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 우리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물리적 이동 그 이상을 경험하고 있다. 대화의 방식은 물론 콘텐츠 역시 변화한다. 브랜드와 소비자의 소통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오프라인 채널만큼 강제성을 띠는 메시지 노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일방적인 콘텐츠와 전달 방식은 선택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소비자와의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다른 방도가 없다. (새로워서) 눈에 띄거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화자의 매력도가 압도적이어야 한다.
기업이나 브랜드는 이 마지막 ‘화자의 매력도’ 측면에서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기존에 단단한 MZ세대 매니아층을 확보해 온 브랜드(예를 들어 Apple, Nike)들은 디지털 채널에서 역시 콘텐츠에 대한 높은 호감과 관여를 이끌어 내기 수월하다. 반면 그 외 소비자의 top-of-the-mind에 포함되지 못하는,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의 브랜드는 콘텐츠 자체로 승부를 내야 한다. 그리고 이 콘텐츠는 새롭거나 유익하되, 자연스럽게 브랜딩과도 연결되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한국의 대표 뷰티 기업으로서의 명성은 이미 공고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소비자와 대화를 이끌어 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은 zero-base에서 시작했다. 매일 접하는 모바일/온라인의 브랜딩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의 피로도가 연일 최고점을 향해 달려가는 때에, 어떤 콘텐츠가 대화의 첫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화장품을 직접 발라보지 않고 영상만으로 질감을 느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해답으로 아모레퍼시픽의 ‘Beauty Point’ 유투브 채널은 ‘Cosmetics ASMR’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출했다. 이 채널을 개발한 사내 벤처팀은 “화장품을 직접 발라보지 않고 영상만으로 질감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화장품의 내용물을 감각적으로 부수고 내용물을 붓는 ASMR 영상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해 차별화시켰다. 기존 화장품 채널들이 제품의 장점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 채널은 화장품을 부수는 역발상으로 심미적 쾌감을 극대화한 것이다.
기획의도는 적중했다. 한 달에 걸쳐 제작되는 ‘힐링 타임즈’ 영상은 콘텐츠의 신선함과 중독성으로 MZ 세대를 사로잡았다 (전체 구독자의 약 90%가 10~30대다!). 작년 5월 공개된 힐링 타임즈 ‘핑크’ 특집편은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 마몽드, 에스쁘아 등의 핑크색 상품만 모아 망가뜨리며 한 달 만에 1000만 조회 수를 돌파했다. 국경도 없는 이 non-verbal 영상들은 해외 팬층까지 두텁게 확보했다. 첫번째 영상이 게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2021년 3월 기준 구독자 수가 80만명에 가깝다. 기업 채널, 그것도 단일 형식(ASMR)을 차용하는 채널이라는 점에서 그 성과는 더욱 놀랍다.
그리고 2020년, 아모레퍼시픽의 연구소와 SCM(Supply Chain Management)이 손잡고 LAB.point라는 유투브 채널을 개설했다. 화장품을 써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제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과 제품이 만들어지는 공간이 궁금했을 터, 이에 대한 솔직한 답변을 영상으로 전하겠다는 취지다. 그 동안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된 적 없는 제조/물류 공정이 리드미컬한 호흡으로 소개되기도 하고, 한켠에서는 고즈넉한 춘천의 한옥에서 자연 원료로 핸드크림을 사부작 사부작 만드는 연구원의 모습도 지켜볼 수 있다. 이 역시 직관적으로 메시지가 전달되는 non-verbal 영상들이 주를 이루고, 다양한 연구, 제조 스토리가 업로드 되고 있다.
브랜딩 콘텐츠의 ‘Digital transformation’은 비단 유투브 채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브랜드의 내러티브를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시도들은, 이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등 서로 다른 형식과 특장점을 가진 커뮤니케이션 채널들에 맞춰 진화하고 있다. 기업이나 브랜드가 대중과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도, 콘텐츠의 내용과 구성을 전달하는 방법도, 서로의 피드백을 수용하는 문화도 모두 급격한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은 얼마 전 임직원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Falling Forward’. 디지털 시대의 소통 역시, 앞서 의제를 던지고 대화를 이끌어 가는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새로운 시도들이 milestone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