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게 맞아요, 말할 수 있기까지 - AMORE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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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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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게 맞아요, 말할 수 있기까지

마흔, 더 오래 더 아름답게 일하는 법 #3 감각과 책임으로 직관을 쌓아 올린 시간들

 

한다혜 메이크업프로팀

나답게 일하고 싶은 마흔의 시선으로 한 분야에서 꾸준히 쌓아 온 시간 속에서 발견한 깊고 새로운 아름다움(NEW BEAUTY)을 다섯 번의 칼럼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1 맛은 모르지만, 무드는 잘 알아요

 

“뭐 먹을래?”

이 질문 앞에서 늘 잠시 망설이게 됩니다. 메뉴판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확신이 생기지 않아요. 맛이라는 감각에 예민하지 않다 보니, 뭘 먹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종종 “아무거나”로 대답하게 되죠.

하지만 콘텐츠 앞에서는 달라집니다. 수천 번의 촬영을 거치며 축적한 감각과 경험이 판단의 순간마다 저를 이끌어 줍니다. 익숙한 리듬 위에서 흔들림 없이 결정할 수 있는 건, 몸에 밴 기준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배경이 산만해요, 심도 얕게 잡아주세요.”

“소품 하나만 줄여 볼까요?”
“헤드룸 조금만 줄여 주세요.”

“OK 컷이에요. 지금 무드로 한 번만 더 가 볼게요.”

망설임은 없습니다. 반응하고, 결정하고, 곧바로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판단이 이어지죠. 현장에선 판단이 늦어질수록 타이밍은 어긋나고, 분위기는 흐트러지니까요.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 해답은 ‘기준’과 ‘리듬’에 있다고 생각해요. 감각은 결국 반복된 경험과 누적된 기준, 그리고 고유한 리듬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음식에는 저의 기준이 없지만, 콘텐츠에는 있거든요.

 

 

출처: 직접 촬영 / 머뭇거릴 틈 없이 ‘지금의 결정’에 반응하던 라이브 부조정실 (2014.)

 

 

2 감각은 흐름 안에서 빛난다

 

처음 촬영장에 갔을 때를 기억해요. 모든 것이 상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죠. 조명이 세팅되기도 전에 모델은 첫 포즈에 들어가 있었고, 감독은 이미 다음 장면을 머릿속에서 편집하고 있었어요. 저는 겨우 몇 초를 고민했을 뿐인데, 현장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어요. 이곳은 망설임을 허용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걸요. 모델은 곧 다른 현장으로 이동해야 하고, 스튜디오는 시간 단위로 비용이 발생합니다. 스태프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장면을 찍어야 하죠.

“잠깐만요, 좀 더 생각해 볼게요.”

이 말은 곧 비용이고, 손실이며, 전체 흐름에 제동을 거는 신호입니다. 콘텐츠 제작사가 할 일은 ‘완벽한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나쁜 손해’를 최대한 빨리 피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건 완벽이 아니라 ‘흐름’이에요.

그래서 다짐했어요. 완벽하진 않아도, 결정에 우물쭈물하지 말자. 머릿속 시뮬레이션으로는 알 수 없던 것들이 첫 컷을 찍고 나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니까요. 포즈가 어색한지, 조명이 부자연스러운지, 화면의 톤이 무드와 맞는지. 움직이고 조정하고 다듬으며, 화면의 호흡과 감도를 찾아 갑니다.

오히려 빠르게 찍고 고치는 쪽이 좋은 결과를 만들 때가 많았어요. 그건 실패가 아니라 ‘확인’이었고, 리스크가 아니라 ‘진행’이었죠. 멈춰 있기보다 움직이는 쪽이 더 많은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현장에서 중요한 건 선택의 무게보다 흐름의 리듬이에요. 콘텐츠는 유기체처럼 장면과 사람, 감정과 조명이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니까요. 판단이 늦어지면 그 생동감은 쉽게 식어 버립니다.

 

 

출처: 직접 촬영 / 시간이 곧 예산인 모델 촬영, 지금이 아니면 놓치는 자연광, 매번 선택을 재촉하는 현장의 요소들.(2019.)

 

 

출처: 직접 촬영 / ‘진짜 아침 햇살’을 놓치면, 그 감도를 조명으로 흉내 내기도 합니다…

 

 

3 더 나은 선택보다, 더 빠른 감각

 

일을 잘하는 사람은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빠른 감각으로 움직이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완벽한 정답은 늘 지나간 뒤에야 보이거든요. 지금 필요한 건 완벽함보다 ‘민첩한 반응’일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대부분의 결정을 15분 안에 내리려 해요. 타이틀을 정할 때, 섬네일을 고를 때, 배경과 인물을 섭외할 때, 촬영 일정을 조정할 때도 마찬가지죠.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감각으로 충분히 결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쌓이면서 이 리듬은 저만의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15분은 제가 망설일 수 있는 최대치예요. 그 이상은 자신감을 갉아먹는 구간이죠. 판단은 길어진다고 정교해지지 않아요. 처음의 직감은 흐려지고, 선택하지 않음이라는 편안함 속에서 기획은 늙고 감각은 무뎌집니다.

반면 15분 안에 내린 결정은 그 자체로 리듬이 되고, 리듬은 감각이 되며, 감각은 자신감을 낳고, 자신감은 실행력을 만듭니다. 이 순환이 반복되며 기획자로서의 내공도 단단해졌어요.

선택은 작은 근육 같아서, 자주 쓰지 않으면 무뎌지고, 자주 쓸수록 단단해지니까요. 오늘도 저는 그 근육을 단련하듯 선택합니다. 짧게 고민하고, 분명히 결정하고, 후회 없이 실행하는 방식으로요.

 

 

출처: 직접 촬영 / 이것은 흡사 ‘틀림그림 찾기’, 한 장의 A컷 뒤엔 넣을까, 뺄까…? 수십 장의 망설임이 쌓여 있다. (2020.)

 

 

4 직관이 생기는 순간

 

“직감으로 정했어요.”

이 말을 하면 종종 오해를 받아요. 아무 근거 없이 대충 결정했다는 뜻처럼 들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콘텐츠 기획에서 말하는 ‘직관’은 막연한 감이 아니에요. 그것은 무수한 판단의 누적이며, 실패와 성공을 반복한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는 속도의 또 다른 이름이에요.

수많은 요소들이 뒤섞여 있지만, 가끔 설명 없이 “이게 베스트 씬이다”라는 확신이 오는 순간이 있어요. 그 확신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수십 개의 광고 컷과 실패했던 장면, 현장의 피드백들이 레이어처럼 쌓여서 ‘감’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거예요. 우리가 “느낌이 좋아”라고 말할 때, 사실 그 안에는 수많은 근거가 응축되어 있어요. 말보다 빠르게 작동하는 정보처리 시스템이 머릿속에 있는 셈이죠.

물론 이런 직관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아요. 회의실에서 망설였던 기억, 끝없는 수정이 반복된 기획안, 머릿속으로 수십 번 돌려 본 시뮬레이션들이 축적되어야만 비로소 직관은 작동하기 시작해요.

그 전까지는 감이 아니라 ‘추측’에 가깝죠. 그리고 무엇보다, 직관은 감각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아요. 내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태도가 함께 있어야 비로소 작동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감이 왔을 땐 말해요.

“이게 맞아요. 이렇게 가겠습니다. 책임질게요.”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끝까지 함께 감당하려고 해요. 그렇게 하나하나 책임지며 쌓은 직관은 점점 더 정확해지고, 점점 더 ‘나다운’ 선택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출처: 직접 촬영 / 카메라 위치, 앵글, 숏의 크기… 화면의 모든 구도를 정리하는, 촬영 직전의 순간.(2025)

 

 

5 감각을 믿는 연습

 

저는 여전히 점심 메뉴 앞에서는 한참을 망설여요. 어쩌면 평생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괜찮아요. 모든 영역에서 빠를 필요는 없으니까요.

대신 어떤 순간에는, 유난히 주저 없이 결정하는 제가 있어요. 그럴 때는 감각이 먼저 반응하고, 경험이 그 위에 더해지죠. 실수를 통해 단련된 직관, 반복 속에 길러진 선택의 근육. 중요한 건 그 감각을 믿는 연습이에요.

내가 잘 아는 영역에서만큼은 망설이지 않고 흐름을 타고,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다짐하는 것. 그리고 그 리듬을 다른 곳으로도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것. 선택은 결국, 나를 믿는 일이에요. 그리고 내가 쌓아 온 기억과 감각, 천천히 다듬은 기준들을 믿는 일이죠. 그 믿음이 자리를 잡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게 돼요.

오늘도 저는 15분짜리 결정들을 여럿 해냅니다. 작고 단순한 선택처럼 보여도, 그 감각이 쌓이고, 그 리듬이 이어져 결국 나를 움직이는 중심이 됩니다.
언젠가, 그 수많은 판단의 순간들을 돌아봤을 때 “이건 분명히, 내가 고른 길이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완벽하진 않았지만, 멈추지 않았던 하루들. 그 흐름 위에서, 저는 여전히 제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출처] 직접 촬영 / 별거 아닌 촬영도, 선택 100번 하고 나면 체력은 0%....

한다혜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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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혜

아모레퍼시픽 메이크업프로팀
Content Director
헤라 브랜드 유튜브 PD 메일 유튜브
  • 브랜드를 소재로 콘텐츠를 만드는 13년차 PD
  • 기획부터 연출까지, 콘텐츠의 전체 구조를 직접 설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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