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사랑하자. 수능 끝나고 대학교 갈 때 쌍꺼풀 수술을 많이 하죠. 저도 쌍꺼풀이 없어서 수술하고, 덧니가 있어서 교정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기 싫어서 안 했어요. 화장도 대학교 올라와서 시작했죠. 20살 때는 제 모습을 전혀 사랑하지 못했어요. 그때는 지금보다도 살쪘고 화장도 못 하고 안경 쓰고 다녔으니까요. 나이 먹으니까, 살도 빠지고 화장도 하게 됐죠. 그런데 그냥 그런 건 다 소용이 없었어요. 제가 어떤 화장품을 바르든 어떤 옷을 입든 제 모습을 스스로 사랑해 주는 게 ‘나다운 아름다움’인 것 같아요.
24세 | 정다희
제 이름으로 사는 거.
작년에 회사에서 인턴을 한 번 했었거든요. 대학교 1, 2학년 때는 빨리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회사원이 꿈이었어요. 빨리 저만의 기반을 다져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인턴을 하면서 느꼈던 건 안정적인 삶이어도 제 이름으로는 설 수 없는 자리 같더라고요. 회사는 제가 없어도 돌아가고, 인턴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업무를 맡았던 것도 아니고 부품으로 사는 것 같았어요. 네 달 일하고 그런 말 하기 섣부른 것 같지만요. 매일매일 똑같은 시간에 지하철 타고 출근하고 퇴근하는 삶은 제가 원하는 안정적인 생활이었지만 굉장히 답답하고 발전이 없었어요. 이 자리에 계속 머문 채로 평생을 살게 될까 봐 오히려 무서웠었어요. 제 이름으로 서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생각했죠. 그래서 작년에 회사 인턴을 마치고 한 달 정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여행을 마치고 나서 올해 상반기부터 노무사 공부를 하고 다음 달 발표를 기다리고 있어요.
공부할 때 너무너무 관두고 싶었거든요. 맨날 도망치고 싶어서 운 적도 엄청 많았어요. 내가 왜 공부를 하겠다고 했나 싶었죠. 재수 없는 말일 수도 있지만 공부하면서 '안 된다.', '안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뭘 하든 적어도 80~90점의 답은 찾았던 저인데 고시 공부라는 건 아예 다른 차원의 공부다 보니까 10도 못 찾겠더라고요. 외워도 다음 날 되면 공부한 걸 잊어버렸어요. 시험을 매주 치는데 제가 쓴 답안지를 보면 답안 근처에도 못 가는 게 반복되다 보니까 많이 무너졌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다시 평안한 날들이 찾아오더라고요. 다시 노력을 또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유명한 구절,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해 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