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차의 심리학, 기분을 달래주는 차 - AMORE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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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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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차의 심리학, 기분을 달래주는 차



강호정(姜鎬玎) 교수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 주요 경력
  • 2007 - 현재 연세대학교 교수
    2013 - 2014 미국 Princeton University 방문교수
    2001 - 2007 이화여자대학교 환경공학과 조교수, 부교수
    1999 - 2001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 박사후 연구원

  • 학력
  • 1986 - 1990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 이학사
    1993 - 1995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1995 - 1999 영국 University of Wales, Bangor, Ph.D.

  • 대표 저서
  • 2020 다양성을 엮다, 이음출판사
    2012 와인에 담긴 과학, 사이언스북스




흔히들 차(茶)가 신체 건강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여러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서양인들은 신비한 동양 문화의 상징으로 요가와 더불어 차문화를 꼽는다. 같은 기호음료지만 커피는 각성과 흥분을 상징하고, 녹차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인지 능력을 올려준다는 믿음도 널리 퍼져 있다. 실제로 차의 심리적 영향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차를 마신 후에 스트레스 지표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 농도가 낮아지는 것으로 보고됐다. 또 녹차를 하루에 4 잔씩 장기적으로 마시면 우울증이나 치매 발병률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차에 어떤 성분이 있어서 사람들의 기분을 달래주고,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결국 녹차에 있는 독특한 성분에 주목하게 된다. 차의 구성 물질은 EGCG(Epigallocatechin gallate)와 같은 카테킨 성분을 포함한 폴리페놀이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특이한 아미노산 중 하나인 테아닌(Theanine)이 2% 정도 있는데, 이들이 심리적 기제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물 실험 결과에 따르면, EGCG만 따로 섭취해도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기억력이 증가하는 것이 알려졌고, 테아닌의 경우에는 카페인과 동시에 섭취하면 EGCG 섭취 때와 비슷한 결과가 관찰됐다. 녹차도 전체 성분의 1∼3% 정도가 카페인이라 커피와 같은 각성이나 불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테아닌과 동시에 작용하면 전혀 반대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와 같은 성분의 정확한 작용 기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적절한 용량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동물 실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은 경우라고 할지라도, 실제 녹차를 마셔서 섭취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으로 실험했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녹차에서 이런 효과를 얻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리나라에서도 녹차를 마시는 것이 심리적으로 도움이 될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다. 한국에서 수행된 역학 (Epidemiology) 연구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녹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우울증이 발병할 확률이 21% 낮게 나타났다. 싱가포르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55세 이상의 사람들 중에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기억력과 정보 처리 능력이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들은 모두 역학 연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차 자체보다도 차를 준비하고 마시는 과정 자체에서 사람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제주 오설록 서광차밭>



통계학에서 ‘중첩 편향’이라고 부르는 효과다. 실제로 6주간 홍차(black tea)와 이와 유사한 위약(placebo)을 각각 마시게 하니, 위약을 마신 경우에도 홍차를 마신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로 코르티솔 수준이 낮아지고 평안함을 느끼는 정도도 증가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차의 화학적 성분보다도 차 마시는 분위기 자체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줬다고 분석할 수 있겠다.

이런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더 복잡한 분석 방법들도 동원되고 있다. 자기 뇌파 검사법 (Magnetoencephalo- graphy)과 같은 장비를 이용하여 뇌파를 분석하면 사람의 심리적인 상태, 특히 스트레스 레벨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테아닌과 카페인을 같이 섭취하면 ‘인지능력은 증가하면서도 뇌가 안정하게 편안히 쉬는 상태도 증가하는’ 상황이 관찰됐다.

보통 인지능력이 증가할 때는 뇌가 왕성히 활동한다. 반대로 뇌가 편안히 쉬는 상태, 즉 멍하니 있을 때는 인지 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녹차를 마실 때 처럼, 테아닌과 카페인을 같이 섭취한 상태에서는 이런 특이한 일이 벌이지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두 물질이 함께 작용하게 되면, 배경의 뇌파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추정하고 있다. 즉 실제 일과 관계없는 뇌의 부분이 매우 안정적으로 평안한 상태가 유지되고, 이것이 일을 해야 하는 뇌의 활동이 더 정확해지고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골프를 칠 때, 필요 없는 근육의 힘을 빼야 공이 더 멀리 나가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EGCG를 이용한 동일한 실험에서도 모든 뇌파를 증대시켜 안정도와 집중력 모두를 향상시키는 효과가 관찰되기도 했다.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기전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테아닌은 혈 뇌 장벽(Blood-brain barrier)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에 뇌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 세포 수준의 연구에 따르면 테아닌은 실제로 스트레스 호르몬을 발생시키는 뇌하수체에 작용해서 호르몬 농도를 낮출 수 있음이 밝혀졌고, 동물 실험에서 GABA(γ-aminobutyric acid)와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증가시키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이는 테아닌 성분이 분노 지수를 낮출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연구에도 불구하고 카페인과 달리 녹차의 주요 성분에 대한 뇌 세포 수준의 반응은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결과만 보아도, 녹차를 마시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면서도 일의 집중력을 높여줄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직의 성과를 높이고 싶은 매니저나 대학원생의 좋은 연구 결과를 돕고 싶은 지도교수는, 어쩌면 사무실이나 연구실에 커피머신 대신에 녹차 다기 세트를 들이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 본 칼럼은 매일경제 ‘강호정의 차의 테루아르와 과학’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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