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현대 과학으로 밝혀내는 녹차 맛의 비밀 - AMORE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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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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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현대 과학으로 밝혀내는 녹차 맛의 비밀



강호정(姜鎬玎) 교수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 주요 경력
  • 2007 - 현재 연세대학교 교수
    2013 - 2014 미국 Princeton University 방문교수
    2001 - 2007 이화여자대학교 환경공학과 조교수, 부교수
    1999 - 2001 미국 University of Wisconsin, Madison, 박사후 연구원

  • 학력
  • 1986 - 1990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 이학사
    1993 - 1995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 석사
    1995 - 1999 영국 University of Wales, Bangor, Ph.D.

  • 대표 저서
  • 2020 다양성을 엮다, 이음출판사
    2012 와인에 담긴 과학, 사이언스북스




커피나 와인에 비해 녹차에서는 강한 신맛이나 단맛을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녹차를 많이 마셔보지 않은 사람들은 녹차에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녹차를 즐기다 보면 점점 다양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서양 채색화에 비해 동양화에서 여백의 미가 중요한 것과 같이, 녹차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여러 맛과 향 말이다.

오래전부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맛으로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등이 알려져 있다. 이제는 잘못된 정보로 알려졌지만, 각 맛을 주로 느끼는 혀의 부위가 다르게 그려진 이미지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대 생물학의 발전은 우리가 맛을 느끼는 기작을 정확히 규명해냈다. 여러 맛은 혀나 입안에 있는 ‘미뢰(味蕾, Taste bud)’라고 하는 작은 세포 덩어리 표면에 붙어 있는 단백질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 입안에 들어온 물질이 녹아서 액체 상태가 된 후 맛을 감지하는 여러 가지 단백질에 붙어서 전기적인 신호를 일으키면, 이것들의 조합이 우리 머릿속에서 특정한 맛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가 녹차를 마실 때 단맛, 신맛 등을 느끼는 것도 녹차에 녹아있는 물질들이 미뢰의 단백질과 다양한 형태로 결합하면서 생기는 신경세포의 신호를 우리가 느끼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매운맛, 떫은맛도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맛과는 화학적으로 전혀 다른 반응이다. 이것들은 미뢰의 단백질에 결합해서 신경에 전기적인 신호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통증이나 압력을 관장하는 세포를 자극해 생기는 다른 종류의 자극이다. 혀가 아플 정도로 맵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틀린 말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화학 물질들 중에서 인간은 이런 특정한 맛들을 더 잘 감지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진화생물학은 흥미로운 설명을 내놓고 있다. 우선 단맛은 우리 몸의 에너지원이 되는 당분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먹을 것이 귀했던 인류의 조상들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예민하게 느끼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쓴맛은 독성 물질을 감지할 수 있게 해줘 생존에 도움이 된다. 식물들은 먹히지 않기 위해, 동물이나 미생물에 해가 되는 대사산물들을 만들어낸다. 식물이 만드는 물질은 보통 쓴맛을 내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 맛을 감지하면 먹으면 안 된다고 인식했을 것이다.

신맛도 마찬가지다. 먹을거리에 미생물이 번식하면 여러 가지 유기산들이 만들어진다. 쉽게 말하자면 음식이 썩으면 쉰내나 시큼한 맛이 나는 것이다. 이것을 잘 감지해야 상한 음식과 안전한 음식을 구별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짠맛은 여러 가지 염분을 감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염분은 우리 혈액과 체액이 정상적인 작용을 하는 데 필수적인 물질이다. 단식을 하더라도 물과 소금은 소량 섭취해야 하는 것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칠맛은 여러가지 아미노산에서 흔히 느껴지는데, 이것들도 우리 몸에 필요한 에너지와 질소 물질을 공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국 우리가 특별히 다섯 가지 맛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게 된 이유는 이들 맛의 감지가 우리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녹차의 맛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는 앞서 말했던 떫은맛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녹차가 함유한 탄소 물질 중에는 ‘페놀릭’ 계열의 물질이 많다. 이들은 혀 미뢰 부근의 단백질과 엉기거나 세포 주변을 둘러싼 물의 막에 엉김을 일으켜서 신경에 당겨지는 느낌을 전달하게 한다. 과학자들은 고급 녹차를 결정하는 맛 중에 이런 떫은맛의 중요성에 주목해, 녹차의 어떤 물질이 이런 역할을 하는지 분석하기도 했다. 특히 생물체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물질을 한꺼번에 분석하고 그 패턴을 이해하려는 연구 분야인 ‘대사체학(metabolomics)’의 발전은 녹차의 떫은맛 분석에도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에서 액체 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Liquid Chromatography-Mass spectrometry)를 이용해 47가지 녹차 시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총 86가지의 서로 다른 ‘페놀릭’ 물질을 검출할 수 있었다. 고급 녹차의 독특한 떫은맛도 그렇고, 한 종류의 차도 수확한 계절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에는 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셈이다. 이렇게 분석 기술의 발전에 따라 녹차의 맛을 결정짓는 물질에 대한 정보도 점점 더 풍부해질 것이고, 언젠가는 휴대폰 센서에 차 한방울을 떨어뜨려 보면 고급 녹차인지를 쉽게 판별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 본 칼럼은 매일경제 ‘강호정의 차의 테루아르와 과학’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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