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손명관 지속가능경영센터
#INTRO
여름의 초입인 6월이 되면 “올해 여름휴가는 어디로 갈까?”라는 설레는 고민이 시작됩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최근 몇 년 사이 기후 변화와 ESG의 영향이 우리의 여행 방식에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사라지는 것들과 새롭게 등장하는 것들을 살펴보며, 이번 여름휴가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의미를 줄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출처: 팔라우 공식 환경보호 캠페인 사이트
1 사라지는 것들
1) 호텔 일회용품
2024년부터 한국에서는 객실 수가 50실 이상인 숙박업소의 칫솔, 샴푸 등의 일회용품 비치가 제한되었습니다. 스페인을 포함한 해외 여러 국가에서도 일회용 어메니티 제공을 금지하는 추세입니다. 이에 따라 메리어트, 하얏트, 힐튼 등 글로벌 호텔 체인들은 객실 내 샴푸와 바디워시를 리필 가능한 대용량 디스펜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환경을 위한 변화임을 알면서도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는 여행 가방에 자연스럽게 칫솔과 개인 세면도구를 챙기게 되면서, 이런 변화에 익숙해져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출처: 뉴데일리
여행 갈 때 세면도구 꼭 챙겨 가세요!
2) 몰디브 섬
기후 변화로 인해 해수면은 매년 약 4mm씩 상승하고 있습니다(IPCC 제6차 평가보고서 기준). 이는 해발 고도가 평균 1.5m에 불과한 몰디브와 같은 섬나라에는 매우 심각한 위협입니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2100년까지 몰디브 국토의 약 80%가 물에 잠길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한편,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인구 과밀과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지반이 연평균 7cm 이상 침하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2050년까지 도시의 3분의 1이 침수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도 이전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출처: IPCC AR6 종합보고서
매년 약 4mm씩 상승하고 있는 글로벌 해수면
출처: 몰디브 관광청
해발고도 1.5m인 몰디브 섬들
3) 동물 체험 관광
한때 인기 있었던 코끼리 타기 체험이나 돌고래 쇼 같은 동물 체험 관광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윤리적 소비와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많은 국가에서 야생동물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는 추세입니다.
프랑스와 영국은 2020년부터 야생동물의 서커스 출연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동물을 '볼거리'가 아닌 '보호해야 할 생명'으로 인식하는 가치 전환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9년 불법 포획돼 서울대공원 수족관에 수용됐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는, 시민단체와 학계의 노력으로 2012년 제주 바다로 방류되었습니다. 제돌이는 현재 동료 무리와 함께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가 있던 전시관은 ‘돌고래 이야기관’으로 재탄생해 해양 생태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출처: 뉴스펭귄
2024년 제돌이 증명사진. 친구들과 자유롭게 제주바다를 누비고 있는 모습
(제돌이를 나타내는 붉은 박스 안 지느러미에 하얀색으로 표시된 1번 마크)
출처: 서울대공원 홈페이지
제돌이가 있던 돌고래 쇼 공연장은 해양생태환경 보전과 동물복지를 기억하기 위한 돌고래 이야기관으로 변경 되었습니다.
2 새롭게 등장한 것들
1) 여행자의 약속
서태평양에 있는 팔라우에 입국하면, 여권에 환경 보호 서약서 스탬프를 받고 그 위에 직접 서명해야 합니다. "팔라우의 아이들을 위해(For the children of Palau)"로 시작하는 이 서약은, 아름다운 섬을 보존하고 보호할 것을 맹세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입국 환경 서약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또한 뉴질랜드의 '티아키 프로미스(Tiaki Promise)'도 비슷한 맥락으로 관광객들에게 자연과 문화를 보호하겠다는 서약을 요청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관광객을 단순한 ‘방문자’가 아닌, 자연을 함께 지키는 보호자로 인식하게 하기 위한 의식적 전환의 일환입니다.
출처: 팔라우 서약 웹페이지
2) 안식년을 갖는 자연 관광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비치(The Beach)’ 촬영지로 유명해진 태국의 마야 베이는, 영화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수많은 관광객이 몰렸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자연 훼손이 심각해지자, 2018년부터 3년간 전면 폐쇄했습니다. 2022년 재개장 이후에는 매년 8~9월을 생태 복원 기간으로 지정하고 관광객의 입장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비단 마야 베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필리핀의 보라카이 섬, 제주 한라산의 백록담 등도 일정 기간 '안식년'을 갖고 관광객 출입을 제한하며 생태 보전과 환경 정화 작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연경관이 뛰어난 명소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방문 가능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여행지 탐방을 넘어, 자연과 지속 가능한 관계를 실천하는 여행자가 되는 첫걸음입니다.
출처: 푸켓 지역 정보 홈페이지(Maya Bay Remains Closed
(환경 회복을 위한 마야 베이 폐쇄 기사)
3) 환경보전기여금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늘 즐겁지만, 인기 관광지일수록 과잉관광으로 인한 환경 훼손과 지역사회의 피로도가 함께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는 ‘환경보전기여금’ 제도를 도입해, 관광으로 인해 발생한 부담을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발리는 2024년부터 외국인 관광객에게 약 10달러의 환경보전기여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이 수익은 자연 보호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됩니다.
하와이는 2026년부터 ‘그린피(Green Fee)’ 제도를 도입해 숙박세를 11%까지 부과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 및 생태계 보호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제주도 역시 연간 1,5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으로 인한 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여금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한 세금이 아닌, 지속 가능한 관광을 위한 투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즐긴 만큼,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한 책임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출처: 매일경제
4) 친환경 호텔 객실 및 이벤트
호텔에서도 ESG 실천을 위한 여러 패키지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2박 이상 투숙하는 고객에게는 침구류를 교체하지 않는 대신 숙박요금을 조금 할인해주기도 합니다. 이는 세탁 과정에서 소모되는 물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입니다. 또는 친환경 어메니티나 객실, 체험을 제공하는 곳도 생기고 있습니다.
출처: 그랜드 워커힐 서울
인테리어에서 푸드까지 동물성 제품을 배제하고 환경 파괴요소를 최소화한 비건 객실
5) 둘레길 여행
렌터카를 이용하는 대신, 튼튼한 두 다리로 즐길 수 있는 여행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둘레길 여행’이 있는데요. 자연과 나란히 걷고, 마을의 삶을 느끼며, 탄소 배출 없이 즐기는 여행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여행의 실천 모델로 보입니다.
올해 둘레길 여행을 고민하신다면, 저는 제주 올레 14-1코스를 추천합니다. 저지예술정보화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곶자왈, 오름을 거쳐 푸른 차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호흡도 가라앉게 됩니다. 길을 걷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넓게 펼쳐진 차 밭을 바라보는 순간, 일상에서 벗어난 진짜 쉼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오설록 티 뮤지엄에 들러 제주 녹차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보내는 시간은 그 어떤 호화로운 여행보다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출처: 제주올레트레일 홈페이지
제주올레 14-1코스(저지예술정보화마을~오설록 녹차밭)
출처: 오설록 공식 홈페이지
오설록 티 뮤지엄 전경
#OUTRO
앞으로의 여행은 지금보다 조금 더 신중해지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후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도 더 나은 여행 방식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 희망적입니다.
떠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머문 자리를 돌아보는 여행. 자연과 사람, 지역과 문화가 함께 숨 쉬는 여행이 많아진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풍경은 더 오래, 더 아름답게 우리 곁에 머물러 줄 것입니다.
이번 여름, 그런 여행의 시작점으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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