제품 출시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
이렇게 좋은 제품을 만들었지만, 저희끼리 좋다고 해서 아직 생소한 브랜드의 제품을 믿고 선택해 줄 고객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부의 신기술(NET) 인증을 받고, 대형 종합병원에서 인체적용시험을 진행해 건조함이 얼마나 개선되는지, 피부 장벽은 얼마나 회복되는지를 확인했으며, 그 결과를 논문으로도 발표했습니다.
특히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피부과 전문의들과 지속적으로 협업하며 자문을 구하고, 종합병원에서의 임상 평가를 거쳐 제품을 더욱더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습니다. 현장에서 수많은 민감성 피부 환자들을 만나는 의사들의 피드백은 저희가 놓칠 수 있었던 미세한 사용감이나 피부 반응까지 섬세하게 교정하는 데 큰 바탕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더마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고군분투했던 시간을 돌아보면, 좋은 제품은 좋은 성분을 넣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피부를 이해하고, 성분이 피부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밝혀 제품에 적용하고, 그렇게 얻은 연구 내용을 고객이 이해하기 쉽게 전하는 것까지가 모두 하나의 긴 연구 과정이었습니다.
좋은 화장품의 첫걸음, 피부를 이해하는 것
아마도 좋은 화장품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는 좋은 성분을 찾는 것이 아니라, 피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직 브랜드의 인지도도 높지 않았고, 매출 규모도 크지 않던 때, 새로운 피부 고민을 해결하겠다는 목표로 제품 하나하나를 구체화해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브랜드가 오랜 시간 연구와 제품 개발을 이어가고, 고객과의 접점을 넓혀 지금은 국내 판매 1위 더마 스킨케어 브랜드로 성장하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K-뷰티를 대표하는 더마 브랜드가 되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무척 뿌듯합니다.
현재 아토베리어는 세계 30여 개국 이상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해외 여행을 떠나 현지 매장이나 약국을 방문했을 때 타지에서도 반갑게 우리 제품을 마주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당시 함께 고민하고 제품을 만들었던 시간이 단순히 하나의 제품을 개발한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전 세계 고객에게 선택받는 글로벌 브랜드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감회가 밀려옵니다.
#OUTRO
연히 방문한 피부과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아토베리어 제품이 진열되어 있을 때, 멀리 해외여행을 떠나 찾아간 매장에서 반가운 우리 제품을 마주칠 때면 연구원으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심지어 제가 어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지인이 아토베리어가 너무 좋아 다 쓸 때마다 새로 사 두고 꾸준히 사용한다고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마치 제 아이가 잘 자라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것처럼 뿌듯합니다. 제가 참여했던 연구와 제품 개발이 누군가의 일상에 자리 잡고, 오랜 시간 선택받는 제품으로 성장했다는 것. 연구원으로서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있을까요?
아모레퍼시픽은 과학으로 말합니다
Science-led Ingredients Discovery
<성분으로 보는 아모레퍼시픽 연구 이야기>는 레티놀, PDRN, 히알루론산 등 핵심 유효 성분의 가능성을 넓혀 온 아모레퍼시픽 R&I 연구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원료를 마주하던 첫 순간부터 독자적인 흡수 기술을 완성하기까지, 성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온 연구원들이 직접 들려주는 생생한 기술 발전의 순간들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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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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