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이슨맘 (가명)
Editor's note
육아는 모든 걸 바꾸는 경험입니다.
아이의 탄생은 익숙했던 삶의 리듬을 완전히 바꿔 놓고, 때로는 ‘나’를 잠시 뒤로 미뤄두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습니다. ‘나’를 잃지 않는 법을 찾아가는 모든 여정은 고유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요.
아모레퍼시픽은 일과 육아의 경계에서 ‘나다운 아름다움’을 지켜가는 한 워킹맘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INTRO
혹시 아이를 키우시나요?
아직 아이가 없는 분들이라면, 이 글이 조금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언젠가는 일어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일’ 정도로 말이죠. 사실 저도 그랬어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내게 왔다는 벅찬 감정과 막연한 책임감. ‘나보다 이 아이가 먼저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곧 아이만 바라보는 삶은 오래가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육아는 희생이 아닌, 아이와 내가 함께 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만큼 나 자신도 소중하기에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완벽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하루. 육아와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공유합니다.
1 엄마 아빠 이전에, 나였던 나를 기억하며
저희 부부는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약 3년 정도 시간이 있었어요. 여행을 좋아하는 저희는 국내든 해외든 시간만 나면 여기저기 떠났죠. 남편과 노는 일이 제일 재밌었고 요즘 뜨는 맛집과 카페는 죄다 꿰고 다닐 정도로 데이트에 진심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요?
여행을 가면 힐링하러 온 건지, 극기 훈련을 하러 온 건지 헷갈리고 가고 싶은 맛집이 있어도 '아이도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는지' 가장 먼저 확인해요. 식사 도중에도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이 쏙 빠져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는 상황이죠. 다 먹고 나서 "우리 뭐 먹었더라?" 싶을 만큼요.
가끔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그러다 찾은 저만의 작은 방법은 평일에 연차를 쓰고 남편과 단 둘이 데이트를 하는 겁니다. 사람이 덜 붐비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여유롭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진도 찍어요. 그런 순간에 저는 (물론 아이들 때문에도 너무 행복하지만ㅎㅎ) “나 지금 너무 너무 행복하다”라고 이야기해요.
물론 둘만의 시간을 내지 못할 때도 있어요. 저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앉아 오래 이야기하면서 즐기고 싶은데, 식당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면 눈치 보이고 마음 편히 식사하기 힘들죠. 그럴 때 저는 미디어의 힘을 빌려요. 그런 모습을 좋게 보지 않는 시선도 있고 심지어 어떤 부모님들은 아이가 조용히 식사할 수 있을 때까지 외식은 안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솔직히 저는 그렇게 못 하겠더라고요. 저도 밖에서 밥 먹고 싶고, 맛있는 거 여유롭게 먹고 싶고, 사람 구경도 하고 싶어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맛있는 한 끼쯤은 즐기고 싶으니까요
2 억울한 게 아니라 그저 내 시간이 필요한 거였어요
저는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고 남편은 계속 출근을 했어요. 어느 날은 웃으며 퇴근하는 남편을 보는 괜히 화가 나더라고요. 나는 열 달 동안 운동도, 음주도, 하고 싶은 걸 다 참았고 출산 후에도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없는데 남편의 일상은 전혀 달라진 게 없어 보였거든요.
억울한 마음이 들었어요. 나도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육아라는 일을 맡으니 낯설고, 무섭고, 또 힘들더라고요. 그날 밤, 자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이게 정말 남편에 대한 화일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저 익숙한 일을 하고 여유롭게 밥 한 끼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스스로를 '엄마'라는 역할에 가둔 채,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내 시간을 만들 여유를 놓치고 있었어요.
그 이후로 저는 조금씩 숨 쉴 틈을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아이가 낮잠을 잘 때 집안을 치우는 대신 유모차를 끌고 브런치를 먹으러 나갔어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몰라요. 아이가 좀 더 크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후에는 늘어난 자유 시간에 ‘빨래부터 해야지’보다는 ‘오늘은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을까?’를 먼저 떠올렸어요. 물론 집안일은 잠시 미뤄졌지만, 그 시간 덕분에 ‘엄마’가 아닌 ‘나’로서의 하루를 조금씩 회복해 나갈 수 있었어요.
3 내가 못하는 걸 붙잡지 말고, 잘하는 걸 키우는 ‘강점 육아’
회사에서 ‘강점 워크샵’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이 워크샵의 핵심은 내 약점을 보완하려 애쓰기보다 내 강점을 찾아 그것을 더 잘 발휘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건데요. 어느 날 문득 “육아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자기 주도 식사’에 대해 들어 보셨을 거예요. 숟가락질이 서툰 아기에게 스스로 밥을 먹게 하면서 눈과 손의 협응력을 기르고 주도적인 식습관을 만들어주는 방식인데요. 좋은 취지인 건 알지만 막상 해보니 밥 한 끼마다 부엌이 난장판이 되더라고요. 정성껏 만든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바닥에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아이 밥 먹이랴, 쏟아진 음식 치우랴 저에겐 너무 벅찼어요.
그래서 저는 과감히 ‘자기 주도 식사’는 포기했습니다. 대신 제가 잘하는 ‘요리’에 집중하고 직접 떠먹이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꿨죠. 아이가 혼자 밥을 먹는 연습은 조금 느릴 수 있지만, 그 대신 저는 다양한 재료로 영양 가득한 음식을 준비하고 그걸 아이가 잘 먹어주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어요. 그게 저만의 ‘강점 육아’였던 거예요.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저처럼 자기 주도 식사하지 마세요!”, “아이에게 요리를 정성껏 해주세요”라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삶을 살듯 육아도 ‘나에게 맞는 방식’이 분명히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SNS 속 ‘육아 잘하는 엄마들’을 보며 괜히 위축되고 모든 걸 다 잘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 내가 진짜 잘하는 게 무엇이고 아이와 함께 어떻게 즐길 수 있을지를 먼저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아요.
#OUTRO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 글이 또 하나의 정답처럼 느껴지기 보다는, 그냥 "맞아, 나도 그래" 하며 살짝 웃음 지을 수 있는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도 아직 한창 전쟁 같은 육아중이에요. 다른 도움 없이 남편과 둘이서 아이 둘을 키우며 매일 허둥대고, 실수하고, 그러다 또 하나씩 배워가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이렇게 하면 돼요!"가 아니라 “저는 이렇게 해봤어요”라는 이야기를 조금 더 가볍고 편안하게 나누고 싶어요. 다음 글에서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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