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유튜브 만드는 마음 #5 - 고유하게 이상해서, 나를 반하게 한 모든 사람들에게
글
한다혜 메이크업프로팀
# “유튜브를 시작하고 싶은데, 무슨 주제로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작은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는 대표 친구들, 그리고 개인 채널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저에게 종종 물어 옵니다.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데, 컨셉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자신의 모습이, 일상이, 스토리가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1 우리는 갑자기 에르메스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한때 브랜드의 성공 공식은 ‘선망성’이었습니다. 아주 소수의 셀러브리티, 스크린 밖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신비주의 연예인들이 주목받던 시대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한 다리만 건너도 다양한 분야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이 넘쳐나고, 니치 마켓에서 팬덤을 모아 꾸준히 성장하는 스몰 브랜드의 시대지요.
이런 시대에 우리는 ‘고유한 이상함’을 발굴해야 합니다. 남들과 다른 특이점, 도전하고 실패하는 경험의 과정, 그 안에서 투명하게 애쓰는 마음, 인간미 있는 순간들. 이런 것들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프로세스’를 공개하면서 시간을 쌓아 가야 합니다. 왜냐고요? 완벽하고 근사한 결과물만으로는 승부를 보기 어려워요. 우리 개인이 역사가 깊은 거대 브랜드나 최고급 제품과 경쟁할 순 없으니까요.
서사 없는 멋진 결과물은 매력이 없습니다. BTS의 성공 비결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의 ‘흙냄새’ 나는 콘텐츠가 어떻게 팬덤을 형성했는지 말이에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00계의 에르메스’가 되고 싶다면, 먼저 애틋함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면 우스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내려놓아도 괜찮아요.
저는 헤라 유튜브를 만들기 위해서 팀에서 ‘가장 웃기고 이상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세 명을 모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메이크업 아티스트팀에 유일한 PD로 입사해 버렸는데요. 모두 시크한 블랙으로 드레스업하고, 프로페셔널하게 무대에 서는 모습이 눈부시게 멋지긴 했지만… 그 순간에는 희한하게, 사랑이 넘치는 저인데도 진정한 팬심이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나에게 친밀한 개인이 아니라 그저 ‘아티스트 군단’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모두에게 말을 시켜 보고 옆에서 호들갑을 떨면서 리액션이 가장 생생한 이들, 수석 아티스트 동현쌤과 미남 아티스트 담당 정창, 막내 아티스트 경차를 카메라 앞에 세웠어요. 어떤 판을 짜 줘도 유쾌한 상호 작용을 만들어 내는 삼인방과 세계관을 만들고 있죠. 그들은 유튜브에서 각자 애칭으로 호명되고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어요. 그들은 웃기긴 한데요, 절대 우스운 존재가 되지는 않습니다. 메이크업을 잘하는 ‘코어 능력’은 진짜거든요. 그 영역에서는 그들이 망가지지 않거든요.
헤라 유튜브의 예능인 모드, 그리고 본업 모드의 아티스트
2 고유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법
여러분의 ‘이상한 점’을 찾아보세요. 나 자신(내 브랜드)의 앞면 말고 뒷면, 보이고 싶은 것 말고 감추고 싶은 면, 피하고 싶은 질문들, 극복기, 닿을 수 없는 지향점. 그런 것들을 들여다 보면 특별한 서사, 유일하게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발견되곤 해요.
유달리 집착하는 것,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지점,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는 상황. 그런 것들이 캐릭터 설정의 시작점입니다. ‘어, 나 되게 이상하네?’ 싶은 순간을 부지런히 모아 보세요. 사람들이 나를 놀리는 말, 숨기고 싶지만 자꾸 언급되고야 마는 것들. 나의 추구미를 바라보며 느끼는 박탈감 같은 걸 자꾸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엄청 기 세고, 잘 싸우고, 차가운 인상에 예민 보스인 PD의 모습이 어쩌면 저 멀리 추구미인 것 같긴 한데요. 저의 나약함,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자꾸 애틋해지는 마음, 후배의 고생이 눈에 밟히는 순간들, 고매한 예술이 아니라 커머스를 향한다는 연출가로서의 컴플렉스, 브랜드 회사에서 시스템도 없이 홀로 고군분투하는 불쌍함… 그런 것들이 저 자체의 스토리인 것 같더라고요. 대단한 성공으로 감탄을 자아내거나, 스타성으로 선망을 부르는 존재가 아니고요.
때로는 걱정을 유발하고, 놀림 받으세요. 귀여워져요, 그건 사랑이에요.
무슨 반응이 나올지 궁금해서 자꾸 말을 시켜보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특이해서, 의외라서 더 캐보고 싶은 사람. 놀렸을 때 발끈하는 게 귀여워서 계속 건드리고 싶은 사람. 저는 그게 관심의 열쇠가 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유튜브 영상을 즐겨 보고, 트렌드를 잘 아는 정창 아티스트가 저에게 알려 준 이야기가 있어요. 뚜렷한 주관을 바탕으로 사회문제와 경제를 이야기하고 “차가운 자본주의”라는 책도 낸 윤루카스라는 유튜버를 알려 주었는데요. 그가 어느 날 핑크색 옷을 입고 나왔다가 조롱받기 시작했고, 그런데도 종종 다시 핑크 옷을 입고서 구독자들이 놀리는 말들에 격렬하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계속 낄낄대면서 놀리고, 그의 반응을 즐겼고요. 그러면서 그 유튜버는 은근하게 놀릴 거리를 계속 미끼처럼 영상마다 노출했다고 해요. 정창 아티스트는 이 지점이 정말 똑똑한 거라고 감탄하더군요. 자신의 코어 콘텐츠와 다른 지점에서는 기꺼이 친근해지는 것. 그게 팬덤을 무섭게 모아가고 있는 비결이라고요. 자신이 ‘현존하는 밈’이 되고자 하는 것, 실제로 크게 화낼 일도 아니었지만 ‘일부러 긁힌 척하는 리액션.’ 그게 영향력의 씨앗이 되는 거예요. 요즘 일부러 억울한 상황에 자기를 두고 스스로 밈이 되는 인기 코미디언들도 여럿 있지요.
최근, 유튜브에서는 '혼자 사는 젊은 남성의 브이로그’ 카테고리가 알고리즘에 유리하다는 분석이 있어요. 그 유튜버들의 성장은, 기혼의 중년 여성들이 그들의 어설픈 살림 솜씨와 장비를 보고 잔소리를 하면서 시작된다고 해요. ‘저거 저렇게 쓰면 안 된다’, ‘이 제품을 사서 써 봐라’ 하면서 일명 ‘고나리’로 늘어나는 댓글들. 그리고 그걸 듣고 다음 영상에 반영하면서 구독자와 소통하고, 그렇게 팬덤이 점점 커진다고요. 보는 사람의 마음이 쓰이게 하는 것, 그게 관심을 받는 비결이 되는 거예요.
광기 있는 사랑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2년간 꾸준히 돌 영상을 올리고 돌 씻는 릴스로 900만뷰 기록.
회사 매출을 살려 낸 온양석산 김대리
자발적으로 최애를 홍보한 팬, 그녀를 찾고자 한 NCT 태용
특이점에 도달해 버린 집착과 노력을 그 자체로 드러내 주세요. 휙휙 하는데 잘 해버리는 그런 사람이 너무 쿨하고 부럽긴 하지만요. 죽어라 애쓰는 마음, 남이 몰라도 상관없는 나의 아주 높은 스탠다드를 충족하는 이상한 노력, 자꾸 돌고 돌아도 다시 돌아오고 마는 나의 관심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는 진짜 포기할 수 없는 것. ‘엥? 이걸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렇게까지 진심이라고?’ 이러한 감응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내 콘텐츠가 와글와글해지는 거죠.
저는 사람을 만나면, 진짜 사랑스럽게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해요.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혀서 매일 당신의 콘텐츠를 만들어 보라고 부추깁니다. 최근에 함께하는 독서 모임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만났어요. 대체로 생기 없는 표정에 세상 무기력한데, 뭐가 필요하다고 하면 다 적극적으로 준비해 주시는 원단회사 H 대표님. 인스타그램 댓글로 팔로워들이 가끔 이상한 걸 만들어 달라고 한다고 얘기하시기에, 그럼 그 주문을 실행하는 동영상을 찍어 보라고 했습니다. 하기 싫은 표정으로, 그런데 진짜 끝단까지 디테일을 살려 제작하고 있는 사장님. 너무 웃길 것 같아요. 댓글과 반응들도 벌써 들리는 것 같고요. 치열하게 퀄리티에 집착하는 바리스타 R님도 있습니다. 커피의 맛을 극적으로 다 구별하기 위해서 일체 매운 것을 입에 안 대고 산 지 10년이 넘으셨대요. 일에서는 조금도 타협을 보지 않아서 보는 사람들을 기겁하게 하는데 본인은 ‘다 이 정도 하는 거 아니야?’라고 해서 저를 또 당황시켰고요. 인간 댕댕이 재질의 K양은 우아해지고 싶다면서, 생각날 때마다 자꾸 빨라지는 말의 템포와 높아지는 텐션을 억누릅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왜 우아해지려고 하는데? 그거 당신 거 아닌데…’라고 놀리고 싶어졌어요. ‘대체 왜 이렇게 겸손하시고, 대단한 커리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말씀하시죠?’ 물어보고 싶은 Y교수님, 스타일리시한 타투와 패션으로 나타나 ‘문학잡지 릿터’를 꺼내 낭독하는 모습으로 저를 반하게 한 20만 유튜버 Y님도 있었고요. 본인을 오타쿠라고 소개한 일러스트레이터 J님에게는 ‘이렇게 청순한 오타쿠가 있다고? 당신이 바로 덕후몰이상이다!’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각자 무엇을 드러내야 사랑받을지, 고유한 캐릭터와 매력이 무엇인지 환하게 또렷이 보였습니다. 더 친밀해지고 싶고 물어보고 알아내고 싶었죠.
# 나만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콘텐츠
우리는 모두 은은하게 무언가에 미쳐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특별합니다. 누군가는 치열하게, 누군가는 엉뚱하게, 또 누군가는 섬세하게. 이런 우리만의 고유한 특성이 바로 콘텐츠의 시작점이 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과 진정성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니까요. 여러분이 가진 특별한 시선, 깊은 애정, 때로는 과하다 싶은 집착까지.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제 망설이지 마세요. 당신의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특별합니다. 그것을 세상과 나눌 차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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