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누구나 마음 속에 그림책 한 권쯤은 있잖아요 - AMORE STORIES
#이재은 님
20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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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누구나 마음 속에 그림책 한 권쯤은 있잖아요

칼럼니스트이재은 님
아모레퍼시픽 조직문화개발팀


 안녕하세요? 조직문화개발팀의 이재은입니다. 작년에는 뉴스스퀘어 '별별취미'에 그림 그리는 사우로 소개되었는데, 올 한 해는 그림 그리는 이야기 대신 그림이 있는 책, 그림책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뵈려고 합니다.

 사우들께 드리는 칼럼에 그림책이라니! 그림책은 아이들 책 아닌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물론 기회가 닿으면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추천 특집도 해볼 예정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림책은 어느 연령대의 누구에게나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이 쉽게 와 닿지 않으신다면, 아래의 이야기를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아이들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설고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에 도착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로 배워야 할 대상이죠.
아이들 마음은 불안과 질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한 내면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불안과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이야기, 문학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대해서 안심하도록, 그래서 성장할 용기를 내도록 말이죠."
(프랑스의 아동문학 평론가 소피 반 더 린덴 인터뷰, '그림책에 마음을 놓다'에서 발췌)

 어떠세요? 소피 반 더 린덴의 말에서 '아이들' 대신 충분히 나이를 먹고 짐짓 어른다운 모습으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우리들을 대입해보아도 크게 다를 게 없지 않나요? 처음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의 일원이 되었을 때, 새로운 조직으로 이동하거나 해보지 않은 일을 맡게 되었을 때, 누군가의 배우자나 부모라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을 때…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삶은 참으로 공평하게 낯설고 거대하고 복잡하며, 새로움은 두려움과 함께, 성장은 불안과 질문의 손을 잡고 우리를 찾아옵니다.

 삶이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공평하게 어려운 것처럼, 다행히 그림책의 위안도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림책은 다른 '어른의 책'들보다 훨씬 짧고 단순하지만, 그만큼 함축적이고 진실한 울림으로 비교할 수 없는 감동과 용기를 줍니다. 앞으로 저의 칼럼 '모두의 그림책'에서는 이 부족한 글을 읽으시는 사우 여러분 모두의 마음이 작은 위안 혹은 답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그림책들을 함께 나누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시간인 오늘은 그림책이 삶의 위안이 된다는 제 주장에 대한 셀프 간증(?)으로 저의 인생 그림책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1980년대생 추억 소환자, 계몽사 <디즈니 그림명작>

 지금 이 칼럼을 읽으시는 분 열 분 중 여덟 분은 아마도 일요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설레는 마음으로 TV 앞에 앉았던 추억을 저와 공유하고 계실 겁니다. 뽀통령도 핑크퐁도 저리 가라 할 절대적 인기를 누리던 바로 그 프로그램!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기 위해서죠. 그리고 TV계에 '디즈니 만화동산'이 있었다면 출판계에는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었던 불세출의 전집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계몽사 <디즈니 그림명작>' 전집입니다. 나름 그림책 덕후(?)를 자처하며 3n살을 먹도록 수많은 그림책을 읽어왔지만, 제 마음속 1번은 초등학교 이래로 계몽사 전집의 디즈니 친구들 이외에는 내어준 적이 없는 그야말로 인생 그림책입니다. 이 시대에 나왔던 그림책들은 삽화가 조악하고 편집, 번역 상태가 좋지 않거나, 전집의 경우 읽을 만한 그림책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세트로 파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 전집만은 <백설공주>, <피노키오> 등 디즈니를 대표하는 명작들을 비롯해 서양의 민담을 엮어낸 듯한 이야기(<단추로 끓인 수프>, <마술 맷돌>), 미키 마우스, 도날드 덕 등 디즈니의 주요 캐릭터가 등장하는 창작 동화들 등 버릴 것이 없는 구성입니다. 사진만으로도 벌써 옛날 추억이 떠오르시는 분들 계시죠?

 저는 특히 <추위를 싫어한 펭귄> 이야기를 좋아했는데요. 펭귄으로 태어났지만 추위를 너무나 싫어한 파블로는 친구들이 즐기는 스키나 수영, 얼음낚시에 끼지 않습니다.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은 파블로뿐이었고, 친구들은 그런 파블로를 이상하게 여겼지요. 하지만 파블로는 펭귄 무리에 끼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따뜻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난로를 지고 나갔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지기도 하고, 따뜻한 물주머니를 신고 나갔다가 얼음이 녹아 차가운 물속에 빠지기도 하고… 그때마다 친구들은 '이제는 포기하고 펭귄으로서 살겠지' 하고 그를 제자리에 데려다 놓지만, 파블로는 좀처럼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이 속한 무리를 떠나 머나먼 모험의 길을 택한 파블로는 수없는 역경을 헤치고 따뜻한 섬에 가닿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다시는 춥지 않은 삶'을 자신의 힘으로 찾은 것입니다.
 '추위를 싫어한 펭귄' 이야기는 디즈니 만화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난 주인공'의 스토리 구조이지만, 부족의 명운이나 부모의 복수 같은 대단한 명분이 아니라 자신이 만족할 만한 소소하지만 행복한 삶을 찾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지금 읽어도 신선한 새로움을 줍니다. 친구나 가족들조차 '특이하고 이상한 아이', '펭귄이라면 으레 추위를 좋아하는 것이 정상인데', '언젠가는 포기하겠지'라며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말이죠. 아마 돌아보면 그런 점이 더욱 저와 가깝게 느껴져서(추위를 지독히 싫어하는 것까지도!) 이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80년 처음 등장해 재판에 재판을 거듭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이 전집은 이후 판형과 디자인을 바꾼 신판으로도 복간되었고, 다른 출판사에서 유사한 전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탄만한 속편이 없어서인지, 추억의 힘인지는 몰라도 신판이나 최신간 전집에서는 <디즈니 그림명작> 특유의 설렘과 감동을 찾아보기 어려운 듯합니다.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도 평화로운 중*나라에서는 이 <디즈니 그림명작>의 구판이 신판이나 최신간보다 훨씬 비싸게 프리미엄이 붙어 있답니다. ^^;
  • (출처 : 네이버 '책 속의 한 줄')


사춘기를 어루만져준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들, <창가의 토토>

 <창가의 토토>는 작가이자 배우인 구로야나기 데츠코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1981년 일본에서 출간된 뒤 가장 많이 팔린 책(단행본)으로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네스북 기록을 갖고 있으며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 번역되어 현재까지도 읽히고 있는 아동문학의 고전입니다. 어른과 사회의 시선에서는 부적응자, 문제아로 치부되던 아이 토토가 도모에 학원이라는 곳의 일원이 되면서, 아이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빛나는 개성과 존귀함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고 각자가 지닌 다양성과 부족함을 모두 포용해가는 법을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저 또한 토토처럼 존중받고 싶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 하나가 간절했던 사춘기 시절에 이 책을 만났습니다. 이야기와 캐릭터, 메시지가 모두 좋은 명작이지만, 저는 투명한 색채, 꾸밈없는 선으로 나직하게 독자를 응시하는 소녀의 초상이 담긴 표지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토토의 초상은 제 책상에도 붙고, 교과서의 표지도 되고, 컴퓨터 바탕 화면에 깔리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고, 세상과의 대척점에 나 홀로 선 것 같은... 요즘 말로 '중2병'의 순간이 사춘기에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요?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마다 불완전한 아이다움과 뿌리 깊은 강인함이 공존하는 토토의 얼굴을 보는 것이 제가 그 시간을 보내는 나름의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창가의 토토>의 표지를 그린 사람은 '어린이와 꽃의 작가', 이와사키 치히로(1918~1974)입니다. 이와사키 치히로는 수채화인 듯 수묵화인 듯, 서양화와 동양화의 경계를 넘어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고, <창가의 토토>등 아동문학의 삽화뿐 아니라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 그림책을 그린 작가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살로 남편을 잃고 제2차 세계대전 때 공습으로 온 가족이 정든 집을 떠나야 하는 경험을 한 후 평생을 반전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반전과 평화를 염원했던 때문인지 이와사키 치히로는 평생 아이와 자연을 그리는 데 천착했습니다. 그림책의 대표작도 <눈 오는 날의 생일>, <작은 새가 온 날>, <비 오는 날 집 보기>를 비롯해 계절 아이 시리즈 등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 안에서 평화롭게 노니는 아이들의 천진함을 그린 책들이 대부분이며, 그 외의 일러스트레이션들도 꽃과 아이 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폭력과 전쟁 앞에 나약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그렸습니다.

 전쟁 같은 하루하루에 지치셨다면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을 곁에 두어보세요. 투명한 색채와 은은한 번짐, 그리고 우리 마음이 들어오라고 만들어둔 듯한 넉넉한 여백이 마음의 평화를 찾아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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