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재미있는 ESG 이야기 #5
글
손명관 지속가능경영센터
#INTRO
“디자인은 캘리포니아의 애플에서. 생산은 전 세계 사람들의 손으로.”
애플 홈페이지에 걸려있는 문구입니다. 실제로 애플은 우리나라에서만 200개가 넘는 협력사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일자리 수는 125,000명에 달하죠.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있는 애플 직원 수는 몇 명일까요? 단 500명입니다. 그렇다면, 애플의 ESG 책임과 범위는 500명이 있는 애플 회사 한 곳일까요, 아니면 수천 개의 협력사까지 포함해야 할까요? 아이폰 제품의 탄소발자국을 산출해야 한다면, 애플 본사와 공장의 탄소배출량만 보면 될까요? 아니면 아이폰 배터리 원료가 채굴되는 콩고 코발트 광산부터 살펴봐야 할까요? 이번 칼럼은 이러한 내용들을 담아 “지속가능한 공급망”에 대해 풀어보겠습니다.
출처: artdirection.studio
현대 제네시스 분해도. 자동차 산업의 경우 자동차 부품 수는 3만 개, 전체 협력사 수는 5,000개에 달합니다.
1 “지속가능 공급망”이란?
현대사회의 기업은 분업화와 기술 고도화로 인해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나의 기업에서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맡아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진 거죠. 아모레퍼시픽의 경우에도 주요 협력사 수가 100개 정도 되고, 2-4차 협력사까지 포함한다면 더 많아지죠. 또한, 세포라 등 대형유통사의 입장에서는 아모레퍼시픽도 완제품을 납품하는 협력사에 속합니다.
출처: EU 공급망 실사 지침 Q&A
(KOTRA, 2024)
이렇게 원재료 소싱에서 폐기까지의 전체 과정을 “공급망”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손익과 품질 향상 차원에서 협력사와의 긴밀한 파트너십이 중요해졌고, 정부나 투자기관, 시민단체에서 그에 맞는 ESG 책임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기업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거래하는 모든 협력사와 책임 있고 투명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보통 이를 “지속가능한 공급망”이라고 일컫습니다.
2 “지속가능한 공급망”이 중요해진 이유
1) 탄소중립 목표를 세우려면 공급망 배출량까지 포함해야 해!
SBTi(Science Based Targets initiative)는 명확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한 기업을 인정해주는 이니셔티브인데요. 구글, 애플 등 탄소중립 선언을 하는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은 Scope 1-3까지 세 가지로 나누는데요. Scope 3 배출은 공급망 등 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서 발생하는 기타 배출을 포함합니다.
출처: SBTi 공급망 탈탄소화 인게이지먼트 지침(2023)
협력사 등 기타 온실가스 배출 항목들(빨간색 박스 표시)
* 상세 내용은 아래 내용 참고!
SBTi에서는 Scope 3 배출이 전체 Scope 1, 2, 3 배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 Scope 3 목표 설정이 필수적으로 포함됩니다. 이는 대부분의 기업에 해당되며, 현재 SBTi 검증을 받은 목표의 90% 이상이 Scope 3 배출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도 Scope 3 배출량은 총 배출량의 약 88%에 달하죠. 즉, 기업은 자체 배출량 외에 전체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파악해야 하고, 감축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출처: 2023년 아모레퍼시픽 지속가능성 보고서
아모레퍼시픽 넷제로 감축 로드맵. 막대 그래프에서 회색 표시된 부분이 사업장 외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입니다.
특히 글로벌에서는 탄소중립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단적인 예로 구글, 애플 등 글로벌 대기업은 그들의 공급망 중에 하나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2029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전환(RE100)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탄소배출량이 애플의 Scope 3에 해당하기 때문이죠. 때문에 이미 애플 공급사 중에 320개가 넘는 곳이 RE100 목표를 선언하고 전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현재 각 기업에서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통해 자율적으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2) 공급망 생물다양성 보전
저는 “나 혼자 산다”란 TV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전현무, 박나래, 이장우가 뭉쳐 만든 “팜유” 모임 편을 즐겨 보는데요. 모임명인 “팜유”는 실제로 세계 식물성 기름 거래량의 60%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팜유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고 거래되는 식물성 기름”이죠. 그런데 혹시 팜유 열매를 실제로 보신 분이 있을까요?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팜유는 공장에서 초콜릿, 과자, 아이스크림, 화장품 등을 가공할 때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죠. 팜유의 대부분은 동남아 국가,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생산됩니다. 또한,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분별한 개간이나 화전으로 인한 환경파괴는 물론이고, 원주민 토지 수탈, 아동 노동 등 인권 이슈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팜유를 사용하는 기업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공급망의 끝단에서 발생하는 환경파괴와 인권침해에 대해 의식을 가져야 하는 거죠.
3)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 발효(EU)
24년 7월, EU에서 발효한 이 지침은 위 내용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일정 규모의 기업 대상으로 기업의 자체 운영뿐만 아니라 공급망을 포함한 주요 비즈니스 관계(chain of activities) 내에서도 ESG 관점에 대한 실사 수행 의무를 규정하고 있죠. 만약 기업이 이 의무를 위반할 경우, 매출의 최대 5%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실사(Due Diligence)’의 의미인데요. 이것은 기업 본연의 책임을 다하여 부정적 영향을 예방하고 시정하라는 의미이지, 협력사의 잘못된 사항을 지적하고 적발하라는 감사(audit)의 의미가 아닙니다.
EU 공급망 실사 절차
출처: EU 공급망 실사 지침 Q&A(KOTRA, 2024)
3 지속가능한 공급망 만들기
그럼 어떻게 해야 기업에서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잘 구축할 수 있을까요?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몇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
1) 지속가능한 공급망 정책 수립
나이키는 90년대 파키스탄 아동 노동 이슈가 발생한 이후로 지속가능한 공급망 관리에 힘써오고 있습니다. 특히, 2021년도에는 다섯 가지 원칙을 담은 공급망 정책을 수립하여 협력사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정기적으로 준수 여부를 확인 및 개선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고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경영 활동에도 도움을 줍니다.
출처: 나이키 홈페이지(Nike_2021_Code_Leadership_Standards)
2) 공급망 상생 협력
글로벌 식품 기업 네슬레는 제품의 주 원료인 코코아 농장이 있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코코아 플랜”이란 명칭 아래 세 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단순한 CSR 활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코코아의 품질은 높이고, 아동 노동과 환경 영향은 줄여 네슬레 공급망 관리에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2009년에 시작된 이 계획으로 지금까지 150,000개 가구가 혜택을 받았다고 합니다.
3) 오픈 이노베이션
기존의 공급망이나 원재료를 개선하려면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때론 기존의 방법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기술이나 도전이 필요한데요. 이를 위해선 기업이 가진 고민을 외부에 공개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과 솔루션을 가진 협력사나 대학 등과 협력하는 방법(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요합니다. 아모레퍼시픽은 “레스 플라스틱”과 “넷제로” 부문의 혁신을 위해 2022년부터 ‘A MORE Beautiful Challenge’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챌린지는 임팩트 창출 및 성장 가능성을 보유한 소셜벤처를 발굴하고 오픈 이노베이션 연결 및 투자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인데요. 지금까지 10개 기업과 오픈 이노베이션을 진행했고, 7개 기업에는 실제 투자까지 이뤄졌습니다.
#OUTRO
이번 칼럼은 ESG에서 중요한 항목인 ‘공급망’에 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예전에 학생 때 배웠던 경영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같이 단순했던 것 같았는데, 이제는 기업이 글로벌화되고, ESG가 강조되면서 방정식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은 단기적 시점에서는 비용과 공수가 많이 들어가는 과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과 투명성 확보를 통해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기업이 협력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상생하면서, 속도는 느리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함께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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