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2019년 영화산업 결산 - AMORE STORIES
#강승민 님
2019.12.09
22 LIKE
621 VIEW
  • 메일 공유
  • https://stories.amorepacific.com/%ec%a0%9c6%ed%99%94-2019%eb%85%84-%ec%98%81%ed%99%94%ec%82%b0%ec%97%85-%ea%b2%b0%ec%82%b0

제6화. 2019년 영화산업 결산



  • 올해 가장 큰 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두 작품 모두 넷플릭스의 배급망을 통해 공개되었다.
    좌 : 마틴 스콜세지의 걸작 <아이리시맨>, 우 : 노아 바움백의 <결혼이야기> (출처 : 넷플릭스코리아)

 2019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변화와 이슈가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계 안팎에서도 사건·사고가 잦았고 산업적 부침도 많았는데요. 이번 마지막 칼럼에서는 올해 영화산업에서 일어났던 굵직한 이슈들을 되짚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1. 넷플릭스의 미국영화협회 가입

 올해 영화산업에 있어 가장 큰 이슈는 바로 넷플릭스를 위시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의 비약적 성장입니다. 이미 이전 칼럼에서 한 번 소개해 드렸던 바와 같이(제2화. 할리우드의 지각변동과 스트리밍 플랫폼의 등장) 스트리밍 플랫폼의 대표주자인 넷플릭스는 기존 극장 배급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영화산업의 형태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습니다. 스트리밍 콘텐츠를 영화 예술에 포함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쟁은 이미 옛날 일이 되어버렸고, 오히려 콘텐츠의 제작과 향유 방식이 해당 플랫폼에 맞게끔 변화하는 상황까지 도래하고 있습니다.
  • 넷플릭스의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은 콘텐츠의 힘이었다.
    좌 : <하우스 오브 카드>, 우 : <기묘한 이야기> (출처 : 넷플릭스코리아)

 넷플릭스의 이러한 성공에는 접근성이 좋고 플랫폼 간 경계를 두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 자체의 특성도 한몫했지만, 결국 ‘데이터가 아닌 콘텐츠로 움직이는(content-driven) 기업’이라는 해당 회사의 사명감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넷플릭스의 가장 큰 성공 원인으로 콘텐츠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과 발굴이 손꼽히고 있습니다. 만약 <하우스 오브 카드>나 <기묘한 이야기>와 같은 작품들이 없었다면 넷플릭스가 이 정도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처럼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전액을 투자하거나 홍보비로 수백억을 쓰는 데에는 바로 콘텐츠를 브랜드화하기 위한 넷플릭스의 '지속가능한 경영' 전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영화사적 측면에서는 이례적으로 넷플릭스가 MPAA(미국영화협회)에 가입하였습니다, 콘텐츠만 본다면 그간의 필모그라피가 증명하듯 넷플릭스의 협회 가입은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인터넷에 기반을 둔 비스튜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가 미국영화협회에 가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가 그은 영화산업의 큰 획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2. 월트디즈니라는 이름의 공룡

 북미 영화산업에서 5위의 시장점유율 차지하고 있는 20세기 폭스가 세계 1위 영화 스튜디오인 월트디즈니에게 인수합병된 뉴스(아니 사건)는 올해 통틀어 가장 임팩트가 컸던 이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월트디즈니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로 전 세계에서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하고 있는데요. <데드풀>, <엑스맨>의 로열티를 보유한 폭스를 인수하면서 많은 영화 팬들은 마블의 세계관과 외연이 더욱 확장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올해 월트디즈니가 월드 와이드에서 큰 흥행 수익을 거두게 한 두 영화
    좌 : <어벤져스 : 앤드게임>, 우 : <겨울왕국2> (출처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와 동시에 월트디즈니는 올해 말 자체 OTT(Over The Top,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기존 넷플릭스에 제공하던 자사 콘텐츠를 철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극장 플랫폼에 이어 자체 디지털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배급하면서 수익을 더욱 확장하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동시에 이제는 무시하지 못할 덩치가 된 넷플릭스를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월트디즈니가 자체 개발한 OTT 서비스는 이름하여 ‘디즈니+(디즈니플러스)’로, 출시 첫날 접속자 수가 너무 많아 시스템 에러를 겪을 만큼 대중들의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처럼 디즈니플러스는 향후 OTT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디즈니플러스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바로 ‘어떻게 하면 넷플릭스의 CQM(Contents Quality Management)를 따라잡을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소비자들에게 소구하는 만큼, 퀄리티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프로듀서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것 같습니다.


3. 중박 영화의 부재 : 흥행 양극화와 과당경쟁

 올해 11월 기준 19년 동안 흥행 순위에 오른 국내 영화 열 편 가운데 세 편은 CJ E&M에서 투자/제작한 영화였습니다. <극한 직업>,<엑시트>,<기생충>이 바로 그 영화들인데요. 세 영화의 관객 수는 도합 3,500만 명으로 보이며 CJ E&M은 배급사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디즈니가 올해 국내에 배급한 영화들(<어벤저스 : 앤드게임>, <알라딘>, <라이언킹>, <캡틴마블>)과는 불과 약 100만 명 차이를 보인 수치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10월 배급사별 누적 관객 점유율은 CJ E&M이 24.5%로 1위, 월트디즈니코리아가 24.4%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습니다. CJ E&M은 배급사별 관객 점유율 집계를 시작한 2008년부터 줄곧 1위 자리를 지켜왔으나 지난해 롯데컬처웍스(<신과 함께>)에 1위 자리를 내줬고, 2위를 차지한 디즈니에 이어 3위까지 밀렸던 전력이 있습니다.
  • 중소규모 배급사였지만 의미있는 작품으로 반향을 일으킨 영화
    좌 : <벌새>, 우 : <유열의 음악앨범> (출처 : (왼쪽부터) 엣나인필름, CGV아트하우스)

 이처럼 양자 독식 구조인 2강 형태가 만연해지자 영화산업의 양극화가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다양한 영화의 선택권과 콘텐츠의 새로움 대신 천편일률적인 영화 상품에 피로감을 느낀 탓일까요, 연간 전체 영화 관람객 수는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고, 그 폭은 한국 영화가 더 큰 상황입니다. ‘1,000만 영화’라는 개념은 경직된 영화산업을 유연하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1,000만명의 넓은 스펙트럼을 모두 만족시키는 범용적인 영화들의 "범람"을 야기하는 듯 합니다. 극장 영화에 대한 피로감으로 인해 젊은 층 사이에서는 굳이 만 원이 넘는 관람료를 들여 영화관에 가느니 그 돈으로 넷플릭스나 왓챠를 보겠다는 생각이 만연해지고 있습니다.

 올해 소위 '대박작품'을 만든 <기생충>의 봉준호와 <엑시트>의 이상근, 그리고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은 과연 스튜디오의 빼어난 기획 영화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리에서 명성을 떨칠 수 있었을까요? CJ는 아트하우스라는 내부 스튜디오를 보유하며 독립영화 및 이와 관련된 영화제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배급라인도 빠듯하게 준비하고 있는데요. 산업의 부침을 방지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단기적인 처방을 준비하기 보단, 일정한 퀄리티의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수급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의 장기적인 전략과 함께, 이들이 메인스트림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4. 여성영화의 대두

 올해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됐던 영화산업의 내부적 이슈는 바로 ‘여성영화의 양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간 여성의 내밀한 역사와 젠더 감수성을 전경화한 영화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에게는 <피아노>로 유명한 제인 캠피온 감독을 비롯하여 한국에서는 변영주 감독, 이정향 감독 등이 꾸준히 여성의 목소리를 내세우며 관객들과 만남을 이어 왔는데요. 올해만큼 젠더 공동체의 반향을 이끌며 ‘같이 영화 보기’의 사회적 물결을 이끌어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뺑반>과 <걸캅스>가 다소 실망스러운 완성도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관객층의 극장 유입을 시작하게 만든 초입 작품이었다면 <벌새>의 흥행과 더불어 <82년생 김지영>의 대대적인 성공은 "여성이 주인공을 해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라고 말했던 케이트 블란쳇의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소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 좌 : 연대적 체험과 경험적 운동으로서의 영화보기로 흥행하고 있는 <82년생 김지영> (출처 : 롯데컬쳐웍스)
    우 : 폭스 뉴스의 실제 성추문 사태를 영화화한 니콜 키드만 주연의 <밤쉘> (출처 : imdb)

 해외 역시 같은 방향성을 보였는데요. <작은 아씨들>, <허슬러>, <결혼 이야기>처럼 여성이 전면으로 등장하며 그들의 주체적인 욕망과 목소리를 내세우는 영화들이 관객과 평단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올해 4억 3,0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던 <캡틴 마블>을 곱씹어보자면, 젠더적 감수성의 변화가 가장 더디게 나타난다는 장르 영화, 그것도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마블 세계관에서 여성 히어로를 창조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동시에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내년도 라인업을 얼핏 살펴보면, 국내외를 통틀어 여성이 전면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의 모습이 더욱 많아진 듯 합니다. 폭스 뉴스의 성 추문을 영화화한 <밤쉘>은 니콜 키드먼, 샤를리즈 테론, 마고 로비가 주연하고 <빅쇼트>의 작가 찰스 랜돌프가 참여한 최대 기대작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각자의 목소리를 또박또박 밝히는 좋은 영화들을 새해에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길 바랍니다.


5. 기생충의 칸 영화제 수상

 (다소 국수주의적일 수 있지만) 영화 <기생충>의 칸영화제 수상은 봉준호와 CJ 이미경이 만든 쾌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뚝심 있게 아티스트를 지지해주며 그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지원한 이미경의 과단성과 봉준호의 예술적 기민함이 만들어낸 <기생충>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큰 수익을 전세계적으로 거두고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현재 북미 시장에서도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요. 과장이 아니라, 북미에서 올해 개봉된 외국 영화 중 흥행 1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지난 10월 북미 일부 지역에서 개봉된 영화 <기생충>은 개봉 6주 만에 620개 극장에서 1,449억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프랑스, 독일 등 유럽지역과 기타 아시아 지역을 포함한 전 세계 흥행 수익은 무려 1.1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영화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NEON)은 공식 홈페이지에 '제시카 징글'이라는 메뉴를 따로 만들어 오디오 파일 등을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게 했다. (출처 : 네온 홈페이지)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NEON)은 내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을 타깃으로 기생충을 홍보하는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일례로 영화에서 배우 박소담이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라고 노래하는 장면을 '제시카 징글'이라고 이름 붙여 소셜미디어로 전파하는 등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초전인 할리우드 비평가협회상을 앞두고 일각에선 <기생충>이 외국어 영화상은 물론 각본상과 남우조연상, 감독상 중 하나는 더 가져갈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미 해당 영화는 북미 주요 비평가협회에서 다수의 수상 실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3대 비평가협회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전미비평가협회, 뉴욕비평가협회, LA비평가협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고, LA비평가협회에서는 마틴 스콜세지를 제치고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조연상(송강호)도 휩쓸었습니다. 이에 따라 내년도 아카데미에서 영화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상은 기본이고 메이저 부문의 수상까지 점쳐지고 있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이 정도의 파급력과 화제성을 가진 아시아 영화는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래 <기생충>이 유일하다는 평까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과연 해당 영화는 내년 2월 오스카(OSCAR)에서 또 어떤 성과를 보이며 북미 시장의 총아로 거듭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 좋아해

    22
  • 추천해

    0
  • 칭찬해

    0
  • 응원해

    0
  • 후속기사 강추

    0
TOP

Follow us:

FB TW 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