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남긴다 - 아모레퍼시픽 스토리(AMOREPACIFIC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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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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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남긴다

하나의 상품이 팔리기까지 #3 <데이터와 AI 사이에서 사람이 해야 하는 일>

박현진 오설록 e커머스영업팀

 

Editor's Note


숫자로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 하지만 실제로는 매일 결정하고 있는 것들. 이 시리즈는 그 순간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매일 하는 선택들—어떤 상품을 먼저 보여줄지, 어떤 문장으로 말을 걸지, 어떤 흐름으로 고객을 안내할지—에 대해 기획자의 관점으로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우리는 숫자로 세상을 보고 있다

 

<별점, 리뷰 등 우리는 많은 것을 숫자로 보는 세상에 살고 있다.>

 

 

별점 4.8점의 맛집을 찾아갔다가 실망한 적이 있다. 리뷰 수가 300개가 넘었기에 찐맛집이라고 생각했다. 숫자를 조작한 게 아니라면, 실제로 그 집을 좋아한 사람이 300명 넘게 있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나에겐 맛집이 아니었다. 숫자가 말해주지 않은 건, 세상엔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분위기를 좋아했을 수 있고, 누군가는 가격을 좋게 봤을 수 있고, 누군가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만족했을 수 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숫자가 전부를 말해주는 것도 아니다. 숫자에 담긴 진짜 이야기는 보이는 것과 숨은 것 사이. 그 어딘가에 있다.

 

 

보고서가 두꺼워질수록 답에서는 멀어졌다

 

<두꺼운 보고서보다 먼저 필요한 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인턴으로 데이터 분석을 하던 시절, 내게 주어진 첫 과제는 간단했지만 동시에 굉장히 어려웠다. “중고 거래 수를 어떻게 늘릴 수 있을지 분석해 주세요.” 처음엔 이 질문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몰라서 일단 뽑을 줄 아는 데이터부터 뽑기 시작했다. 거래 건수, 카테고리별 분포, 시간대별 패턴, 재거래율, 지역별 차이.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지표라면 다 꺼내 들었다. 보고서는 어느새 수십 페이지가 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보고서가 두꺼워질수록 답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널린 게 수치인데도 ‘문제가 무엇이고 개선책은 무엇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에 대한 답은 흐릿해져만 갔다.

처음에는 SQL(데이터를 다룰 때 쓰는 언어)을 더 잘해야 하는 줄 알았다. 통계를 더 알아야 하는 줄 알았다. 물론 그런 기술도 중요했다. 하지만 막상 데이터를 뽑아놓고 보니, 더 필요한 건 기술 자체라기보다 숫자를 읽는 힘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숫자가 정말 전체를 대표하는지, 누락된 데이터는 없는지, 이 지표가 진짜 문제를 설명하는지. 이런 것들을 짚어내는 힘. 그때부터 내가 꺼내든 건 더 많은 명령문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력과 데이터 문해력이었다.

질문 없이 데이터를 열면 데이터는 그냥 숫자 더미일 뿐이다. 숫자가 많아질수록 더 객관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판단해야 할 것만 늘어난다. 이후로 데이터를 보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묻는 습관이 생겼다. “이 숫자는 진짜 문제를 보여주는 걸까?” “문제라면 고객 여정의 어느 단계에서 시작된 걸까?” 보고서는 얇아졌고, 역설적으로 설득력은 더 생겼다.

 

 

총알 자국이 없는 곳을 봐야하는 이유

 

<보이는 데이터, 그 너머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출처: AI로 제작한 이미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전투를 마치고 기지로 돌아온 비행기들에 남은 총알 자국을 조사했다. 귀환한 비행기들을 살펴보니 날개와 몸통 부분에 총알 자국이 집중돼 있었다. 반면 엔진과 같은 일부 구역에는 상대적으로 총알 자국이 적었다. 눈앞의 결과만 본다면 판단은 간단해 보인다. 총알 자국이 많이 발견된 날개와 본체를 더 튼튼하게 보강해야 한다. 하지만 통계학자 에이브러햄 월드는 정반대 방향을 바라봤다. 총알 자국이 많은 곳이 아니라, 총알 자국이 거의 없는 곳을 보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사 대상이 된 비행기들은 날개며 몸통에 총알을 맞긴 했지만 어찌됐든 기지까지 살아 돌아온 비행기였다. 반대로 엔진처럼 치명적인 부분에 총알을 맞은 비행기는 돌아오지 못했고, 따라서 조사 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이 사례는 생존 사례에만 집중한 나머지 표본에 들어오지 못한 나머지 탈락 사례들을 놓치는 ‘생존자 편향’을 설명할 때 자주 활용된다.

실무에서도 마찬가지다. 구매한 고객의 행동은 비교적 선명하게 남는다. 어떤 상품을 봤는지, 무엇을 장바구니에 담았는지, 어떤 쿠폰을 사용했고 얼마를 결제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상품을 잠깐 보고 아무 행동 없이 떠난 고객,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해 검색을 포기한 고객, 구매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꼈지만 별다른 의견을 남기지 않은 고객의 이유는 데이터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숫자를 볼 때는 표 안의 값뿐만 아니라, 그 표에 들어오지 못한 상황들까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 지금 보고 있는 숫자는 누구의 기록인지, 어떤 고객 경험은 여기에서 빠져 있는지, 애초에 측정되지 않은 행동은 없는지 물어야 한다. 숫자를 읽는다는 것은 보이는 값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하고 추론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성과가 낮아보이는 숫자에도 힌트가 있다

 

<AI 검색 내 브랜드와 직영몰 가시성을 분석할 수 있는 보고서 중 일부.
어떤 질문에 우리 브랜드 사이트가 노출되는지, 어떤 질문에는 노출되지 못하는지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

 

 

어느 날은 검색 데이터를 보는데, 클릭 수가 높은 검색어보다 노출은 많은데 클릭률이 낮은 것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숫자로만 보면 성과가 낮은 검색어다. 노출은 되었지만 클릭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니 효율이 좋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고객이 이미 이런 것들을 궁금해하고 있는데 우리가 아직 그 질문에 충분한 답을 못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고객은 ‘카페인 없는 차’ ‘선물하기 좋은 차’ ‘아이스로 마시기 좋은 차’ 같은 질문을 가지고 들어오는데, 적당한 답이 사이트에 아직 없는 것이다.

그때 질문이 바뀌었다. “어떤 검색어로 고객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지?”에서 "고객이 이미 궁금해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답하고 있나?"라는 질문으로. 낮은 클릭률을 단순히 적은 성과로만 보면 거기서 끝난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질문들을 모아보면, 아직 우리가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 고객의 니즈가 보일 때가 있다. 낮은 숫자는 실패가 아니라, 다음에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신호인 셈이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 사람의 감이 필요하다

 

<AI를 활용해 빠르게 자연어 데이터를 정리한 사례 중 하나.
오설록몰 내 검색 오탈자, 검색 목적 등을 빠르게 분류할 수 있었다.>

 

 

요즘은 회사 안에서도 AI를 활용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데이터 정리, 카피 초안, 보고서 요약까지 AI가 처리해 준다. 예전엔 한 시간 걸리던 일이 10분으로 줄어들기도 한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느끼는 게 있다. 결과물의 퀄리티는 결국 내가 던진 질문의 퀄리티와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카피 써줘”와 “설 선물을 고민하는 40대 여성이 처음으로 오설록몰에 들어왔을 때, 3만 원대 티백 세트를 망설임 없이 고를 수 있도록 돕는 상세페이지 첫 문장을 써줘"라는 요청으로 나온 결과는 서로 완전히 다를 것이다.

후자와 같은 요청문을 쓰려면 고객이 누군지 알아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 들어오는지 알아야 하고, 어떤 지점에서 망설이는지 알아야 한다. 그 이해는 데이터에서도 오고, 고객 리뷰에서도 오고, 심지어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온다.

AI는 내가 만든 질문을 빠르게 실행해 주는 도구가 됐다. 하지만 어떤 질문을 만들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숫자도 마찬가지다. 숫자를 정리하고 요약해 주는 도구는 많아졌지만, 어떤 숫자 앞에 멈춰서야 하는지는 여전히 사람이 사람의 감으로 정해야 한다.

 

 

<좋은 고객 경험을 설계하려면 숫자를 넘어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숫자 앞에서 내가 하려는 것

 

숫자를 볼 때 조심하려는 것도 있다.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숫자는 때때로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클릭률을 높이는 것만이 목표라면 더 자극적인 문구를 만들 수 있다. 전환율을 높이는 것만이 목표라면 구매 버튼을 더 눈에 띄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고객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 나는 숫자를 볼 때, 그 숫자가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를 먼저 생각하려고 한다. 예상과 다른 숫자, 낮아 보이지만 이상하게 눈에 밟히는 숫자, 좋아 보이지만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숫자. 그런 숫자들 속에 다음 기획의 단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 화에서는 이렇게 발견한 단서가 실제 기획으로 옮겨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고객이 검색하고, 비교하고, 장바구니에 담고, 마지막으로 구매 버튼을 누르기까지. 그 사이의 망설임을 프로모션과 UX 안에서 어떻게 줄여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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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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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설록 직영몰 기획자 메일
  • 같은 상품도 다르게 팔린다고 믿고,
  • 고객의 ‘선택 이유’를 데이터로 찾아 그걸 구조와 기획으로 다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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