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호프’ 최기연 사장님을 만나다 - AMORE STORIES
#한강대로100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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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호프’ 최기연 사장님을 만나다

아주 오래된, 하지만 나날이 새로운

30년 넘게 한자리에서 초록색 존재감을 뽐내며 신용산을 지키는 터줏대감이 있다. Z세대에게 ‘레트로 감성’으로 알려지며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그린호프’의 최기연 사장님을 아모레 스토리가 만났다.

 

‘그린호프’ 앞에서 최기연 사장님

 

 

젊은 부부, 초록색 희망을 안고 그린호프를 열다


그린호프가 생긴 지도 30년이 넘었네요.
그린호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가게를 처음 연 건 1990년 9월이었어요. 저와 아내는 둘 다 직장인이었어요. 저는 작은 회사의 영업직으로, 아내는 화장품 회사의 영업직으로 일했죠.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안정적이진 않았어요. 당시엔 월급도 얼마 안 됐고 그마저도 불규칙했거든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개인사업에 도전해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모아둔 돈을 자본금으로 장사에 뛰어들었죠. 처음엔 보쌈집으로 시작했어요. 경험 하나 없이 시작해서인지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요리 솜씨가 없었으니 주방 직원을 써야 했는데 직원 관리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재료 관리도 까다로웠고요. 하루를 꼬박 일해도 그만큼 이익이 남지 않으니 오래 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2년 만에 업종을 바꾸기로 결정했죠.

 

왜 호프집이었나요?

식당을 하면서 직원 문제로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우리 부부끼리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어요. 마침 지인이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식당이 너무 힘들다고 하니 호프집이 괜찮다고 추천하더라고요. 초기에는 그 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호프집으로 바꾸고 나서는 전보다 상황이 나아지셨나요?

훨씬 나아졌어요. 식당 할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게에 매여있어야 했거든요. 호프집은 밤늦게 끝나긴 하지만 오후 늦게 문을 여니까, 오전에 여유 시간이 생겼죠. 틈새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훨씬 낫더라고요. 그간 소홀히 했던 운동도 하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었죠. 부부 둘이 해도 충분히 돌아가니까 직원 스트레스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고요. 식재료도 상대적으로 간소한 편이었고, 일도 한결 수월해졌죠. 매출이 크게 늘진 않았어도, 그때부터 장사에 재미를 붙이게 됐어요. 이 일은 오래 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죠.

 

‘그린호프’는 무슨 뜻인가요?

‘초록색’이 가진 신선한 이미지가 좋아서 지은 이름이에요. 간판도 초록의 신선함을 살려서 만들었죠. 저 간판이 30년 넘은 거예요. 측면에는 ‘하이트 맥주’라고 쓰인 간판이 있는데, 당시엔 주류 회사에서 간판을 지원해 주기도 했거든요. 30년 역사의 증거처럼 계속 걸어두고 있어요.

 

 

‘그린호프’의 역사를 간직한 간판들

 

 

안주 메뉴들은 어떻게 만드셨나요?

호프집 하는 지인에게도 배우고, 호프집에서 주로 하는 메뉴들을 찾아보며 아내와 의논을 많이 했죠. 처음엔 시행착오가 정말 많았어요. 닭을 튀길 때 반죽의 묽기라든가 온도 조절이 중요한데, 처음이니까 결과물이 들쑥날쑥 한 거예요. 손님들의 반응을 살피며 레시피를 조금씩 바꿔봤죠. 하루하루 경험이 쌓이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감이 생기더라고요. 뭐든 하루아침에 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니 ‘치킨 맛집’이라고도 해주시네요.

 

가게를 신용산에 연 이유는 무엇인가요? 연고가 있으신지요?

연고는 없어요. 아내와 가게 자리를 찾아다니던 때였는데, 우연치 않게 이 거리를 지나가게 됐어요. 부동산에 혹시 가게 자리가 있는지 물어봤더니, 지금 이 자리가 나와 있더라고요. 장사를 하려면 대로변에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마침 대로변에 있는 가게였어요. 지금이야 큰 건물도 많고 사람들도 많지만 30년 전만 해도 굉장히 낙후된 지역이었어요. 주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좋은 자리인데도 월세를 맞출 수 있었죠. 장사를 처음 하는 거라서, 누구를 타깃으로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어요. 터를 잡은 곳에 운 좋게 아모레퍼시픽이라는 회사가 있었고, 회사 분들이 많이 이용해 주시더라고요. 저희에겐 가장 큰 고객이 된 거죠.

 

창업하실 때 어떤 목표가 있었나요?

어려웠던 시대였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형편도 안 됐어요. 그때 제가 생각한 ‘성공’은 자립이었어요.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롯이 내 힘으로 가정을 꾸리는 거요. 큰 목표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어요. ‘지금보다는 더 나은 환경으로 가자’만 생각했죠. 아내와 500만 원짜리 전세방에서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나아가다 보니까 조금씩 살 길이 보이더라고요. 큰돈은 벌지 못했어도 먹고 살 정도는 되니까 이 정도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오래된 것은 오히려 새롭다


당시 그린호프의 모습은 어땠나요?

지금은 2009년에 리모델링을 한 모습인데, 그전엔 방처럼 칸막이로 공간이 나뉘어 있었어요. 보쌈집에서 호프집으로 바꿀 때 인테리어 비용이 많이 드니까 기존 인테리어를 최대한 살린 거죠. 당시엔 그것도 매력 있다고 생각했는데 손님이 많아지면서부터는 낭비되는 공간들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2009년에 인테리어를 다시 했죠. 사진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처럼 사진을 많이 찍던 시절이 아니라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쉽네요.

 

벽에 있는 소품들도 굉장히 독특해요.

소품은 제가 황학동 시장에 돌아다니면서 하나하나 구입한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특색 있어 보여서, 좀 다르다 싶어서 산 것들이죠. 평범한 소품들은 아니잖아요. 마음에 드는 것들을 사서 걸어 놓으니 이런 분위기가 되었죠. 당시 손님들은 별생각 없으셨던 것 같은데, 요즘 젊은 세대는 감성적으로 굉장히 예민한 것 같아요.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소품 하나하나를 다 사진 찍어 가세요. 너무 좋아해 주시니까 최근에 조금 더 사려고 했는데 시장을 다 찾아도 이제는 구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 시절 감성을 머금은 소품들

 

 

요새 Z세대가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요.

저도 참 신기한 게 코로나가 지나가고 젊은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레트로 감성’이라고 소문이 났다는 거예요. 물론 오래 하긴 했지만, 저는 계속 해오던 거고 익숙한 환경이니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 눈에는 되게 신선해 보이나 봐요. 그렇게 오신 분들이 맥주와 안주가 맛있다고 여기저기 소문내 주시면서 젊은 손님들이 계속 유입되는 것 같아요. 웨이팅이 생기기도 하고요. 장사 오래 하고 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신기해요. 밋밋했던 생활에 활기가 생겼죠. 요즘은 정말 즐거워요.

 

 

Z세대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그린호프’

 

 

따로 홍보는 안 하시죠?

SNS 같은 걸 못해요. 우리 세대는 그렇잖아요. 근데 손님들이 ‘어디에 이런 게 올라왔다’, ‘이거 보고 왔다’ 하시면서 보여주세요. 얼마 전에는 어떤 손님이 SNS에 올라온 그린호프 간판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설명이 전부 영어로 돼있는 거예요. 유명한 외국 사진작가가 올렸다고 하더라고요.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죠. 우리 가게가 외국까지 소문날 일이 없잖아요. 여기저기서 언급해 주니 너무 감사하죠.

 

 

그린호프에서는 ‘아무거나’ 드세요


그린호프의 베스트셀러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맥주와 치킨을 가장 많이 찾으시죠. 골뱅이도 은근히 잘나가는 메뉴고요.

 

주류회사에서 선정한 ‘생맥주가 맛있는 집’으로 알고 있는데요,
맥주가 맛있는 이유가 있나요?

맥주가 유별나게 시원해요. 저는 맥주는 ‘온도’라고 생각해요. 보통 시원한 생맥주가 4도인데, 저희는 2~3도까지 온도를 낮추죠. 하루 정도 냉장고에 냉장해놓은 술을 냉각기로 뽑아요. 이게 사실 옛날 방식인데, 성능 좋은 냉각기가 보편화되면서부터 대부분 냉각기만 쓰거든요. 그런데 냉각기만 쓰는 것과 미리 냉장시켜놓은 술을 냉각기로 뽑는 건 완전히 달라요. 톡 쏘는 맛과 시원함의 차원이 다르죠. 냉각기만으로는 그 맛이 나오기 힘들어요. 대리점에서 점검하러 와서 요즘 이렇게 하는 데 없다고 하면, 그래도 난 이 방법을 계속 고수하겠다고 하죠.
또 맥주는 기계 관리도 중요해요. 관리라는 것이 결국 청소인데, 쉬운 것 같지만 까다로워요. 틈틈이 배관을 청소하고 점검도 받고 있어요.

 

 

‘그린호프’ 베스트셀러인 생맥주

 

 

맥주와 더불어 치킨 맛집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치킨이 맛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글쎄요, 특별한 비결이랄 게 있을까요. 비결이 있다면 계속 해오던 조리법을 고집한 것 아닐까 해요. 냉동닭을 쓰지 않고, 매일매일 생닭을 들여오고 당일 소비시키는 것, 닭을 튀겨놨다가 데워주는 게 아니라 주문이 들어올 때 바로바로 튀기는 것이요. 그런 부분을 좋게 평가해 주시는 게 아닐까요?

 

 

30년 연륜을 담은 ‘그린호프’의 대표 메뉴

 

 

그린호프의 숨은 보석 같은 메뉴가 있다면?

아무거나. 메뉴 이름이 ‘아무거나’예요. 과일을 기본으로 튀김(감자튀김, 돈가스, 생선가스), 채소로 한 접시를 구성한 메뉴죠. 젊은 친구들이 신기하다면서 좋아하더라고요. 단골들도 은근히 이 메뉴를 잘 모르셔서 추천하고 싶어요.

 

 

그린호프의 숨은 보석 같은 메뉴 ‘아무거나’

 

 

불 꺼진 신용산에 초록빛을 밝히다


사장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호프집은 마감 시간이 늦어요. 저희는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하거든요. 끝나면 뒷정리를 하고 다음 날 재료까지 준비해 놓고 가야 돼요. 보통 새벽 3시에 퇴근을 하죠. 다음날 아침 10시 반 정도에 일어나요. 오전 시간에는 헬스를 해요. 헬스장도 한 20년을 다녔어요. 뭐든 좀 꾸준히 하는 편인 것 같아요. 2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출근해서 영업 준비를 하죠. 재료 주문하고, 배달이 안 되는 것들은 직접 가서 사기도 하고요. 준비를 마치면 4시에 가게 문을 열어요.

 

오전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네요.


그래도 그 시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데요. 긴 휴가를 내기는 힘들지만, 매일 오전에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워요.

 

가족들, 친구들과 시간은 언제 보내시나요?


일요일에는 쉬죠. 그런데 요즘에는 일요일에도 가게를 열 때가 많아요. 손님들이 일요일에도 많이 찾아오시는데 가게 문이 닫혀 있어서 헛걸음을 하신다고 해서요. 매주는 아니지만 되도록 일요일에도 열려고 해요. 일요일은 대부분 가게들이 쉬니까, 거리에 불이 다 꺼져있잖아요. 거리를 좀 밝게 하려면 우리라도 문을 열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건강할 때 조금이라도 더 일하자는 마음도 있고요.

 

부부가 오랜 기간 같이 일을 하고 계시는데, 비결이 있나요?

주변에서도 어떻게 부부끼리 같이 일을 할 수 있냐고, 안 싸우냐고 많이 물어보는데요. 사실 바빠서 싸울 시간도 없어요. 제 기억으로는 일하면서 크게 싸운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기억이 잘 안 나요(웃음). 싸워도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대화를 해야 하니까 금방 풀어질 수밖에 없고요. 아내는 충청도 출신이고 전 강원도 출신인데, 강원도 사람들도 굉장히 순한 편이거든요. 근데 저보다 아내가 훨씬 순해요. 가끔은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말해줬으면 할 때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아내 덕에 우리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죠. 일을 하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게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것의 장점 같아요.

 

두 분 모두 일을 하시니까 자녀분들이 어렸을 땐 힘드셨겠어요.

아들이 7살 때 처음 가게를 연 걸로 기억해요. 늦게까지 장사를 하니까 아이들을 보살필 여력이 없었죠. 얼굴 보기도 힘들 정도였어요. 아내가 가게와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많이 고생했어요. 근데 그때는 생활이 불편할 뿐이지 엄청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젊은 나이였으니까 가능했겠죠. 시간이 지나니까 애들이 부쩍 커서 가게 일을 도와 주기도 하고, 엄마 아빠 고생했다고 위로해 주기도 해요. 아이들이 부모로서 인정해 주고, 고생스럽게 자기들을 키워줬다는 걸 알아줄 때 가장 보람을 느끼죠.

 

 

손님들과 함께 나이들어 간다는 것


긴 시간 가게를 운영해 오셨는데,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참 무던한 사람이라, 변화를 좋아하지도 않고 시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요. 욕심이 많지도 않고요. 해오던 걸 그냥 꾸준히 한 거죠. 그러다 보니 어느새 30년이 된 거예요. 이걸 끈기가 있다고 해야 하나(웃음). 어떤 원동력이 있었다기보다는 성격의 영향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중간에 위기는 없으셨나요?

왜 없었겠어요. 코로나 때는 폐업할 생각까지 했어요. 늦게까지 영업을 하지 못하고 많은 인원이 모이지 못하니 술집들이 가장 타격이 컸죠. 실제로 문 닫은 곳들도 많고요. 우리도 계속 적자였어요. 대출을 해주긴 했지만, 대출금도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거잖아요. 수익이 어느 날 갑자기 늘어나는 게 아닐 텐데 말이에요.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죠. 그래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버티고 나니 이렇게 알아주는 분들도 생기고 견디길 잘했다 싶죠.

또 힘들었던 시기가 아모레가 사옥 공사로 잠깐 이전했을 때였어요. 많이 기다렸죠. 여기서 오래 장사한 분들은 다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돌아오시고 나서는 무척 반가웠죠. 다만, 예전 단골들이 다시 오실 줄 알았는데 그 사이에 세대교체가 되어서 퇴직하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6~7년이 지났으니까요.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흐른 거죠. 좀 아쉽더라고요.

 

장사하며 제일 행복한 순간을 뽑는다면 언제인가요?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건실하게 커준 게 제일 고마워요. 그린호프로 아이들 키우고,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서 말이라도 넉넉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게 장사를 하며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이죠.

또, 한 곳에서 오래 장사를 하니 손님들과 같이 나이를 먹는다는 걸 느낄 때가 많아요. 30년 전엔 스무 살 갓 넘은 초급 장교였던 손님이 어느새 중위가 되어서 오고, 얼마 전에 왔을 땐 ‘이제 곧 별 단다’고 하시는데, 설명할 수 없는 유대감 같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오랜만에 오셔서 폐업하지 않고 있어줘서.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있어줘서 고맙다는 분들도 있고요. 그럴 땐 좀 뭉클하죠. 부끄러워서 안 하려다가 인터뷰를 하는 이유도 혹시 그린호프를 추억하고 찾아보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이 이렇게라도 소식을 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에요.

 

 

아, 그리운 ‘태평양 호프’


아모레퍼시픽 직원분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요.
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저희가 오픈할 때만 해도 ‘태평양’이었는데, 그때는 태평양 제약이 함께 있었어요. 태평양 직원분들이 자주 오셔서 저희 가게를 ‘태평양 호프’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오시면 서로 다 아는 얼굴들이니까 인사도 나누고, 다른 테이블 계산도 하고 가시고 그랬죠. 그땐 홀을 둘러보면 태평양 직원 분들로 꽉 차있었어요.

또 생각나는 건, 회식을 하면 신입사원은 티가 좀 나거든요. 긴장을 많이 한 모습에 주문이나 잔심부름도 도맡아서 하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어느새 신입사원이었던 분들이 팀원들을 데리고 오는 거예요. 점점 여유가 생기는 모습을 보는 게 재밌기도 하고 신기했죠. 그렇게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된 분들도 있어요. 지금은 퇴직하신 분도 많은데, 또 퇴직한 분들끼리 여기서 자주 모이시더라고요.

아모레는 저희에게 큰 버팀목이었고, 지금도 너무 각별한 존재예요. 요즘은 용리단길이 뜨면서 다른 지역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시고, 그 사이 회식 문화도 많이 바뀌어서 예전만큼 많이 못 오시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자주 자주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그린호프는 언제까지 하고 싶으세요?

건강이 허락되는 날까지는 계속하고 싶어요. 회사에 다니던 제 친구들은 정년퇴직을 했는데, 저를 부러워하더라고요. 집에 있으니 실없는 걸로 아내랑 다투기나 한다고요(웃음). 아직까지 일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냐고 해요. 저도 여력이 된다면 계속 일하고 싶어요. 이 부근에서 예전부터 장사하던 분들은 많이 안 남아있거든요. 가능하면 오래 신용산을 지키고 싶죠.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어떤 모습인가요?

10년 후면 80대, 조용하게 인생을 되돌아볼 나이네요. 지금보다는 조금 더 여유를 즐기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을까 해요. 그동안 못한 등산도 실컷 하고 싶고요.

 

 

‘그린호프’에서 인터뷰 중인 최기연 사장님

 

 

epilogue
이곳에서 누군가는 추억을 회상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추억을 만든다. 모두의 추억을 간직한 그린호프가 오래오래 신용산에 초록빛을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한강대로 100은 아모레퍼시픽 주변 사장님들의 인터뷰를 전합니다.
업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바탕으로,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위기를 타개한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에디터 신혜원(책식주의)

사진 디자인몽

기획 총괄 아모레퍼시픽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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