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정원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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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세밀화가 이소영 





나무를 떠난 씨앗이 한 그루의 나무가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아직 닿지 못한 곳으로 향하기 위한 씨앗의 여정은 언제나 대담한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한 포기 풀, 꽃과 나무에는 우리를 비춰볼 수 있는 삶의 자세와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식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꿈을 이루어 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1960년, 유럽 시찰 당시 경험했던 광활한 라벤더 밭의 보랏빛은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서성환 선대회장에게 식물의 힘에 대한 믿음을 더욱 심어주었지요. 꽃과 식물에서 업(業)을 시작해 가장 한국다운 화장품을 소개하고, 우리를 대표하는 차를 대접하고, 더 나아가 식물원을 열어 사람들에게 쉼을 선물하고 싶다는 소망.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우리 안에서 꾸준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결국 ‘아모레퍼시픽’이라는 숲을 이루게 한 근원은 식물 아닐까요?

[선택의 정원] 프로젝트는 식물의 무한한 가치와 그 힘을 믿으며 아모레퍼시픽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마주했던 대담한 선택과 여정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오늘날 각자의 자리에서 크든 작든, 매일 선택의 기로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우리 모두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식물에게 배우는 용기와 꾸준함_식물 세밀화가 이소영



씨앗은 기다릴 줄 아는 존재입니다. 가뭄과 추위를 묵묵히 견디고 바람에 날리거나 때로 동물에 먹혀 정처 없이 이동하다가도 적절한 때를 만나면 기다렸다는 듯 온 에너지를 쏟아 싹을 틔웁니다. 식물이 지닌 무한한 힘도 이러한 씨앗의 발아 과정에서부터 점차 자라나는 거겠죠.

개인 작업실에서 세밀화를 그리는 이소영 작가

우리는 그러한 식물의 힘을 믿고 자기만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식물 세밀화가 이소영을 만났습니다. 이소영 작가는 식물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대담하게 원예학과에 진학했고, 현재는 식물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넓히기 위한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가며 한국 식물세밀화가로서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스스로 만들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작가는 자연에 대한 어떤 믿음을 바탕으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식물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을 이어오고 있는 걸까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은 생소한 식물세밀화의 분야와 그 가치에 대해 이해해봅니다.

개인 작업실에서 세밀화를 그리는 이소영 작가


그리고 이번 <선택의 정원> 프로젝트에서 아모레퍼시픽 오산 원료 식물원의 플랜트 도슨트로도 참여한 이소영 작가는 우리에게 식물의 힘을 일러줍니다. 그와 함께 오산원료식물원을 거닐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공간의 가치와 아모레퍼시픽의 원료에 대한 진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동안 ‘예쁘다’라는 감탄사와 함께 눈으로만 담았던 일상 속 주변 식물을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행의 존재로 여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식물의 생애에서 관찰한 대담함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활기차게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됩니다.



비디오영역



작가님을 통해 ‘식물 세밀화가’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된 사람이 많을 거 같습니다. 15여년 간 식물 세밀화가로 일하며 사람들에게 식물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활동을 해온 건 식물을 좋아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식물과 가까이 지냈어요. 부모님께서 제가 도시에 살면서도 자연을 잘 느끼며 자랄 수 있도록 공원이나, 식물원, 산과 같이 식물이 있는 장소에 자주 데려가 주셨거든요. 가까이에서 식물을 접할 기회도 많았고요. 어릴 적 살던 집 마당에 앵도 나무가 있었는데, 매년 이맘때쯤 나뭇가지에 분홍빛의 꽃이 한가득 피어나던 기억이 나요. 앵도 열매가 열리면 아버지가 바구니를 가져오라 하셔서 한가득 열매를 따 주셨는데, 그걸 먹으며 식물은 나에게 많은 걸 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고요. 식물과 친숙하게 지낸 만큼, 자연스럽게 관심이 깊어져 원예학을 전공하게 되었죠.


4월 원료식물원에 핀 장미조팝나무(좌)와 복사나무의 꽃(우)




하지만 식물이 좋아서 원예학과에 진학하고자 했을 때 주변에 말리는 사람도 많았다고요. 아무래도 진로를 결정할 나이에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말에 영향을 받기 쉬운데, 그런데도 작가님이 자신의 결심을 밀고 나갔던 힘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시에는 지금처럼 식물에 대한 인식이 대중적이지 않았고 원예학과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도 한정적이었어요. 식량자원을 재배하는 농부가 될 수 있었지만, 그 외의 길로는 가능성이 적다 보니 주변 어른들은 걱정하셨죠. 그런데 저희 아버지께서는 되려 ‘평생 식물만 보고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니’ 하시며 제 뜻을 지지해주셨어요. 저 역시도 앞으로 식물이 더 사랑받을 날이 올 거라고 믿었어요. 디자인사를 봐도 굉장히 화려한 것을 추종하는 시대가 지나면 단순미가 있는 미니멀리즘이 주목을 받잖아요. 과학기술의 발달이 지속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삶의 가장 기본 요소인 자연에 대한 관심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죠. 지금이 바로 그 시대인 거 같아요.


이소영 작가 작업실 모습




원예학과를 졸업한 후에는 어떤 길을 걸어왔나요?


우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식물 세밀화가를 정식 채용하는 국립수목원에서 4년간 식물세밀화가로 일을 했어요. 국립수목원은 한국의 식물 종을 보존하기 위해 식물 전반을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에요. 저는 조사실 소속으로 한국에 어떤 식물이 있는지를 조사해 분류하고. 그 식물의 기록물을 만들어 표본관에 소장하는 일을 했죠. 그렇게 국립수목원에서 식물 세밀화가가 하는 일의 전반을 경험하고 앞으로 식물 세밀화가로서 어떤 중심을 잡고 활동해야 할 지 기반을 잡은 후에는 유학을 위해 퇴사를 결심했고요. 영국이나 일본 등 식물 세밀화 연구가 한국보다 앞서 있는 나라로 유학을 떠나 한국의 식물 세밀화 연구를 더 선진적으로 이끌 방법을 배우고 싶었거든요. 지금은 식물 세밀화가 필요한 여러 분야에서 작업 의뢰가 많이 들어와서 우선은 프리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식물 세밀화의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려는 꿈은 놓지 않고 있어요.



이소영 작가가 원료식물원에서 직접 보고 그린 차나무 세밀화

대부분의 대중에게 식물세밀화는 예술적 영역으로 먼저 와 닿아요. 작가님의 작업만 봐도 세밀한 표현에 눈을 뗄 수 없죠. 하지만 식물 세밀화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죠?


식물 세밀화의 정식 명칭은 보태니컬 일러스트레이션(Botanical Illustration), 식물 종을 관찰해 그 형태와 특징을 정확하게 그려 기록하는 과학 일러스트레이션에 속해요. 의학으로 치면 인체 해부도 같은 거죠. 가장 흔하게는 식물 도감에 들어가 있는 그림이에요. 식물도감은 사람들이 식물의 이름이나 자세한 생김새가 궁금할 때 펴 드는데, 실제 식물과 책 속 식물 그림을 비교할 수 있으려면 식물의 뿌리부터 줄기, 가지, 잎, 꽃, 열매, 씨앗 등 식물 종의 총체적 특징을 그대로 옮겨 그려야겠죠. 식물의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관찰한 후, 예술적인 해석은 배제하고 기록 목적으로 남기는 그림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돼요.

이소영 작가가 원료식물원에서 직접 보고 그린 차나무 세밀화




한 장의 식물 세밀화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가 그려야 될 식물 종이 정해지면 그 식물과 그 식물이 속해 있는 가족에 대한 문헌을 찾아보며 공부해요.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할지 숙지한 후에는 그 식물의 자생지로 직접 찾아가죠. 식물의 크기를 재고, 특징을 관찰하면서 현장에서 스케치를 최대한 많이 해요. 그리고 가능한 경우에는 식물을 채집해 와서 현미경이나 루페(loupe, 볼록렌즈를 사용한 확대경)로 더 자세히 보며 그림으로 옮기죠. 이 과정을 꽃이 필 때, 새잎이 날 때. 꽃이 질 때, 열매가 맺힐 때마다 반복하며 식물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정리해 완성합니다.



그 동안 작가님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나요?


식물을 채집할 때는 식물 세밀화가에게 식물 종을 보존하려는 책임이 있다는 걸 되새겨요. 식물을 연구하며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오히려 식물을 해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자연 속 출입 통제 구역으로 들어가거나 희귀종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려는 등 식물에 관한 관심이 잘못된 방법으로 표현되는 것처럼요. 저 또한 한 식물의 형태를 다양하게 관찰할 수록 더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지만, 늘 최소한의 식물만 채집하려고 하죠. 어느 군락에서 꽃이나 열매가 하나만 자라 있다면 아예 손대지 않고요.
그리고 작업실에서 식물을 관찰하는 단계에서는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하며 식물의 모습에 계속 물음표를 던져요. 키가 작거나 털이 많은 식물은 바람의 저항을 덜 받기 위함이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식물은 동물을 유혹하기 위해 그렇게 진화하는 등 식물의 생김새에는 식물이 지구 위에서 살아온 역사가 담겨있거든요.

루페로 식물을 관찰 중인 이소영 작가

루페로 식물을 관찰 중인 이소영 작가




<식물의 책>과 같은 에세이집 출간,네이버 오디오 클립 ‘이소영의 식물 라디오’ 진행, <서울신문>의 ‘이소영의 도시 식물 탐색’ 칼럼을 연재하는 등 식물 문화를 전하는 데 앞장서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작가님은 식물 세밀화의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식물 문화를 전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는 이소영 작가

식물 관찰하며 얻은 사유에서 탄생하는 일들이라, 사실 식물 세밀화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죠. 이런 활동으로 대중들과 식물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제가 처음으로 냈던 책이 2013년에 독립서점 ‘유어 마인드’와 함께 20부 한정본으로 발간한 <블루베리 북>인데요, 그때만 해도 블루베리가 ‘힙스터 과일’이라 불리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였거든요. 중장년층에게 한정된 식물 문화에 대한 인식을 깨는 데 적합한 소재였어요. 젊은 사람들이 식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학생들이 식물학자나 농부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하며 꾸준히 하고 있어요.

식물 문화를 전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는 이소영 작가




지금 우리가 만난 작가님의 작업실은 아담한 크기이지만 무한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여러가지 식물 관련 사물들이 정말 많아요.


전 세계 곳곳에서 식물 관련 책과 사물들을 모으고 있어요. 저는 여행을 가도 그 지역 식물원과 중고서점에는 꼭 들려요. 중고서점에 가면 들어서자마자 식물 코너가 어디 있는지 묻고요. 작업실에 있을 때도 쉬는 시간마다 경매 사이트를 둘러봐요. 제 취미이죠. 그래서 구한 책 중에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파견된 일본 식물학자들이 한국 자생 식물들을 기록한 것, 조선총독부 소속 식물학자와 우리나라 1세대 식물학자들이 독도에서 식물을 연구한 것 등 귀중한 자료가 많아요. 북한의 우표를 모아 둔 스크랩북도 있고요. 이걸 보며 북한에 어떤 식물들이 있는지 알 수 있죠.


이소영 작가가 직접 모아 온 식물 관련 도서와 자료




이번 인터뷰에서는 작업실 책상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종이 위에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셨지만, 이 단계 전에는 숲이나 정원 등의 자연 공간으로 나가 식물을 찾아다니는 탐험을 하셨겠죠.


흔히 식물 세밀화 작업이 굉장히 정적일 거로 생각하시지만, 저는 매일 아침 탐험가가 되기도 해요. 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식물들이 어제와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피고, 정점을 맞이한 식물이 있다면 식물 구석구석 사진 찍고, 특징을 글로 메모하고, 자로 크기를 재며 집중적으로 관측을 하죠. 예를 들어 가시의 방향도 유의미하게 살펴볼 요소에요. 가시가 위로 향하면 주로 새나 곤충 등 날아다니는 존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함이고, 가시가 아래를 향하는 것은 밑에서 기어 올라오는 곤충 등을 막기 위해서죠. 저는 한 장소에서 최소한 사계절을 경험하고자 해요. 자연은 중복된 풍경을 보여주지 않아요. 저는 국립수목원에서 4년 동안 일하고, 10년 이상 관찰하러 다니고 있지만 매일 새로워요.

오산 원료식물원을 찾은 이소영 작가

오산 원료식물원을 찾은 이소영 작가




오산 원료식물원 초입에 서 있는 향나무





아모레퍼시픽의 오산원료식물원 역시 작가님이 식물 세밀화 작업을 위해 자주 방문하는 공간이에요. 오산원료식물원의 첫인상을 기억하나요?


그동안 전 세계 다양한 식물원을 다녀보았지만 이만큼 공간 크기 대비 다양한 식물 종이 식재된 곳은 본 적이 없어서 처음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어요. 원료 식물원이라는 개념 자체도 굉장히 선구적이죠. 이곳은 정말 화장품 원료를 기르고 연구하겠다는 구체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는 곳이잖아요. 요즘은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컨셉의 식물원이나 수목원이 많이 생기는 추세인 거 같아 아쉽기도 하거든요. 입구를 지키고 있는 커다란 향나무가 식물을 향한 장원의 진심이자, 아모레퍼시픽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그 나무가 그렇게 크게 자라기까지 오랜 시간 식물을 아껴왔다는 상징이니까요.

오산 원료식물원 초입에 서 있는 향나무




장원은 화훼식물에 관한 관심이 미비할 때부터 식물을 연구하고 심어 길렀다고 해요. 대중에게 식물 문화의 가능성을 전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 나서는 점은 장원과 작가님의 닮은 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작가님께서 장원의 삶을 돌아보며 더 본받고 싶었던 면모가 있으실까요?


행동력이요. 사실 나무가 소중하다고 말하는 기업은 많아도 당장 직접 나무를 심는 기업은 많지 않아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식물원 입구에 그렇게 큰 향나무가 서 있을 수 있는 건 장원의 열정과 행동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장원은 생명체에 대한 인정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릴 적 고향에서 보았던 인삼을 기억하며 인삼을 연구하고 상품으로 만들기도 하셨죠. 저도 앞으로 잡초라 여겨지는 우리 주변의 식물까지도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거든요. 국립수목원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이나 희귀종 식물 등 국가적으로 특수한 의미를 지니는 식물 위주로 기록을 남기는 게 우선적인 임무였는데, 개인적으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주변 식물에도 관심을 주고 싶어요. 미선나무나 히어리 같은 한국 자생 식물이 선인장보다도 존재감이 약한 상황이잖아요. 최근 <서울신문>에 기고한 칼럼에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튤립을 소개했어요.

오산원료식물원을 찾을 때마다 한참 머물다 가는 이소영 작가


오산 원료식물원에 핀 무궁화꽃

‘산자고’라는 이름의 한국에서 유일 튤립 속 자생 식물이에요. 튤립 하면 빨갛고 노란 네덜란드산 꽃만 떠올린다면, 우리가 튤립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 없겠죠.
그리고 언젠가는 무궁화에 대해서도 말할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사실 무궁화는 한국 자생 식물은 아니에요. 중국에서 도입된 식물인데, 꽃이 3개월 정도로 오래 피어 있는 모습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끈기와 닮았다는 개념적인 이유로 한국의 국화國花가 되었죠. 어떤 식물학자는 무궁화가 한국 자생 식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화를 바꾸자는 주장을 하고, 몇몇 사람들은 무궁화가 예쁘지 않다며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라에서 무궁화를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 다양한 품종을 육성해서 현재 200여 품종의 무궁화가 탄생했지만, 그마저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고요. 앞으로 다양한 무궁화의 모습을 모두 담은 식물 세밀화 작업으로 인간의 욕심으로 괜한 미움을 받는 무궁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오산 원료식물원에 핀 무궁화꽃




그리고 이번 <선택의 정원> 프로젝트에서는 <선택의 정원> 프로젝트의 플랜트 도슨트로 참여했죠. 사람들에게 들려줄 공간 소개 멘트를 녹음할 때 어떠셨는지 소감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제 말에 따라 사람들이 오산원료식물원을 경험하실 거로 생각하니 부담이 앞섰어요. 제가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사람들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할까 봐요. 지금은 꽃이 피어 있지만 조금 있으면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거고, 그 열매에는 이름 모를 곤충이 날아오기도 할 테죠. 시간이 더 흐르면 열매가 익어 쭈글쭈글해지면서 약간 까매지고 땅에 떨어질 거예요. 그렇게 자연이 보여주는 수많은 풍경 중 어떤 장면을 마주하게 될지는 앞으로 방문할 사람 몫으로 남겨지는 것이니, 저와 함께하는 산책은 여기서 보낼 시간의 ‘머리말’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오산 식물원 라일락 향을 맡고 있는 이소영 작가

오산 식물원 라일락 향을 맡고 있는 이소영 작가




작가님과 함께 한 오산원료식물원 첫 산책을 계기로, 일상에서도 주변 식물들과 교감하며 살아갈 수 있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작가님만의 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식물과 교감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이소영 작가는
일단 식물과 같은 높이에서 관찰해 보라고 한다.

제가 SNS에 올리는 사진을 보며 예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이 많은데, 실제로 여러분이 식물을 만나면 예쁘다는 관점보다는 교감을 시도해보면 좋겠어요.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가장 첫 번째 단계로는 식물과 같은 높이에서 관찰하면 돼요. 예를 들어 땅에 피어난 제비꽃을 사진 찍을 때 그냥 서서 위에서 땅을 보며 촬영하는 게 무릎을 꿇고 앉거나 몸을 낮춘 상태에서 보는 거죠. 최소한의 성의에서 식물에 대한 이해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식물에 대해 이해하는 만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고요.

식물과 교감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이소영 작가는
일단 식물과 같은 높이에서 관찰해 보라고 한다.




이 일을 하며 혹은 식물의 영향으로 자기 모습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나요?


사실 저는 성격이 급한 사람이에요. 식물과 가까이 지내는 삶을 오래 이어가다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랑 대화할 때처럼 인생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 거 같아요. 심지어 식물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살아온 존재이니까요. 그들의 삶을 관찰하는 동안 많이 깨닫고 변화할 수밖에요. 지난번에 국립수목원에 갔을 때는 왕벚나무에 꽃봉오리가 열려 있는 걸 봤는데 다시 가보니 며칠 사이에 꽃봉오리가 만개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무얼 했는지 돌아보게 됐어요. 게다가 식물은 그 삶을 1년 주기로 계속 반복해요. 누가 봐주니까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꾸준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죠. 우리가 SNS 등의 영향으로 타인에게 남들에게 비칠 자기 모습에 너무 치중해왔던 게 아닌가, 현대인의 모습과 상반되는 식물의 선택을 보며 더욱 존경을 표하게 되기도 하고요.

4월에 활짝 핀 수선화




작가님이 생각하는 식물의 힘은 무엇인가요? <선택의 정원> 프로젝트를 방문할 젊은 세대가 식물의 어떤 면모를 마음 속에 새긴다면 장원이나 작가님처럼 여러 가지 선택의 길에서 방황하지 않고 대담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씨앗에서 싹이 돋고 뿌리가 나기 위해서는 어떤 자극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식물 키울 때도 물을 오래 주지 않다가 갑자기 물을 주었을 때 그 자극의 영향으로 꽃이 피어나기도 하죠. 이처럼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발판임을 믿고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겨울 지나 봄에 꽃이 피어나듯 자연스러운 흐름의 파도에 몸을 맡기면, 지금의 어려움도 다음을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거예요.

오산원료식물원 입구에 핀 사과나무꽃

그리고 겨울에 갑자기 기온이 오르면 초봄에 꽃을 피워야 할 식물의 가지에 갑자기 꽃 하나가 불쑥 머리를 들 때가 있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 수 있지만, 식물의 긴 삶에서 보면 그게 번식에 큰 해가 되는 일은 아니에요. 그냥 실수했을 뿐이죠! 그렇게 매년 똑같은 삶을 사는 식물들도 실수하는데, 우리도 일이 잘못될 것을 미리 걱정하며 주저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자신을 믿고 도전해보면 좋겠어요. 크게 보면 인간과 식물 모두 하나의 생물종이고, 그 말은 우리에게도 식물의 강인한 적응력과 본능이 내재해 있다는 뜻이거든요.

오산원료식물원 입구에 핀 사과나무꽃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씨앗을 품고 태어납니다. 씨앗에서 나무가 되는 과정을 인생에 비유하면, 싹이 나는 시기는 청년기에 해당하겠죠. 지금 만일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막막하고 내면의 고민이 끊이지 않아 힘들다면, 그건 당신의 씨앗이 싹이 틀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선택의 정원>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이소영 작가는 식물의 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미 그의 씨앗은 새싹의 단계를 지나 몸통이 단단한 나무로 자라난 듯 합니다.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믿은 덕분이겠죠. 그 모습은 장원 서성환 선대회장과도 닮아 있습니다.



가느다란 박태기나무 가지에도 분홍 꽃이 피어 있다.



“이 (茶)사업만은 누군가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꼭 한국을 대표하는 차로 자리를 굳힐 생각입니다.”
- 장원 서성환 선대회장, 1984년 4월 경제전문지 《월간 직장인》 인터뷰 중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서 나아가세요.”

-이소영

가느다란 박태기나무 가지에도 분홍 꽃이 피어 있다.




두 사람의 대담한 모습을 기억하고 식물로부터 생명력 넘치는 영감을 전해 받으며,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보세요.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싹이 트기 직전의 가장 힘들고 불안한 법. 하지만 스스로를 믿으며 지금 시기를 잘 지내는 만큼 우리는 건강한 싹을 틔우고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날 것입니다.





사진 및 영상 김시진 포토그래퍼, 태슬집 제공
영상 속 세밀화 이소영 작가 개인 작품
에디터 로우프레스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전체 인터뷰, 영상, 원고에 대한 저작권은 뉴스스퀘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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