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영 이념을 선포하는 창업자 장원 서성환 님
미래를 대비할 토대가 된 태평양중앙연구소 전경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특수에 힘입어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 활기는 1990년대의 시작과 함께 거품처럼 가라앉았습니다. 1990년 발발한 걸프전과 국제 유가 상승으로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이어졌기 때문이지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화장품 시장은 완전 개방의 물살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화장품 전 품목 수입 개방으로 장업계는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시장의 4분의 1 정도를 외제 화장품 브랜드에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매년 성장을 이어오던 아모레퍼시픽(당시 태평양)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이래로 지속해온 양적 성장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심정으로 글로벌 경쟁을 뚫고 세계로 나가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미련 없이 사업 다각화를 접고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밀고 나갔습니다. 부실한 계열사들을 정리한 후, 화장품과 의약품 등 주력 사업만 남긴 것입니다. 사업 부문의 집중화와 동시에 비대해진 조직과 관료적 마인드를 타파하는 내부 혁신도 함께 추진했습니다.
1997년 경제 위기가 가라앉자 아모레퍼시픽의 구조조정이 재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마치 IMF 경제 위기를 예견한 듯이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했기 때문이지요. 화장품 사업을 중심으로 '미와 건강'에 집중한 아모레퍼시픽은 태평양중앙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갔습니다. 그리고 외형을 정리한 만큼 내실을 다지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1992년 새로 정립한 경영 이념
1993년 변경한 심벌마크, 로고 및 상호
'쓰던 화장품 바꿔주기' 캠페인 포스터
새로운 경영 이념을 발표한 아모레퍼시픽은 기업을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태평양 한물결운동'으로 내부 혁신을 펼쳤습니다. 이는 인력과 조직을 재정비하고, 진정으로 고객과 사회를 사고와 행동의 중심에 둘 수 있도록 내부 구성원들의 의식을 개혁하는 것이었는데요. 품질 관리에도 한층 더 심혈을 기울여 공정 불량 줄이기, 클레임 재발 방지하기, 마무리 품질 향상하기 등의 노력을 지속해서 전개했습니다. 1993년 3월에는 회사의 이름을 '주식회사태평양'으로바꾸고,심벌마크,로고의 수정과 사가(社歌) 제작 등을 통해 회사 이미지 통합 작업을 추진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새로운 경영 이념의 뜻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은 1993년 창립기념일에 선언한 '무한책임주의'와 그 실천 운동입니다. 이날 창업자 장원 서성환 님은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아모레퍼시픽의 모든 임직원이 한없는 책임을 진다는 무한책임주의를 선언했습니다.
무한책임주의는 '쓰던 화장품 바꿔주기' 캠페인을 통해 품질에서만큼은 자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당장 손해가 크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평생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아울러 경쟁 상대인 수입 화장품 회사에서 하기 어려운 서비스로 소비자의 감성을 파고들 수 있으리라는 계산도 염두에 두었지요. 뜻밖에도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대단한 고객 만족 경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무한책임주의는 태평양 한물결운동의 구심점이 되면서 파문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미용과학연구실의 아모레 피부분석 시스템 운영, 미용부 고객지원과의 아모레 코스메틱하우스 개설, 수원 공장의 바코드 시스템 운영 등이 모두 1994년부터 각 부문에서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한물결운동의 일부였는데요. 이후 무한책임주의는 품질과 서비스, 환경을 아우르는 아모레퍼시픽 고객 만족 경영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마케팅 전문가 육성을 위해 운영한 마케팅스쿨
마산 물류 센터의 자동화된 내부 시설
아모레퍼시픽은 새로운 경영 이념의 정착과 확산에 힘을 기울이는 동시에 효율적인 인력 운용을 위한 인사 제도 및 조직 관리 체계도 정비했습니다. 1994년부터는 새로운 인사 제도를 도입해 조직 구조를 수평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했습니다. 연공서열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승진 기회를 부여하는 능력주의 인사 제도와, 그에 따라 승진한 인력을 수용하기 위해 직위와 직책을 분리해 운영하는 담당제를 시행한 것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인력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유능한 인재가 기업 발전의 원동력임을 깊이 이해하며 인턴사원 제도 활용, 사내 연수 교육과 사외 위탁 교육 실시 등으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육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특히 국제 마케팅 전문가로 육성할 인재를 선발해 6개월간 일본 도쿄에 체류토록 함으로써 현장감 있는 국제 마케팅을 연구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 모든 임직원의 인적 정보를 관리하는 '인적자원정보시스템'을구축함으로써 직원들의 적성과 소질을 고려한 업무 부여가 가능해졌습니다.
1995년까지 계속된 생산·판매·물류 통합 프로젝트의 기반 구축 단계에서는 각 부문의 체질 강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생산 부문은 기존의 대량 생산 체제를 수요 예측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소량 다빈도 생산 체제 및 단납기 생산 대응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이는 소비자들의 기호가 점차 다양해지고, 제품 사용 시기가 단축되어가는 추세를 반영한 대응이었습니다.
판매 부문은 대리점 경영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본사와 대리점 간에 컴퓨터를 통한 전자 자료 교환 통신 시스템을 갖춤으로써 대리점의 매출을 정확히 파악해 생산 계획에 즉시 반영했습니다. 물류 부문은 전국에 흩어져 있던 25개 재고 거점을 4개 재고 보관 센터와 5개의 배송 센터로 통폐합해 물류 거점을 재구축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아모레퍼시픽은 고객 수요에 맞는 공장의 적기 생산, 물류의 적기 배송, 영업 우위 체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아모레퍼시픽은 내부 혁신 운동을 통해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으로 1등 기업으로서의 역량과 경쟁력을 탄탄히 쌓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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