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는 어쩌다 가망이 없어졌을까 (오역/지나친 의역의 사례) - AMORE STORIES
#임직원칼럼
202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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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는 어쩌다 가망이 없어졌을까 (오역/지나친 의역의 사례)

Columnist | 아모레퍼시픽그룹 임직원들이 직접 작성한 칼럼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번역의 역사 제1화. 어벤저스는 어쩌다 가망이 없어졌을까
(오역/지나친 의역의 사례)




칼럼니스트 | 아모레퍼시픽 인재개발팀 이환희 님



#INTRO_칼럼을 시작하며
OTT 서비스가 우리 일상에 폭넓게 스며들고 신간 도서의 수도 해마다 늘어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한 문화 콘텐츠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번역이라는 분야는 생각보다 영향력이 큰,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한 영역입니다.

“자막이라는 1인치짜리 벽만 뛰어넘으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작품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 관객에게 한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그 1인치의 벽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접해온 많은 소설이 우리말로 옮겨지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다섯 편의 칼럼이 지금도 수많은 콘텐츠를 접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재미와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영화사에 남을 오역
2019년, 역대 개봉일 관객 신기록을 세우고 한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외국 영화가 있었죠. 많은 사람이 기다려왔던 영화 자체의 화제성만큼이나 오역이 화두였던 그때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네,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니티 워’)> 이야기입니다. 전세가 빌런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넘어가게 된 결정적 상황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토니 스타크에게 하는 말을 듣고, 관객들은 탄식에 빠졌습니다.


“토니, 이젠 가망이 없어.”


대사의 원문은 “We’re in the endgame now.” 입니다. 옥스퍼드 영영사전에 따르면 ‘endgame’은 ‘체스나 브리지 게임 등의 마지막 국면’이라는 뜻이고, 영한사전에는 ‘종반전, 최종 단계’라고 나옵니다. 우리나라 낱말 중에 바둑에서 비롯된 말(묘수, 무리수, 미생 등등)이 많은 것처럼 체스에서 비롯된 일상적 표현이지요. 그러니 사실 저 대사는 “이제 최종 단계야.” 라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 계획이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신조어나 은어도 아니기 때문에, ‘end+game=게임이 끝났다=가망이 없다’라고 인식한, 번역가 입장에서는 얼핏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생경한 단어를 경솔하게 지나쳐버린 지극히 초보적인 실수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영화 막판 클라이맥스 전투 신이 펼쳐집니다. ‘미래를 위한 결정적 승부수를 던진’ 이 신에 대해 관객들은 이미 주인공이 ‘모든 것을 체념한’ 장면으로 인식한 상태였죠. 그래서 ‘어벤저스의 묘수가 과연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아니라 ‘가망이 없다’는 패배감을 안고 영화의 남은 부분을 봐야 했습니다. 심지어 후속작 제목이 아시다시피 <어벤저스: 엔드게임>, 즉 오역 자막에 따르면 <어벤저스: 가망 없음>입니다. 번역가 한 명이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례입니다.

마블의 영화들이 있기 전 오역으로 회자된 대표적인 사례로 영화 <스타워즈>와 문학 도서 분야의 <해리 포터>가 있습니다. <해리 포터>는 출판 20주년 기념으로 완전히 새로 번역한 한국어판을 다시 낼 정도였죠. 대체로 방대한 양의 시리즈물, 특히 SF 성향의 작품에 오역 사례가 두드러지는 편입니다. 생소한 용어나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용어가 잘못 번역되는 경우도 많고, 기본적인 문장에 대해서도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는 번역가의 불안감 때문인지 오역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스타워즈>에서 유명한 오역의 사례를 보죠. 다스 베이더가 "Prepare the boarding party, and set your weapons for stun (탑승 조를 준비시키고, 무기는 기절 모드로 설정해라). "이라고 한 말이 “파티를 준비해라. 정신이 쏙 빠지게 해줘라.” 라고 번역된 것입니다.


이렇게 근엄한 얼굴로...



물론 요즘은 이러한 세계적인 시리즈물의 팬덤이 엄청난 덕분에 개봉하자마자 영화의 세계관에 맞는 정확한 해석이 온라인상에 바로바로 올라오곤 합니다. 하지만 역사나 전쟁을 다룬 영화들은 아직도 잘못된 고증으로 인한 오역이 많아 상대적으로 OTT 서비스 등에서의 수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중요한 대사를 아예 번역하지 않고 넘어가버린 것으로 악명 높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경우 어느 블로거의 불법 자막이 영화의 내용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한국어 번역본일 정도입니다.



#오역은 왜 생길까 - 문화적 문맹
극단적인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만, 오역은 대부분 기본적인 어휘나 문장 구조 해석의 실수에서 비롯됩니다. 그 외에는 문화의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이 이유입니다. ‘문화적 문맹’이라고도 하는데요, 영한 번역의 경우 영어는 잘하지만 스포츠, 음식, 풍습 등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을 때 생기는 오역을 뜻합니다. 이 또한 정말 많지만, 대표적인 사례 하나만 들어봅니다.


<뉴욕 3부작>의 폴 오스터 작가



폴 오스터의 대표작 <뉴욕 3부작>에는 “They have minor leaguers at second and short, (…) they can’t even decide who to put in right.” 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 팀은 마이너리그에서도 2류가 될까 말까 한 선수들을 두고 있습디다.(…) 게다가 누구를 어느 자리에 써야 할지도 모르고.” 라고 번역되었죠. 해석하기 어려운 문장이고, 잘못된 번역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완벽한 오역입니다. 번역가는 ‘second’ ‘short’ ‘right’라는 세 단어를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겠죠. 하지만 이 문장에서는 각각 ‘2루수’ ‘유격수’ ‘우익수’라는 야구 포지션을 뜻합니다. “그 팀 2루수랑 유격수는 마이너리그 선수예요, (…) 우익수로는 누굴 써야 할지도 정하지 못할 정도고.” 라는 뜻입니다. 야구라는 스포츠에 익숙한 미국 사람들은 전혀 헷갈려 할 리가 없는 문장입니다.



#오역은 왜 생길까 - 과도한 의역
오역은 빈번히 번역가들의 잘못된 의역 때문에 일어납니다. 앞에 소개한 두 사례는 번역가의 ‘역량’ 문제이지만, 이 경우는 ‘의도’가 문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의역(意譯)’은 “원문의 단어나 구절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리어 번역함. 또는 그런 번역.”이라는 뜻입니다. 번역의 방식을 ‘직역’과 ‘의역’으로 무 자르듯 나누고, 그 중 하나만 가지고 작품 전체를 번역할 수는 없습니다. ‘원문에 충실함’을 한쪽 끝 척도로 두고, 반대쪽 끝에 ‘독자에게 충실함’을 둬서 그 사이 어딘가의 균형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어디에 점을 찍는지는 번역가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의역을 넘어선 오역의 경우 대체로 위의 사전적 의미에서 ‘전체의 뜻을 살리어 번역함’이라는 부분에만 꽂힌 나머지 원문의 모든 단어와 문장을 무시할 때 일어납니다.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좌), <로봇 앤 프랭크> (우)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와 <로봇 앤 프랭크>는 흥행이나 평가에 비해 국내에서만 굉장히 기사화가 많이 된 작품들인데, 바로 번역 때문이었습니다. 두 영화 모두 번역가가 영화의 맥락에 상관없이 임의로 당시의 유행어를 남발한 탓에 한국에서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2013년 개봉한 <로봇 앤 프랭크>는 AI 로봇이 난데없이 ‘음슴체’를 쓰는 설정으로 번역이 되어, 주인공과 로봇의 관계성이라는 영화의 핵심 주제가 훼손된 사례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할까 합니다.

2006년작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동명의 프랑스 왕비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로, 18세기 궁궐을 다루면서도 극중 미장센에 현대성을 부여하는 파격적인 모험을 했죠. 그에 대한 평단의 평가도 호불호가 갈리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서처럼 비난 일변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번역가 한 명이 영화에 대한 평가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렸으니, <인피니티 워>의 번역가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 곳곳에는 컨버스 운동화 같은 현대적인 소품이 등장합니다. 공주이고 왕비이기 전에 소녀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죠. 그 장면이 한국에서만 고무신이나 짚신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한국 관객들도 그 의도를 당연히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번역가는 ‘관객에게 감독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며, 공주의 대사를 온갖 동시대 인터넷 유행어로 ‘의역’을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18세기 유럽의 공주가 “탐나는 킹카” “완전 쏠려” “므훗” “대략 난감” “짱나” “쇼킹이다” “코디가 안티” 등의 말을 내뱉는 영화를 보게 되었죠. 원작의 대사는 지극히 평범한 영어였고, 심지어 일부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실제로 했다고 전해지는 발언도 있었습니다. 번역가의 권한을 잘못 이해하고 그에 심취해서 기본적인 의무와 소양을 저버린 사례입니다.


개그 성향이 강한 애니메이션이라 당시에는 큰 논란으로까지 번지지 않았지만...



오역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영화 <슈렉 2>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피오나 공주의 고향으로 ‘겁나먼 왕국’ 이라는 나라가 등장합니다. ‘Kingdom Far Far Away’ 를 번역한 것입니다. 간결하고 재미있는 의역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원문에서 담고자 했던 위트를 없애고, 번역가 임의로 다른 위트를 주입한 경우입니다.


“Once upon a time in a kingdom Far Far Away…(옛날 옛적 머나먼 왕국에서는…)”


영어권에서는 왕자나 공주가 등장하는 고전동화에서 많이 쓰이는 도입부입니다. <슈렉 2>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옛날 옛적에~” 같은 느낌입니다. 옛날이야기를 듣던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그 표현을 이름으로 활용하는 것이 원작의 웃음 포인트입니다. 우리 전래동화의 시대적 배경 이름이 ‘옛날 옛적 시대’인 것 정도지요. 위트 있는 설정으로 소소한 웃음을 주는 것이지, ‘Far Far Away’라는 표현 자체가 우스꽝스러워야 하는 건 아닙니다. 원작에는 있지도 않은 사투리를 사용할 권한이 번역가에게 있었던 것일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참고로 <슈렉> 시리즈의 번역은 아주 유명한 베테랑 번역가의 작품인데, 본인은 자신의 경력에 ‘기억에 남는 뿌듯한 번역’ 중 하나로 늘 저 사례를 들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번역가 특유의 의역 스타일이 1990년대의 관객과 심지어 당시의 영화 전문 기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20~30여 년 전 “좋은 외화 번역은 무조건 한국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의역”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런 인식을 만든 장본인이었죠.

사실 ‘겁나먼 왕국’은 그 번역가의 전작들에 비하면 점잖은 수준입니다. 1998년 개봉한 <뮬란>에 나온 “I’m your worst nightmare. (나는 너의 최악의 악몽이다.)”라는 대사는 악당들이 나타날 때의 멘트로, <배트맨> 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의 패러디입니다만 그 당시에는 어째서인지 “용가리 사촌이다” 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해 개봉한 <벅스 라이프>에서는 “It's nonsense compared to the Twig 1993. (1993년 나뭇가지 사건에 비하면 별것 아니야.) ”라는 대사가 “93년 단풍 참사도 이겨냈잖아.” 가 되었죠. 당대 최악의 비극이었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패러디입니다. 요즘 같으면 용납되기 힘든 번역이지만 그 당시에는 대중적으로 평가가 좋았습니다.



#마치며 - 번역 받아들이기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오역 없는 완벽한 번역이란 존재하기 힘들 것입니다.(그렇다고 AI는 아직 스토리 콘텐츠의 영역에서는 더욱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 어떤 오역을 접할지 모르는 우리는 번역된 작품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일단은, 번역의 한계를 인정하는 ‘너그러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치명적인 오역까지 무조건 용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역에만 신경 쓰다가 작품의 재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인피니티 워>나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극단적인 예도 있지만 불법 복제물이 아닌 이상 번역은 어느 정도의 퀄리티가 유지되고 있고, 작품의 재미 자체를 없애버릴 정도의 오역은 드뭅니다. 마블의 영화 다수를 그 악명 높은 <인피니티 워>의 번역가가 번역했고 작품마다 오역 논란이 많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느끼고 좋아하는 것처럼요.

알랭 드 보통 작가의 번역가로도 유명한 정영목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원작과 번역은 다른 것이다.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악몽이 된다.” 라고 말하며 원작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번역의 한계를 설명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너그러움’은, 예컨대 <위대한 개츠비>의 번역본을 읽으면서 원작과 완벽하게 동일한 정서와 감성이 전달되어야만 한다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겁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국내만 해도 웬만한 번역가는 다 손대본 작품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어느 정도의 오역이 있을 수밖에 없고, 같은 문장과 장면에 대한 해석도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늘 원작보다 열등한 콘텐츠를 접하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좋은 스토리에는 여러 방향의 해석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번역본을 통해 자연스럽게 원작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했을 다른 누군가의 해석을 함께 즐길 수 있다고 볼 수 있죠.

번역을 받아들이는 두 번째 방법으로 이른바 ‘초월 번역에 열광하지 않기’를 제안해봅니다. 정영목 교수는 같은 인터뷰에서 바람직한 번역에 대한 생각을 “독자의 편의를 고려하는 것은 편집자 소관이고 번역가는 저자의 말을 충실히 옮기는 것이 당연하다.” 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의견이고 그것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번역된 콘텐츠를 수용하는 관객이자 독자로서의 우리에게 유의미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초월 번역’이라고 말하며 칭찬하는 문구는 대체로 쉽게 각인이 되는 문장이고, 그러다 보니 자극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미국 드라마 <가십걸>의 “이 구역의 미친 X은 나야.(I'm the crazy bitch around here.)”나 <심슨 가족>의 “충격과 공포다. 그지 깽깽이들아!(Shock and awe, losers!)” 같은 예시가 있습니다. 이 번역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원문에 포함된 비속어를 큰 의미 왜곡 없이 재치 있게 살려낸 번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관객이자 독자로서 우리가 이런 번역들만 잘했다고 칭찬함으로써 많은 번역가로 하여금 이런 식의 ‘초월 번역’을 알게 모르게 강요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지 않은지 걱정됩니다.

여러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고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 대한 관객과 독자의 이해가 높아지면서, <뮬란>이나 <벅스 라이프>의 사례와 같이 ‘당장의 재미만 있으면 되는’ 과도한 의역은 점점 사라지고 있기는 합니다. 원작자의 말에 충실한 번역이 대중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그러한 번역가가 더 인정받는 시장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적어도 과도한 의역 욕심으로 인한 오역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역의 사례를 소개해 드리는 것으로 칼럼을 시작했지만 번역이라는 분야, 특히 스토리 콘텐츠의 번역은 어려운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그 어려움을 소개하고, 그것을 뚫고 우리 곁으로 온 번역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 칼럼에서 언급한 사례 중 영화의 경우 당시의 극장 개봉판이나 DVD판 등에서의 오역 사례이며, 현재 OTT 서비스에서는 모두 수정되어 있습니다.(그리고 다른 오역으로 채워졌습니다.)




※ 임직원 칼럼니스트 이환희 님은 영어통번역학을 전공하였고, 여러 도서의 초벌번역 작업에 참여하였습니다. 외국 도서 <애드랜드(누구나 혼을 빼앗기고 마는 지구촌 광고 이야기)>와 <뷰티, 브랜드가 되다(글로벌 뷰티 산업의 역사와 현장)>의 공역자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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