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육아편지] #3 아빠의 치마에 대하여
글 황인봉 (가명)
Editor's note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며 사회적으로 아빠의 육아를 장려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에 아모레퍼시픽은 임직원 워킹대디의 육아기를 아들에게 쓴 유쾌한 편지의 형식으로 연재합니다.
인류 육아역사 20만 년이 넘도록 기저귀 가는 것은 여전히 왜 이리 힘드냐며 푸념을 늘어 놓기도 하고, 아들이 흘린 밥알을 하나하나 줍다 보면 어느새 반은 자기 입으로 들어간다며 너스레를 떨다가,
아내는 동네 엄마들이랑 공동 육아라도 하지만 아빠는 육아친구 하나 없다며, 청승맞게 외로움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아들이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경험을 자세하고 코믹하게 편지 형식으로 하나씩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 세 번째 육아편지를 함께 열어 보시죠.
아들아,
네가 일어나기 전
아빠는 출근 옷을 미리 골라 입은 후
빨간 앞치마를 두른다.
두 살 된 네가 일어나 방에서 나오더니
앞치마를 만지며 말한다.
“이거 뭐야?”
앞치마야
“아빠치마?”
아니, 앞치마
“아빠치마?”
아니, 앞치마
“아빠치마?”
...응, 아빠치마야
네가 배시시 웃는다.
테스토스테론이 저하되는 기분
괜히 신경이 쓰인다.
널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오금행 3호선 지하철 4-4안에
북적대는 사람들 속
겨우 앉을 자리를 찾는다.
신용산역.
제 시간에 출근 태깅을 하기 위해 서둘러
회사의 무거운 출입문을 잡아 열고 달린다.
시간이 없다.
제 시간에 앉은 아빠는
오늘 새로운 거래처에
브랜드 소개서를 보내야 한다.
작성에 참고하고자
오랜만에 회사 웹사이트를 들어가니
첫 화면에
“우리는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라고
영어로 쓰여 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고민한 적이 있지만
“세상”은 무엇인지
고민한 적은 없는데...
세상...
세상이란...
그래
세상이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음을 난 안다.
두 돌이 지난 네가
내 두 팔에 안겨 잠들 때
난 알 수 있다.
내 두 팔 안에
세상이 잠들었음을
두 돌이 지난 네가
달려와 내 품 안에 안길 때
난 알 수 있다.
내 가슴 속에
세상을 품었음을
두 돌이 지난 네가
신나서 방방 뛸 때
난 알 수 있다.
세상이 자라고 있음을
그리고
아랫집에서 곧 올라올 수도 있음을
세상은 멀리 있지 않다.
세상은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내 곁에 있는 모든 것임을 깨닫는다.
신용산, 그 무거운 문을
뒷사람을 위해 내가 잡아주었다면
그것으로도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을 것이다.
오금행 3호선 4-4칸
힘겨워하는 앞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면
그것으로도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을 것이다.
세상은 지금 바로 여기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 3호선 4-4번 칸이고
세상은 지금 바로 여기
동료들이 함께 일하는
신용산의 이 사무실이며
세상은 지금 바로 여기
너와 네 엄마가 있는
스물네 평의 아늑한 집이다.
그 세상이 신이 내게 준 임무다.
어디 한번 더 아름답게
더 멋지게 만들어보라고
허락한 세상이다
더 나은 세상은
나중에
먼 곳에 가서 만드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만들어 나가야 함을
아빠는 너를 갖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의 아들아
나의 세상을 위해
아빠는 자랑스럽게 치마를 걸친다.
아빠는
단순히 설거지랑 빨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 생각하면
아빠 치마?
아빠치마
그래.
아빠치마.
테스토스테론이 솟구친다.
나의 아들아
나의 세상아
오늘도 나의 세상을 남의 손에 맡기고
출근하는 아빠의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부디 나의 세상을 잘 돌보아주십사 부탁하며
아빠도
출근길에
근무중에
퇴근길에
마주하는 누군가의 세상을
소중히 대하리라 다짐한다.
동시에
나도 누군가의
세상이기에
나 자신도 소중히
보살피리라 다짐한다.
너도 그러하길 바라며...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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