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2>와 <원더랜드>의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어떤 이야기를 담아냈나
글
김도훈 평론가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물은 아모레퍼시픽 본사다. 이런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면 어떤 독자들은 ‘시작부터 너무 띄워주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오해다. 혹은 여러분이 이 건물에 가본 적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사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물을 답하기 위해 3분 정도 고민을 했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이화여대 ECC,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 DDP, 리처드 로저스의 유작 중 하나인 여의도 파크원 빌딩도 잠깐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본사야말로 지금 서울을 대표하는 현대 건축물 리스트의 최상위에 올라야 마땅하다. 내가 그 건물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너무나도 영화적이라서다.

<사진 출처 : 아모레퍼시픽>
처음 아모레퍼시픽 본사에 갔을 때를 기억한다. 나는 과할 정도로 찬탄했다. 해외 유명 건축가가 한국에 건물을 지을 때 공통으로 하는 말이 하나 있다. ‘한국적’이라는 말이다. 다만 그 말이 일을 맡겨준 건물주에 대한 약간의 아부처럼 들릴 때도 있다. 리처드 로저스가 파크원 빌딩 외벽을 빨간색으로 결정하면서 한국 단청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을 때도 그랬다. 자하 하디드의 DDP는 한국적인 것과는 거리가 아예 멀다. 그 덕에 오히려 서울에 흥미진진한 불협화음의 아름다움을 끼얹기는 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설계하며 한국 달항아리를 이야기했다. 나는 그 말도 일종의 공치사로 생각했다. 건물을 처음 목도하고, 건물 속으로 진입하는 순간, 나는 저절로 중얼거렸다. 한국적이다. 달항아리의 형태가 아니라 묵묵한 한국적 미감이 거기에 있었다.

<사진 출처 : 노경 작가(왼쪽)/ 홍기웅 작가(오른쪽)>
사실 영화 평론가인 나는 새로운 건축물을 볼 때마다 항상 같은 생각을 한다. 저 건물에서는 어떤 영화를 찍으면 좋을까? 나는 라디오 녹음을 위해 SBS 목동 사옥을 매주 간다. 그 빌딩에는 외벽이 유리로 된 계단이 있다. 류승완 감독이 계단 액션 장면을 찍는다면 거기가 딱이다. 인공적 계곡 같은 이화여대 ECC는 <헝거 게임> 스타일의 디스토피아 영화에 정말이지 잘 어울릴 것이다. 미래의 독재자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시라. 동대문 DDP는 미래적으로 둥글둥글한 외벽이 지나치게 특징이 강해 영화에 쓰기는 조금 난감할 수도 있다. 그래도 운석이 서울에 떨어지는 재난 영화에는 한 번쯤 등장할 법하다. 랜드마크의 영화적 역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사진 출처 : 노경 작가>
나는 즉각 생각했다. 어떤 영화를 아모레피시픽 본사에서 찍어야 할까. 1층 로비인 아트리움은 열려 있다. 한국의 미래를 무대로 한 SF 영화라면 그 로비는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미래의 서울역도 되고 미래의 서울 시청도 되고, 아니 어떤 장소도 될 수 있었다. 가장 압도적인 공간은 중정이다. 나는 중정에 들어서는 순간 깨달았다. 이것은 거대한 한옥이다. 한옥에는 열린 중정이 있어야 한다. 개방된 마당이 있어야 한다. 건물의 중간을 아예 뚫어버린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미래의 한옥이다. 한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있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의 중요한 건물은 한국 건축가에게 맡겨야 한국의 미가 제대로 스며들지 않겠냐는, 우리 모두가 가진 약간의 편견은 그 굉장한 중정에서 바깥의 공기와 함께 휘발되고야 마는 것이었다. 내가 서울을 무대로 영화를 만들 감독이라면 이 건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어떻게든 집어넣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 홍기웅 작가>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이미 두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 2>와 김태용 감독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 <원더랜드>다. <성난 사람들 2>에서 이 건물은 억만장자 박 회장(윤여정)이 소유한 글로벌 기업 본사로 등장한다. 완벽한 선택이다. <성난 사람들 2>의 감독은 한국계 미국인 이성진이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역시 한국계인 그레이스 윤이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는 항상 같은 실수를 한다. 지나치게 한국적인 공간을 찾거나, 아예 한국과는 전혀 관계없는 공간을 선택한다. 한국을 이해하는 한국계 미국인 스태프와 한국 배우들이 가담한 <성난 사람들 2>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차가운 사람으로 표현된다. 그의 성형외과의사 남편(송강호)도 차가운 데다 약간 야비하게 표현되는데, 동시에 그들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다. 그들이 함께하는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기업 건물은 둘의 캐릭터를 분명하게 실어내야 한다. 차갑지만 인간적인 취향이나 성격을 담은 건축물이어야 한다.

<사진 출처 : ‘성난 사람들 시즌2’ 속 송강호와 윤여정(왼쪽부터), 넷플릭스 제공>
<성난 사람들 2>의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박 회장과 남편의 캐릭터를 닮아있다. 콘크리트로 만든 브루탈리즘적인 건물의 재질은 일견 압도적이다. 달 항아리의 두툼한 볼륨과 무게감을 닮은 웅장함이다. 달항아리의 두툼한 볼륨과 무게감을 담은 웅장함으로 박회장의 압도적인 부와 권력이 저절로 느껴지게 연출했다. 장식을 최소화한 미니멀리즘적인 디자인은 부부 사이에도 완벽한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들의 분위기를 담아낸다. 동시에, 뚫린 중정 공간의 곡선으로 된 나무는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모던한 동시에 고전적이다. <성난 사람들 2>의 제작진은 정말이지 완벽한 영화적 무대를 선택한 것이다.
재미있는 아이러니도 있다. <성난 사람들 2>는 한국인 글로벌 엘리트와 미국인 노동자 계급의 충돌을 다루는 작품이다.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영미권 현대 건축의 언어를 통해 한국의 자본과 미학으로 지어 올린 건물만큼 드라마의 주제를 멋지게 품어내는 공간은 없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성난 사람들 2> 제작진이 어떤 방식으로 아모레퍼시픽 본사의 미감을 영화적으로 담을지 궁금해 한국 촬영 현장을 찾기도 했다. 이 건물이 봉준호의 다음 영화에 등장한다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 홍기웅 작가>
김태용 감독이 <원더랜드>에서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활용한 방식은 <성난 사람들 2>와 비슷하다. <원더랜드>는 죽었거나 혼수상태에 빠져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AI로 재현해 대화할 수 있게 만든 서비스 ‘원더랜드’를 소재로 한 SF 영화다. 원더랜드 직원이자 플래너 및 관리자인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 캐릭터가 등장하는 본사 공간은 근미래의 차갑고 미니멀한 공간이어야 한다. 다소 비인간적인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인간적 마음을 지닌 캐릭터들을 살려내야 한다. <원더랜드>는 영화적 공간을 둘로 나눈다. 미래적인 본사와 현대적인 일상의 공간이다.
주인공들은 현재와 동일한 서울 골목의 자장면 집과 서울의 미래를 상징하는 회사 건물을 오간다. 미래는 아모레퍼시픽 본사의 외관과 중정에 담겨 있다. 본사의 외관은 그 자체로 원더랜드다. 반복적인 콘크리트 격자 구조와 건물을 둘러싼 알루미늄 루버가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인 미학은 인간의 감정을 일종의 데이터처럼 관리하는 원더랜드라는 회사의 시스템을 미묘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알루미늄 루버는 앵글과 모양이 조금씩 달라 시간에 따라 다른 빛을 품어낸다. 지나치게 차갑지 않은 캐릭터들의 마음을 슬그머니 만들어내는 장치다. 오로지 유리로만 외벽을 둘러싼 위압적인 현대 건축물로는 표현할 수 없었을 뉘앙스가 있다.

<사진 출처 : ‘원더랜드’ 공식 미디어 사진>
물론 나 역시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영화가 한 편 있다. 당연히 가상의 영화다. 용산은 좀비들에게 완벽하게 장악됐다. 서울시는 용산을 거대한 차벽으로 막아 고립시켰다. 생존자들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장소는 아모레퍼시픽 본사다. 중정의 열린 공간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구조를 요청하던 주인공들은 1층 아트리움을 장악한 뒤 건물 위로 올라오는 좀비들을 피해 살아남아야만 한다. 나는 지금 드론에 매단 카메라 워크를 상상하는 중이다. 알루미늄 커튼월을 타고 올라오는 좀비들을 퇴치하려는 사람들, 어떻게든 좁은 중정에 착륙해 사람들을 구조하려는 구조대의 압도적인 액션 시퀀스를 한 번 상상해 보시라. 중요한 건 밤 장면을 넣는 것이다. 모든 위대한 액션 영화의 마지막은 거의 밤에 끝난다.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밤이 되면 빛을 받은 항아리처럼 은은하게 빛난다. 주변 건물의 직설적인 빛과는 다르다. 완곡한 빛이다. 한국적 스펙터클의 빛이다. 이 아이디어는 이 글을 읽는 영화감독님에게 어떠한 조건도 없이 무료로 제공하겠다. 좀 뻔뻔한 소리긴 하지만, 굉장한 영화가 될 것이다.

<사진 출처 : 노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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