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필리핀 마닐라 혜초 김다운 입니다. 이번 칼럼을 통해 필리핀에 온 이후 눈에 띈 몇 가지 필리피노(Filipino)들의 독특한 소비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필리핀에서는 자동차 기름, 담배, 술 등이 매우 싼 편인데요. 이러한 점은 바로 필리핀의 수많은 빈곤층과 서민층들이 불만 없이 살 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이곳에서 만난 영국 할아버지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에 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맥주 값과 물값이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담뱃값을 올릴 때 서민 증세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영국 할아버지의 의견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이러한 필리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민들이 어떻게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들을 종합하여 몇 가지 사례와 함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미니 패키지 & 개비 담배 / 낱개 커피
가장 먼저 소개해 할 것은 흡연자들이 좋아할 제품들인데요. 바로 담배와 커피입니다. 이 중에서 제 눈길을 끈 것은 10개비짜리 담배와 노점이나 길에서 파는 개비 담배였습니다. 한번은 저를 태운 택시기사가 갑자기 창문을 열더니 말보로 담배 한 개비를 사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특이했습니다. 약 3페소(약 75원)정도를 주고 자기가 원하는 종류의 담배 1개비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얘기하면 판매하는 노점상이 라이터로 불도 붙여준다고 하니 담배 1개비로 나름 대접받는 느낌을 느낄 듯 합니다.
많은 흡연자들이 담배와 함께 즐기는 커피 역시 낱개로 판매를 합니다. 믹스커피가 한 봉지당 약 6페소(약 150원)에 판매되고 있는데요. 슈퍼나 노점뿐 아니라 마트에서도 큰 사이즈의 커피보다는 이렇게 한 봉지씩 살 수 있는 커피가 더 많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곳 사람들은 낱개로 사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낱개 형태의 제품들은 커피뿐 아니라 정말 다양한 제품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다운사이징 퍼스널케어 제품들
우리나라는 보통 샴푸를 산다고 하면 적당히 큰 용량을 선호합니다. 가족들이 함께 매일 사용하기 때문에 금방 다 쓰고 또 사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서겠죠. 그리고 더 큰 용량일수록 가격적인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매일 써야 하는 제품이면 가격적 메리트가 있는 대용량 제품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제가 샴푸를 사러 마트에 갔을때 약 200ml 남짓한 적은 용량의 샴푸들밖에 없어 더 큰 건 없나 하고 몇 번을 돌아보다 찾지 못해 결국 적은 용량의 샴푸를 샀었는데요. 알고보니 필리피노들은 그렇게 매일 쓰는 제품이라도 절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제품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트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대용량 제품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3. 핸드폰 선불 충전방식 – 로드(Load)
현지에 살면서 우리나라와 다르게 가장 불편함을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핸드폰 사용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만큼 모바일 인터넷 속도가 빠른 나라는 거의 없기 때문에 속도에 대해서는 원래부터 큰 기대가 없었지만, 항상 미리 로드를 사서 충전해놓지 않으면 전화도 문자도 보낼 수 없는 선불 충전방식에 가장 큰 불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이러한 로드 충전방식을 이용하고 있는데요. 이 방식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편의점이나 노점에서 10페소/30페소/50페소/100페소/300페소/500페소 등의 단위로 로드라는 카드를 사서 뒷면에 회색 스크래치를 제거한 후 카드넘버와 핀넘버가 나옵니다. 그것을 전화나 문자로 등록하면 그 금액만큼 내 핸드폰 번호에 충전이 되는 방식입니다. 필리피노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답변을 받지 못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데요. 나중에 만나서 왜 답을 안 했는지 물어보면 하나같이 "로드가 없었어!" 라고 대답을 하는 것을 보고, 이제는 상대방에 답변이 없으면 로드가 없나 보구나 생각하고 필요할 경우 전화를 하곤 합니다. 저에겐 굉장히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이러한 방식이 많은 필리피노들은 원래부터 이렇게 사용해왔기 때문에 대부분이 불편함을 못 느낀다고 하네요.
One Day Millionaire!
제가 필리핀에 와서 약간은 '이상하다' 또는 '독특하다'고 느꼈던 필리피노들의 소비생활에 대해 몇가 지 사례와 함께 소개해 드렸는데요.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이렇게 미니 패키지와 낱개판매, 다운사이징, 선불 충전방식의 소비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에 대해 저도 궁금해 필리피노들에게 매번 물어봤고, 그 결과 절대적인 소득이 낮은 필리피노들의 삶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이 평균 3~5남매정도 되는 자녀를 둔 대가족인데 한달 평균 4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의 소득으로 살다 보니, 생필품 등을 미리 사 두거나 필요한 양보다 더 구매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매달 15일과 말일 두 번에 나눠서 월급을 받기 때문에 당장 먹고 쓸 것에 소비가 치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One day millionaire"라는 웃픈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하는데요. 한 달에 두 번 있는 월급날이 금요일과 겹치는 날이면 전국의 쇼핑몰들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빕니다. 이는 월급날이자 금요일인 그 날 많은 사람들이 쇼핑몰로 몰리고 소비를 하는데, 이때에 맞춰 매장들도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합니다. 이처럼 월급날 있는 돈을 다 써버리고 다음 월급날까지 아끼고 굶주리며 사는 필리피노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하니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듯이 절대적인 소득수준이 낮은 필리핀에서는 당장 원하는 것을 사기 위해 절대적인 금액이 더 높은 큰 용량의 제품보다는 금액이 낮은 적은 용량으로, 미래지향적인 소비보다는 현재의 만족과 삶의 유지를 위한 소비문화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필리피노들의 소비문화를 잘 파악하고 현지에 맞는 패키징이나 프로모션을 진행한다면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남은 혜초 활동 기간에도 필리핀 마닐라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