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되나요? - AMORE STORIES
#백수빈 님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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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정말 환경에 도움이 되나요?


 디자인을 할 때 어떤 소재를 사용할지 선택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소재가 원물 상태에서 어떻게 가공되는지에서부터 해당 소재를 사용해서 원하는 물건으로 만든 후에 그 물건을 폐기하는 방식까지 고민할 때 제품과 서비스가 보다 지속 가능해진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니까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자연에서 본 원물에 가까울수록 자연으로 되돌리기 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화학작용을 거친 물질은 물성이 변하고 물성이 변한 후에는 때때로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는 물질이 되기도 합니다. 일례로 우리가 잘 아는 플라스틱과 비닐 제품들이 그렇습니다. 상당량의 플라스틱은 재활용되지 않고 폐기되어 바다와 땅에 버려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바다거북이 빨대로 인해 고통받는 장면이 논란이 되기도 했지요.


1. 좋은 소재와 나쁜 소재는 따로 있다?

 플라스틱은 좋은 소재일까요, 나쁜 소재일까요?
2017년에는 디 뮤지엄에서 '플라스틱 판타스틱'이라는 주제로 플라스틱을 예술 영감의 원천이 되는 소재로 재조명하는 전시가 있었고, 올해는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문제점을 충격적으로 보여주는 크리스 조던의 '아름다움 너머'라는 전시도 있었습니다. 두 전시 모두 관람객이 많았던 걸 보면 우리가 플라스틱에 대해서 갖는 양가적인 감정이 어떤 건지 잘 드러납니다.
 수전 프라인켈이 쓴 <플라스틱 사회>라는 책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상 용품에 처음으로 플라스틱이 사용되었을 때 플라스틱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졌는지를 표현한 문장이 있어 소개합니다. 플라스틱은 "희소한 자연 물질을 대신해 더 깨끗하고 밝은 세상으로 만들어줄 물질이며 모두가 이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민주적 사치의 상태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지금 당장 지구에서 플라스틱을 모두 없앤다고 하면 비행기, 옷, 컴퓨터, 변기, 자동차, 필기구 등 우리가 아는 상당수의 제품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플라스틱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할 때 거북이가 가엾기 때문에 사용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경각심을 환기하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지만 실제로 플라스틱이 가진 문제를 흐리는 면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플라스틱이 바다에 오래 남아 썩지 않아 문제가 된다고 하면 좀 더 구체적이긴 합니다만, 오래 지구에 남는 속성은 정말 언제나 정말 나쁜 속성일까요?

 다이아몬드는 강도가 세서 변하지 않는 사랑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플라스틱은 왜 오래간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는지 생각해보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렴하고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렴하고 사용하기 편리하면 사용량이 증가합니다. 1940년대만 해도 생산량이 0kg에 불과하던 플라스틱이 2015년 기준으로는 3억 2,000만 톤 생산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사용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사용 기간은 짧고, 버려져서 오래오래 남아 있으면서 주변의 생물들에 해를 입히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만약 다이아몬드라 할지라도 일회용 플라스틱처럼 하루 단 10분 정도만 쓰고 버려져서 처치 곤란할 정도로 쌓이고 주변 생물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보세요. 다이아몬드가 나쁜 소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생겨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저렴하고 사용하기 너무 쉬운" 것들에 대해 의심을 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요.
 카르텔(Kartell)이라는 브랜드는 이탈리아에 기반을 둔 가구/조명 회사입니다. 애초에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플라스틱을 이용해 멋진 가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창업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카르텔에서는 3대에 걸쳐 플라스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의 활용도를 넓히고, 유명한 디자이너와 협업해 플라스틱 소재의 제품을 오래도록 소장할 가치가 있는 제품으로 격상한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플라스틱이 브랜드의 정체성이 된 카르텔은 현재 해조류 등의 식물 소재에 기반한 플라스틱 개발에도 매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소재와 관련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의 대처 방식입니다. 어떤 소재가 사용되고 있다면 그건 그 소재의 효용 가치가 존재함을 증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소재에 문제점이 부각되어 이를 해결해야 한다면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대처 방안은 세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1. 소재의 문제점을 보완한다.
2. 대체 소재를 사용한다.
3. 해당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 방식을 개발한다.

 1번은 보완이 가능하고 보완책을 개발했을 때의 보상이 의미 있을 때 동기가 더 분명해집니다. 바로 카르텔이 연구하는 디그레이더블 플라스틱의 영역이죠. 2번은 대체 소재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을 비교한 후에 적절한 판단이 가능할 것입니다. 3번은 더 넓은 범주로 새로운 사회적 동의가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쉽게 빨대 사례로 돌아가서 위 사례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재활용 플라스틱 혹은 식물 기반 플라스틱 빨대를 개발해 사용한다.
2. 실리콘이나 스테인리스, 대나무 줄기를 활용한 대체제로 빨대를 만든다.
3. 빨대 없이 음료를 마시는 문화를 정착시킨다.

 가장 문제시되는 플라스틱을 바라보는 관점과 플라스틱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렇게 다면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존재합니다. 총체적인 관점을 강조하는 지속 가능성의 기준에 맞추려면 디자인을 하는 입장에서 어떤 소재를 선택하든 고민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소재에 대해 아는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은 희박하지요. 세상의 모든 소재를 다 공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인을 위해 소재를 선택할 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위험 요인을 줄이고 나아가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앞뒤 설명 없이 "친환경적"이라고 소개하는 마케팅 용어로서의 그린 워싱, "친환경"만으로는 더는 설득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서 객관적으로 "환경에 좋다"는 것을 누군가가 인증한 환경 지표가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시죠.


2. 판단의 근거

 환경 지표는 크게 두 가지로 자사의 품목을 인증하는 환경 지표와 외부 기관의 객관적 인증을 근간으로 하는 지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지표는 전 세계 통용을 목표로 하는 국제 기구 발행 지표와 국가별로 환경 관련 법규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국가 기관 발행 지표들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지난 구찌의 지속 가능 사례에서도 언급했던 FSC® 같은 경우는 제법 널리 알려진 지류 분야의 환경 지표로 국제 기구인 FSC가 인증합니다. 그리고 친환경 마크는 우리나라 환경부에서 부여하는 지표이지요. 저의 직접적인 업무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무래도 지류이기 때문에 이번 화에서 다룰 지표는 지류와 관련한 환경 지표로 범위를 한정했습니다.

 각 제지사 웹사이트에는 취급하는 지종에 부여한 여러 환경 인증 지표와 그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잘 정리된 표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제지 관련 일부 환경 지표들을 모아둔 것임에도 동일한 항목을 다르게 고려한 지표들이 눈에 띕니다. ECF와 PCF 같은 경우 PCF가 더 염소에 대한 규제가 강한 지표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지를 사용하는 지표들의 경우에 우리나라는 재생지 함유량을 지종에 별도 표기하는 반면, 그린실(Green Seal)은 동일 명칭의 기관이 재생지를 포함하는 방식과 함유량을 관리한 후 인증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별 시장의 특이성이나 기관별 관심 분야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수출입을 담당하는 분은 더 잘 아시겠지만, 국가별로는 규제 기준이 서로 상이한 경우가 있는데 환경 마크 두 종류도 더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다르고 허용 규격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한 지역과 관련한 목적성이 있다면 어떤 지표를 획득한 지류를 사용할 때 당면한 과제에 더 적합한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지사 자체에서 개발한 지표의 예시로는 그문드 에코 인증 지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문드(Gmund)라는 제지사는 고급 지종, 특히 쿠션지나 재질이 독특하고 색감이 예쁜 지류를 많이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데 해당 제지사에서 그문드 에코 인증 마크라는 것을 만들어 제지사 내부적으로 친환경적인 프로세스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회사 내 환경 관련 특정 기준이 있음을 공지하고 싶을 때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물론 환경 지표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해보면 지표가 있다는 것만으로 환경에 100%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거기에는 또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지표의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시간을 내서 학습하거나 마케팅에 성공한 환경 지표가 아니고서는 식별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위 에코 레이블 웹사이트에 정리해둔 것만 463개라고 하니 짐작이 가시겠죠? 굵직굵직한 FSC® 같은 것만 위 사이트에서 검색되고 앞서 보여드린 표에 포함된 모학 풍력에너지 지표 같은 것은 아예 검색이 되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지표가 너무 많을 경우 각 지표에 대한 인지도를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지표의 가치까지 떨어진다는 측면에서 지표 자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는 두 번째 이유와도 연결되는데 지표의 공신력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자사 개발 지표는 자사 개발 지표대로, 외부 기관은 외부 기관대로 모든 지표가 투명성을 갖추고 운영되어야 지표를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지표를 모두 감시할 수 있는 체계란 존재할 수 없으니 지표가 대다수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보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세 번째로 해당 소재를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해당 제품의 친환경적인 가치가 사라지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소재 자체는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졌으나, 그 소재를 가공하는 단계별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속성이 더해지면 지표의 의미가 퇴색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인증을 받지 않았음에도 지속 가능한 가치를 실현하는 소재들도 세상엔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인증 기관에서 지표를 굳이 취득하진 않지만 친환경적인 프로세스로 만드는 전통 지류 제작 방식의 존재 등이 바로 그런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환경 지표조차 한계는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지표가 상징하는 바의 중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감대 형성에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총체적인 관점을 가지고 조금은 집요하게 생각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지류를 사용해 무언가를 만든다면 지류를 생산할 때 벌목량을 줄이는 방법을 사용하는 동시에 일부 벌목하더라도 소진한 만큼의 나무를 다시 심어 산림을 보호하는 업체의 지류를 사용한다면 지속 가능한 소재 사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지를 만드는 제조 공장 안에 온실가스를 덜 쓰는 시스템이 있다거나 대체에너지를 사용하는 곳이 있다면 더 도움이 될 테고요. 끝으로 이 종이가 제대로 재활용될 수 있도록 완성품에 코팅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처럼요.

 종이 하나만으로도 이토록 많은 환경 지표가 있으니 그 외의 소재에도 환경을 기준으로 유의미한 지표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공간 디자인 측면에서 예를 들면 마감재와 가구의 소재를 고려할 때 그와 관련한 환경 지표가 존재하는 것처럼요.

 모든 곳에 완벽한 친환경 자재를 활용하는 것만을 의사 결정의 제일선에 두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소재를 선택할 때 기준이 될 수 있는 지표를 유의미한 고려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지속 가능성 외에도 디자인을 완성할 때 종합적인 의사 결정은 필수이며 의사 결정 항목하에 환경 지표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가치 판단의 영역입니다. 여전히 친환경 인증을 받은 첨단 기술의 소재들을 사용하면 비용이 더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기존에 사용하던 것에 비해 다루기가 까다로운 것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에 이득이 된다는 확신이 든다면, 합리적인 경제인은 해당 가치의 편에 서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마치 케링사의 CEO가 강조했듯이 말입니다. 그럼 저는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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