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슈퍼’ 길종관 사장님을 만나다 - AMORE STORIES
#한강대로 100
2023.05.25
325 LIKE
2,633 VIEW
  • 메일 공유
  • https://stories.amorepacific.com/30%eb%85%84-%eb%8f%99%ec%95%88-%ec%8b%a0%ec%9a%a9%ec%82%b0%ec%9d%84-%ec%a7%80%ed%82%a8-%ed%84%b0%ec%a4%8f%eb%8c%80%ea%b0%90-%eb%8d%b8%ed%83%80%ec%8a%88%ed%8d%bc-%ea%b8%b8%ec%a2%85%ea%b4%80-%ec%82%ac

'델타슈퍼' 길종관 사장님을 만나다

30년 동안 신용산을 지킨 터줏대감

아모레퍼시픽 건너편 골목, 시선을 사로잡는 초록색 간판의 작은 가게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드나든다. 바로, 2023년 5월 10일로 개업 30주년을 맞은 ‘델타슈퍼’. 30년 동안 다섯 번의 이사를 거치며 꿋꿋하게 신용산을 지켜온 신용산의 터줏대감 길종관 사장님을 만났다.

 

 

 

▲ 신용산 ‘델타슈퍼’에서 길종관 사장님 ⓒgoldenimageshouse

 

# 1. 거래처 영업사원에서 델타슈퍼 사장으로,
그리고 30년


올해로 개업 30주년이라고 들었습니다.
30년 전, 델타슈퍼를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나요?


사회 생활을 영업사원으로 시작했어요. 당시 서울식품의 코알라빵에서 일했죠. 양산빵이 인기 많던 시절이었어요. 연차가 쌓이면 한 구역을 관리하게 되는데, 신용산 구역을 제가 맡게 됐어요. 신용산에 있는 거래처 20~25개 정도를 관리했죠. 그중 하나가 ‘델타상회’였어요. 지금 LS빌딩의 후문 쪽에 있었어요. 정말 작은, 소위 ‘구멍가게’였지만 당시에는 편의점이 없어서 장사가 굉장히 잘 됐어요. 3년 정도 이 구역을 관리했을 때 주인분이 이제 본인은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으니 저보고 가게를 인수받지 않겠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분이 당시 일흔이 넘으셨거든요. 그길로 영업사원을 그만두고 용산으로 이사를 오게 됐어요.

 

당시 델타상회 사장님과 관계가 좋으셨나 봐요.


그럼요. 매일 거래처 관리를 해야 하니까 매일 만나는 건 기본이고, 커피도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요. 아들 두 분이 계셨는데 그분들이랑도 친했어요. 그런데 정작 아들들은 가게를 물려받기 싫다고 했죠. 힘들어서. (웃음)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할 때, 고민은 없으셨나요?


당연히 있었죠. 당시 제 나이가 스물여덟 살이었거든요. 많이 어렸죠. 회사 동료들도 한창 회사 다닐 나이에 무슨 가게를 하냐고 말렸어요. 그런데 저는 양산빵 시장이 갈수록 좁아지는 걸 느꼈어요. 전망이 밝지 않다고 생각했죠. 월급도 적은 편이었고요. 영업을 하더라도 내 영업을 하고 내 장사를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5년 동안 회사 다니면서 모아둔 돈과 본가에서 도움받은 돈으로 델타슈퍼를 인수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없어요. 좋은 선택이었죠.

 

30년 동안 용산의 변화를 쭉 지켜보셨을 텐데요.
용산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그때는 ‘서울에 이런 곳이 있나’ 할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었어요. 쓰러질 것 같은 기왓집도 많았고요. 제가 살던 집도 기왓집이었어요. 당시엔 미군 기지가 있으니까 개발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큰 건물도 없었고요. 지금처럼 활기찬 동네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용산이 워낙 교통의 요충지다 보니 개발이 되기 시작했고, 아모레퍼시픽 같은 큰 회사들이 들어오며 사람이 많아졌죠.

 

#2 아파서 가게 문을 닫은 적은 하루도 없었어요.


30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제일 힘든 건 아무래도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가게에 나와 있어야 한다는 점이죠. 아침 7시 반부터 10시까지 가게에 있어야 하거든요. 7시에 일어나서 출근하면 7시 반이고, 10시에 퇴근해서 11시에 자니까 거의 하루 종일 가게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토요일에도 영업을 하신다고 알고 있는데요, 쉬고 싶진 않으세요?


그래도 일요일 하루를 쉬니까 괜찮아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하루도 못 쉬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몸이 조금 안 좋아도 가게에 나와요. 다행히 크게 아팠던 적도 없고요. 컨디션이 안 좋아서 문을 닫은 적은 없었어요. 장사하면서 느낀 건,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손님들은 찾지 않는다는 거예요. 한 번 갔는데 문 닫혀있고, 다시 갔는데 문이 닫혀있으면 다음부터는 그 가게에 안 가게 돼요. 그래서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은 꼭 지키려고 해요. 손님들이 헛걸음하시면 안 되잖아요. 토요일에 문을 여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꼭 토요일에 오는 단골손님들이 있거든요. 손님들과의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죠. 그런 약속이 한두 번 지켜지지 않으면 더 이상 손님들이 찾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 1993년부터 꾸준히 기록한 장부

 

사장님의 출근 후 하루 일과는 어떤 모습인가요?


출근해서 물건 정리를 하고 손님을 맞아요. 꼭 빼놓지 않는 일이 있다면 스포츠 관련된 뉴스들을 보는 거예요. 스포츠토토를 판매하니까 손님들이 물어보시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거든요. 매일 게임 일정도 확인하고, 누가 출전하는지, 누가 부상을 당해서 출전을 못하는지도 알아두죠. 경기도 많이 보고요. 덕분에 국내 선수들은 물론, NBA 선수들도 많이 알고 있어요.

 

30년 동안 이사를 많이 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몇 번이나 이사를 하셨나요?


총 다섯 번 이사했어요. 맨 처음 인수받을 당시의 가게는 오래된 건물이라 리모델링 한다고 가게를 비워달라고 하더라고요. 리모델링이 완성되면 다시 불러준다고 했는데, 당시 편의점들이 들어올 때라 그쪽에서 세를 더 많이 준다고 했나 봐요. 그래서 근처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죠. 한 3년 정도 운영하다가 그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아모레퍼시픽 쪽으로 오게 됐어요. 그 후에 또 건물주가 바뀌면서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됐고요.

 

▲ 총 다섯 번의 이사를 거친 델타슈퍼

 

자리도 많이 바뀌고 장사에 부침이 많았을 텐데요,
어려울 땐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따로 특별하게 한 건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가 있는 자리에서 손님에게 잘하는 것. 계속 문을 열어 놓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델타슈퍼의 베스트셀러 변천사가 궁금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음료나 담배가 잘 팔렸어요. 편의점들이 들어오면서는 상품들이 많이 밀렸죠. 그러다가 2002년에 ‘로또’가 나오면서 상황이 괜찮아졌어요. 로또 당첨 금액이 400억이 넘으며 로또 열풍이 불 때는 밥도 못 먹고 복권을 팔 정도였어요. 2006년부터는 스포츠토토를 하기 시작했는데, 스포츠를 좋아하는 분들은 토토를 많이 하세요. 그래서 지금은 ‘담배, 로또, 토토’가 베스트셀러가 됐어요.

 

▲ 델타슈퍼의 베스트셀러

 

#3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게 행복 아닐까요?


30년 동안 가게 운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무엇이 30년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단연코 ‘가족’이에요. 아이들이 셋인데 모두 대학도 보내고 큰 아들은 장가도 보냈어요. 델타슈퍼로 아이들 뒷바라지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뒤에는 아내의 헌신이 있었어요. 아내가 없었으면 델타슈퍼도 없었을 거예요. 저도 열심히 일했지만, 그 뒤에는 30년 동안 꼬박꼬박 가게에 와서 밥을 챙겨주고 아이 셋을 키우느라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죠. 가족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사장님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요즘은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게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요. 주말에 가족들과 여행도 가고, 가끔 외식도 하고 그런 평범한 시간들이요. 최근 제 생일에 아이들이 케이크를 준비했는데 거기에 ‘우리 가족의 로또는 우리 아빠’라는 글귀가 쓰여있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아이들이 잘 자라줘서 고마워요. 그래서 일하지 않는 시간은 최대한 가족들과 보내려고 노력해요.

 

▲ 가족들이 준비한 감동의 생일 케이크

 

아모레 직원들도 많이 방문한다고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다면?


태평양 시절부터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주로 담배를 자주 사러 오시는데, 얼굴 보면 무슨 담배를 사시는지 아니까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드리죠. 담배 사놓고 깜빡하고 테이블에 놓고 가는 분들은 기억해놨다가 나중에 오시면 챙겨드리고요.

 

사장님에게 아모레퍼시픽은 어떤 의미인가요?


한마디로 말하면 ‘이웃’이죠. 잠시 을지로로 사옥 이전하셨을 때는 다시 오길 많이 기다렸어요. 다시 왔을 때는 무척 반가웠죠. 아모레퍼시픽이 없으면 이 가게가 현상 유지나 할 수 있을까요? 직원들뿐 아니라 회사에 미팅을 하러 타지에서 오는 분들도 많고, 아모레가 이곳에 있음으로써 드나드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저에겐 고마운 이웃 같은 존재예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작년에 이 자리로 이사 왔는데, 여기서도 나가야 할 상황이 생기면 더 이상은 가게를 못 하겠죠. 이제 다른 데로 옮기기는 힘들거든요. 별다른 문제 없으면 10년은 더 가게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까진 신용산을 지키고 있어야죠.

 

▲ 신용산 ‘델타슈퍼’에서 길종관 사장님 ⓒgoldenimageshouse

 

 

 

손님들과의 신뢰를 깨지 않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다보니 어느덧 30년이 되었다는 길종관 사장님. 10년 후에도 신용산의 터줏대감으로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길 기대해본다.

 

인터뷰 신혜원(papervore@naver.com) / 사진 금상관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전체 인터뷰, 원고에 대한 저작권은 뉴스스퀘어에 있습니다.

 

TOP

Follow us:

FB TW 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