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알맹이만 파는 가게들 (국내 편) - AMORE STORIES
#백수빈 님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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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알맹이만 파는 가게들 (국내 편)


 마지막 화에서는 지난 화에 이어 한국의 알맹이만 파는 가게들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가게들 중에는 국내 생산 제품 위주로 다루는 곳도 있고, 해외 제품도 함께 판매하는 곳도 있는데요. 이왕이면 국내 자생 물건 판매를 중심으로 하는 사례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한국의 화장품 브랜드는 리필샵(Refill Shop) 운영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어서, 대신 식자재나 생활 소품 리필샵 중 서비스 디자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부분들을 짚어보겠습니다.


1. 마트 플랫폼 : The Picker 더피커 성수

 한국의 패키지 프리샵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더피커(The Picker)’입니다. 평소 패키지 프리샵에 관심이 있던 분이라면 뉴스에서도 종종 보셨을 것 같아요. 2016년 송경호 대표가 창업한 더피커는 국내 최초로 제로 웨이스트 플랫폼을 지향하는 곳으로, 개별 포장하지 않은 견과류나 곡류 등을 시리얼 바 리필샵 형태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난 화에서 소개해드렸던 베를린 운버팍트(Unverpackt)의 취급 물품과 비슷한 항목들이죠. 한국에 이런 가게가 생겼다는 것이 반가워서 좋아하고만 있었는데, 최근에 매장을 이전하면서 오픈 이벤트로 색다르게 시도한 서비스가 있다고 하여 이번 기회에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제로 웨이스트 제품 큐레이션 서비스’ 입니다.
  • 출처 : 더피커 도슨트 투어 자료 직접 정리

 이 서비스의 디자인 플랫폼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문화 확산에 가장 중요한 ‘교육 플랫폼’을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교육 서비스라고 하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강연인데요. 더피커에서는 강연을 자주 개최할 뿐만 아니라 ‘도슨트’의 형식의 서비스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더피커는 해당 투어 서비스를 통해 제로 웨이스트라는 용어가 생소한 고객에게 그 의미를 알리고, 해당 매장에서 직접 선별해 판매하는 제품이 고객을 만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설명합니다. 일반포장 제품과 더피커의 포장재 없는 제품이 생산, 유통, 판매, 사용, 폐기에 이르는 공정과정에서 어떤 차이점을 가지는지 콕 집어서 설명하고, 그 차이가 가능한 이유를 풀어서 사례로 알려줍니다. 투어는 유료이며 지정된 시간에 제한된 인원수를 모집하여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전시품을 설명하듯 서비스를 운영합니다. 더피커는 우리가 쉽게 쓰고 쉽게 버리던 물건 속 알맹이의 여정에 대해서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길 기대하면서 해당 서비스를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도슨트 설명 자료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더 피커의 유통에 대한 고민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완제품의 형태와 적재 방식에 따라 운송에 맞는 포장 단위와 형태가 결정됩니다. 배송 거리가 멀어지면 물품의 안전성과 품질 관리를 위해 배송에 필요한 자원이 점점 커지지요. 이에 더피커는 설립 목적에 맞게 해외 제조품보다는 자원을 절약할 수 있는 국내 자생 제품을 위주로 매장에 비치하고 있으며, 제가 수입품보다 국내 제품을 많이 취급하는 매장 사례를 소개해드리려 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 곡물류와 그레놀라 등의 리필샵, 기부 받은 유리병과 쇼핑백의 활용, 코튼 화장솜과 린넨 손수건, 재사용 밀랍백 등을 판매 중 (출처 : https://blog.naver.com/yjryu533/221693543522 / 더 피커 온라인샵)

 더피커는 온라인 샵도 운영하고 있으니, 바로 매장에 가보실 수 없는 분들은 인터넷을 통해 제품들을 한 번 둘러보시길 추천해드려요. 제가 이번 화에서 소개해드리는 샵 중에는 온라인 판매 품목이 가장 많습니다. 특히 플라스틱 랩과 일회용 비닐을 대체하는 다회용 생활랩 ‘다시 쓰는 그랩’, 재사용 화장지 등의 품목들을 뉴욕의 패키지 프리샵의 제품군과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2. 카페 + 알파 플랫폼 : Bottle Factory

  • 출처 : 직접 촬영

 보틀 팩토리는 연희동에 위치한 일회용품 없는 카페입니다. 배우 유지태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교육적인 목적으로 찾기도 했다는 이곳은 일회용품 없는 카페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서비스를 디자인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 도서 대출 서비스 같은 텀블러 대여 서비스에 대한 안내와 텀블러 반납기. 텀블러 사용 전과 후의 텀블러 세척 공간 활용 (출처 : 직접 촬영)

 일회용 컵이랑 빨대는 물론 티슈도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는 본인이 가져온 컵이나 텀블러를 세척할 수 있는 공간이 한쪽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카페에서 본인의 컵을 이용한 후 깨끗하게 설거지하여 다시 가방에 가져갈 수 있죠. 컵을 가져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치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 주듯 텀블러를 빌려줍니다. 대여 카드에 이름을 적고, 빌린 텀블러는 매장 내외에서 이용한 후 가게 밖의 회수통에 반납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요. 다회용 컵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행태를 잘 연구해서 필요한 요소들을 적절히 안배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곳은 그냥 카페이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 출처 : 직접 촬영

 매장 내에서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책도 열람할 수 있고, 물품 구매 시 일회용 포장재 대신 이용할 수 있는 보자기 포장 존과 호주의 샤워 젤 브랜드인 에코스토어의 리필 스테이션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보틀 팩토리는 재밌는 이벤트들도 많이 개최하고 있는데요, 이중 제가 참여해 본 두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채우장

  • 출처 : 직접 촬영

 채우장은 한 달에 한 번 보틀 팩토리가 주최하는 팝업 리필 장터로, 참여를 원하는 지역의 판매자가 큰 용기에 제품을 담아온 후 구매자의 용기에 소분하여 판매하는 시장입니다. 시장이라고 해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규모는 아니며, 보틀 팩토리 안 작은 마당에 대여섯 개의 부스와 안쪽의 두세 개의 부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판매 물품은 서로 겹치지 않으며, 원물 자체인 곡물이나 이국적인 향신료도 보이고 판매자들이 직접 만든 페스토, 초콜릿, 누룽지, 강아지용 비누 등의 가공품도 판매합니다.

 채우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찾아갈 때부터 양손이 무거워야 합니다. 구입한 물건을 담아갈 용기를 미리 챙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다회용 소분 용기를 함께 판매하는 제작자분들도 있지만, 용기보다는 내용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 오시는 분들은 가방, 유리그릇, 속 비닐을 대체할 천 등을 스스로 준비해오는 편입니다.

- 유어 보틀 위크

  • 유어 보틀 위크에 참여한 가게 지도. 참여한 가게는 카페, 빵집, 샤퀴테리, 방앗간 등이 있으며 그 중 방앗간에서 참깨를 소분 구입해봄 (출처 : 직접 촬영)

 유어 보틀 위크는 지난 10월 보틀 팩토리가 연희동 홍제천 일대 카페 및 가게들과 협업하여 진행한 행사입니다. 행사 기간 중 보틀 팩토리와 사전 논의를 마친 상점에서 다회용 용기를 이용하여 음식을 구매하면, 고객들에게 스탬프 리워드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참여 상점에 대한 정보는 따로 마련된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고객들이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 용기를 가져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음료 제조 시 계량을 위해 사용된 종이컵, 떡집에서 이용되는 비닐장갑 등 매장 내 제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으며, 이는 고객이 직접 용기를 가져오는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합니다.

 유어 보틀 위크는 이 점에서 착안해 이용자가 물건을 담아갈 용기를 직접 가져오는 것을 넘어 상품을 제작, 판매하는 이들부터 판매 방식을 조율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더불어 지역 내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들이 참여하면서 제품군을 다양화하는 것을 통해 기존 한계(제로 웨이스트 샵에 내가 원하는 물건이 판매되지 않는 경우)에 대한 해결책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내가 속한 동네에서부터 네트워킹을 시작하는 것은 제로 웨이스트 문화를 사회로 확대하는 데 꼭 필요한 수순이라고 생각합니다.


3. 시장 플랫폼 : 알맹@망원시장

  •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불친절한 금자씨

 알맹@망원시장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망원에 있습니다. 일회용품 없이 장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디자인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로, 구매자가 비닐을 포함한 일회용 포장재 없이 필요한 물건을 직접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 그 목표입니다. 알맹@망원시장만의 차별점이라면 기존에 있던 상인과 단골 고객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냈다는 것입니다. 이미 비닐 포장으로 효율을 극대화하고 이에 적응한 상인들이 판매 시스템을 변경해야 하는 점을 잘 극복하고, 서비스 기획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례로 회자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불친절한 금자씨

 뿐만 아니라 장바구니와 소분 용기를 이용한 고객들의 연령대가 다른 제로 웨이스트 샵보다 높은 것이 또다른 차별점입니다. 기존의 플랫폼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새로움을 꾀한 서비스 디자인 사례지만, 아직까지 참여하고 있는 점포는 시장 내 20여 곳 뿐이며, 바쁜 시간대에는 여전히 비닐 포장을 하는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번거로워하던 상인들이 해당 플랫폼에 참여함으로써 매장 홍보 효과를 얻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젠 직접 나서서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알리는 등 플랫폼 자체의 자발적 ‘팬’이 되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인센티브를 더 이끌어 낼 수 있는 서비스 디자인이 추가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


4. 그외의 가게들 : 지구, 얼스 어스

 지구샵은 이번 칼럼에서 소개해드리는 곳 중 유일하게 한강 이남 지역에 있는 제로 웨이스트 샵입니다. 이곳에서도 과일을 낱개로 구입할 수 있고, 견과류나 곡식류도 시리얼 바처럼 이용할 수 있어요.
 이 매장의 재밌는 부분은 바로 가게 안 한 켠에 중고 물품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는 점입니다. ‘새롭게 쓰이길 희망해요!’라는 안내문구가 적힌 이 곳에선 매장에서 사용하던 물건을 저렴하게 다시 판매하고 있습니다. 새삼스럽지만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방식에는 벼룩시장처럼 필요 없어진 물건의 소유권을 필요한 사람에게 이전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물건 자체의 사용 목적을 변경하는 방법이 있다는 점을 상기하게 해주는 코너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곳을 더 알려드리자면, 얼스 어스라는 연남동의 카페가 있습니다. 음료는 다회용기로 테이크 아웃을 하는 일이 많아졌지만, 디저트류는 아직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지 않지요. 하지만 얼스 어스에서는 디저트류 또한 고객들이 다회용기에 담아갈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디자인적인 시사점은 각기 다른 용기에 담긴 디저트들의 비주얼이 오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옮기는 과정에서 쉽게 부서지는 등 담기 까다로운 케이크가 아래와 같이 고객이 가져온 용기 위에 얌전히 올라가 있는 사진을 보면서 리필 스토어의 정돈되지 않은 매력을 함께 느끼실 수 있길 바랍니다.
 올해 칼럼을 시작할 때, 원래는 ‘지속가능하다’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다 말았어요. 지속가능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지요.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말했지만, 이제는 사소한 것이라도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디자인 조직에 속해 있기 때문에 디자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는데요.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사우 여러분도 각자의 분야에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릴 때, 혹은 일상에서부터 실천하고 계신 것들이 다양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총 6편의 칼럼을 작성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지속가능함에 대한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분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작은 노크 강의(라 쓰고,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오늘 소개드렸던 가게에서 사온 제품들을 함께 나눠 사용해보고,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가운데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지, 디자인적 관점에서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AP-ON > 나눔터 > 직무노크 게시물에 참여 댓글을 달아주세요.

 끝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게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이케아의 영상 Accidental Envrionmentalists를 첨부하며 글을 마칩니다. 한 해 동안 칼럼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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