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는 예술, 지속가능한 미래를 조망하다. - AMORE STORIES
#지구의 달
202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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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는 예술, 지속가능한 미래를 조망하다.


작가 소개 김기창

장편소설 『모나코』와 『방콕』,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단편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등을 집필한 소설가로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주최하고 인류 문명에 대한 “자각-Awakening”을 주제로 한 <2021 서울국제작가축제> 등에 참여했다.



<호흡>, 이스트 해담, 코네티컷, 미국(2009, breath, East Hadam, Conneticut, USA 2009)
《박봉기: 두 번의 산책》전, 경남도립미술관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지구의 날은 1969년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기름 유출 사고를 계기로, 1970년 4월 22일 미국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과 하버드 대학생 데니스 헤이즈가 지구의 날 선언문을 발표하며 행사를 진행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은 2009년부터 정부에서 ‘기후변화주간’을 지정하며 공식적인 행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생명체는 산과 바다, 물과 공기 등과 같은 지구의 자연환경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지구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특정한 날을 정해 이를 기념하는 것은 지구의 존재 가치를 잊고 지낸 지난날의 실수를 반성하는 의미와 함께 지구의 자연환경이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당하고 있음을 역으로 보여준다.

지구의 운명을 담고 있어 발간될 때마다 화제가 되고 있는 IPCC 보고서는 지난해 발표한 6차 보고서에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안으로 제한하기 위해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2030년까지 43%, 2050년까지 84%를 감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말하자면 ‘1.5도’와 ‘2050년’은, 인류가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절하지 못했을 때 지구에 돌이킬 수 없는 특이점이 오는 온도와 시기라 할 수 있다. 4월 22일과 1.5도, 그리고 2050년은 인류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숫자이다.



불확실해진 사계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표지



<2050 - 불확실한 사계>라는 클래식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다. 비발디의 <사계>를 편곡해서 들려주는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편곡자는 인공지능(AI)이었고, 편곡 방식은 2050년 지구의 기후 상황을 예측한 데이터에 근거해 변주하는 것이었다. 한번 상상해보자. 비발디가 <사계>를 작곡할 때 마주했던 풍경과 2050년 우리가 마주해야 할 풍경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닐까?

자전축이 기울어진 지구가 공전을 멈추지 않는 한 계절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50년의 봄은 춥고 축축한 겨울처럼 음울할지도 모른다. 예전보다 훨씬 일찍 찾아온 여름은 열대야와 폭염이 잠잠한 날이 없을지도 모른다. 가을은 불과 일주일 안에 끝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겨울은 폭설과 폭우가 번갈아 내리며 끊임없이 으르렁거릴지도 모른다.

‘모른다’라고 서술했지만 AI가 편곡한 <사계>는 ‘그럴 것이다’라고 답했다. 봄의 화사함, 가을의 경쾌함을 드러내는 화음은 확연히 줄어들었고, 여름과 겨울은 원곡에 없던 타악기의 불길한 소리가 더해진 불협화음을 들려주며 각각의 격렬함과 잔인함이 증폭돼 있었다. 한국은 그나마 나았다. 이 클래식 공연은 세계 각지에서 진행됐는데, 편곡 시 사용하는 기후 데이터를 지역마다 달리했다. 그 결과, 어떤 지역의 <사계-가을>은 아예 사라졌고, 또 다른 지역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수로 러닝 타임 내내 침묵만이 흘렀다. 사실, 2050년까지 상상할 필요도 없다. 지난 몇 년간의 기후는 그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역대 수치를 매해 갱신하고 있는 세계의 평균기온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런 계절의 불확실함이 우리 삶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기후위기를 소재로 한 소설들을 엮은 단편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의 앞머리에 나는 괴테가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쓴 문장을 인용했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은 외부적 사물의 규칙적인 회귀에서 기인한다. 밤과 낮, 사계절, 개화와 결실의 순간.”

봄과 가을이 줄어들고, 여름과 겨울만이 득세하는 세계는 우리가 그동안 당연히 누려왔던 즐거움 역시 절반만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절반의 즐거움 역시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사이즈가 커진 폭풍 해일과 전 지구적 산불, 각종 통신 시설과 도로를 마비시키는 폭설은 일부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근대 인류 문명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사계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디스토피아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따라서 근래, 근대 문명을 비판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탐색하는 예술이 부쩍 늘어난 상황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파국을 막기 위해 인류는 달리 감각하고,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해야 한다는 것.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시도


<호흡>, 누사 헤드, 퀸즐랜드, 호주, 2005 (Breath, Noosa Heads, Queensland, Australia,2005)
박봉기 작가의 《박봉기: 두 번의 산책》전 전시 전경, 경남도립미술관



예술이 자연의 모방이라 믿던 시절, 예술가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자연의 냉혹함을 두려워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고혹적인 자연의 모습으로 도가적 이상향의 세계를 표현했고,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는 조그만 증기선의 급박한 상황을 눈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의 압도적인 위엄을 통해 보여주었다. 예술은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왜소함과 겸손함을 표현하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근대가 무르익으며 이런 겸손함은 빛을 잃었다. 자연을 극복 가능한 인류 문명의 수단으로 여기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았을 때, 예술가들 역시 자연을 색종이처럼 오리고 찢고 지우는 작품을 선보였다. 자연을 짓누르는 건축물과 각종 합성물질과 플라스틱을 활용한 조각들, 밤하늘의 별빛을 지워버린 화려한 장식 조명들을 보라. 게다가 전시 후 남는 쓰레기들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근대는 예술 그 자체가 환경 문제의 주범 중 하나가 되는 시절이기도 했다.


작가 박봉기, 2009



그리고 기후위기로 지구 생명체의 지속가능성이 위협을 받는 현재가 도착했다. 예술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금의 상황을 굽어본 결과, 예술가들은 이런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자신을 포함한 인류의 생활방식과 인류가 누리는 근대 문명은 재고되어야 할 문제적 대상이라는 것.

사람들이 사용하고 버린 폐품을 자신의 그림에 적극적으로 사용한 로버트 라우션버그를 위시한 일군의 작가들은 1950년 이후 부서진 자동차 부품, 찢어진 타이어 같은 산업폐기물을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정크아트(junk Art)를 선보였다. 200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에코아트 프로젝트(EcoArt Project)에서는 전 세계 600여 명에 달하는 예술가들이 기후변화, 환경오염, 산림, 청정에너지, 재활용, 지속가능한 발전 등을 주제로 페트병, 해안 쓰레기, 비닐봉지를 사용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고, 2014년,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코펜하겐 시청 광장에 녹아내린 그린란드 빙하를 활용한 <얼음 시계 Ice Watch>라는 작품을 설치해 지구온난화를 경고했다. 기업들 역시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RE100’에 대한 가입뿐만 아니라 환경을 주제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과 협력 작업을 활발히 진행해나가는 중이다. 이런 활동들이 가리키는 지점은 명확하다. 인류의 지난 생활방식과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 등으로 대변되는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자각 없이 지구 생명체의 지속가능성을 말할 수 없다는 것.



미래를 조망하는 현재의 예술


영국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올리비아 랭은 자신의 저서 『이상한 날씨』에서 “예술이 저항과 회복에 관련을 맺는 방식”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위기의 시대에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묻고 답한다. 예술이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에 올리비아 랭은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가능성을 향한 훈련의 장”이라고. 예술은 현실이 아니지만 가능한 미래, 올바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다. 그에 응답이라도 하듯, 현재 많은 예술가와 미술관들은 눈앞에 닥친 위기를 직시하고, 더욱 나은 미래를 조망하는 작품과 전시를 제작, 기획하고 있다. 올 봄과 여름에 준비된 전시들은 인류와 인류 문명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는 시인이자 조형예술가, 그리고 행위예술가인 성찬경의 개인전 《청금루 주인 성찬경》이 열리고 있다. 성찬경은 1960~70년대부터 개발지향적 문명을 비판했던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집안 대대로 내려온 조선 후기 문신 이익회의 서재 이름을 딴 ‘청금루’와 자신의 집을 버려진 사물을 위한 전시장으로 꾸민 ‘유쾌하게 빌었다’ 등의 기획을 통해 물질문명의 이면을 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전시는 2022년 6월 26일까지 계속된다.


《청금루 주인 성찬경》 전시 전경,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사진 남기용

<무제>, 오토바이 부속, 선풍기 부속 등,
124x42x43cm, 2000년대



국립현대미술관은 올 6월부터 10월까지 《MMCA 다원예술 2022: 탄소 프로젝트》를 진행해 인류세와 탄소중립의 시대에 현대미술관의 태도와 실천이 무엇인지를 모색할 예정이다. 지속가능성이 화두가 된 시대에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지속가능성’인지를 묻고, 이를 위해 필요한 과정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의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이것의 환경적 영향을 파악함으로써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의 관점에서 미술관의 현재를 되물을 예정이라고 한다.


작가 박봉기, 2022



경남도립미술관에서는 국내외를 넘나들며 35년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박봉기 작가의 《박봉기: 두 번의 산책》전이 4월 8일부터 6월 26일까지 열린다. 조각이 주를 이루는 박봉기의 작품 재료는 대부분 자연에서 왔다. 대나무와 볏짚이 대표적이다. 그간 전시 쓰레기를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미술계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전시 작품들은 전시가 끝난 후 해체되어 자연 속으로 사라짐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생태적 위기) 시대의 과제들을 예술로 다시금 바라보고자” 한다는 기획 의도를 충실히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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