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커다란 바다로 흘러가는 아름다움의 샘 - AMORE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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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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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커다란 바다로 흘러가는 아름다움의 샘



서광차밭에 자리한 옛 시절의 동백기름틀

 한 여인이 있습니다. 곱게 가르마 탄 머리에 흰 치마저고리는 근대를 살아온 여성들의 차림새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편안하고 여유로운 자세, 이가 드러나도록 활짝 웃는 표정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당당함이 느껴집니다. 이 평범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여인이 바로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 장원 서성환 님의 어머니 윤독정 여사입니다.
그녀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고향인 개성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장사를 시작한 윤독정 여사는 등잔 기름, 염색 물감, 머릿기름 등을 판매했습니다.

 차츰 장사가 손에 익고 눈이 뜨이자, 좀 더 욕심을 냈습니다. 남의 물건을 받아다 파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직접 물건을 만들어 팔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녀가 특히 눈여겨본 것은 머릿기름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머리를 단정히 가꾸기 위해 공을 들였습니다. 그 시절 여성들에게 머릿기름은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윤독정 여사는 많은 머릿기름 원료 중에서도 동백기름을 고수했습니다. 냄새가 나지 않고 윤기가 오래 지속되면서도 때가 잘 끼지 않는 고유의 특성 때문이었죠.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한 남부에서만 자생했지만, 그녀는 보부상을 통해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았습니다. 이렇게 구한 동백 열매와 오랜 시간 쌓아온 비법으로 탁월한 머릿기름을 제조해 가게에 내놓자, 윤독정 여사의 동백기름은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졌습니다. 품질과 신용 속에서 꾸준히 팔려나간 동백기름 사업은 어느덧 활기를 띠어 마침내 가족들의 도움이 없이는 안 될 만큼 자라났습니다.


 동백기름 제조와 잡화점 운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윤독정 여사는 본격적으로 화장품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그녀가 도전한 제품은 바로 '미안수'였습니다. 미안수는 피부를 부드럽게 정돈하는 액체 상태의 화장품으로, 요즘의 스킨, 로션에 해당했습니다. 그러나 판매는 생각만큼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집집마다 나름의 미안수 제조 방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관습의 장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뒤로 윤독정 여사는 구리무(크림), 백분(파우더) 등으로 하나 둘 화장품 제조의 종류와 품목을 늘려갔습니다. 그녀가 만든 화장품은 차별화된 품질이 알려지면서 개성은 물론 그 주변 지역으로 판매가 확대되었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도붓장수들이 상품을 받아가기 위해 일을 거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후 윤독정 여사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인기를 누리며 번창하고 있던 자신의 가게와 상품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가게는 '창성상점', 제품에는 '창성당제품'이라고 표기해 전문 수공업 제품임을 강조했습니다.
  • 1930년대 개성 시가지 전경

  • 창성당제품이 입점한 김재현백화점




젊은 시절의 장원 서성환 님

 윤독정 여사는 서성환 님이 학교에 다닐 때도 잔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사업가로서 아들의 소질과 장래성을 눈여겨봤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아들이 학교를 졸업하자 좀 더 계획적으로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성환 님은 원료를 구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하루치 도시락 3개를 들고 개성에서 서울까지 심부름하러 다니며 사람을 배우고 물건을 익혔습니다. 조금 더 성장한 후에는 직접 화장품 제조 방법을 전수받고, 거래처 도매상에 물건을 납품하거나 직접 시장에 나가 판매 기술을 익혔습니다. 언제나 최상의 원료로 최고의 품질을 추구하는 윤독정 여사의 경영 철학은 서성환 님에게 고스란히 전수됐고, 물건을 파는 일은 진심을 주고 마음을 사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으며 기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하던 그때, 태평양전쟁이 발발해 서성환 님은 징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전쟁 속에서도 그는 늘 이루고 싶은 꿈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중국 베이징에서 해방을 맞은 서성환 님은 곧바로 고향으로 가지 않고 중국 대륙을 둘러봤습니다. 중국의 문물들, 중국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그에게 신세계로 다가왔습니다.

 개성으로 무사히 돌아온 그는 가게 이름을 '태평양상회'로 바꾸고, 'TAI PYUNG YANG'이라는 영문 표기를 내세우며 나아갈 바를 분명히 했습니다. 해방 후에도 정세는 여전히 불안했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서울로 근거지를 옮긴 그는 남창동 한 자리에 '태평양화학공업사'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훗날 아름다움과 건강을 온 누리에 전하는 아모레퍼시픽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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