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대 고깃집, 용산 ‘남영돈’의 정재범 대표를 만나다 - AMORE STORIES
#한강대로 100
2023.04.13
116 LIKE
4,599 VIEW
  • 메일 공유
  • https://stories.amorepacific.com/%ec%84%9c%ec%9a%b8-3%eb%8c%80-%ea%b3%a0%ea%b9%83%ec%a7%91-%ec%9a%a9%ec%82%b0-%eb%82%a8%ec%98%81%eb%8f%88%ec%9d%98-%ec%a0%95%ec%9e%ac%eb%b2%94

서울 3대 고깃집, 용산 '남영돈'의 정재범 대표를 만나다

‘서울 3대 고깃집’ 하면, 어김없이 거론되는 곳이 있다. 바로, 용산의 ‘남영돈’. 반짝하는 신상 맛집인가 했더니, 아버지 대부터 30년째 그 자리에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1억 숯불갈비’에서 ‘예쁜 돼지’, 그리고 지금의 ’남영돈’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정재범 대표에게 들어봤다.




▲ 용산 ‘남영돈’에서 정재범 대표 ⓒgoldenimageshouse



#1 아버지가 남긴 ‘위대한 유산’


요식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아버지가 남포면옥 총 주방장 출신이셨어요. 나중에는 ‘1억 숯불갈비’라는 이름의 고깃집을 차리셨죠. 지금의 ‘남영돈’이 있는 자리에요. 어릴 때 부모님이 힘들게 음식점 운영하시는 걸 보며 자라서, 요식업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도 반대하셨고요. 한 번은 아버지가 저에게 2주 정도 냉면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적이 있는데, 하라고 가르쳐주신 게 아니라 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신 거였어요. 얼마나 힘든지 직접 해보면 아니까요. 배워보니 더더욱 요식업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대학 진학도 요식업과는 전혀 관련 없는 학과로 했죠.

그러던 중 2001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 혼자 식당을 맡게 됐어요. 아버지가 주도적으로 운영하시던 식당을 어머니 혼자 하시려니 굉장히 힘들어하셨어요. 그때 저는 토목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사업이 안 좋아진 시기였어요. 어머니가 제게 식당을 맡아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셨죠. 식당 매출을 안정시키고 나서 다시 토목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처음 요식업에 입문하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하던 ‘1억 숯불갈비’를 그대로 운영한 건가요?


아뇨. ‘1억 숯불갈비’가 있던 자리에 ‘예쁜 돼지’라는 고깃집을 새로 개업했어요. 체인점이었는데 다른 지점에 비해 매출이 높았어요. 본사에서 고기를 받지 않고 따로 좋은 고기를 받아서 썼거든요. 어느 정도 매출이 안정되고 나서는 어머니께 운영을 맡기고 다시 토목 사업을 하러 나왔어요. 그런데 제가 식당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서서히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2년 정도 지났을 때는 매출이 거의 바닥이 돼서, 제가 하던 일은 접고 식당 일에 전념하기로 했어요.


▲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운영하던 ‘예쁜 돼지’





어릴 때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것이, 도움이 되셨나요?


아버지께는 식당 영업보다 더 값진 것을 배웠어요. 아버지는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버지 동료분들이 하는 음식점에 저를 데리고 다니셨어요. 모두 실력있고 유명한 분들이었는데, 덕분에 어린 나이에 고급 음식들을 접할 수 있었죠. 보통 음식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집에서 음식을 잘 안 하시는데, 아버지는 집에서도 음식을 많이 하셨어요. 평양냉면을 집에서 만드실 정도였죠. 알게 모르게 좋은 음식들을 경험하면서 미각의 수준이 높아진 것 같아요. 그걸 언제 느꼈냐면, 한때 맛집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맛집을 찾아가면 저는 별로인데 다들 괜찮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나름대로 맛의 기준이 높은 사람들이었는데도 말이죠. 그때 생각했어요. ‘내 입에 맛있는 정도면 손님들에게도 맛있겠구나.’ 그래서 ‘남영돈’에서 내는 음식들은 모두 제 입에 맛있는 음식들이에요.




#2 '남영돈', 고요한 용산 상권에 흥을 불어넣다


2018년,‘예쁜 돼지’가 ‘남영돈’으로 탈바꿈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예쁜 돼지’는 체인점이었기에 여러 부분에서 한계를 느꼈어요. 조금 더 고유한 색깔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상호부터 메뉴, 인테리어를 모두 바꾸고 제대로 시작해 보기로 했어요. 상호인 '남영돈'은 ‘입에 가득 찬 맛있는 돼지고기’라는 뜻이에요.

개업하고 바로 줄 서는 집이 된 건 아니었어요. 와보신 분들은 맛있다고 계속 찾아주시는데, 괄목할만 한 매출 성장을 이뤄내진 못하고 있었어요. 상권이 발달한 곳이 아니라 신규 고객 유입이 힘들었거든요. 당시 아모레퍼시픽 직원분들이 자주 오셨는데, 단체로 자주 찾아주시는 게 굉장히 힘이 되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어떻게 가게를 더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던 시기에, 가수 최자 씨가 찾아왔어요.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후배에게 추천을 받아서 찾아왔다고 해요. 최자 씨가 인스타그램에 리뷰를 올리고 그다음 날부터 매장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입소문이 나면서 그 후로는 매출이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어요. 이 부근의 상권도 많이 살아났고요. 저에겐 최자 씨가 귀인이나 다름없죠.


▲ 같은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한 ‘남영돈’





'남영돈'의 대표 메뉴는 가브리살과 항정살입니다.
대중의 픽은 목살, 삼겹살이 아닌가요?


맞아요. 손님들이 지방이 많은 고기를 선호하지 않던 때라, 식당에서도 보통 가브리살의 지방은 잘라냈죠. 그런데 저는 고기 맛은 지방이 좌우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지방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가브리살의 지방을 자르지 않고 함께 냈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 제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건 다른 사람들도 맛있어 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처음엔 지방이 너무 많다는 컴플레인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갔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남영돈'의 시그니처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 '남영돈'의 시그니처, 항정살과 가브리살





'남영돈'의 고기가 유독 맛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는 좋은 고기를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전국의 도축장을 찾아다녔죠. 계절에 따라 고기 수급도 다른 지역에서 해요. 적절한 지방량이 고기 맛을 죄우하는데, 계절에 따라 돼지고기가 지방 분포도가 달라지거든요. 추울 때는 돼지의 지방량이 많아지죠. 적절한 지방량을 위해 겨울에는 따뜻한 남부 지방에서, 여름에는 북부 지방에서 고기를 수급하는 식이에요.




숯도 선별해서 사용하신다고 들었어요.


생각보다 숯이 고기 맛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예요. 제가 토목 일을 할 때 제일 처음에 한 일이 벌목한 나무를 옮기는 일이었어요. 그 나무들이 대부분 참숯가마에 넘어갔는데, 같이 일하는 분들이 농담처럼 ‘여기에 고기 구워 먹으면 진짜 맛있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음식점을 하면서 숯을 쓰다 보니 그 기억이 나더라고요. 여러 숯에 고기를 구워보며 고기 맛을 테스트해 봤어요. 비장탄에도 구워보고 참숯에도 구워보면서요. 결과적으로는 참숯에 구운 고기가 제일 맛있었어요. 좋은 참숯을 구하기 위해 강원도와 제천의 숯 공장들을 엄청 찾아다녔죠.


▲ 고기 맛을 좌우하는 숯





#3 ‘나만 아는 맛집’에서 ‘서울 3대 고깃집’이 되기까지


'남영돈'은 미식가들 사이에서 ‘서울 3대 고깃집’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희 가게에서 제가 가장 자부심이 있는 부분은, 테이블에 올라가는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든다는 거예요. 파김치부터 백김치, 젓갈, 김치찌개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어요.

또, 음식점을 하기 전엔 몰랐는데 제가 굉장히 까다로운 편이더라고요. 항정살이나 가브리살은 지방이 많아서 조금만 오래 보관해도 누린내가 나는데, 저는 조금만 냄새가 나도 고기를 버렸어요. 사실 ‘이 정도는 괜찮지’ 하고 넘길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고기를 내놓는다는 것이 스스로 너무 창피했어요. 김치찌개 같은 경우도, 5~6시간 정도를 매일 끓이는데, 잘못 끓이면 눌어붙으며 타는 경우가 있어요. 양이 어마어마한데도 다 버리죠. 음식이 아깝긴 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조금씩 타협하기 시작하면 오래 장사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창피하지 않게 장사하자’라는 것이 저의 철학입니다.


▲ 손수 만드는 남영돈의 밑반찬





사이드 메뉴의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도 궁금합니다. 
고기만큼이나 유명한 물쫄면은 어떻게 개발하셨나요?


보통 고깃집 메뉴에는 꼭 냉면이 있는데요, 보통 면과 양념 모두 기성품을 사용하죠. 그런데 저는 아버지가 냉면을 만드셨던 분이라 냉면을 사서 쓴다는 건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어요. 차라리 냉면을 아예 메뉴에 넣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냉면 대신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생각한 메뉴가 쫄면이에요. 쫄면이 고기와 의외로 합이 좋거든요. 냉면에도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있으니, 물쫄면을 개발한 거죠. 쫄면도 얇은 면, 두꺼운 면 등 면의 종류가 다양한데요, 저희는 직화구이 집이라 다른 곳보다 비교적 고기 향이 강해요. 강한 향을 중화시킬 수 있는 질감 있는, 두꺼운 면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요.


▲ '남영돈’의 인기 곁들임 메뉴, 물쫄면





'남영돈'은 고기 맛있게 굽기로도 유명합니다. 혹시 고기 잘 굽는 팁 있을까요?


가장 쉬운 팁은, 손이 쉬지 않으면 됩니다. 불이 강한 직화구이의 경우에는 40~50번씩 뒤집어 줘야 해요. 돼지고기를 소고기처럼 시어링(고기 표면을 태우듯 굽는 것)하는 분들이 많은데, 돼지고기는 그렇게 구우면 표면이 굳으면서 부드러움이 훨씬 덜해져요. 육즙을 안에 가둔다는 생각으로 자주 뒤집어줘야 해요.




#4 언젠가는, 별을 향해서


‘남영돈’ 외에도 다른 식당도 운영하신다고 알고 있는데요,
계속 사업을 확장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서너 개 정도의 가게를 더 열었어요. 오준탁 셰프와 함께 ’남영탉’이라는 장작구이 통닭집도 열었고, 철마다 바뀌는 메뉴를 내는 원 테이블 다이닝도 운영하고 있죠. 앞으로도 몇 개를 더 준비하고 있고요. 이렇게 계속 식당을 여는 이유는, ‘남영돈’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어서예요. 젊은 직원들과 일을 하면서 그 친구들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게 됐거든요. 새로 연 식당으로 지금 일하는 직원들을 독립시키고, ‘남영돈’에는 새로운 직원들이 들어와서 일을 배울 수 있는 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고 있어요.


▲ 정재범 대표와 오준탁 셰프가 운영하는 ‘남영탉’ / ‘남영돈’의 직원들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린다면 언제인가요?


어머니와 ‘예쁜 돼지’를 운영할 때, 떨어진 매출을 복구하던 시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지금은 상권이 많이 살아났지만, 원래 이 동네는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었거든요. 주말에는 매출 0원인 날도 있었어요. 그렇게 4~5년 정도는 계속 힘들었지만 버텼어요. 장사가 안 되는데도 ‘내 걸 하면 잘 될 것 같다’라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그때 음식점을 많이 돌아다니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고 당시에 익힌 것들이 훗날 ‘남영돈’에 많이 반영되었죠.




그렇다면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는다면?


요즘은 가족의 행복이 저의 행복인 것 같아요.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가도 아내가 기분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 없어지거든요. 제가 워낙 까다롭다보니, 초기에 주방장들이 자주 바뀌었어요. 그때 고민하다가 아내에게 주방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죠. 아내는 제 뜻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거든요. 같이 일을 하며 신뢰가 생겨서인지 신혼 때보다도 사이가 좋아졌어요. 지금도 가게가 잘 된 이유의 8할은 아내의 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남영돈’의 주방을 맡고 있는 정재범 대표의 아내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남영돈’을 처음 만들 때, 매출도 매출이지만 더 큰 포부가 있었어요. 장사는 안 되는데 포부가 컸어요.(웃음) ‘언젠가는 미쉐린 가이드 별 하나는 달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늘 했죠. 그런 목표가 있어서 더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0년 후엔 가게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아내와 근교로 이사를 가려고 해요. 집에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방을 식당처럼 만들어놓고 지인들을 초대하고 싶어요. 매주 제철 음식을 내고, 같이 밥 같이 먹으며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요.


▲용산 ‘남영돈’에서 정재범 대표 ⓒgoldenimageshouse





아버지로부터 이어온 음식점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정재범 대표. 고집스럽게 지켜온 음식에 대한 신념으로 오래도록 용산의 터줏대감으로 남길 기대해본다.




인터뷰 신혜원 / 사진 금상관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전체 인터뷰, 원고에 대한 저작권은 뉴스스퀘어에 있습니다.


TOP

Follow us:

FB TW 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