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륙 와인과 신대륙 와인 - AMORE STORIES
#임직원칼럼
202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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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륙 와인과 신대륙 와인

Columnist | 아모레퍼시픽그룹 임직원들이 직접 작성한 칼럼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쉽게 접하는 와인 이야기
제2화. 구대륙 와인과 신대륙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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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 김민우 님
Innisfree GTM Team
와인의 고향은 동유럽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동유럽에 해당하는 조지아와 아르메니아가 와인을 처음 생산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거의 9천 년 전의 일이죠. 이곳에서 시작된 와인이 이후 아랍 지역으로 넘어갔고, 5천 년 전에는 이집트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한참 지난 후 이탈리아로 전파된 와인은 로마군의 진격과 함께 더욱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중 오염된 식수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해 물 대신 와인을 마신 데다, 하루에 1리터 이상씩 보급이 되었으니, 장기전이 되면 현지에서 포도나무를 심어 조달하기까지 했습니다. 와인 업계에서는 구대륙과 신대륙을 구분해 와인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오래된 생산지인 조지아가 구대륙인 걸까요?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출처 : 소믈리에타임즈 < 조지아 국립 박물관 내 신석기시대 토기 – 와인 양조에 쓰였다고 한다. >



구대륙과 신대륙 와인, 맛있으면 원조라니까요?


오늘날 와인 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장도 함께 이루고 있는데요. 이러한 발전은 구대륙과 신대륙이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와인 산업을 성장시킨 결과입니다. 구대륙 와인은 유럽의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말합니다. 반대로 신대륙 와인은 그 외의 나라들인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등의 와인을 통틀어서 부르는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습니다만 와인을 가장 먼저 생산한 나라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유명한 구대륙 국가들이 아닙니다. 신석기 시대의 와인 숙성용 토기가 발견된 조지아의 경우 8,000년 전부터 와인을 생산한 증거가 나온 셈이니 유럽의 와인을 칭하는 ‘구대륙’ 이라는 이름은 적어도 시간의 측면에서는 틀린 말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오랜 기간 동안 와인을 세상에 전파하고 알린 유럽의 기여도를 생각해서 ‘원조’, ‘구대륙’이라는 호칭으로 자존심을 세워주도록 합시다. 유럽의 지배를 받다가 근대에 해방되어 와인을 생산하는 국가들도 많으니 말이죠.



간판부터 다른 두 지역의 와인


와인이 구대륙 와인과 신대륙 와인으로 구분됨을 알았으니 이제 그 차이점을 알아볼 시간입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불친절한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는 노포와 새로 생겨난 신상 힙플에 비교해서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처 : wine-searcher.com < 구대륙/신대륙 와인레이블 >


업체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와인레이블에서부터 차이는 바로 드러납니다. 좌측의 유명 프랑스 와인인 샤또 마고는 ①생산자 ②생산연도 ③와인등급(품질)을 차례로 레이블에 표기해 두었습니다. 반면 우측의 미국 와인의 경우에는 ①생산자 ②생산연도 ③포도품종 ④생산지역으로 품종과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구대륙은 메뉴판 없이 사장님이 정한 메뉴를 턱턱 내놓는 노포의 느낌, 신대륙은 어떤 재료를 써서 만들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세련된 신상 레스토랑의 느낌이랄까요? 프랑스를 비롯한 구대륙 와인들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지역별로 법을 제정해 포도 품종을 정해두고 있습니다. 지역 표기가 정확히 되어 있으면 어느 정도 품종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적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죠. 레이블만 보고도 어떤 포도인지 줄줄 읊는 전문가들은 저에게도 동경의 대상입니다.

반면 신대륙은 비교적 자유롭게 와인을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도 다양한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며,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구대륙에서 와인에 대해 배워온 생산자들이 새로운 지역에 어울릴 만한 포도를 재배하여 생산하므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생산 지역과 포도 품종을 표기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wine enthusiast < 프랑스 와인 빈티지 차트 >


대륙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은 생산 연도입니다. 하지만 각 지역에서 생산 연도가 갖는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구대륙 국가는 법으로 엄격하게 생산 과정을 규제하여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합니다. 비가 많이 올 때 비닐을 쳐서 당도를 확보하거나, 가뭄이 지속될 때 물을 뿌려 포도의 품질을 관리하는 등의 조절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생산 연도별 품질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위의 빈티지 차트입니다. 작황이 좋은 해와 안 좋은 해를 구분해 작성한 일종의 점수표입니다. 신대륙 와인의 경우에는 그런 규제 없이 자유롭게 개입하여 작황이 좋지 못한 해에도 양질의 와인을 만들어 냅니다. 상대적으로 빈티지에 따른 편차가 적은 편이죠. 그러나 구대륙 와인이라고 해서 빈티지 차트를 맹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재배 기술이 나날이 발달하여 작황에 따른 편차가 점점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함없이 좋은 와인을 만날 수 있는 기술 발전이 참 감사하게 느껴지네요. 



신대륙과 구대륙 와인, 미묘한 맛의 차이


▲출처: Wine folly < 와인의 아로마(아래로 갈수록 더운 기후) >


구대륙의 와인은 지역적인 특징, 음식과의 조화, 숙성의 잠재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주어진 땅과 기후 안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장인정신으로 만들어 낸 와인들이기에 지역별로 굉장히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법적으로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지역별 원산지 통제 명칭 시스템(AOC)이 전통과 개성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맛을 기준으로 차이점을 설명하자면 일반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낮고 신맛이 강하며 ‘과일 향’보다 ‘미네랄 맛’이 더 느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변화무쌍하고 서늘한 유럽의 기후가 포도 작황에 영향을 미친 결과입니다.
 
신대륙 와인의 발전은 환경에 대한 적응과 통제, 그리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유럽의 풍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시작된 신대륙의 와인 양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귀한 유럽의 포도는 환경이 다른 신대륙에서 생각처럼 잘 자라지 않았고, 양조업자들은 양질의 포도를 얻기 위한 ‘환경의 통제자’ 역할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관개를 통해 물을 공급하고, 효모 품종을 골라 배양하는 등 과학적이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신대륙을 대표하는 칠레, 캘리포니아, 호주 등의 기후를 떠올려 보면 이곳의 와인 맛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높은 온도와 일조량은 당도를 높이고, 알코올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레 잔당감과 잘 익은 과일 잼의 풍미가 생깁니다. 이러한 신대륙 와인의 매력은 특히 초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신대륙 특유의 달콤하고 강한 오크통 향기도 선호도에 꽤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대륙과 구대륙의 정면승부, 파리의 심판


▲출처: Google < 파리의 심판 >


‘그래서 어떤 대륙의 와인이 더 훌륭한가?’ 오래되었지만 끝나지 않는 논쟁입니다. 실제로 각 대륙이 서로의 자존심을 걸고 정면승부를 펼친 적도 있는데요. 그 이름도 유명한 ‘파리의 심판’이 그것입니다. 1976년 파리 인터컨티넨탈 호텔에 평론가 11인이 모여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심사단 11인 중 9인이 프랑스인으로 선발되었으며, 나머지 두 명은 각각 영국인과 미국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언뜻 불공정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지만, 애초에 와인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라 편파 판정 걱정은 없었습니다. 더불어 당시 프랑스인들의 와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해서, 미국 같은 시골에서 만드는 와인이 프랑스의 위대한 와인의 적수가 될 리 만무하다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더 편파 판정을 할 이유가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모두 미국이 1위를 차지한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화이트 와인 심사 이후 결과를 발표하고 나서 레드 와인 심사가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화이트 와인 점수 공개 후, 자존심 강한 프랑스의 와인 전문가들은 당연하게도 ‘이번에는 절대 미국 와인이 1등을 해선 안 된다’ 라는 마음으로 대동단결 했지만 결국 레드와인에서도 미국이 또 다시 1등을 차지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 파리의 심판 결과 – 좌 : 화이트와인 / 우 : 레드와인 >


와인 업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어린이 축구단이 국가대표를 이긴 정도의 충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박수로 미국 와인의 발전을 축하해 주는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었지만, 파격적인 결과에 불복하는 심사위원도 나왔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매국노 취급을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애써 이 사건을 축소해서 보도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대서특필했으며, 특히나 프랑스와 ‘원조’ 싸움에 열을 올리던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장 기뻐했다고 합니다.

30년 후인 2006년에는 “프랑스 와인은 장기 숙성형 와인이므로, 지금 비교해 보면 프랑스가 이길 것”이라는 주장에 따라 같은 와인을 가져와 대결을 펼쳤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1위에서 5위까지 모두 미국 와인이 차지하며 그 우수성을 다시금 전 세계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대륙 최고의 만남, 오퍼스 원



파리의 심판이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고 하더라도 구대륙 와인의 퀄리티가 낮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유럽에는 없는 천혜의 환경, 점차 발전하는 와인 기술, 그리고 자본이 있다면 어느 나라에서든 훌륭한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각 대륙을 대표하는 자존심 강한 생산자들이 언제나 대립각을 세운 것만은 아닙니다. 구대륙과 신대륙의 정상이 합작해 양조한 최고급 와인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그 이름도 유명한 ‘오퍼스 원(opus one)’입니다.


▲출처: Google < OPUS ONE 2018 >


오퍼스 원은 ‘작품번호 1번’을 뜻하는 음악 용어로, “한 병의 와인은 교향곡, 한 잔의 와인은 멜로디와 같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979년 프랑스 보르도의 최고급 와인이자 ‘5대 샤또’로 불리는 샤또 무똥 로칠드가와 미국 와인의 아버지 로버트 몬다비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탄생한 보르도 스타일의 최고급 와인입니다. 라벨에 있는 두사람의 얼굴과 싸인이 바로 로버트 몬다비와 필립 드 로칠드 남작의 그것입니다. 샤또 무똥 로칠드의 레드 와인이 파리의 심판에서 근소한 차이로 2등을 차지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심판의 결과에 가장 분노했을 구대륙의 거장이 미국에 쿨하게 손을 내민 점이 굉장히 멋지다는 생각도 듭니다.

두 대륙 최고의 양조 기술이 만났기 때문에 당연히 나파밸리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대륙별 가장 유명한 브랜드의 콜라보이기도 했지만 ‘구대륙의 전통적인 와인 양조법’과 ‘미국의 현대적인 양조 기술’이 만났다는 상징성도 이목을 끌었습니다. 1979년산의 경우 경매 가격이 케이스당 2만 4,000달러에 달해 당시 캘리포니아 와인 중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조금 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따로 선별해 만드는 세컨드 와인인 오버추어(OVERTURE)마저도 수십 만원을 호가합니다. 특히 대륙간 정상의 만남이라는 매력적인 스토리 덕에 합병이나 승진을 기념하는 선물로 이름이 난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겠네요.



와인에 ‘반드시’란 없다.



이번 칼럼에서는 신대륙과 구대륙 와인을 비교해 봤습니다. 제가 설명해 드린 내용 이외에도 두 대륙의 와인 사이에는 수많은 차이가 있지만, 굳이 너무 고민해서 선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와인에 ‘반드시’라는 말은 없습니다. 뉴질랜드는 신대륙에 속하지만 서늘한 기온을 바탕으로 상큼하고 산도가 높은 와인을 훌륭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칠레의 특정 지역은 신대륙의 보르도라고 불리며 훌륭한 구대륙 스타일 와인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전통을 지키는 움직임과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움직임, 그리고 너무나도 다양한 양조 방식과 스타일이 모두 와인 한 병에 담겨 있으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와인을 시도할 용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은 같은 품종으로 구대륙 와인과 신대륙 와인을 한 병씩 비교하며 마셔 보는 건 어떨까요?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이상으로 두 번째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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