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설(雪)’과 ‘록(綠)’에 숨은 녹차의 떼루아 - AMORE STORIES
#전문가칼럼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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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설(雪)’과 ‘록(綠)’에 숨은 녹차의 떼루아




아모레퍼시픽과 함께하는 강호정 교수의 '차의 떼루아, 차의 과학'

차는 인류가 가장 많이 소비하고 있는 음료 중 하나로, 재배 역사가 가장 오래된 음료 중 하나입니다. 차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품질에 대한 다양한 서적은 발간되었으나, 차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한 글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강호정 교수와 함께 차에 대한 최신의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건강’, ‘환경’, 그리고 ‘첨단 과학’의 세가지 큰 카테고리를 통해 뉴스스퀘어 연재 칼럼으로 만나볼 예정입니다.



강호정(姜鎬玎) 교수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 주요 경력
  • 2007 - 현재 연세대학교 교수
    2013 - 2014 미국 Princeton University 방문교수
    2001 - 2007 이화여자대학교 환경공학과 조교수, 부교수
    1999 - 2001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 박사후 연구원

  • 학력
  • 1986 - 1990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 이학사
    1993 - 1995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1995 - 1999 영국 University of Wales, Bangor, Ph.D.

  • 대표 저서
  • 2020 다양성을 엮다, 이음출판사
    2012 와인에 담긴 과학, 사이언스북스




와인의 열풍이 좀 잠잠해 지나 싶더니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며 와인 소비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더불어 커피나 녹차와 같은 기호 음료의 소비량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집에 갇혀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생긴 일이죠. 사실 전 세계의 소비량 측면에서 보면 차는 물 다음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는 음료입니다. 그렇지만 와인이나 커피에 비해서 고가의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름이나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떼루아(Terroir)는 원래 고급 와인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프랑스 사람들이 도입한 개념입니다. 똑같은 품종의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수확해 같은 방법으로 발효를 해도 지역별로, 심지어 서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와이너리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이 차이 나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땅의 지형, 기후, 식물, 토양의 특성뿐 아니라 그 와인을 만드는 농부의 작법과 그 과정에 얽혀있는 문화를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이 개념이 최근 들어서는 커피는 물론 녹차에서도 적용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입니다.



<제주도 ‘돌송이차밭’>



처음 ‘설록’이라는 브랜드 명을 들었을 때 떠오른 생각은 고풍스러운 극동아시아의 문화였습니다. 아마도 오래된 한시 구절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그런데 이 차를 재배하는 제주도 ‘돌송이 차밭’을 처음 방문한 날 이 명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눈 덮인 한라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드넓은 초록색 밭이 ‘설록(雪綠)’을 잘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의미뿐 아니라 이 녹차의 떼루아를 결정짓는 요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돌송이차밭’에서 바라본 한라산>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화산섬 토양의 특성, 돌송이 차밭의 경사에 따른 일사량, 한라산 때문에 일어나는 낮과 밤의 일교차와 안개, 가까운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실린 염분, 그리고 유기농 비료만 사용하는 재배법 등이 이 차의 떼루아를 결정짓는 요소일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 연구팀은 토양 안의 화학적 성질과 미생물의 특성에 대해서 연구 중에 있습니다.

보통의 식물들은 중성이나 약산성의 토양에서 잘 자라는데, 차나무는 독특하게도 산성의 토양이 최적의 환경입니다. 제주도 차밭은 기반암이 화산암인데다 오랫동안 차밭에 퇴비와 유기농 비료를 가한 덕분에 pH(수소이온농도) 지수가 매우 낮습니다. 바로 주변의 토양과는 아주 다른 특성인거죠. 또 돌송이 차밭의 토양은 칼륨(K) 성분이 아주 풍부한데, 이것은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토양 미생물에 대한 분석 결과 유산균을 생성하는 미생물을 포함해 아주 다양하고 독특한 종들도 많이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것이 ‘설록’을 규정지을 수 있는 새로운 떼루아의 요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자연적인 환경 외에도 차나무를 키우고 재배한 후 차를 가공하는 과정도 떼루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마치 같은 재료를 갖고 음식을 만들어도 어머니 ‘손맛’을 따라갈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일본의 ‘교쿠로(玉露)’와 같은 고급 녹차와 마찬가지로 차 잎을 따기 전 햇빛을 막아주면 이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식물은 엽록소를 더 많이 만들어냅니다. 차의 향과 맛이 풍부해지고 상대적으로 쓴 맛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죠. 또 차 잎을 따는 방법이나 덖는 방법도 바로 떼루아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 ‘돌송이차밭’ 채엽>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제주도 천혜의 자연 특징과 인간의 노력이 버무려진 ‘설록’ 떼루아의 비밀을 과학자들의 첨단 연구 방법으로 밝혀내는 차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안전한 집안에서 따뜻한 녹차를 마시며 과학적 발견의 진행을 즐겨주시길 기대합니다.


※ 본 칼럼은 매일경제 ‘강호정의 차의 테루아르와 과학’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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