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가을의 문턱에서 만나는 ‘막걸리’ - AMORE STORIES
#권미정 님
201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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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가을의 문턱에서 만나는 '막걸리'

Columnist
4기

아모레퍼시픽 사우들이 직접 작성한 칼럼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K-Culture를 찾아서

제4화. 가을의 문턱에서 만나는 '막걸리'

칼럼니스트
아모레퍼시픽 향료연구팀 권미정 님

수시로 날아오는 '폭염 주의보' 경고 문자,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누진세에도 굴복하지 않고 종일 켜놓았던 에어컨, 새벽까지 후덥지근하던 열대야… 올해는 무더위가 유독 기승을 부렸습니다.

이번 여름, 다들 어떻게 보내셨나요?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에어컨 틀고 샤워부터 하고, 그 다음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맥주 한 캔! 가장 바람직한 여름밤의 코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정말 다양한 세계 맥주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맥주로 세계일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맥주가 뭔가 덜 어울리죠? 상쾌한 목 넘김도 차갑게 느껴지고 마신 뒤에도 어쩐지 몸이 추워지는 것 같고요. 그럼, 다가오는 가을에는 막걸리를 만나 보시는 건 어떠세요?

# 막걸리란 무엇인가요?

막걸리는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술인 탁주의 일종으로, 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은 후에 거칠게 거른 술입니다. 법정인 규정은 없기 때문에 민가에서 탁한 술 또는 금방 담근 술의 대명사로 편하게 쓰이는 명칭이기도 해요.

황해도 이북에서는 탁배기, 부산에서는 탁주배기, 제주도에서는 탁바리 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이름에 모두 '탁'자가 들어가며 모두 탁한 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레드와인이나 맥주와 같이 오랜 역사를 지닌 원시적인 형태의 술은 탁한 형태를 띄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와인, 독일은 맥주, 그럼 한국을 대표하는 술은 뭐냐고 묻는다면 막걸리가 가장 적절한 대답일 것 같네요.
  • 18세기 후반에 그려진 김홍도 '주막'에도, 2010년에 방영된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도 등장하는 막걸리


# 南막걸리, 北소주

우리 민족의 대표 술을 거론할 때 사실 막걸리는 남쪽의 술이라고 합니다.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 자연스럽게 식문화가 달라져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찾아보니 그 전부터 그랬다고 하네요. 대표적인 소주회사 진로도 평안남도에서 시작되었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증류식 소주 문배주도 평양의 방식이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박물관에 전시된 북한의 술, 중국의 북한 음식점에 진열된 술은 대부분 맑은 술이었던 것 같아요.

러시아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보드카를 마셨듯이, 추운 북쪽 지역에서는 더 정제된 독주가 필요했던 걸까요? 하지만 2000년 정주영 회장이 가져가 선물한 막걸리의 영향으로 북한에서도 막걸리 산업이 권장되고 있다고 합니다. 분단된 이후에 오히려 술이 통일된 형국이니,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증류주가 주를 이루는 북한의 술들, 평양의 방식이 시초가 된 문배주


# 막걸리와 비슷한 일본의 술, 도부로쿠

일본의 전통주 '도부로쿠'

일본 술이라면 흔히 사케라고 부르는 청주와, 종주국 독일맥주 보다 더 맛있는 일본 맥주밖에 몰랐는데요. 일본에도 막걸리와 비슷한 술이 있다고 합니다. 쌀과 입국(쌀알 누룩)으로 발효시킨 후 여과하지 않고 마시는 '도부로쿠' 인데요. 이를 여과하면 청주가 되는 거랍니다.

상당히 비슷해 보이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알코올 도수인데요. 막걸리가 보통 6도 정도 되는 것과 달리 도부로쿠는 13~18도 정도로 높다고 합니다. 둘째, 도부로쿠는 입국만을 사용하지만 막걸리는 쌀누룩, 밀누룩 등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집니다. 셋째로, 막걸리는 쌀과 누룩 이외에도 약재, 곡물, 과일 등을 첨가할 수 있어 다양한 맛과 색을 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막걸리는 가장 대중적인 술이지만 일본의 탁주는 탁주 특구를 지정하여 엄격히 보호할 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클래식한 도부로쿠와 달리 막걸리의 창의성은 무궁무진 한 것 같습니다.
  • 제주감귤 막걸리, 포도탁주 새색시, 정선 옥수수 막걸리


# 막걸리로 전국일주!

정해진 틀이 없어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막걸리는 그만큼 지역색이 강하고 양조장마다 개성이 뚜렷합니다. 그래서인지 인터넷에 '막걸리 지도' 라고만 검색해도 수많은 버전의 막걸리 지도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지도 하나 정해서 '막걸리 로드'를 따라가는 전국 막걸리 투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퓨전 막걸리 주점이 우후죽순 생겨나 어디서든 다양한 막걸리를 접할 수 있지만 특정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막걸리는 현지에서, 현지인들에 둘러싸여, 그곳의 풍경과 함께 마셔야 제 맛일 테니까요.
  • 다양한 막걸리 지도


막걸리 맛 투어도 좋지만 '와이너리 투어', '브루어리 투어'처럼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곳을 둘러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양조장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 중에 주목할 만한 곳이 충북 진천의 덕산양조장 입니다. 이곳은 1930년에 백두산에서 가져온 목재로 당시 양조장의 양식을 살려 지어졌다고 하는데요, 왕겨를 일종의 단열재로 사용해 세운 90cm의 두꺼운 벽이 양조장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근대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이 곳은 단아한 건물과 주변 풍경이 주는 특유의 멋 때문에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와 만화 '식객'에도 등장합니다. 과거에는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는 현장을 견학하고 시음도 해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2014년 경영난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 덕산양조장 전경과 만화 '식객'에 등장한 덕산양조장의 모습

  • 덕산양조장에 남아 있는 허영만 화백의 글과 그림


# 막걸리를 더 섬세하게 맛보려면

대중적이고 서민적이어서 더 매력적인 막걸리. 아슬아슬한 디켄팅 같은 과정도 필요 없고, 잔을 어디까지 채워야 한다든지 하는 주도도 필요 없고 아무 대접에나 찰랑찰랑 채워 엄지손가락이 푹 담기도록 집어 들고 마셔도 되는 거친 매력이 있지요.
  • 드라마 '신의 물방울'의 한장면과 와인의 디켄팅 장면


하지만 좋은 술이라는 예술 작품을 좀 더 섬세하게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전통주 품평회의 일반적인 심사 순서를 참고하면 더 맛있게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 리스트는 2009년 농촌진흥청의 심사 순서입니다.)

1) 색, 외관을 관찰한다.
2) 술잔을 코에 대고 올라온 향을 맡는다.
3) 5ml 정도를 입에 넣고 혀 위에 천천히 펼쳐 후루룩 하면서 공기를 입 안으로 넣어 술과 혼합한다.
4) 이 공기를 코로 내어 머금은 향을 확인한다.
5) 천천히 혀 위의 맛을 확인한다.
6) 마지막으로 내뿜은 후 조용히 목으로 떨어뜨려 후미를 확인한다.
  • 전통주 발전에 기여하는 다양한 품평회


# 올 가을엔, 막걸리에 빠져 보아요

새파란 하늘에 그토록 태양이 쨍쨍하던 여름이 지나고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시원한 바람에 닭살이 오소소 돋아나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삭바삭 낙엽을 밟으며 걷는 퇴근길, 지난 여름 캔맥주 사러 꼬박꼬박 들렀던 집 앞 슈퍼에서 이번엔 막걸리 한 병 사서 들어가 보시는 건 어떠세요? 막걸리를 아무 잔에나 벌컥벌컥 따라서 한 모금… 여름 밤의 맥주만큼 하루를 멋지게 마무리해 줄 것 같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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