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유나 지속가능경영센터
#INTRO
아침마다 카페에서 “커피는 텀블러에 담아주세요”라고 말할 때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있다는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되어 동료들과 함께 카페를 찾을 때면, 텀블러를 챙기지 못하고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는 현실에 맞닥뜨립니다. 그럴 때면 편리함을 향한 욕구와 ‘이번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라는 자기 합리화가 자연스럽게 밀려옵니다. 오랜 시간 기후 변화와 지속 가능성 분야에서 일해왔지만, 정작 제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이 칼럼을 통해 친환경 실천과 제품 소비를 둘러싼 개인적인 고민들과, 그 과정에서 떠오른 솔직한 생각들을 담아 보고자 합니다.
1 환경을 생각하는 활동, 정말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친환경 활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여름철이면 거의 모든 사업장과 건물에서 냉방 에너지 절약 운동과 캠페인이 벌어지고, 사용이 끝난 화장품 용기는 매장이나 아모레몰 같은 곳에 반납해 아모레리사이클(AMORE:CYCLE) 캠페인에 동참하기도 합니다. 주말에는 서울 근교에서 플로깅에 나서 직접 환경 정화에 힘을 보태기도 하고, 출퇴근길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를 챙기기도 하죠. 이외에도 가끔은 비건 식단에 도전하거나, 손을 닦을 때 선물로 받은 손수건을 사용하는 등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수고스러운 노력이 정말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영국 환경청(UK Environment Agency)의 연구에 따르면, 에코백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자원과 에너지까지 감안했을 때 실질적으로 환경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그 가방을 적어도 130번 이상 사용해야 탄소 배출 면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장바구니와 동등한 환경적 가치가 된다고 해요. 해당 기준으로 대략적으로 계산했을 때 약 4개월 동안 거의 매일 사용해야 한다고 볼 수 있죠. 열심히 탄소 배출 절감 활동에 참여한다 해도, 우주로 쏘아 올리는 로켓 한 번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내가 20년 동안 배출한 총량과 비슷하다는 뉴스는 애써 외면합니다. 게다가 지구 평균 기온이 이미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5도 이상 상승했고, 기후 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경계선에 다다랐다는 소식은 종종 지금껏 해온 모든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지도록 만듭니다. 이런 순간마다 ‘나의 작은 실천들이 정말로 의미가 있을까’라고 끊임없이 스스로 되묻게 되고, 때로는 무력감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2 친환경 제품은 왜 여전히 선택적인가?
출처: 아모레성수 3R 제품 소개 라벨 사례
제품 생산 과정 역시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소 가격이 비싸더라도 재활용 플라스틱(PCR)을 사용해 제품을 만들고, 수요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리필 제품을 꾸준히 출시하는 브랜드들의 다양한 시도는 분명 박수 받아 마땅합니다. 플라스틱 대신 종이 소재를 과감히 도입하거나, 재활용을 돕는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모습에서는 분명 혁신의 가능성이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도들이 아직까지 기업 전체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값이 되지는 못한 듯합니다. 오히려 열심히 고민했던 시도들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에 휩싸이는 안타까운 경우도 종종 마주합니다. 그 결과 일부 제품들은 혹시라도 불필요한 오해와 비난에 직면할까 우려해, 굳이 이러한 노력을 크게 드러내지 않기도 합니다.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친환경’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예전에 비해 훨씬 높아졌습니다. Statista와 Kantar 등 다수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뷰티 시장이 이미 전체의 30% 가까이 성장했고, 연 7~9%씩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아직 그 비율이 10% 미만에 머물고 있어, 글로벌 흐름에 비해 더디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저 또한 솔직히 ‘더 좋은 품질’이나 ‘더 안전한 성분’은 꼼꼼하게 확인하고 따지면서도, ‘더 친환경적인 제품’은 여전히 여러 가지 조건이 허락할 때에만 선택하는 옵션으로 남겨두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3 시장과 체계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일 것이라는 생각
이런 고민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더 넓은 사회적·경제적 구조의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뻔한 내용이겠지만) 산업혁명이 가져온 자본주의 체제는 지난 수세기 동안 인류에게 유례없는 번영과 혁신을 안겨준 동시에, 지속가능하지 않은 성장 경로라는 그늘도 남겼습니다. 그렇게 쌓여온 자본주의의 토대가 현재의 기후 변화, 생물다양성 감소와 같은 심각한 문제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이나 기업 차원의 실천을 고민했지만 결국 한계를 느꼈고, 근본적인 시스템과 시장 구조의 변화 없이는 지속가능성도 요원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재무적 가치 추출’에만 집중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와 환경에 대한 진정한 가치 창출에 실질적인 보상이 돌아가는 체계가 필요하고, 그렇게 변화된 시스템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지속가능성과 회복력을 이끄는 촉진제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에 크게 공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모든 환경적·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경제사회 시스템 내에서 제대로 평가하고 반영하는 ‘내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실제로 이런 관점이 확산되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화하는 새로운 법과 규제가 국내외 곳곳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주주 가치를 넘어 이해관계자 중심의 시장 패러다임 변화도 활발해지고 있고, EU의 디지털 제품여권(DPP), 국내 순환자원사회촉진법처럼 제품의 환경 영향 공개를 촉진하는 정책들도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불과 몇 해 사이 이런 변화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때로는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큰 흐름만큼은 긍정적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아모레용산 제품 환경영향 정보 공유 사례
4 보이지 않던 비용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 제품 전과정에 걸친 환경영향 비용의 가시화
친환경 실천과 제품 개발에서 느꼈던 근본적 한계를 ‘정보와 데이터’의 힘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원료 생산부터 포장재, 제조, 유통, 소비, 폐기까지 제품의 모든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환경 영향을 얼마만큼 끼치고 있는지 명확한 숫자와 비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기업이나 소비자 모두 훨씬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품 개발 단계에서 기존 플라스틱보다 훨씬 비싼 재활용 플라스틱(PCR)을 쓸지 고민할 때, 단순한 원가 차이 뿐 아니라 각국의 재활용 분담금, 플라스틱세, 사회·환경적 외부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재활용 플라스틱은 무조건 비싸다’는 고정관념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칼럼을 준비하면서 국제 표준인 ISO 14008(환경 영향 및 관련 환경 측면의 금전적 가치평가)을 참고해, 자사 제품 약 4천여 개의 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16가지 환경 영향(온실가스 배출량, 물 사용량, 부영양화, 생태 독성, 산성화, 오존층 감소, 미세먼지 형성, 이온화 방사선, 토지 이용, 자원 고갈 등)을 모두 비용으로 환산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어떤 제품은 개당 사회·환경적 비용이 1만 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또 어떤 제품은 30만 원이 넘는 수치가 산출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데이터의 품질과 정확도에는 아직 한계가 있지만, 이렇게 수치화 된 결과만으로도 앞으로 훨씬 다양한 실험적 시도와 변화를 고려해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전 과정에 걸친 사회·환경 영향 비용이 명확히 드러나면, 그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각 제품과 브랜드의 차별성을 높이며 혁신적 제품 개발로 이어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덜 미치는 제품들과 브랜드가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간다면, 점차 그 선순환이 확산되어 시장 구조 자체가 새롭게 바뀌고, 결국 우리 사회 전반에도 더 긍정적인 전환이 일어날 것입니다.
출처: 24년 10월 진행된 아모레용산 아모레리사이클 팝업 포스터
#OUTRO
이렇듯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긍정적인 흐름이 존재하고, 그 안에 변화의 씨앗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요즘 들어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또한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느끼게 되었고, 저 역시 이제는 제가 집중하고 생각할 영역을 조금 조정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저는 에코백을 130번씩 들고 다닐 자신은 없기에, 아예 가방을 들지 않는 미니멀한 생활 방식을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니 삶이 더 가볍고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플라스틱 물병을 사는 습관을 멈추고 직접 물을 끓여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 변화도 사실 환경에 대한 의식보다는 미세플라스틱 관련 뉴스에서 비롯된 건강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컸습니다. 돌이켜보면, 가장 먼저 행동으로 이어진 변화는 거창한 사회적 대의 때문이 아니라, 내 삶에 밀접하게 다가온 불편함, 건강 문제, 실질적인 이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저는 막연한 변화를 꿈꾸며 실천하기보다는 작지만 구체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행동으로 조정해보고 싶습니다. 변화가 벅차게 느껴질 땐, 넛지(Nudge)처럼 작고 실천 가능한 제도나 정책을 더 깊게 고민해보려 합니다.
물론 이러한 시도들이 언제나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변화와 혁신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수많은 시도와 작은 변화들이 맞물려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물결처럼 퍼지는 그 순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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