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사우분들께 이곳 프랑스 현지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좋을지 고민한 끝에, 오늘 있었던 짧은 해프닝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프랑스 사회를 이해할 만큼 오래 살진 않았지만 짧게 체류하는 동안에도 저는 참 '파업', '시위'와 깊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 프랑스 대학 총 파업으로 담당 교수님 얼굴도 못 본 채로 기말고사만 본적도 있을 정도니까요. 우리가 시청 앞 광장이나 광화문에서 심심치 않게 시위대를 볼 수 있듯이 프랑스도 시위문화가 대단히 발달해 있습니다. 한국과 무척 닮은 모습이죠. 형형색색의 플랜카드도 흔들고, 작은 연기도 뿜고, 종종 확성기도 등장합니다. 혜초가 되어 다시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 완전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었죠. 버스 노조 파업으로 걸어 다니던 나날들과 대학 총 파업으로 굳게 닫혔던 학교 정문까지…
오늘 몽파르나스역 근처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저는 92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악취와 어두침침함으로 유명한 파리 지하철 대신에 버스를 즐겨 이용하는 편입니다) 5분이 배차간격인 버스가 20분 동안 오지 않자, 기다리는 사람이 서너 명에서 삼열횡대로 쭉 늘어설 만큼 많아졌습니다. 버스 도착정보 화면에 다른 버스는 계속해서 뜨는데, 92번 버스만 나타나질 않습니다.
저는 다리가 아파서 앉았다 섰다를 몇 번 반복했고 몸은 베베 꼬였는데 지팡이를 짚으신 노인 분들은 별로 동요하지 않더라고요. 결국 적막은 제가 제일먼저 깼습니다. "오늘 버스 파업하나요?" 노신사가 웃으며 대답해 주시더라구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지만, 다른 버스는 다 다니는데 92번 버스만 파업을 하진 않겠지…"
결국 20~30분을 영문을 모른 채로 더 기다리다가 같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발길을 돌리자 저도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태연하고 담담해서 터뜨리지 못했던 울분을 택시 아저씨에게 토로했습니다. 배차간격이 5분인 버스를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도 못 탔노라고!!
그러자 아저씨가 저를 달래며 요즘 간호사들이 이 일대를 막고 시위하는 일이 많아서 종종 일부 버스가 운행을 못한다는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러자 저는 오늘 아침 뉴스에서 보았던 생각이 났습니다. 프랑스 보건부가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간호사 및 병원 직원들의 근무 일수를 줄이려고 하는데, 그러면 급여가 상당히 줄어들기 때문에 의료인들이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흰색 옷을 입은 시위대의 모습이 잠깐 비췄었습니다. 그렇지만 화장품 시장 조사를 하러 파리에 온 저는… 무심하게 채널을 돌렸었죠.
"의료인들은 분노한다!" 라고 씌여진 피켓
의료인들이 점거한 파리 시청앞
뭐 '프랑스 사람들은 지하철이 파업을 해도 군말 없이 걸어 다닌다.' 또는 '본인의 권익을 보호받기 위해서 타인의 주장도 존중할 줄 아는 선진 시민들이다.' 하는 찬양에는 100% 동의하진 않습니다만, 프랑스 사람들이 파업과 시위로 인한 불편을 우리보다 더 잘 참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기다림" 자체에 익숙하기 때문이겠죠. 오지 않는 인터넷 설치 기사를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오지 않는 버스를 느긋하게 기다리거나!
우리도 '기다림'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버스 도착 정보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서울 시내의 모든 간선, 지선, 광역버스의 위치 정보를 조회를 할 수 있는 어플은 정말 위대한 개발인 것 같습니다. 혹시 프랑스에는 노선 정보만 알려주는 어플 말고, 버스 위치 정보 알려주는 어플은 없을까요? 혹시 알고 계신 분은 저에게 꼭 알려주세요!