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화장품 시장은 #2
글
신희선 설화수 글로벌커머셜2팀
Editor's Note
설화수에서 미국 국가 담당을 맡은 지 어느덧 만 2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현업에서 직접 경험한 미국 화장품 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이에 미국 시장을 담당하며 실무에서 직접 체감한 변화와 인사이트를 구성원분들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단순한 시장 트렌드를 넘어, 실제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흐름과 그것이 K-뷰티 브랜드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함께 다루겠습니다. 제 경험과 인사이트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저 역시 이를 통해 미국 시장에 대한 이해와 업무 전문성을 확장해가고 싶습니다.
#INTRO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K-뷰티 제품을 구매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해외 직구를 이용하거나 한국 여행을 가는 지인에게 부탁해야만 했죠.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마존에서는 한국 화장품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틱톡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K-뷰티 콘텐츠가 만들어집니다. 세포라와 울타(Ulta) 역시 K-뷰티 브랜드의 비중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보니, 미국에서도 이제 한국 화장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리브영이 미국에 오프라인 매장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미국 소비자들은 올리브영에서 제안하는 제품은 물론이고 올리브영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궁금했습니다.

<올리브영 미국 패서지나점 외부 전경, 출처: CJ Newsroom>
지난 5월 29일,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패서지나(Pasadena)에 첫 번째 올리브영 매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습니다. 오픈 전날부터 고객들이 줄을 서기 시작해 오픈 당일에는 약 400m에 달하는 대기줄이 무려 네 개의 블록을 따라 이어졌습니다. 매장 안에는 한 번에 약 200명만 입장할 수 있었고, CNN, CBS, ABC, KTLA 등 현지 매체들은 이 장면을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1. 400개의 브랜드, 5,000개의 상품이 만든 ‘발견의 경험’
물론 올리브영의 성공 뒤에는 그간 차곡차곡 쌓아 놓은 K-뷰티의 인기가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틱톡에서는 Glass Skin, Toner Pad, PDRN, Collagen, Slow Aging과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미국 소비자들의 K-뷰티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졌습니다. 그만큼 구매 채널도 아마존, 세포라 등으로 다양해졌지요.
그런데도 미국 소비자들이 올리브영을 찾는 이유가 궁금해지는데요. 저는 다름 아닌 5,000개의 상품이 만들어낸 발견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미국 매장에는 약 400개의 브랜드와 5,000여 개의 상품이 입점했습니다. 단순히 미국에서 이미 인지도를 확보한 K-뷰티 브랜드를 모은 것이 아니라, 한국의 베스트셀러, 바이럴로 성장한 제품을 함께 소개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었습니다. Anua, Biodance, MEDIHEAL, rom&nd 같은 대표 K-뷰티 브랜드는 물론, fwee, Unove, FOODOLOGY, InnerB 등 한국 소비자에게 익숙한 '올리브영 히트 브랜드'까지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물론 숫자 자체도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진짜 경쟁력은 숫자보다 공간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제품을 검색해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익숙한 브랜드를 구매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닌, 직접 제품을 확인하고 비교하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게 됩니다. 미국 소비자들이 기대한 것은 화장품을 구매하는 경험이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K-뷰티 제품을 발견하는 경험이었고, 이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갔다고 생각합니다.
2. 현지 온라인몰에 대한 반응
오프라인 매장의 가장 큰 경쟁력은 수많은 상품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선택지였습니다. 반면 온라인몰은 현지 규제와 수입 및 판매 요건으로 인해 글로벌몰 수준의 상품 구성을 그대로 구현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선케어 제품은 미국에서 일반 의약품로 분류되어 FDA(식품의약국) 규제를 받기 때문에, 한국 및 글로벌몰에서 판매 중인 제품군을 그대로 미국몰에서 판매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외에도 미국 내 판매를 위해 필요한 제품 등록, 성분 검토, 라벨링 등 현실적인 제약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글로벌몰을 통해 다양한 제품을 경험했던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미국 온라인몰의 상품 구성에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반응이 오히려 긍정적인 신호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만큼 미국 소비자들이 더 다양한 K-뷰티 브랜드와 상품을 원하고 있다는 의미니까요.
<올리브영 US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입장문. 소비자 혼선 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개선하겠다는 내용이다.>
3. 또 하나의 구매 채널이 아니라 ‘발견의 경험’을 주는 공간을 제안하다
하지만 미국 올리브영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는 이유는 단순히 많은 상품을 보유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올리브영이 한국에서 여러 체험형 매장을 운영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온라인에서는 제공하기 어려운 오프라인만의 ‘상품을 발견하는 경험’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장 설계를 보면, 많은 제품을 단순히 브랜드별로 진열하기보다는 체험용 세면대(Water Basin)를 설치해 클렌저를 직접 사용해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고객들이 새로운 상품을 발견하고 체험하게끔 유도하려고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분별로 제품을 찾고, 피부 고민에 따라 비교하고, 텍스처를 직접 테스트하며, 새로운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이 같은 매장 경험은 미국의 기존 뷰티 리테일 문법과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이러한 ‘발견 중심의 리테일 경험’이 이번 미국 런칭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핵심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리브영은 단순히 구매 채널을 하나 더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던 ‘올리브영식 매장 경험’을 미국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좌) 올리브영 미국 패서지나점 개점 첫날 매장을 찾아 K-뷰티 제품을 구매하는 현지 소비자들, 출처: CJ Newsroom>
<(우) 올리브영 미국 패서지나점에서 스킨스캔으로 피부를 진단하는 고객의 모습, 출처: CJ Newsroom>
4. 캘리포니아에서 여러 고객 그룹을 테스트하다
현재 미국에서 올리브영은 패서지나에 대형 플래그십 1호점과 센추리시티(Century City)에 중소형 매장 2호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에는 토런스(Torrance)에 3호점을 추가로 출점할 계획인데요. 지역 선정을 보면 올리브영의 고심이 엿보입니다. K-뷰티에 친숙하고 팬이 많은 서부 캘리포니아 지역 중에서도 전혀 다른 고객군이 있는 지역을 테스트하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패서지나는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는 중상류 주거 지역으로, 체험형 플래그십을 통해 미국 대중 소비자들의 반응을 확인하기에 적합한 곳입니다. 센추리시티는 베벌리힐스와 인접한 프리미엄 쇼핑 상권입니다. 판매 중심의 중소형 매장을 운영함으로써 럭셔리 소비자층에도 올리브영의 경쟁력이 통하는지 확인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반면 토런스는 아시아계 소비자가 많은 대표적인 K-뷰티 강세 지역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출점 전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순히 매장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고객군에서 K-뷰티 매장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하나씩 검증하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어떤 고객이 올리브영식 큐레이션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지, 어떤 상권에서 '발견의 경험'이 가장 강한 경쟁력이 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올리브영이 향후 미국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좌) 올리브영 미국 센추리시티점 외부 전경, 출처: 김경윤>
<(우) 올리브영 미국 센추리시티점 내부 전경, 출처: CJ Newsroom>
5. 올리브영의 다음 과제, 그리고 K-뷰티 브랜드의 고민
앞으로 올리브영이 미국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매장을 늘리는 것 이상의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 세포라로 대표되는 기존 미국 뷰티 리테일 대비 어떠한 차별점을 만들어 갈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답이 오픈 때 미국 고객들을 열광하게 했던 ‘발견의 경험’을 얼마나 더 지속시키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리브영이 얼마나 빠르게 새로운 브랜드와 상품을 소싱해 올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상품들을 미국 소비자들이 흥미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어떻게 큐레이션 할 수 있는지 말이죠. 단순히 한국 브랜드를 많이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겁니다. 소비자가 “여기 오면 새로운 K-뷰티를 만날 수 있다”라고 느끼거나 꼭 K-뷰티가 아니더라도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 느낄 수 있는 차별화된 경험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차별화는 올리브영만의 과제는 아닙니다. 미국 올리브영에 입점한 K-뷰티 브랜드들에게도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많은 브랜드들이 올리브영의 이번 미국 런칭을 통해 미국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을 넓히게 되었습니다. 헤라, 프리메라 등 우리 아모레퍼시픽의 여러 브랜드 역시 미국 올리브영 입점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미 여러 현지 오프라인 리테일에 입점한 라네즈, 에스트라 같은 브랜드들도 새로운 유통 채널을 얻게 되었죠.
이제 각 브랜드의 채널 전략은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미 아마존, 세포라 등 기존 채널에서 매출을 확보하고 있는 큰 브랜드라면, 올리브영 입점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죠. 각 채널에서 어떤 고객을 만나고, 어떤 제품을 보여줄 것인지 큰 그림을 재정비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상품 전략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브랜드라 하더라도 각 채널의 고객 특성과 쇼핑 맥락에 따라 상품 포트폴리오를 다르게 구성하거나, 프로모션 메시지와 고객 경험을 달리 설계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예를 들어 세포라와 올리브영에 동시에 입점한 K-럭셔리 브랜드라면, 세포라에서는 럭셔리 스킨케어를 처음 접하는 소비자를 고려한 접근성 높은 가격대의 제품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올리브영에서는 가격대가 좀 더 있더라도 한국 시장에서 축적한 브랜드의 명성과 프리미엄 이미지를 보다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는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OUTRO
미국 K-뷰티 시장에서 올리브영 런칭은 단순히 새로운 유통 채널 하나가 생긴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런칭은 K-뷰티가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서, 과거에는 하나의 브랜드가 소비자를 불러모으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플랫폼이 소비자를 모으고 그 안에서 브랜드가 발견되는 구조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앞으로 올리브영이 미국 시장에서 세포라, 울타, 아마존에 비해 어떠한 차별점을 만들어 갈지는 더 지켜봐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단순한 상품 수나 'K-뷰티'라는 카테고리만으로는 지속적인 경쟁력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브랜드 소싱, 상품 큐레이션, 오프라인 경험, 온라인 상품 운영까지를 모두 하나의 플랫폼 경험으로 정교하게 연결해내 채널로서 자리잡는 것이 올리브영에게 남은 과제로 보입니다.
최근 한국 올리브영은 성수동에 약 500평 규모의 체험형 플래그십 스토어 '뷰티 맨션'을 오픈하며 또 한번 새로운 쇼핑 경험을 제안했는데요. 미국에서도 올리브영이 어떤 방식으로 '발견의 경험'을 확장해 나갈지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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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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