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탈리스트] 현실 속 평범한 인간이 만드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 AMORE STORIES
#임직원칼럼
20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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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리스트] 현실 속 평범한 인간이 만드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2. 영화 속 다양한 아름다움의 이야기 시리즈

 

글 영희 (가명)

Editor’s note


여러분은 극장을 좋아하시나요? 요즘은 OTT 플랫폼이 대중화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좋은 영화는 극장에서 관람하는 편입니다. 영화는 저에게 있어 현장의 적막과 탄성을 함께 느끼는, 복합적인 공간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런 영화—극장에서 볼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작품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저는 세계 주요 영화제의 수상작들을 중심으로, 제 시선을 담은 리뷰를 통해 영화가 지닌 깊이와 감동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 여정을 함께해주시길 바라며,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영화의 전개와 구성상 핵심 장면들을 다루고 있으므로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께는 정독을 권하지 않으며, 영화와 관련된 해석은 개인의 의견임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출처: 브루탈리스트 포스터 발췌 (수입사 - UPI 코리아, 배급사 - 유니버셜 픽쳐스 코리아)

 

 

#INTRO


이번에 소개해 드릴 영화는 2025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촬영상, 그리고 음악상을 수상한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입니다. 수상 내역을 미리 알고 본 탓인지 평소보다도 음악에 더욱 집중하게 되더군요.
브루탈리스트는 AI 기술을 영화에 사용한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이민자 역할을 맡으면서 그의 헝가리어 발음을 자연스럽게 보정하는 데 AI 기술이 사용되었음에도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이로 인해 연기상 수상 자격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던 것이죠. AI 도구 사용은 시대적 흐름이기에 받아들여야 할까요? 혹은 배우 고유의 표현력을 침해하는 요소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영화 소개와 전반 1부 구성

 

출처: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수입사 – UPI 코리아, 배급사 – 유니버셜 픽쳐스 코리아)

 

 

브루탈리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주인공 ‘라즐로 토스’가 파시즘을 피해 헝가리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하며 겪는 고난과 재기를 그립니다. 라즐로는 본국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건축가로서의 커리어를 인정받던 인물이었지만, 미국에선 그저 영어 발음이 어눌한 이주 노동자일 뿐입니다. 그는 먼저 미국에 정착한 사촌의 가구점에서 일자리를 얻지만, 그 생활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촌은 이름과 가구점 간판까지 미국식으로 바꾸며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고 미국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방인인 라즐로를 탐탁지 않아 하던 사촌의 아내가 이간질을 하면서 그는 사촌과 멀어지고 일자리마저 잃게 됩니다.

 

이후 라즐로는 노숙인들을 위한 공공숙소에서 지내며 공사장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는 유럽의 국경 어딘가에서 미국으로 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아내 에르제벳, 사촌 조카 조피아와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들을 데려올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공사장의 일용직 노동자인 그가 머나먼 가족과 재회하는 일은 요원해 보입니다.

 

 

출처: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수입사 – UPI 코리아, 배급사 – 유니버셜 픽쳐스 코리아)

 

 

그러던 중 그는 과거 인연이 있던 부유한 자본가 ‘해리슨 리 밴뷰런’와 재회하게 됩니다. 과거 라즐로는 사촌과 함께 있을 때 해리슨의 서재를 리모델링해 주었지만, 대가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수모를 겪습니다. 그런데 그 서재가 현대 건축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며 인기를 끌게 되죠. 이를 계기로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해리슨은 라즐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는 건물의 설계자로 라즐로를 직접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해리슨의 도움으로 라즐로는 가족과 재회하고, 건축가로서의 재능 또한 꽃피울 수 있으리란 기대가 한껏 고조된 채 영화의 1부는 막을 내립니다.

 

 

2 극적인 전환을 만든 인터미션과 후반 2부 구성

 

출처: 브루탈리스트 인터미션
(수입사 – UPI 코리아, 배급사 – 유니버셜 픽쳐스 코리아)

 

 

1부가 끝나자마자 15분간의 인터미션이 주어집니다. 라즐로와 에르제벳 부부의 결혼식 사진을 배경으로 카운트다운 시계가 등장하고, 극장 안의 불이 환하게 켜지며 관객은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을 갖습니다. 저는 영화에서 인터미션을 경험한 것이 처음이었는데, OTT가 아닌 극장에서 이 시간을 지키며 본 것이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느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희망차게 끝났던 1부와는 대조적으로 2부는 철저하게 그 기대를 배신하기 때문에 인터미션은 이 극적 대비를 더 강하게 부각시키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출처: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수입사 – UPI 코리아, 배급사 – 유니버셜 픽쳐스 코리아)

 

 

아내 에르제벳과 조피아가 마침내 미국으로 오고 라즐로는 가족과 재회합니다. 해리슨 덕분에 커리어도 재개되는 듯 보이죠. 하지만 라즐로는 점차 회사 내부의 정치와 착취에 시달리며 몰락해 갑니다. 기차 사고로 공사가 중단되거나 해리슨의 폭력성이 고발되면서 영화는 점점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야기의 전개뿐 아니라 주인공 역시 관객의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합니다.

우리는 대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재능이 뛰어나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주인공이라면 인격 또한 훌륭할 것이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라즐로는 매춘, 소매치기, 마약 등 부끄러운 행동을 반복하며, 결코 성인이 아닌 나약하고 실수하는, 평범한 인간임을 드러냅니다.

 

 

3 에필로그와 스크린에 새겨진 예술의 숭고함

 

출처: 브루탈리스트 스틸컷
(수입사 – UPI 코리아, 배급사 – 유니버셜 픽쳐스 코리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즐로는 자신의 일, 즉 ‘벤 뷰런 센터’의 건축에 집착합니다. 상처받은 아내와 조카는 결국 미국을 떠나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라즐로는 미국에 남아 일에 몰두합니다.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건물의 일부만 보여주며 궁금증을 자아냈던 그의 작품은 영화의 후반부에서야 완전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영화의 반전은 가장 짧은 에필로그에서 완성됩니다. 어느덧 수십년이 지난 1980년대, 제1회 건축 비엔날레에서 노쇠한 라즐로 대신 그의 작품을 기리는 연설을 하는 이는 다름 아닌 조카 조피아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라즐로가 피땀 흘려 만든 건축물들을 그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합니다. 예컨대, 라즐로가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을 감금하던 감옥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식의 언급이 연설에 포함되는데, 영화 속에서는 전혀 그런 맥락이 드러난 적이 없습니다.

 

라즐로의 진심을 따라온 긴 여정이 어딘가 어긋난 듯한 느낌에 관객이 당혹감을 느끼는 그 순간, 영화는 끝이 납니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바로 이 순간에 영화 ‘브루탈리스트’의 진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예술이란 창작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무수한 해석과 오해 속에 덧칠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도 누군가에게는 그 결과물이 진심으로 와닿을 수 있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215분의 러닝타임 동안 라즐로의 고통과 성실한 몰입을 지켜봤기에 그의 건축물이 더 깊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연설을 듣는 청중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상징적 작품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예술의 진심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출처: 영화 안도 타다오 스틸컷
(수입 - 라라아비스, 배급 공동제공 - 영화사 진진)

 

 

브루탈리즘은 1950-70년대 전후 복구 시기에 주로 발전한 건축 사조로, 거친 콘크리트와 노출된 구조 자체를 건축의 언어로 삼았습니다. 극 중 ‘벤 뷰런 센터’는 이 브루탈리즘 양식을 본떠 창조된 공간이며, 완공된 건물이 지닌 웅장함과 물성은 라즐로의 집념과 예술가로서의 고독을 그대로 투영하여 보여줍니다.

특히 빛과 콘크리트의 대비를 통해 구현된 이 건축은 브루탈리즘의 대표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를 연상시키며, 관객에게 강렬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예술은 때로 왜곡되고 오해받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고함을 남긴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이 건축물을 대형 스크린으로 마주할 때 더욱 깊이 와닿는 듯합니다. 조용한 극장에서 영화 관람을 권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OUTRO


저는 브루탈리스트는 거대한 영웅 서사도, 부조리 고발도 아닌 예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묻는 영화라고 봅니다.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한 예술가의 진심이 어떻게 소외되고, 왜곡되며, 결국 어떻게 남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실은 반복적이고 평범하며 때로는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그런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진심을 다해 만든 것은 모두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민 끝에 작성한 제품명과 마케팅 플랜, 가족을 위해 정성껏 만든 음식, 아이를 사랑으로 길러내는 과정 … 이 모든 것도 진심에서 출발한다면 충분히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브루탈리스트 한줄평: 고단한 일상도, 마음을 다하면 아름다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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